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9

김근태 선생님 아직은 용서할 때가 아닙니다

1985년 9월 4일은 2년간 민청련 의장으로 있으면서 7번째 구류를 살던 김근태가 석방되는 날이었다. 비 내리던 이날 새벽 김근태는 서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석방되는 대신, 남영동의 악명 높은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되었다. 이곳에서 김근태는 9월 25일까지 23일간 불법 구금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다. (...) 김근태는 알몸으로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빌라는 저들의 요구에 삼천포에서 배를 타고 월북했으며 간첩으로 남파된 형들과 자주 만났다는 황당한 소설을 사실이라고 시인해야 했다. (김근태 고문사건과 사법부)

천상병 시인과 한겨레신문 초대 사장인 청암 송건호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생긴 파킨슨병으로 타계하셨습니다. 김근태 선생도 위독하다고 합니다. 딸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입원한 그도 수년간 파킨슨병으로 투병해 왔다고 합니다.

어느 책에서 김근태 선생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용서하는 마음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고문한 이근안을 교도소로 찾아간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눈물도 없이 용서를 구하는 고문기술자를 앞에 두고 잠깐 회의가 들었지만 모든 걸 용서한다고 했습니다. 돌아서서 생각하니 정작 용서한다고는 했지만 정말 용서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진정으로 용서하는 길은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글이었습니다.

2008년 총선 때 도봉갑 유권자는 원칙주의자이자 민주화 운동 큰 형님인 김근태 대신 뉴라이트 신지호를 선택했습니다. 목사가 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고문이 일종의 예술이라고 했답니다. 전두환 이름을 딴 가카배 골프대회는 올해도 대구에서 열렸답니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뻔뻔하게 사는 가해자들을 두고 김근태 선생이 영원히 용서하는 길로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비보가 들립니다. 오늘이 고비라고 합니다. 고문기술자로 용서를 구하고 목사가 됐다는 이근안이 병상을 찾았다는 소식이 아직 없습니다. 지독하게 건강한 전두환은 사과 한마디도 없습니다. 여전히 뉴라이트 면상을 봐야 하고 잡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슬픕니다. 그래서 더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직은 용서할 때가 아닙니다. 용서하지 마십시오.

떨치고 일어나시길 기도합니다.

덧.
20111230 05:31 민주통합당 김근태 상임고문이 향년 64세로 별세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1-12-24

환영, 받았습니다


저는 소설을 편식한답니다. <들개>를 접하고부터는 지금까지도 이외수 소설을 좋아하고, <개미>에 빠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이 나오면 냉큼 읽어야 직성이 풀리죠. 그러던 차에 지난해 뜻밖의 선물로 소설가 한 분을 알게 됐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구구절절 기구한 삶을 사는 여자 얘기를 아주 매몰차게 전하는 김이설 작가입니다. 영화판에 지독하게 여자를 괴롭히는 김기덕 감독이 있다면 소설계에는 김이설 작가가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게 남들과 다른 이야기(이설·異說)를 읽으며 편식이 하나 더 늘었답니다.

그러던 차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뜻밖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김이설 작가가 손수 소설집 <환영>을 보내 주었답니다.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소설을 쓰겠'다는 손글씨까지 곁들여서 말이죠. 팬으로서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겠죠.

책을 펴낸 작가에게 책 한 권 달라고 하는 건 은행 지점장에게 수표를 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는지라 쪽지로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을 때 잠시 고민을 했답니다. 내가 받아도 될까? 민폐는 아니겠지 하며 넙죽 받기로 했습니다. 유년시절 옆집 누이가 산타였다는 걸 모른 채 받았던 사탕 선물만큼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첫키스를 한 것도 아닌데 덕분에 아직도 귓가에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답니다.

김이설 산타님! 환영,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환영받지 못하는 놈상이 환영을 받는 모순을 낳았지만 말이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