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28

장맛비는 어떤 맛일까?

1.
틀린 문제는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국민학교 5학년 시절. 나뭇가지의 본디말을 쓰라는 주관식 문제가 나왔습니다. 빈칸을 채우지 못했답니다. 정답을 맞혀보니 '나무의 가지'라고 하더군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시험문제입니다.

2.
한글 맞춤법 제30항에 따라 사이시옷을 표기한답니다. 규정이 그렇다고 해도 만둣국, 장밋빛, 맥줏집, 고양잇과, 절댓값, 꼭짓점, 막냇동생 등등에 붙어 있는 사이시옷은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 느낌입니다. 본디말도 본딧말이 표준이라고 합니다. 혹자는 사이시옷을 두고 '우리말의 아킬레스건'이라고도 하더군요. 사이시옷 폐지론자들도 있고요. 개인적으론 사이시옷이 풍년인 시대라 유감스런 맘이 생깁니다.

3.
장맛비도 마찬가집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대신 고추장맛일지 된장맛일지가 더 궁금해집니다.

2013-04-24

선거와 정전

오늘은 시에서 하는 전기작업으로 하루를 쉽니다. 전신주 유지보수를 위해 점검과 부품교체를 하는 것 같습니다. 반도였으면 우회 전선을 설치해 통전을 시키고 작업을 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을 합니다. 아침 여덟시 반에 정전이 된다고 했지만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단전이 됐습니다. 오후 네시에 통전이 된다고 했는데 그건 가봐야 알겠습니다. 하절기에는 주 1회씩 정전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뿐만이 아니라 대도시는 전기소비량이 증가하다 보니 그런 다네요. 대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대체근무를 한답니다.

오늘이 반도에서는 재보궐 선거날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대륙에 온 지 딱 두 달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여기는 정전이더라도 늦게나마 전기가 들어오겠지만, 선거가 끝나는 반도는 늦게나마 뭐가 바뀔지 궁금해집니다. 점심을 먹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2013-04-07

잠옷도 아웃도어 패션이다

대륙에 와서 놀란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물가가 생각보다 엄청 높더군요. 반도랑 차이가 거의 없는 거 같습니다. 시골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상하이나 광저우에 있는 쇼핑몰에서 가격표를 보고는 쓰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공산품 가격은 반도와 비슷하고, 아파트값도 서울이랑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어제는 숙소 바로 앞에 옷가지와 가방을 파는 이층으로 된 쇼핑몰에 들렀답니다. 조그만 남자 가죽 가방에 붙은 가격표를 보니 이십만원이 넘더군요. 원래 비싼 곳이라고 하데요. 물건은 쓸만해 보였지만 그 가격으론 누가 선물을 해준다고 해도 말리고 싶습니다. 농산물 빼고는 서울 물가를 뺨칠 정도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아파트도 반도에서 유행했던 투기붐이 일고 있다네요. 한쪽에선 계속 짓고 있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나 봅니다. 일전에 상하이에 있을 때 일요일인데도 사람들이 북적대길래 슬쩍 들어가 구경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파트 청약을 하는 것 같더군요. 오일장터보다 더 시끌벅적하더군요.

또 하나 놀란 건 잠옷을 입고 외출하는 사람이 종종 보인다는 겁니다. 집 앞에 잠깐 나온 것이 아니라 볼일 보러 가는 길인데도 그렇습니다. 이른 아침이나 휴일엔 더 많고요. 어떻게 잠옷을 입고 외출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엔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어느 날 누워서 뒹글 거리다 퍼뜩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 이상하게 볼 것도 아니라는 걸. 반바지를 잠옷처럼 입고 소파에 쓰러져 자다 담배 사러 나가는 나랑 별반 차이가 없는 거죠. 나는 외출복을 잠옷으로 입은 거고, 그들은 잠옷을 외출복으로 입은 거니까요. 요즘은 예쁜 잠옷차림으로 길을 가는 이를 보면 어디서 샀을까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스무리 합니다.

