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7

1.
인간에게는 꿈을 꾸는 능력이 있다. 간절히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것은 우주의 법칙이다.

육체적으로 '열등'하게 보인다고 해서 정신적으로 '열등'한 것은 아니다. 육체적으로 '우등'한, 그러나 꿈이 없는 사람보다는 육체적으로 '열등'하지만 꿈이 있는 사람이 위대하다. 가슴에는 사랑을, 머리에는 세상을 밝게 해줄 꿈을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 우주의 주인이다.
- 안문석 교수의 시와 수필 『왜 여기 사냐고 물으시면』 띠앗 2009 88쪽

2.
꿈을 꿀 수 있는 시대가 내게서 멈추는지 아닌지, 우주의 주인으로 살아갈지 주인의 우주에서 살아갈지는 6월 2일에 결정이 되겠지. 그런데 왜 자꾸 슬픈 예감이 드는 것일까...

좋은 글에 딴지 거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슬픈 예감은 빗겨가질 않더라.

2010-05-23

박석에 내리는 비

여름을 사랑한 눈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없는 사랑이라며
모두들 바보라 불렀습니다

시방
온몸 펄떡이며 울고 있습니다
밤새워 진종일 울 기셉니다

여름이 우는지
눈사람이 우는지
끝내 알 수 없어
담배 하나 태워 뭅니다

부엉이 소리 들리는 박석
1번 노래 흥얼거리며
비 맞은 생쥐 한 마리 지나갑니다

2010-05-20

불황

1.
원래 불황이란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황은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호황의 반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라톤 경기를 예로 들면 초반에 전력 질주하는 바람에 오버 페이스로 도중에 힘이 다 빠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불상사가 바로 불황이다.
- 나이테 경영, 오래가려면 천천히 가라/츠카코시 히로시/서돌 2010 67쪽

2.
경제적 불황은 주기라도 있다. 바닥을 찍으면 호황으로 접어든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정치적 불황은 바닥의 끝이 어딘지 모르고 그 여파가 몇십 년을 갈지 예측을 할 수 없다. 경제적 불황이 현존하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시간의 늪이라면 정치적 불황은 뒤이어 출현할 인간들에게 물려주는 시간의 부채(負債)다. 경제적 불황은 불상사로 끝나지만, 정치적 불황은 두고두고 채근하는 복리이자로 따라다닌다.

2010-05-18

새삼스레 5·18을 기억하다

1.
내가 다시 태어난 해인 1984년 어느 날.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가려고 고속버스표를 끊고 자리에 올랐다.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내 자리를 찾았다. 묘령의 아가씨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반가운 표정을 숨기며 궁둥이를 슬쩍 붙이고 앉았다. 이럴 땐 첫마디가 중요해. 저... 서울 가시나 봐요. 젠장. 서울 가는 버스에 탔으니 서울까지 가는 게 당연하지. 뻔한 말을 내뱉다니. 그런데 후회할 시간도 없이 귤을 건네주며 그렇다고 한다. 친구들 셋이랑 치악산에 왔다가 가는 길이라며 싱긋 웃는다. 오호라. 서울까지 가는 두 시간 동안 무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버스표를 석 장 끊으니 한 사람은 떨어져 앉아야 하는데 그 옆자리가 내 차지가 된 것이다. 건네주는 귤을 까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 처자의 고향이 광주라고 했다. 아! 광주.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몰래 훔쳐본 공수부대 군화발과 금남로로 각인된 그 광주라니. 아주 조용히 그날의 광주에 대해 물었다. 잠시 창밖을 쳐다보던 그 처자는 기름기가 쏙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우리 삼촌도 돌아가셨어요.

픽션일지도 모른다며 반신반의했던 금남로에 뿌려진 피가 사실이었다는 걸 처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버스는 용인을 지나고 있었고, 우리는 말없이 귤만 만지작거렸다.

2.
1990년 1월. 광주에서 유명한 우다방을 거쳐 도청 앞 분수대를 찾았다.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김영삼은 3당 합당을 했다.

3.
2010년 5월. 버스 요금이 70원이라던 분이 5·18 기념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에 형형색색의 축하화환을 보냈다고 한다. 5·18 민주묘지에서는 공식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지 않았다.

