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6

사다리 걷어차기

영국이 자유 무역 체제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선진화된 기술력을 지녔기 때문이며, 이런 기술력 뒤에는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된 높은 관세 장벽'이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19세기 중반에 발생한 영국 경제의 전반적인 자유화는 자유방임주의에 의해 이룩된 것이 아니라 정부의 감독 아래 진행된 고도의 관제 사건임에도 역시 주목해야 한다. (55)

우리는 여기서 명백한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 적어도 당신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라면 그럴 것이다. 모든 국가들,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바람직한' 정책을 사용한 1980년 이후의 20여 년보다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을 사용한 1960 ~1980년 사이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이 역설에 대한 분명한 해답은 '바람직한'으로 여겨진 정책들이 기실 개발도상국들에게 유용하지 않으며,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정책들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기만 한다면 더욱 유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흥미롭게도 현재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정책들은 선진국들 자신이 개발도상국이던 시기에 사용한 정책들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선진국들이 현 개발도상국들에게 소위 '바람직한' 정책을 권고하는 것은 자신들이 정상에 오르자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35)

현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현 개발도상국들과 유사한 발전 단계에 있을 때 갖추지 않고 있던 제도를 가용함으로써 이들에게 이중 잣대를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불필요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이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 (245)

사다리 걷어차기/장하준/형성백 역/부키 20040510 328쪽 12,000원

신자유주의는 정상에 오른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이 이용할 사다리 걷어차기. 보호주의 무역으로 성장한 선진국이 자유주의 무역을 하자고 강요하는 모순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다른 이들이 그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을 빼앗아 버리는 행위로, 매우 잘 알려진 교활한 방법'임을 알려준다.

'현재 경제 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제도의 대부분이 현 선진국들의 경제 발전의 원인이기보다는 결과였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

2016-08-15

어디 사세요?

'집'은 이제 주거 이상이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모든 문제를 농축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당락을 가르는 토건공약, '사는 집'이 아닌 '파는 집'에 매달려온 건설업체, 여기에 편승해온 우리 안의 욕망이 유착한 결과다. 세입자의 경우 2년마다, 집이 있더라도 5년마다 이사를 가는 '신유목민' 사회의 주원인이다. 정치·사회의 지형까지 바꿔 놓은 악순환의 3각 고리는 깨지기는커녕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우리는 사는 지역과 집 소유 여부, 주택 형태에 따라 계급과 신분이 정해지고, 삶의 질마저 저당 잡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은 '현대판 호패'인 양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16)

임금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주택비용은 소득과 고용의 불안정과 더불어 미래 세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88만원 세대'는 일자리 부족과 낮은 임금 때문에 내 집 마련이 어려워 결혼에서 갈수록 멀어지고, 기혼자들은 버거운 주택 대출 비용에다가 양육비를 감안하면 아이 낳기가 무섭다고 말한다. (69)

결국 부모가 자식에게 집을 사줄 여력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집 마련 문제로 결혼과 미래마저 어려운 현실로 내몰리는 셈이다. 또는 '무주택자'라는 주택시장의 하위 지위가 대물림되거나, 결혼에 있어서 불리한 지위가 될 수도 있다. (79)

건설 재벌, 부동산 관벌, 정치인, 보수언론, 일부 학자로 구성된 '부동산 5적'이 투기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정치와 토건 산업이 유착되면 주거정책은 보통 사람들을 위한 '싸고 질 좋은' 집을 담는 그릇이 되기 어려워진다. 특히 수입으로 공급을 조절할 수 없는 주택이란 상품의 특성을 감안하면 국내 시장 질서의 혼란은 곧장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109)