2013-03-31

내가 쐈다

총을 쏜 건 아니고요, 어제 외식을 했습니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밤에 아파트에 붙어 있는 식당에서 먹었습니다. 같이 동숙하는 회사 동료와 함께요. 보통 회사 식당에서 세끼를 해결하는데 저녁 식사시간에 일이 생겨 둘이 끼니를 못 때웠답니다. 퇴근하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먹자고 손짓 발짓을 하며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여기는 점심에 요기를 할 게 아니면 보통 사람 머릿수대로 음식을 시킵니다. 비록 둘이 왔지만 푸짐하게 먹어야 한대서 요리 셋을 주문했답니다. 둘이 먹기에 많아 보이나요?

오른쪽 양푼에 나온 건 물고기로 만든 겁니다. 맛도 생김새도 반도에 있는 백김치와 비슷한 것도 들어가 있더군요. 왼쪽 아래는 우리가 흔히 마파두부라고 부르는 건데 발음도 비슷합니다. 그 위 사각 접시에 담긴 건 양고기로 만들었다네요. 마파두부는 약간 매운맛이 나서 제 입에 딱 맞더군요. 다른 요리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른쪽 귀퉁이에 보이는 컵에 담긴 건 음료수가 아니라 35도짜리 고량주입니다. 작은 병 두 개를 시켜 각자 컵에 따라서 음식을 먹으며 마셨습니다. 반도처럼 잔을 돌리는 건 없고, 그렇게 하면 큰 실례라 하더군요. 대신 담배를 권합니다. 처음 만나서 인사를 하자마자 담배를 하나 주며 피우라고 합니다. 지난번에는 그렇게 받은 담배가 순식간에 셋이나 되더군요.

많아 보이지만 밥까지 시켜서 같이 알뜰하게 먹었습니다. 동료가 계산하려고 일어나길래 내가 쏜다고 했습니다. 물론 중국말로요. 114원이 나왔는데 4원을 깎아줬습니다. 음식을 먹으며 둘이 서로 영어와 중국말을 섞으며 손짓 발짓하는 걸 보더니 식당 주인아줌마가 한국에서 왔냐며 묻더니 저 보고 잘 생겼다고 하더군요. 웬만해선 에누리가 없는 대륙인데 그 덕을 본 거 같습니다.

상하이에서 아가씨가 길을 물어 본 거나 이번 식당 주인아줌마가 한 말로 보아 제가 대륙 체질인가 봅니다.ㅎㅎㅎ

2013-03-25

한 달이 됐습니다

오늘이 중국에 온 지 딱 한 달이 되는 날입니다. 지난 2월 24일에 김포에서 상하이로 날아왔고, 다시 3월 12일에 광저우로 이동했습니다. 지금 광저우는 반도의 초여름 정도 날씨인데 허약한 체질인지라 감기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온종일 잠만 잤답니다.

어제는 퇴근하며 회사 동료들과 숙소 주변에 있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답니다. 그들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내게는 대륙에 온 지 한 달을 자축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주문한 음식도 입맛에 맞아 맛나게 먹었고요. 개인적으론 배가 불러 맥주를 좋아하지 않지만 여기는 즐겨 마시는 것 같습니다. 각자 자기 앞에 한 병씩 놓고 자작을 하더군요. 우리처럼 잔을 돌리는 문화는 없다고 하더군요. 추운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술도 독한 걸 마신다고 하고요. 광저우는 최남단이고 더운지라 맥주를 주로 마신답니다.

광저우는 바다에 접해있지만 회사와 숙소는 북쪽지역인지라 그림자도 못 봤습니다. 광저우 중심가는 20킬로미터나 가야 한다네요. 광저우시가 경기도1만 하다니까 반도로 치면 여주쯤에 있는 셈이죠.