2010-05-15

스승의 날

Pestalozzi with the orphans in Stans by Konrad Grob, 1879

1.
그는 길바닥에서 맨발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고
땅에 떨어진 유리조각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2.
- 기억에 남는 스승이 있습니까?
- 정말 기억에 남는 스승은 이름이 아니라 행동으로 기억됩니다. 이름이 기억나질 않지만 그 행동은 지금까지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분교에 달랑 두 분이 계셨는데 애들 모두 손등에 때가 시커멓게 껴 있어 일 년에 서너 번은 냇가로 데리고 가 하나하나 때를 벗겨 주셨습니다. 분교 출신이 아니면 모르실 겁니다. 오지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은 무조건 훌륭하십니다. 한 세대가 흘렀지만 여전히 오지에서 고생하시는 선생님은 계시더군요. 아직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동네가 있다면 믿지 못하는 것처럼 여전히 오지에서 고생하시는 선생님은 계십니다. 그분들은 교육환경이니 체계를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여물지 않은 제자를 인간답게 이끌지 결코 거창하지 않습니다.

3.
오늘은 교사의 날이 아니랍니다.
오늘은 선생의 날도 아니랍니다.
오늘이 교직 공무원의 날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2010-05-14

금요일을 꿈꾸는 이유

1.
김규항은 '이명박만 없으면 살겠다'는 얘기는 위선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뒤집어보면 '이명박 정권 말고는 살아가는 데 별로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권에게 당하기 전부터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게 당해온 사람들의 입장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명박 정권을 욕하는 것과 이명박 정권만 욕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 때도 철거는 있었고, 용역 깡패들은 있었다. 그리고 시위 현장이나 파업과 관련해서 죽은 사람도 있었다. 그때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하셨던가? 정말 지났을까?
-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김규항, 지승호/알마 20100327 174쪽

2.
오늘은 금요일이다. 주말을 리모컨과 춤을 추거나 1박2일 복불복 캠핑을 꿈꾸는 이에게 금요일은 설레는 날이다. 어쨌든 오늘만 지나면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주말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한 내게 노무현은 금요일까지는 아니었지만 목요일은 됐었다. 목요일이 지나면 금요일도 오고, 곧 주말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 5일이 되면서 금요일에 하던 회식도 자연스레 목요일에 하게 됐다. 그런 목요일이 지나면 금요일에 걸맞은 사람이 나타날 줄 알았다. 그런데 나타나자마자 슬금슬금 빠꾸를 하더니 급기야 오늘이 월요일이라고 우긴다. 월요일은 벌써 지났다고 했지만 아니란다. 네가 잘못 알았다며 반성하란다. 그래서 뿔이 난다.

"노무현 추모와 미화에 매몰되어 노무현을 넘어서지 못하는" 현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월요일을 타도하자는 말이 목요일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잃어버린 목요일을 다시 찾아야 금요일 저녁 퇴근 시간을 꿈꿀 수 있기 때문에 누구만 없으면 살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고 있다.

2010-05-13

정의와 힘

1.
올바른 자를 따라가는 것은 바른 일이며, 제일 강한 자를 따라가는 것은 부득이한 일이다. 힘이 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힘이 없는 정의는 반항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언제나 악인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를 수반하지 못한 힘은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의와 힘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자를 강하게 만들고, 강한 자를 올바르게 만들어야 한다.

정의는 논의(論議)의 대상이 되기 쉽고, 힘은 인정을 받기는 쉽지만, 좀처럼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정의에 힘을 부여하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힘은 정의에 반항하여, 〈당신은 올바르지 못하다. 나는 올바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올바른 자를 강하게 할 수 없었으므로, 강한 자를 정의로 간주했다. (팡세 298)

2.
이명박 가카는 11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촛불시위 2년이 지났다.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러면서 "반성이 없으면 그 사회의 발전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하십니다.

3.
강한 자를 정의로 간주하는 시대는 지났지만, 강한 자가 정의라고 외치는 시대로 되돌아갈 줄 미처 몰랐다. 강한 자를 올바르게 만드는 것보다 올바른 자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걸 우리는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다. 반성하자. 반성이 없으면 그 사회의 발전도 없다지 않는가.

2010-05-11

막걸리와 단일화

지난 주말에 국순당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뭐랄까 달착지근한 맛이 혀에 착 참기는 게 참 수더분하며 착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예전에 자고 일어나면 골 때리던 걸쭉한 막걸리가 확실히 변한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술술 넘어가는 목 넘김 덕분에 달게 마셨습니다.

