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31

樂書 암


암이 나쁜 것은 자기가 빌붙어 있는 숙주(몸)를 죽이기 때문이다. 숙주를 죽이면 자기도 죽는 걸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죽자는 몹쓸 놈이다. 그래서 네가 암이라 불린다.

단무쥐
5년 단임제를 최고로 잘 이용하는 사람 닮은 단무쥐.
- 나는 다음 대통령 안 나올 사람, 인기 연연할 필요 없어

농한기
요즘 화투패 잡는 사람이 어디 있어. 쥐가 많아 쥐약놓고 쥐 잡는 재미로 살아.
근디 같은 약인데 쥐약은 보험이 되지 않는겨. 사람이 처먹는 약보다 더 비싸.

아이폰
아이폰이 열풍일수록 난 클래식이 더 끌린다.

익숙함
매일 오는 스팸도 하루 안 오면 궁금해진다.
가끔 폴로 하는 야한 언니도 뜸하면 기다려진다.
우리는 이렇게 점점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거다.
익숙함은 애정의 출발점이다.

꿰매고 싶은 입
우리 나와바리에서는 오바로꾸친다...라고 합니다.

매력
눈은 내리면서 소복히 쌓일 때까지만 매력있다. 눈물 흘리며 질척거리기 시작하면 정내미가 똑 떨어진다. 매력을 적당히 유지하지 않으면 한쪽으로 밀려나고 심하면 구박 받는다.

한파
고드름이 제 한몸을 겨누지 못해 스스로 투신하는 추위.
뽀뽀했다가는 조동이가 붙어버릴 것 같은 날.
냉장고 문을 열면 따뜻하게 느껴지는 날.

명박복음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누가복음 14:15)
강권하여 세종을 채우라 (명박복음 18:747)

실용주의
양키고홈을 외치는 사람도 가끔 맥도날 햄벅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고걸 꼬투리잡아 햄벅 먹는데 양키 음식 먹는다고 거시기하지 마시라. 그 사람은 양키가 미운거지 햄벅이 싫은 건 아니다. MBc가 싫은거지 실용주의가 그르다는 거 아니다.

2010-01-30

당신은 바보 아니면 도둑

  • 제 시가 수능시험에 난 일이 있어요. 그러니까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후배가, 당여히 제가 썼으니까 제가 잘 알 줄 알고, 이런 문제가 나왔는데 몇 번이 답이냐? 물어 왔어요. 그래서 대충 찍어 가지고서, 이건 이거고 이건 이건데 했는데, 다섯 문제가 나왔는데, 그 친구가 나중에 전화하기를, 제가 두 문제밖에 못 맞췄다고. 시는 정답이 하나라고 할 수가 없는 거죠. (신경림 37)
  • 농부가 비오는 날, 맨발로 지게를 짊어지고 노을이 지는 산을 걸어간다. 이것은 화가에겐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하지만 막상 농부는 어깨 무겁고, 발바닥 저리고 대단히 고통스럽다. (박중훈 58)
  • 내비게이션과 같은 교육! 그러나, 내비게이션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오한숙희 72)
  • 20에 속하는 사람은 자기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지난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보셨죠? 강남이 얼마나 열심히 공정택을 지지했는지요. 20에 속하 사람은 철저히 자기 계급 투표를 하는데 80에 속한 사람은 그렇지가 못하죠. (홍세화 160)
  • 내가 지금 불편하다고 불만이나 늘어놓으면 나중에 내가 파업할 때 누가 내 권리를 이해해 주겠는가? 우리가 지금 파업하는 노동자를 비난하면 지금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우리 시민의 권리까지 빼앗는 걸 왜 모르는가? (하종강 183)
  •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못 읽는 사람이고,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를 못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자로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에요. (진중권 217)
당신은 바보 아니면 도둑/노회찬 외/해피 스토리 20091111 222쪽 13000원