중국말은 하나도 늘지 않았습니다. 단어 하나를 외워도 돌아서면 잊어버립니다. 한때는 나름 총기가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다 옛날 얘기가 됐습니다. 나이탓이라는 핑계를 대지만 대굴빡이 퇴화한 건 확실한 거 같습니다. 참 다행인 건 필답으로 하면 통한다는 겁니다. 고딩시절 엄청 싫어했던 매일 한자를 한 장씩 쓰던 숙제 덕을 여기서 누리고 있습니다.

여기 온 혜택 중에 가장 큰 건 뉴스를 보지 않으니 저절로 힐링이 된다는 겁니다. 트위터도 우회해서 접속을 해야하는지라 아주 가끔씩 들어갑니다. 힐링, 어렵지 않아요. 끊으면 된답니다.

감기에 걸려서 그런지 얼큰한 라면이 먹고 싶네요. 아파트 앞 상가에 가서 비스무리한 라면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1. 충청북도만 하다는 걸 후에 알았다.

2013-03-12

짜이찌엔 상하이

어제 아침엔 비가 살짝 내리고 하루종일 쓸쓸한 바람이 불어 첫눈이 내릴 것 같은 날이었습니다. 토요일엔 초여름 날씨여서 땡칠이가 됐었는데 말이죠. 반도처럼 여기도 날씨가 널뛰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정오쯤에 상하이를 떠나 광저우로 갑니다. 상하이에 있으며 음식이 입에 맞니 안 맞니 했지만 반도 음식을 꽤 많이 먹었습니다. 감자탕, 칼국수 두 번, 순두부, 돌솥비빔밥, 삼겹살 두 번, 김치죽. 어제 저녁도 칼국수와 왕만두를 먹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이라 여기며 밥까지 말아 국물 하나 없이 홀라당 마셨고, 남은 왕만두 하나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었답니다.

방금 어질러놨던 옷가지들을 챙겨 가방에 쑤셔 넣었습니다. 여기 와서 늘어난 짐이라곤 쓰레빠 하나뿐인데 다시 가방을 싸려니 빈틈이 없네요. 옷가지 몇 개가 들어가질 않습니다. 어떻게 넣어왔는지 아리송합니다. 1박2일 동계훈련 옷차림처럼 꾸역꾸역 껴입고 가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광저우에 가면 일이 바쁘기도 하지만 주위에 살뜰히 챙겨 줄 이도 없을 듯합니다. 더군다나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이는 보스뿐이니 입에 곰팡이가 피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만, 좌충우돌 명랑중년 적응기가 될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ㅎㅎㅎ

2013-03-05

먹고 보자

밥은 잘 먹고 있습니다. 다만, 밑반찬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으니 먹더라도 뒷맛이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입가심할 물도 주질 않습니다. 월요일 점심때 출입국 사무소에 갈 일이 있어 한인촌에서 설렁탕을 먹었습니다. 반도와 마찬가지로 김치와 무, 고추랑 된장을 먼저 내 주더군요. 설렁탕이 나오기 전에 밑반찬을 맛보니 더욱 대륙의 식당이 야박하게 느껴집니다. 조금 비싼 곳에 가야 겨우 한둘 나올 정도입니다. 전라도 기사식당을 보여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집니다.

밥보다 면이 더 비싼 것도 신기합니다. 가장 저렴한 볶음밥이 7원인데 면이 10원입니다. 오늘 점심은 회사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식당에 가서 먹었습니다. 계란볶음밥이 6원이었습니다. 밥이나 면에 어떤 양념이나 고기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지만 면 종류가 더 다양하고 값도 밥보다 더 비싸더군요.

방에 있는 흐물흐물한 실내화가 불편해서 쇼핑몰에서 쓰레빠를 사왔는데 알고 보니 여성용이더라고요. 발 크기에 얼추 맞는 걸 샀는데 영수증에 女자가 있어 물어보니 여자사람 것이라 하더군요. 그래도 발에 맞고 편해서 좋습니다.