마시다 도수가 어떻게 되나 살펴보다 막걸리를 영어로 표현한 걸 봤습니다. Korean Rice Wine. 막걸리를 영어로 기가 막히게 옮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막걸리를 한마디로 압축해 설명하는 번역이라며 무릎을 탁 쳤습니다. 물론 막걸리를 영어로 직접 옮겨 MacGirly(놈상도 여인들도 사족을 못 쓰는 술?)라고 쓰면 더 좋겠지만 말이죠. 떡을 코리안라이스케이크가 아니라 '떡' 그대로 소개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막걸리라는 술을 영어식으로 표현하며 와인이라는 단어를 고른 것이 간단명료하게 그 뜻을 전달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까지 번역한 책을 접하면서 어쩜 이리도 제목을 기막히게 정했을까 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던 책이 하나 있습니다. 『소유의 종말』(민음사,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입니다. 원제가 'The Age of Access'라서 직역하자면 '접속의 시대'라고 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번역자는 책의 내용을 관통하며 역설적으로 '소유의 종말'이라는 제목을 골라냄으로써 원제목보다 더 강렬하게 주제가 다가왔습니다. 정말 멋진 제목입니다.

가끔 차림표를 보며 그 옆에 어설프게 적혀 한국인만 이해하는 한식의 영어 표현을 볼 때가 있습니다. 갇힌 표현보다는 소유의 종말처럼 막걸리가 MacGirly로 널리 통용되면 좋겠습니다.

요즘 지방선거 단일화로 뜨겁습니다. 그동안 선거를 치르고 나면 우리네 민심이 얼마나 정확하고 핵심을 찌르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이번처럼 이슈는 산적한데 바람이 불지 않는 선거도 참 드물지 싶습니다. 그 원인이 허름한 야권보다 관록 있는 여권이 수비를 잘해서 그렇지 않나 합니다. 그럴수록 단일화로 바람이 일어나길 기대해 봅니다. 단일화라는 말이 반정부를 넘어 정책연대 혹은 가치지향적이길 바랍니다.

가까운 훗날, 파헤쳐진 4대강을 보며 그나마 여기서 삽질을 멈출 수 있었던 건 2010 단일화 덕분이었다고 말하면 좋겠습니다. 막걸리가 코리아 라이스 와인을 넘어 막걸리로 불리길 기대하듯 2010 단일화는 정치적 갈등을 넘어 생태평화 출발의 시발점과 소유의 종말 원년이 되었다는 전설이 되길 앙망합니다. 천일이 지나고 나서 코리아 라이스 와인이 아니라 MacGirly라고 쓰인 막걸리로 건배하며 새로운 아이콘이 된 단일화라는 안주를 먹으며 파안대소하는 미래를 그려봅니다.

2010-05-08

서시 - 박목월

어머니를
나는 노래할 수 없다

나는 너무나
부족한 人間이므로

어머니는 너무나
크신 분이므로

어머니를
나는 노래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를 노래하려 한다

어머니를 노래하려고 애쓰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자랄 수 있으므로

나는 너무나
부족한 人間이므로

어머니를 나는
노래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를 노래하려 한다

어머니를 노래하려고 붓을 가다듬는 동안만이라도
마음속 가까이 어머니를 모실 수 있으므로

어머니를 노래하는 동안에 나는
걸음거리가 조심스러워지고

어머니의 사랑의 물줄기가 나의
가슴에 이어와서
내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어머니를 노래하는 동안만이라도 나는
마음에 환하게 등불을 켜지고
가슴이 더워 오는 행복감에 잦아 들게 된다

어머니/박목월/三中堂 1967 170원

오늘은 진종일 불효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어머니를 노래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머니 가슴에 꽃도 달아드리지 말고
제대로 진상 노릇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삼백예순나흘 동안 어머니를 노래하며
어머니를 위한 꽃밭을 만들어야 합니다.
노래는커녕 삼백예순닷새 동안 진상이라서
오늘 하루종일 울고 있습니다.

2010-05-07

엠비, 정말 9단인 줄 알았잖아

1.
바둑에 관해선 문외한이지만 가끔 세계 기전을 중계하면 지켜보는 편입니다. 패싸움 정도는 아는지라 보는 재미가 여느 스포츠 경기 못지않게 박진감이 넘칠 때가 있더군요. 최근에는 바둑이 스포츠로 분류되기도 했죠.

바둑을 둘 줄은 몰라도 테레비 중계를 보며 다음 수를 예측하기도 합니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으로 맞추기라도 하면 대국장에서 맞짱을 뜨는 기사와 보는 눈이 같다고 좋아라 합니다. 눈썰미는 9단이 돼서 입신의 경지에 이르기도 합니다.

