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17

욕망이라는 이름이 그리는 우리들의 자화상

지난 6·2지방선거에서 보여준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의 힘은 위대했습니다. 덕분에 오세훈 후보는 강남시장이라는 오명을 들었고, 강남 3구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한 유권자는 서울 민심을 뒤틀었다는 비아냥이 일어났습니다. 과연 우리는 강남 유권자들의 선택이 잘못됐다며 떳떳하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그들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우리 모습을 살펴봅시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노원구는 강남 3구도 아닌데 서민이거나 서민과 가까운 노회찬 후보가 낙선하고 귀공자풍의 부자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무노조 삼성을 예로 들며 노동운동의 어려움을 얘기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가정에 삼성 제품이 하나도 없을까요? 용산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며 울분을 삼키는 유가족 가운데 이명박에게 투표한 사람은 한 명도 없을까요?

민주주의 꽃은 투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투표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형이상학적이고 현학적인 표현은 접어둡시다. 가장 현실적인 대답은 투표는 돈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행위입니다. 감세와 성장을 외치는 후보와 분배와 복지를 외치는 후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예산을 어디에 먼저 쓸까를 정하는 것입니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도 나타났지만 소위 보수 후보와 진보 후보를 가르는 기준이 무상급식이었습니다. 당선된 보수 후보는 무상급식에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려 하고, 진보 후보는 당선되자마자 무상급식 예산을 마련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투표는 우리가 내는 세금을 어디에 먼저 쓰고 나중에 쓸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이제 앞에서 언급한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다시 살펴볼까요. 뉴타운이 건설되면 자기 집값도 오른다는 착시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도 대상인 기업의 제품을 버젓이 팔아주는 자기모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들소떼처럼 앞에서 달리니까 쫓아가다 악어밥이 되는 집단최면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을 학자들은 계급배반이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행위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계급배반은 우리들의 간사한 욕망에서 기생하고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계급배반은 우리들의 현재 모습을 아주 똑같이 그린 자화상입니다. 그렇다면 계급배반을 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강남 3구에서 배우면 됩니다. 욕을 하면 기분이야 풀릴지 모르지만, 우리 모습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강남 유권자는 그들이 원하는 이익을 실현할 가장 적합한 후보에게 아주 정확하게 투표를 했습니다. 강남 유권자는 투표의 속성을 꿰뚫고 있었던 거지요.

유사 이래 변하지 않는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만고불변의 진리를 이겨보려고 어거지로 공짜를 바라는 행위가 바로 계급배반입니다. 내가 쓰고 싶은 곳에 내 돈을 쓸 후보에게 투표하십시오.

명심합시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투표는 내 돈을 맡기는 일입니다.

2010-07-10

그곳에 슬픔도 배부른 시인이 산다

함민복이라는 시인을 안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가끔 특정 시인이 쓴 시집을 사곤 하지만 좋은 시들을 엮어 놓은 시집들을 더 선호합니다. 옛날 레코드 가게에서 좋아하는 노래만 골라 테이프에 담아오던 것처럼 말이죠.

십여 년 전, 그렇게 산 시집에서 「긍정적인 밥」이라는 시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미니홈피 대문에 적혀 있었습니다. 함민복이라는 시인은 안빈낙도하는 삶을 사는 줄 알면서 말이죠. 그렇게 이름을 익혔습니다.

시인 함민복이 강화도에 홀로 산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검색을 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선비형 삶을 살아온 줄 알았는데 대단한 오판이었습니다. 치열하게 밑바닥을 전전한 생계형 인생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자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다는 시구가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시인이 시처럼 쓴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는 이런 시인의 삶과 첫사랑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시가 쓰여진 태몽 같은 사연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주책 맞게도 찔끔 눈물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여름에 마니산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능선을 오르며 바다보다 더 넓게 펼쳐진 갯벌을 바라봤습니다. 저곳 어디에 시인 함민복이 살고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화답하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가끔 땀이 송송 맺힐 때 바람이라도 불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강화도에 혼자 사는 시인의 집엔 '빨간 양철지붕으로 된 안채와 파란 양철지붕을 인 행랑채가 있고 흰 슬레이트를 얹은 화장실이 있'답니다. 시인은 이를 각각 '자금성, 청와대, 백악관'이라고 부른답니다. 불쑥 찾아가면 시인이 자금성에 있을지 청와대에서 손짓할지 허리춤을 단도리하며 나오는 백악관에서 마주칠지 궁금해집니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기울이며 뻘에 널린 낙지 구녕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보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눈물이 왜 짠지는 그때 물어보렵니다.