여기가 숙소 바로 뒤편에 있는 쇼핑몰입니다. 마트보다는 비싸고 백화점에는 못 미치는 가격대의 물건들과 식당이 들어차 있습니다. 그 옆에는 또 다른 쇼핑몰이 들어서려고 준비가 한창입니다. 평일에도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풍경이 흔하고 주말엔 장을 보러 나온 이들로 붐빕니다.

숙소와 쇼핑몰 사이에는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이 근방에서 유일한 교회라고 하더군요. 일요일 저녁에도 지나쳤지만 반도의 교회처럼 떠들썩하지 않아 신도들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 일기예보를 보니 낮에는 초여름 날씨까지 기온이 올라간다고 하네요. 그동안 스모그와 안개 그리고 바람까지 불면 시나브로 다리가 떨리는 날씨여서 거시기했는데 내일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영역표시 기간이 지나면서 그냥 요래 먹고 보며 지내고 있답니다.

2013-03-04

모르면 직진이다

20130301 비바람
출근할 때 내리던 비가 오후 세시쯤에 그쳤습니다. 바람도 불고 난방이 안 되는 사무실은 스산한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겨울옷을 입기는 부담스럽고 봄옷을 입기는 이른 그런 날씨였습니다. 각자 조그만 전기난로를 켜기도 하고 벙어리장갑을 끼고 마우스를 사용하기도 하더군요. 추위에 잘 견디는 편이라 외투를 벗어놓고 있었지만 오늘은 외투를 입고 근무했습니다. 덕분에 실내가 금연인지라 비가 그치기 전까지 담배를 피우지 못했답니다.

20130302 바람
첫 주말을 맞았습니다. 느지막이 일어나 조반을 챙겨 먹었습니다. 오늘은 시장 구경을 가기로 했습니다. 奉贤区(Fengxian Town)에 있는 숙소 앞에 南奉公路(Nanfeng Hwy)가 있습니다. 전날 시장 가는 길을 물으니 숙소에서 나와 왼편으로 도로를 따라 쭉 걸어가면 나온다고 합니다. 시장에 가서 길거리 음식도 먹을 겸 정오가 조금 안 돼 숙소를 나섰습니다.

길을 따라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해는 났는데 막상 나오니 바람이 붑니다. 칼바람은 아니지만 은근히 쌀쌀합니다. 잠깐 해가 나오면 나은데 숨어버리고 바람까지 불면 손을 내놓고 걷기엔 약간 시릴 정도였습니다. 바람도 피할 겸 마트에 들어가 기웃거렸습니다. 반도 같으면 시식 코너에 들리는 재미도 있지만 여긴 딱 한 군데만 시식코너가 있습니다. 소나 돼지의 간으로 보이는 걸 썰어 놨더군요. 간을 간장으로 간을 한 맛이 납니다. 하나 더 집어 먹었습니다. 더 먹고 싶지만 눈치가 보여 자리를 떴습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도 단무지 비스무리한 것은커녕 물 한잔도 안 주는 짠돌이들인지라 오히려 시식 코너가 있는 게 신기해 보였습니다. 물건값도 농수산물을 빼고는 반도랑 차이가 없더군요. 물가가 서울 뺨친다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시장 근처에 가면 사람들이 많이 보일 거라고 했는데 그런 풍경이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다시 길을 따라 직진하다 보니 검찰청도 보이고 그 옆에는 경찰서도 있더군요. 죄지은 것도 아닌데 그 앞을 지나니 여기서도 공연히 쫄리더군요. 시장을 찾는 건 포기하고 이정표를 보니 东海大桥(동해대교)가 6km 남았다고 합니다. 저길 가면 바다를 볼 수 있겠지 하며 무작정 직진을 했습니다.