한국 바둑은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서 프로 입단이 엄청 어렵다고 하네요. 올림픽 양궁이나 쇼트트랙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대표 선수로 뽑히는 게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프로와 아마 바둑의 차이도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단 프로 기사가 되면 그 실력은 인정을 받은 것이고,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 파격적으로 입신의 경지에 이르는 9단이 되곤 합니다. 물론 파격적인 승단 규정은 이창호 기사 때문에 바뀐 걸로 압니다. 그전까지는 짬밥을 중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걸출한 신인이 출현해서 강호를 제패하자 승단하는 조건을 바꾸게 됐지요. 이를테면 세계 기전에서 우승을 몇 번 이상 하면 단수에 상관없이 9단으로 높여 주는 것으로 말이죠.

단수가 현저히 낮은 기사에게 소위 입신의 경지라는 9단들이 판판이 깨지는 게 쪽팔리니까 그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창호 3단, 아무개 9단에게 불계승. 이런 소식이 일회성으로 그치면 사건이지만 번번이 그러니 9단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짬밥 높은 선배들 처지에서는 불쾌했을 겁니다. 일반인들이 보면 9단이 3단보다 실력이 삐리한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그래서 성적이 우수한 기사는 짬밥에 상관없이 9단으로 승격을 시켰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순전히 개인적 상상입니다. 그렇지만 연공서열을 따지는 현실에서 파격적인 승단은 짬밥보다 실력이 우선이라는 뜻도 되겠고, 프로가 되면 그만큼 실력 차이가 없다는 말이겠지요.

바둑을 좋아하는 지인이 있습니다. 아마 5단이라고 합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대단하다고 하자 이런 말을 하더군요.

뭐, 별 거 없어. 바둑에서 프로가 아닌 이상 '아마 몇 단'이라는 말은 '도'자 하나 빠져 있는 거야. 아마 5단이라는 말은 아마'도' 5단이라는 뜻이거든.

검증이 안 된 동네 아마추어 바둑 애호가는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기도 어렵거니와 거품이 심하게 껴 있어 프로 몇 단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얘깁니다. 심한 표현을 쓰자면 허세라는 얘깁니다. 그 후로 아마 몇 단이라는 말을 들으면 빙그레 웃곤 합니다. 아마도 몇 단일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드니 말이죠.

2.
엠비가 9단인 줄 알았습니다. 스스로 9단처럼 행실을 하고 다녔으니 그러려니 했거든요. 지금에 와서 야 밝혀졌습니다. 아마 9단이었다는 게 말이죠.

2010-05-06

문지야! 고마워

문지라고 있습니다. 원래 이름이 있지만 그냥 문지라고 부르겠습니다.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제가 먼저 말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싫지 않았는지 둘만 볼 수 있는 편지(?)를 보내는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비밀 편지를 주고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문지가 제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아, 물론 제게만 보낸 건 아니랍니다. 내게만 보내면 티가 나니까 그걸 숨기려고 여러 명에게 보냈을 겁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선물이 도착한 날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어린이날 하루 전에 도착을 했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어린이날 선물을 받는 어른은 없거든요. 문지는 내가 성인인 걸 눈치채고 있을 텐데 어린이날에 맞춰 선물을 보냈던 거지요.

덕분에 어린이가 됐답니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나이지만 마음은 모처럼 하얀 백지 같은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새 신을 신고 폴짝 뛰어보던 그 시절로 말이죠. 그런 기분을 느끼라며 보냈던 거지요.

선물은 새로 나온 책이었습니다. 소설가 김이설이 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단편을 모아놓은 소설입니다. 포장을 뜯자마자 작가의 말을 훑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작가의 고향이 예산이라는 소개를 보고 그곳에서 한우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답니다. 참 주책없습니다.

아차. 뜬금없이 책을 선물로 보내줬는지를 얘기하지 않았네요. 지난 책의 날에 문지가 내게 물었습니다. 마음 한 켠에 남아 잊지 못하는 시가 무엇이냐고요. 저는 퍼뜩 떠오르는 시가 있었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였습니다. 그 시를 만나기 전까지는 첫눈이 내리는 이유를 몰랐었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며 사랑하는 이들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합니다. 문지에게 이 시를 말해주자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책을 선물 받게 됐던 겁니다.

그깟 책 한 권 받고 무슨 사설이 이리 기냐고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저 같은 피박인생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랍니다. 더군다나 책을 받은 날이 어린이날 하루 전이었으니 그 기분이 설상가상이었습니다. 아차차. 설상가상이 아니고 금상첨화였습니다.

아무튼 문지 때문에 아주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어린이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길어서 내 맘대로 줄여 불렀는데 맘 상하지는 않았겠지요. 문지의 원래 이름인 문학과지성사라고 부르면 B사감이 연상돼서 그렇습니다. 그냥 내 맘대로 문지라고 부르며 소녀시대를 그리렵니다. 아무튼 문지야, 덕분에 기쁘고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