우리 사회에서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은 대학 배치표에서 '어느 대학', '어느 과'를 가늠하듯, 우리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함축하는 질문이다. 거주 공간과 형태가 '계급지표'로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지역, 어떤 도시의 어떤 형태의 주택에서 자가 또는 임대로 사는지 여부가 삶의 질을 가르고 바꿔놓는다. 사실 공간의 양극화는 한국 사회의 계급적인 불평등이 드러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공간은 서울과 지방과의 차이로, 그리고 서울 안에서 사는 동네가 갈리면서 다시 한번 구체화된다. (181)

서구사회에서 '복지'라는 개념이 '주거'의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지금껏 그 '복지'를 개인의 힘으로 풀어야 할 숙제 정도로만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폭등한 집값은 각 개인의 건강은 물론이고 사회공동체에 균열을 내기 시작하기에 이르고 있다. (187)

어디 사세요?/경향신문 특별취재팀/사계절 20101207 340쪽 15,800원

부동산의 대물림은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이 되고, 공간의 양극화로 나타나고 있다. 집값을 안정화 시키는 혁명적 대안은 이미 많은 이가 제시하고 있다. 부동산 5적과 그에 포섭되거나 편승한 최고 권력이 방치하고 있을 뿐이다. 책에서 다룬 독일식 임대주택과 세입자 보호정책, 일본의 버블 붕괴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아쉬운 느낌이다. 파격적인 부동산 정책에 대한 사례나 대안을 함께 제시했으면 더 좋았겠다.

'어디 사세요?'라는 물음이 계급적 지위가 아니라 소유의 종말을 묻는 시대가 됐으면 싶다.
- 어디 사세요?
- 강남이요.
- 어머! 요즘도 집을 사는 분이 계셨네요.
- !?!

2016-08-11

혁명

'혁명'이란 정확하게 권력과 부의 대이동, 그리고 권력 구조의 본격적인 재편성을 의미한다. 사회주의 혁명은 원칙상 권력 그 자체의 극복 즉 권력과 부가 없는 사회를 지향하지만 우리가 역사에서 아는 '현실적' 사회주의 혁명들은 다 빠짐없이 대대적인 반동, 즉 권력과 부의 재등장과 그 체제의 재편성으로 귀결됐다. (78)

"백성이 힘들어서 혁명이 일어난다"는 등식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 백성이 힘들면 발버둥 쳐 살기도 하고, 굶주려 죽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혁명이 곧 일어나는 건 아니다. 한 가지 필수조건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국가 폭압 기구의 내파·돌연적 약화'다. (...) '권력의 공백'이 필요하다. 그 틈새가 생기면 그걸 '혁명적 권력'으로 채우면 된다. 즉 '이중 권력 상태'의 전제조건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지배자들이 그걸 모르지 않는다. (101)

일제 시대 '불령선인(不逞鮮人)'들이 지금은 독립투사로 불리듯이, 지금 투쟁으로 쓰러지고 '업무방해'와 같은 죄목으로 옥살이를 하고, 해고 당한 본인이나 가족들이 생계 곤란자가 되는 비정규직 운동가들이, 미래에는 우리를 경쟁의 지옥으로부터 한 걸음 나아가게 한 노동계의 영웅으로 불릴 수 있기를 바란다. (123)

한국적 체제란 일단 '딴 생각'을 할 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 체제다. 그러나 절망적 정서가 어느 정도 고착되어 대중화·보편화되면 한국도 어쩌면 그리스처럼 '젊은이들의 만성적인 불만이 폭발하는 나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지금의 절망적 상황을 어느 정도 깊이 인식하는가, 라는 문제가 핵심적일 듯하다. (321)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박노자/한겨레출판 20090622 322쪽 12,000원

혁명은 딴생각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걸 아는 지배자들은 딴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경쟁 교육, 비싼 등록금, 알바, 최저임금, 비정규직, 전기료 누진제 등등으로 먹고살기 바쁘게 만들었다. 먹구 대학생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1987년은 민주화 혁명이 일어났지만, 그보다 못한 지금은 민란조차 없는 이유다.

멍 때리는 여유를 만들려고 투쟁하고 연대하고 지지하는 게 혁명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