옛 시가지 구역을 지나면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가 있고, 거길 지나니 시골 풍경이 나오더군요. 대륙의 흔한 풍경은 아니지만 비슷한 모습도 봤습니다. 이곳 길은 차도와 인도 사이에 자전거나 오토바이만 통행할 수 있는 도로를 따로 만들어 놨습니다. 1차선 정도의 폭이 기본인 것 같고, 더 넓은 곳도 있더군요. 서로 침범을 못 하도록 나무를 심은 화단으로 구분해놨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길을 건너며 보니 신호등에 남은 시간을 표시해 주더군요. 파란불, 빨간불, 좌회전 신호등마다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가 밑에 달려 있어 남은 시간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운전자는 어떤지 모르지만 횡단보도를 건너도 20초가 남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만, 운전자나 보행자 대부분이 신호를 지키지 않아 전후좌우 사주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지만 말이죠.

그냥 걸었습니다. 마냥 걸었습니다. 무작정 걸었습니다. 시가지가 끝나니 복숭아밭도 있고, 배추밭에는 배추가 잘 자라고 있더군요. 요즘 뜨고 있다는 손세차장도 많이 봤습니다. 그렇게 걷다보니 동해대교가 1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긴머리를 한 아리따운 처자가 제게 다가오는 겁니다. 내 앞에 오더니 웃으며 길을 묻는 거였습니다. 알아듣지는 못하고 눈치를 보니 그런 거 같았습니다. 저도 웃으며 대답을 했습니다. 팅부동(听不懂), 한구어렌(韩国人).

전날 배운 말을 써먹었습니다. 못 알아들어요, 한국인입니다. 그 처자는 미소를 남기고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지나쳐 갔습니다. 진작 중국말을 배울 걸 후회하면서도 한가지 위안은 되더군요. 제가 말은 못해도 외형은 현지인으로 보였다는 거죠. 적당히 나온 배와 야식으로 라면을 먹고 부은 듯한 낯짝, 장롱다리는 급속하게 현지화를 만들었습니다.ㅎㅎㅎ

동해대교 이정표가 끝나는 곳에 이르고 나서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바닷가를 기대했는데 동해대교로 가는 나들목이 나타났거든요. 저녁 식사 때 물어봐서 알았지만 동해대교는 멀리 동쪽 끝에 있고, 저는 서쪽으로 걸었던 겁니다. 맥이 빠져 담배 하나를 태우고 있는데 아기를 안은 할머니와 유모차를 끄는 손녀가 지나갔습니다. 눈인사를 하고 아기에게 까꿍 하며 참 귀엽다는 표현을 웃음으로 대신했습니다. 시간을 보니 두시 반이 됐습니다. 다시 걸어온 길로 조금 빠른 걸음으로 빽도를 시작했습니다.

숙소가 가까워져 올 때 저를 닮은 아저씨가 우산을 쓰고 걸어가더군요. 은행 건물 앞인데 커다란 사과도 있습니다. 너무 무거워 주어 오지는 못했습니다. 세시쯤 저녁을 먹자며 어디냐는 전화가 왔습니다. 삼십분 후에 지나쳐 올 때 봤던 마트 앞에서 만났습니다. 반도인들이 많이 산다는 곳으로 이동해서 명동 칼국수에서 칼국수와 김치왕만두를 먹었습니다. 밑반찬으로 나온 겉절이 김치는 반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맛있게 먹었답니다. 같이 나오는 공기밥을 말아 국물까지 홀랑 마시니 김치만두가 세개나 남아 포장을 해왔습니다.

우산 쓴 아저씨 같은 배가 되어 숙소로 돌아오니 다리가 뻐근하더군요. 직진과 후진을 삼십리 넘게 한 것치고는 양호했습니다. 산처럼 오르막길이 아니라 평지를 걸어 과부하가 걸리지는 않았나 봅니다. 시장은 다음 주말에 다시 가보려고 합니다.