청국장과 곤드레밥이 웰빙 식품이라고 주목을 받지만 얼마 전까지도 그저 끼니를 때우던 보잘것없던 먹거리였다. 하얀 쌀밥을 쇠고기국에 말아 한 숟가락 뜨고 그 위에 장조림을 하나 찢어 올려 먹는 게 꿈이었던 시절에는 지긋지긋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처럼 느껴지지만 불과 한 세대 전까지의 일이었다. 우리는 쇠고기국에 하얀 쌀밥을 먹을수록 청국장과 곤드레 밥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끼니를 해결하던 시절에는 정답도 하나였다. 흰쌀밥으로 대표되는 돈이 정답이었다. 웰빙 식품을 찾던 우리는 이제 웰빙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한다. 끼니 걱정이 없어지니 끼니가 소중해지고 더 찾는 시대다. 적어도 끼니라는 말에는 정과 어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당신은 바보 아니면 도둑》에서 그런 작은 변화를 느끼며 끼니 같은 우리 시대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시대는 당신에게 손을 내밀며 말한다. 쉘위웰빙?

2010-01-28

기수의 나라

어제까지 내가 기억하는 기수는 우리나라에 둘 있었다.

1966년 6월 25일 장충체육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세계 복싱 타이틀전. 국민소득 200달러이던 시절에 주최 측은 대전료 5만 5천 달러를 선불로 달라며 뗑깡을 부렸고, 정부가 보증을 선 끝에 타이틀 매치가 이뤄졌다.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인 이탈리아 출신 벤베누티는 65전승을 거둔 강자. 김기수는 15회전을 겨루었고 끝내 2-1 판정승. 복싱이 전래한 지 반세기 만에 첫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김기수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참 어울린다는 인상과 함께 여태 잊지 않고 있다. 한국 권투의 기수였던 김기수 선수.

배달의 기수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테레비에서 라시찬 소대장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괴뢰군을 때려잡던 시절, 아주 짧게 국군 홍보를 하던 프로그램이 배달의 기수였다. 반공일날 낮잠 올 시간에 하던 배달의 기수는 일이십 분 분량이었지만 기승전결이 확실해서 눈을 똑바로 뜨고 봤었다. 그 배달의 기수가 번개라는 이름으로 철가방을 들고 퀵서비스로 부활하면서 배달의 기수(?)는 또 다른 전성기를 이뤘다. 가히 배달의 기수는 세계 최고다.

이십일 세기 들어 점점 잊히거나 일상화돼 기수라는 이름이 평범하던 차에 새로운 기수가 나타났다. 시방 이명박은 17대 대통령이다. 가카의 모교에 계신 총장님도 17대 총장님이란다. 참 절묘한 타이밍인지 인연인지 모르겠다. 이 양반이 대교협 신임 회장으로 선출되는 자리에서 말씀하셨다.
- 우리나라같이 등록금 싼 데가 없죠. 교육의 질에 비해서 아주 싼 편이죠.
이 양반 함자가 이기수란다.

기수는 앞에서 기를 드는 사람이나 단체에서 대표로 앞장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기수나 배달의 기수는 기수라는 말이 참 어울린다. 배달의 기수가 체제 홍보를 한 면이 있지만 기수 자체를 들여다보면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를 앞장섰던 분들인지라 공식 행사 때 묵념을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여기에 뜬금없이 명함을 내민 양반이 이기수다. 이십일 세기 기수라는 뜻인가, 이명박 시대 기수라는 말인가. 가타부타 시비 걸고 싶지 않다. 딱 하나만 물읍시다. 총장님이 살고 계시는 우리나라는 어디 있나요?

덧1. 등록금이 싸다는 말을 듣고 대한민국 대학생들은 왜 돌을 던지지 않을까? 아니 왜 촛불을 들지 않을까? 사실 소고기보다 등록금이 더 급한데 말이다. 프랑스 68혁명이라는 걸 알기는 할까?
덧2. 등록금은 이명박 이전에 오르기 시작했다. 새삼스러운 거 아니다. 다만, 이명박은 등록금 반값 약속을 쌩깐다는 거다. 사교육비를 포함한 등록금은 대학생이거나 대학에 진학할 자식을 가진 부모들의 노후자금이다. 자식은 88만원 세대이고, 부모는 은퇴 후 8.8만원 세대가 된다.