눈물은 왜 짠가/함민복/이레 20030305 206쪽 10800원

2010-07-06

이제 왼쪽으로 조금만 가보자

  • 지금 생각하는 바를 지속적으로 합리화하면서 고집하기 때문에 사람 살아 가는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18)
  • 공부 잘하는 학생과 공부 못하는 학생의 차이는 시험 본 다음에 잊어버린 학생과 시험보기 전에 잊어버린 학생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28)
  •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바꾸는 만큼 사회진보를 도모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은 지배세력이 주입한,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72)
  • 민주주의 정치제도 아래에서 20대 80의 양극화 사회가 관철되는 것은 '80'에 속하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미래상으로 자신을 일치시켜 오늘의 자신을 배반하는 것도 한몫한다. (117)
  • 사람을 굳이 둘로 나누어야 한다면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게 아니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128)
  •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삼성 제품을 구매하나요? (148)
  • 국민부담률로 보면 유럽의 우파들은 '좌파의 좌파'라고 할 수 있다. (176)
  •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 (192)
  • 의식은 내게 유리한 것, 옳다고 믿어지는 것에 따르도록 명령하지만, 정서는 내가 '그냥' 이끌리는 것에서 안정과 충만감을 느끼도록 한다. (209)
  •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스스로 바뀌고, 또 권력을 장악한 뒤에는 더 바뀐다. 세상은 바뀌지 않은 채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만 바뀌는, 이 조화는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239)
생각의 좌표/홍세화/한겨레출판 20091124 248쪽 12000원

얼마 전에 독일의 일부 몰지각한(?) 부자들이 필요하지 않은 돈이 너무 많다며 부유세를 도입하자는 뉴스를 봤습니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돈 많은 좌파로 몰리며 그 출처를 밝힌다며 세무조사를 득달같이 했겠지요. 《생각의 좌표》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을 찬찬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무노조 삼성을 예로 들며 노동운동의 어려움을 얘기하자 프랑스 노조 활동가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삼성 제품을 구매하나요? 대답을 못했겠지요. 용산참사 희생자들은 한나라당에는 투표하지 않았을까요? 하나같이 교육문제를 걱정하면서 정작 자기 자식은 특목고에 보내 일류 대학에 보내려고 합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생각의 지배를 받는 계급배반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내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지 뼈저리게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좌파와 우파 혹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양보 없는 대결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준으로 보면 유럽의 우파들은 좌파의 좌파가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생각의 영점이 오른쪽 끝에 강제적으로 맞춰졌는지도 모릅니다. 《생각의 좌표》는 이제 왼쪽으로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자는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2010-07-01

개차반 길들이기

1.
개차반 : (개가 먹는 차반, 곧 '똥'이란 뜻으로) 언행이 더럽고 막된 사람을 욕으로 이르는 말

2.
제가 정치인도 아니고요,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가 굉장한 재력가여서 정치인들과 거래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아닌데 제가 왜 이렇게 분석되고 조사되어야 하는지 정말 소름 끼칠 일 아닙니까?

아무런 원칙도 없이 정치권력에 굽실하는 국무총리실의 고급 공무원들을 저는 정말 고발합니다. 그리고 정치권력에 아부하기 위해서 힘없는 국민의 밥줄까지 불법으로 끊어버리는 그 공권력을 저는 정말 고발합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사찰 피해자 김종익 님의 PD수첩 인터뷰 중)

3.
세상에는 개차반 같은 일들을 당하고 나서야 개차반들이 많다는 걸 깨닫습니다. 개차반들은 약해 보이는 상대만 물어뜯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그런 망나니 개차반 위에 쥐새끼 한 마리가 있어 더 기승입니다. 쥐새끼도 찍소리 못하게 잡고, 차반 먹던 개차반들에게 진짜 개차반만 먹게 하여야 합니다.

개차반 주인은 사람이라는 걸 훈련시켜야 합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있다고 사람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개차반들이 더는 똥을 먹지 않고 사람 맛을 알게 됐으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한테 교육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훈련이라는 말을 쓰는 이치와 같습니다. 미친개와 개차반들은 몽둥이가 약입니다. 이제 개차반 길들이기는 사람답게 살아야 할 내일을 위해 오늘 꼭 해야 하는 우리들의 품앗이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