20130303
어제 일찍 잠이 들어 새벽 세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다운을 걸어놨던 인간의 조건을 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아홉시 십오분 전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었습니다. 오늘은 방콕하려고 했는데 창밖을 보니 해가 났네요. 주변을 싸돌아다니다 저녁이나 먹고 들어와야겠습니다.

2013-03-01

고추 먹고 맴맴

20130227 을씨년스런 날씨
오늘도 안개가 뿌옇게 끼었습니다. 햇빛이 쨍한 날이 드물다고 하네요. 바람도 약간 불어서 반도의 늦가을 기온 정도로 느껴집니다. 난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 추위를 타는 체질이라면 조금 추울 날씨입니다. 상하이가 난방을 금하는 가장 북쪽 지역이라고 합니다.

출근해서 하루종일 열공했습니다. 제조공정을 공부하느라 여기저기 자료도 많이 찾아봤습니다. 머리속에 정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OJT 리포트를 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더군요. 중국말은 단어를 외웠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립니다. 대굴빡이 노화를 넘어 퇴화했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퇴근하고 어슬렁거리다 보니 숙소 바로 뒤편에 대형 쇼핑몰이 있더군요. 구경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후딱 지났습니다. 백화점에 간 여자사람들이 사지도 않으며 왜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지 쪼매 이해가 됩디다.

반도에선 온 고추장을 사려다가 그 옆에 놓인 대륙산 고추장을 샀습니다. 값이 세 배 정도 차이가 나기도 했지만 여기서 만든 고추장 맛을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고추장을 산 김에 찍어 먹을 게 없나 두리번거리다 때깔 좋은 빨간 고추가 눈에 들어와 냉큼 집어 들었습니다. 저녁으로 신라면 사발면도 하나 샀습니다. 계산대로 가니 옆에 댑따 큰 과자 상자가 엄청 싸더군요. 같이 계산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사발면 삶을 물이 끓는 동안 고추장을 뜯어 고추를 한 입 찍어 먹어 봤습니다. 맛이 똑같더군요. 고추는 약간 매콤한 맛도 있고요. 사발면이 익는 동안 세 개를 거푸 우적우적 씹어 먹었습니다. 쐬주까지 있었으면 거창한 술상으로 변했을 겁니다. 다음엔 날계란을 하나 깨 넣고 먹어봐야겠습니다.

20130228 해
아침에 해를 봤습니다. 쨍한 하늘은 아니었지만 온종일 햇살이 비치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었습니다. 김밥 싸서 놀러 가고 싶을 정도로 썩 괜찮은 날씨였답니다.

김밥은 아니지만 어제 산 고추장과 고추를 가지고 출근을 했습죠. 점심에 먹으려고요. 열두시가 되니 지난 월요일에 먹었던 토마토를 곁들인 계란 반찬(?)과 밥이 왔습니다. 고추를 찍어 먹고 고추장으로 비벼도 먹었습니다. 그동안 식사 후에는 배가 더부룩했는데 오늘은 그런 증상이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가니 날이 좋아서 그런지 여기저기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더군요. 한 직원이 도로가 턱에 편하게 앉아 무언가 맛있게 먹고 있길래 기웃거렸더니 말린 해바라기씨를 한 움큼 집어 주네요. 이빨로 씹어서 까먹어 보니 고소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더니 더 먹으라며 두 손 가득 퍼 줘 날다람쥐처럼 한참을 까먹었답니다. 그래도 많이 남아 주머니에 넣어와 조금 전에 다 까먹었답니다.

이제 탁발스님 심정으로 저녁은 뭘 먹을까 기웃거리려고 다시 나갑니다.

2013-02-28

짜장면을 먹다

20130226 비
아침에 호텔을 나서니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비가 내리고 있네요. 첫사랑이 떠나고 난 이튿날 아침 같습니다.

