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1

이런 사드라면 삽시다

예전 무지랭이 신입사원 시절. 펌프를 돌리는 모터가 고장이 나 새로 사야 했습니다. 고장 난 모터는 미제였는데 돈 좀 아낀다며 국산으로 견적을 받았습니다. 견적금액이 예상보다 높아 미제 모터랑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견적을 잘못 넣었나 싶어 업체에 전화했습니다.

- 모터가 왜 이리 비싸요?
- 사양이 방폭모터잖아요.
- 예. 맞습니다.
- 방폭모터는 값이 두 배입니다.
- 아니, 왜요?
- 똑같은 걸 두 대 만들어 하나는 시험을 해봐야 하거든요.

모터를 설치할 곳이 방폭지역(폭발성 가스, 증기, 분진 등에 의해 위험 분위기가 조성되는 장소)인데 미제는 UL(Underwriters Laboratories Inc) 인증으로 품질이 보장되지만, 당시 국산은 기술력이 모자라 하나 더 만들어 방폭시험을 했었나 봅니다. 결국 납품기일이 더 걸리더라도 미제 모터로 구매했습니다.

사소한 물건도 유효기간을 따지고 품질보증을 했는지 확인하고 삽니다. 특별한 목적을 가진 물건일 때는 몇 곱절 더 신중합니다. 공인기관이 인증하였어도 제작과정이나 성능시험을 구매자가 직접 확인하기도 합니다.

방탄조끼는 납품업체 사장에게 직접 입히고 총을 쏴보라는 우스개소리가 있습니다. 방탄조끼를 규격대로 만들었다면 사장이 자신 있게 입을 테니까요. 이런 식으로 성능시험을 한다면 불에 타는 소방복이나 방탄기능이 없는 방탄복을 납품하지는 못하겠지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마찬가집니다. 성능을 보증할 기관이 없으니 방폭모터처럼 시험하면 됩니다. 제조업체인 록히드마틴은 개발이 완료돼 명중률이 90%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미국 본토에서 북한 미사일이 날아오는 조건으로 시험하는 겁니다. 사드 배치론자나 예찬론자는 공격용 미사일이 떨어지는 지점에서 참관하면 되고요. 성능 확인이 되면 두 배 값으로 사 옵시다. 기꺼이 방위성금을 내겠습니다.

2015-03-19

주관식 투표는 원시적인가?

선거하는 나라의 투표용지를 보면 재밌습니다. 기호와 이름뿐만 아니라 후보자 사진이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문맹률이 높고 군소 정당이 많은 인도는 정당의 상징물도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정당 상징물로 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는 물건을 쓰도록 권장하고 있답니다. 우리도 그랬던 시절이 있습니다. 1960년대까지도 문맹 유권자를 위해 아라비아 숫자 대신 막대기로 기호를 표기했습니다. 이러한 투표용지에 표시하는 방식을 객관식 투표라고 합니다.

이와는 달리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직접 손으로 쓰는 주관식 투표 방식이 있습니다. 일본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1960년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딱 한 번 채택했었답니다.

기표식 투표(記票式投票)나 자서식 투표(自書式投票)라고 하지만 객관식 투표와 주관식 투표로 부르면 더 와 닿고 실감이 납니다. 사지선다형으로 학창시절을 보낸 객관식 세대라서 그런가 봅니다.

일본처럼 주관식 투표를 하는 선거가 불편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이 있습니다. 객관식 투표보다 개표에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필적(筆跡)으로 투표자를 식별할 수 있어 비밀주의에 어긋날 수 있으니까요. 가장 큰 문제는 문맹자의 투표를 제한하니까 원시적이라고 합니다.

과연 주관식 투표가 비민주적이고 원시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불거진 개표부정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투표용지를 미리 만들 필요가 없어 중도 사퇴로 인한 혼란을 막아줍니다. 투표의 유효율이 높아집니다. 무엇보다 후보자 이름도 모르며 기호○번을 찍는 묻지마 투표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후보를 지지하고 이름을 손수 쓰려면 적어도 공약집을 한 번 더 들여다봐야 합니다. 도장을 찍는 것과 달리 정치에 한뼘 더 적극적이게 됩니다. 어쩌면 자신이 직접 썼던 후보가 개판을 치면 일말의 책임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문자 문맹자보다 정치 문맹자가 많다면 주관식 투표가 객관식 투표보다 더 민주스럽고 선진적입니다.

2015-03-08

꽁초세대

택시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연세 지긋한 백발의 기사님이 담배를 물며 말했습니다. “내가 마누라랑 산지는 삼십오 년이지만 담배랑 산 건 더 오래됐어요. 그러니 어떻게 끊을 수가 있어요. 차라리 마누라를 끊지요. 하하하” 농담이지만 담배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담배 끊은 놈은 상종도 하지 말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박장대소하다 맞담배질을 했습니다.

그때는 담배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500원짜리 ‘솔’이 가장 많이 팔렸던 1986년에도 환희(100원), 청자(200원), 한산도(330원) 등등 참 많았습니다. 필터 없는 ‘새마을’은 50원이었습니다. 까치담배를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한 갑을 살 돈이 없거나 담배를 줄이려고 한 개비씩 사서 피우곤 했습니다. 담배 인심도 좋았습니다. 모르는 이에게 담배 하나 빌리자고 하면 언제까지 갚으라는 말도 없이 빌려주곤 했었죠. 정말 한 푼도 없으면 모를까 꽁초를 피지는 않았습니다.

요즘 길거리는 지난해보다 꽁초가 줄었다고 합니다. 담배값이 올라 피는 이가 줄어서가 아니라 누군가 꽁초를 줍기 때문이랍니다. 살림이 어려운 노인분들이 꽁초를 주워 피운다고 합니다. 까치담배도 다시 나왔습니다. 예전처럼 아주 싼 담배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 그럴 겁니다. 먹고 살 돈도 없으면서 기호식품을 끊지 못한다며 손가락질을 받는 이른바 ‘꽁초세대’가 시작되는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

더 암울하고 슬픈 건 88만원 세대의 미래가 꽁초세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분노조차 하지 않으면 말이죠. 벽에 대고라도 욕하지 않으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