2017-03-18

그것이 우리의 죄다

- 탄핵이 어떻게 될 거 같아?
- 니가 졌으니까 한우나 사.
- 아니 궁금해서.
- 탄핵하는 날이 언제인가를 두고 내기를 했는데 그게 왜 궁금하냐?
- 그래도.
- 탄핵이 되든 말든 우리는 아무 영향이 없으니까 한우나 사.
- 궁금한데?
- 궁금하면 로또나 사. 이번 주는 당첨자가 많을 테니까 쉬고 담주에.

탄핵 결정을 언제 하는지 내기를 했다. 2월 25일 전후로 각자 택일을 했다. 탄핵 선고일이 결정되자 친구가 전화했다. 우린 탄핵이 인용된다는 암묵적 동의하에 내기했지만 기각이 될까 불안했다.

박근혜를 탄핵했다. 내기는 내가 이겼다. 이 기분은 이명박 때 느끼고 싶었다. 내가 이기든 친구가 지든 변한 건 없다.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아주 조금 체면이 섰을 뿐이다. 그뿐이다. 변한 건 없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이들을 위해 찌그러지자. 미안하고 죄스런 맘이 들면 로또 당첨금을 막 뿌리자. 뉴스타파,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어디에 거액을 기부할까 상상하며 일주일씩 버티자.

친구야, 우리는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다. 그것이 우리의 죄다.

2017-03-17

성공 변천사

1. 20110528 이전
세월이 갈수록 가족과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더욱 좋아하게 되는 것.
-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공병호 20051228 187쪽

2. 20110528
세월이 갈수록 가족과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더욱 감탄하게 하는 것.

3. 20140505
세월이 갈수록 좋은 사람들이 더 좋아지는 것.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성공에 대한 생각을 덧붙입니다.

붙임01 (20170316)
여튼 더더욱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엔 맘 맞는 친구들이랑 만나면 서로 눈이 반짝거리는 얘깃거리가 끊임이 없었는데 이제는 다들 일에 쫓겨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현실. 얘깃거리가 많은 어른이 되고 싶다. @monami16

붙임02 (20170920)
한국 사회에서 출세라는 것은 자기가 받는 봉급엔 한 푼도 손을 대지 않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걸 말합니다. - 최강욱 변호사가 한국적 성공과 속물이 탄생하는 원인을 콕 집었습니다.

2017-03-12

국론분열

국론분열이라는 용어는 민주주의하고 안 맞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민주주의 국가가 어떤 중요한 정치적인 사회적인 정책적인 쟁점에 대해서 온 국민이 하나의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거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국민들 사이에 어떤 문제를 두고 의견이 갈라져 있고, 때로는 그것이 격렬하게 갈라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된다. 국론분열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순간 문제를 처리할 길이 없어진다. 일단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든 간에 두 개로 쪼개지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다 통합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그러면 옳고 그름도 안 가리고, 불법 합법도 안 가리고, 다 덮고 대동단결하자고요? 이런 식으로 현재의 사태를 심각한 국론분열, 사회적 혼란, 그래서 통합이 필요하다는 논리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20170310 JTBC 특집 토론, 유시민 작가의 말)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이 유시민 작가의 말을 듣고 깨끗하게 정리가 됐다.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하라는 여론이 80% 가까이 되는데 국론분열이 아니라 압도적인 국론통합이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먼저다. 통합하고 용서하자는 무리가 배신자고 부역자다.

2017-03-10

Park out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박근혜를 탄핵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다. 박근혜는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파면당한 대통령이 됐다. 인류 역사상 부녀가 대통령 취임식은 했지만 퇴임식을 못한 첫 사례다.

이것은 나의 현대사에서 최대 사건이다. 오늘은 잔치국수, 닭도리탕 그리고 치맥이 어울리는 날이다. 이제 매년 3월 10일은 촛불혁명기념일이고 잔치국수를 먹는 날이다. 너나들이 벗들과 치맥이랑 닭도리탕에 쐬주를 마시면 더 좋은 날이다.

오늘은 가장 강렬하고 통쾌한 날이다.

2017-03-07

나미브 사막에 물이 있나요?


나미브 사막에 동이 트면서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인접한 대서양의 습한 공기가 식으면서 내륙으로 밀려와 짙은 안개가 되어 사막을 뒤덮습니다. 이 귀중한 수분은 모래언덕 꼭대기에만 머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집니다. 해가 뜨면 몇 시간 만에 다 증발해 버립니다.


거저리들은 안개가 걷히기 전에 서둘러 모래언덕 꼭대기로 향합니다. 거저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물구나무서기 자세를 하고 섭니다. 안개가 거저리의 몸에 응결되기 시작합니다. 물방울들이 입으로 흘러들어 갑니다. 언덕을 내려가기 전에 거저리는 자기 몸의 40%에 달하는 물을 마십니다. 이 작은 딱정벌레는 지구 상에서 건조하기로 손꼽히는 지역의 대기에서 물을 만들어 내는 법을 알아냈습니다.


물갈퀴 도마뱀붙이들도 비슷한 방법을 씁니다.


나마쿠아카멜레온은 안개 낀 아침에 모래언덕에서 내려오는 거저리들이 올라갈 때보다 즙이 많다는 걸 알고 잡아먹습니다. 물이 거의 없는 세상에서 이처럼 다양한 생물들이 번성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Polar bear foraging at garbage dump ©Jenny E. Ross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KBS 글로벌 다큐멘터리 살아있는 지구, 사막 편 마지막 5분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들어 옮깁니다. 노아의 방주에 노아 일가(一家)만 타지 않았으면 지구가 저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며 반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