오늘은 건강검진을 받기로 돼 있어 출근과 동시에 가방만 내려놓은 채 병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제 파출소에 동행한 비서 주 아무개 양과 함께 병원으로 고고씽~~~

반도에서 취업비자를 받기 위해 지정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여기서 다시 받아야 하더군요. 여덟시에 출발했지만 비가 내려서 그런지 차가 막혔습니다. 아홉시 반이 돼서야 지정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서류를 접수하고 640원을 내니 가운으로 갈아입으라고 합니다.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채로 말이죠. 비록 D라인이지만 상반신 알몸을 이국땅에서 처음으로 공개하고 말았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검진 과정은 반도에서 했을 때랑 같았습니다. 다만, 검진을 받으러 온 외국인이 많아 거의 두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피를 뽑아서 그런지 졸리고 허기가 지더군요. 반도로 출장을 갔다 온 경험이 있는 주 아무개 양이 감자탕을 먹으러 가잡니다. 아주 맛있게 먹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요.

병원 근처에 한인타운이 있더군요. 한글 간판이 즐비한 거리에 점심을 먹으러 나온 아줌마들이 지나다닙디다. 닭갈비 간판이 걸린 집으로 들어갔더니 메밀국수부터 설렁탕까지 웬만한 한식은 다 있는 차림표를 주더군요. 망설임 없이 감자탕 작은 걸 시켰습니다. 주 비서와 기사 그리고 저랑 셋이 먹기에는 양이 많았습니다. 공기밥과 살점이 엄청 붙어 있는 커다란 뼈다귀를 인당 두 개씩 먹었습니다. 감자와 시래기도 알뜰히 먹으니 냄비 바닥이 보였습니다. 주 양은 시래기를 국자로 푸며 이것도 맛있다며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더군요. 저랑 감자탕을 가장 맛있게 먹은 처자를 대륙에서 만났답니다.

오후에는 주 양이 세관에 들러야 해서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동방명주 바로 옆에 있더군요.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자욱해서 멀리서는 미처 보이지가 않았답니다. 세관 앞에 차를 대고 주 양은 세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사이 어슬렁어슬렁 동방명주를 보러 갔습니다. 둥그런 육교가 있어 천천히 한 바퀴 돌며 동방명주랑 은행 건물을 구경했습니다. 밤에 봐야 멋있다는데 낮에 보니 아무개 연예인 생얼을 보는 느낌이었답니다.

회사로 돌아오니 네시가 넘었습니다. 노트북을 켜고 자리에 앉아 잠깐 있으니 퇴근시간이 됐습니다. 일찍이 칼퇴문화가 정착돼 있는지라 부랴부랴 다시 가방을 챙겨 숙소로 왔습니다. 감자탕으로 채운 배가 꺼지질 않아 저녁은 근처에서 천천히 먹겠다며 짜이찌엔을 했습니다. 차에서 내리니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거시기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밤 여덟시쯤에 숙소 근처를 둘러보며 식당을 물색했습니다. 면을 파는 집이 늘어선 곳에 이르니 불이 켜진 집이 몇 군데 없더군요. 문밖에서 기웃거리며 지나다 손님으로 보이는 여인 혼자 앉아 있는 식당으로 들어섰습니다. 물론 음식 사진으로 벽면을 가득 채운 걸 확인을 했지요. 이리저리 살피다 가장 매워 보이는 걸 가리켰더니 입구에서 면을 뽑던 주방장이 쏼라쏼라 하네요. 중국말은 못한다는 손짓을 하니 포기하곤 자리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곤 주방 쪽에 대고 한마디 하더군요. 짜아지앙미엔! 어머나. 제가 주문한 음식이 짜장면이었습니다.

국물 한 사발이 먼저 나오고 짜장면 한 접시가 뒤따라 나왔습니다. 고추를 갈아 놓은 것으로 보이는 양념을 맛보니 매콤한 느낌이 있어 젓가락으로 듬뿍 퍼 넣고 비볐습니다. 사진으로 봤을 땐 제일 매워 보였지만 고추 아가씨가 고추를 한 소쿠리 담고 지나간 것처럼 매운 느낌만 있더군요. 워낙 면을 좋아하는지라 맛있게 먹었답니다.

그렇게 첫사랑이 떠나간 것 같은 안개 낀 상하이의 하루가 갔습니다.

2013-02-27

꾿빠이 대한민국

20130224 15:55
참으로 다행스럽게 그 사람 취임식 전에 표가 있어서 김포에서 홍차오로 날아왔습니다.

숙소는 비즈니스 호텔이라고 혼자 지내기는 아담합니다. 굳이 반도식으로 비교하자면 러브모텔 아래 장급 모텔 정도 됩니다. 여기서는 트위터가 연결이 안 되더군요. 하지만 궁즉통이라고 구글링해보니 다 방법이 있습디다. 그렇게 트위터를 연결하고 어둠의 경로로 무한도전을 내려받아 재밌게 봤습니다.

20130225 새벽에 비
여기는 대부분 여덟시까지 출근을 한답니다. 일곱시에 문을 여는 호텔 식당에서 일빠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죽과 삶은 계란으로 대충 먹었습니다. 좋아하는 만두가 보였지만 다음에 맛보려고 참았습니다.

드디어 첫출근을 했습니다. 사무실 직원들과 아주 가벼운 인사와 통성명을 하자마자 파출소에 거주신고를 하러 나섰습니다. 또 한 번 다행스럽게도 한국말을 김종민보다 더 잘하는 깜찍하고 귀여운 주 아무개 비서랑 동행을 했답니다. 차로 십분 거리에 있는 파출소에서 주숙등기라는 서류를 받았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실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호텔에서는 와이파이가 잡히질 않아 휴대폰에 알림이 없었지만, 사무실에 도착하니 카톡이 들어와 있더군요.
- 뉴스가 온통 미스박 이야기다. 재미없다.
답장을 했습니다.
- 나는 그런 사람 모른다. 야왕만 기다려진다.

점심은 식대를 보조해 줘서 각자 도시락을 싸오더군요. 저만 계란밥을 시켜줘서 먹었습니다. 누룽지가 약간 섞인 밥과 계란으로 간을 맞춘 반찬이더군요. 젓가락으로 남김 없이 싹싹 먹어치웠답니다.

오후에는 아주 간단한 중국어를 공부하는 척하다 퇴근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중국어 사전과 책을 펴놓고 어제 다운 받고 미처 못 본 그렇고 그런 테레비 프로를 봤습니다.

2013-01-12

아리가또 그네

1. 20121214 18:00
강남 아무개 참치횟집에서 어쩌면 나의 보스가 될지도 모르는 형님을 만났다. 담배를 하나 물고 불을 붙이며 물으니 행님은 담배를 안 피운다고 했다. 나만 연신 피워대며 떠들었다. 자리가 파할 무렵 형님이 말했다. 죽을 각오가 아니면 올 생각을 하지 마라. 나는 그때까지도 죽을 각오가 어떤 건지 아리까리 했다.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2. 20121219 21:00
참담했다. 아니 죽음을 경험했다. 죽을 각오를 넘어섰다. 그리고 결심했다.

3. 20121230 18:00
원룸을 얻을까, 아파트를 얻을까? 담담하게 중국으로 가자며 그미에게 말했다. 아파트를 얻으세요. 그미가 화답했다.

4. 20130115 09:00
광저우로 떠나는 날이다. 앞으로 한 두 차례 더 들락거려야 하겠지만 맘은 그날 저녁에 반도를 떠났다. 전광석화처럼 죽을 각오를 만들어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해준 그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아리가또 그네.

2013-01-09

까치야 울어다오


오늘은 반가운 소식 있으려나
오늘은 반가운 손님 오시려나
까치야 울어다오

2013-01-01

외줄타기


평생 외줄타기를 한 분도 계시는데 두 발로 걸으며 오 년을 못 버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