2010-01-24

삼겹살로 변해 내 앞에 앉은 돼지가 꿈을 얘기합니다.
- 늙어 죽는 게 내 꿈이다.
인순이가 부르는 거위가 자기 꿈을 말합니다.
- 날자. 날자. 한 번만 날자꾸나.
몸싸움하는 여의도 1번지도 꿈이 있나 봅니다.
- 양이 질을 변화시킨다.
강진이 일어난 아이티가 내게 속삭입니다.
- 산 사람은 살아야지.

네 꿈은 뭐니?
대답합니다.
- 그게 뭐죠?

꿈을 꾸고 싶습니다.
꿈을 잃은 사람은 삼겹살보다도 미련이 없어 보입니다.

2010-01-22

내 마음의 자

1.
누구나 내 마음의 자는 가지고 있다. 가령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를 좋아하는 이에게 산울림 노래도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별로라는 대답을 듣고 평소 청춘을 즐겨 들었다고 성을 내지는 않았다.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날 수도 있고 안 날 수도 있으니까.

신입사원 시절. 선배가 노기스를 가져 오란다. 노기스? 그게 뭐냐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어 낭패한 표정을 지으니  선배가 말한다. 노기스는 버니어캘리퍼스를 부르는 말이라고. 노가다나 기름쟁이들은 그렇게 부른다고. 노기스라는 말을 모른다고 삶에 지장은 없지만 적어도 그 상황에서 배운대로 버니어캘리퍼스가 표준말이라고 대들었다면 너 잘났다는 뒷담화를 들었을 게다.

DJ는 빨갱이라는 시절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대통령을 찍은 사람이 DJ였다. 그때는 술상머리에서 DJ 얘기를 하면 눈총을 받고 심하면 집시법 위반으로 시비를 걸던 시절이었다.

내 마음의 자는 산울림이 부르던 청춘을 좋아했고, 버니어캘리퍼스가 표준말이고 DJ가 빨갱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눈을 치켜뜨며 대들지 않았다. 그건 네 마음의 자도 내 마음의 자만큼 중요하고, 내 마음의 자가 변하지 않는 만큼 네 마음의 자도 변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공감대가 서로 같지는 않았지만 겹치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그것을 우리는 정의나 진리 혹은 적어도 사실이라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2.
사법고시와 검정고시는 같은 고시라고 농담 삼아 얘기하지만 똑똑한 양반들만 합격하는 걸 보면 그 격이 다르긴 하나 보다. 그런 양반들이 PD수첩 일심 판결에 엄청 뿔이 났나 보다. 무죄 판결이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 검사 양반들이 그렇게까지 열을 내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열불 나는 정력의 반의반만 가지고 조두순 사건을 항소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버이 연합에 어떤 어버이들이 가입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법원장에게 계란을 던지고 가스통에 불을 붙였다고 한다. 더 웃긴 건 이를 지켜보던 경찰 나리들은 다 늦게 뒷북 수사에 착수하신다고 한다. 촛불을 든 꼬마에겐 들고 다니지도 못하게 했던 행태를 봐서는 너무 이른 대응(?)이라고 봐야 하나.

마음을 비우고 어여삐 생각해도 그 양반들은 어떤 잣대를 가졌는지 궁금해진다. 우리는 기럭지가 달라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도대체 어떤 형상을 한 잣대를 가지고 열불을 내고, 뒷북을 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냥 순박하게 자질을 너무 하다 보니 닳아 없어졌거나 잃어버렸다고 하면 애교스럽기나 할 텐데.

3.
오늘 슬쩍 아무도 몰래 내 마음의 자를 꺼내 몇 자나 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해 본다. 엄청 짧다. 스무 살 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다. 조금이라도 자라길 바랬는데 오히려 길이가 서로 다른 자가 몇 개 더 나왔다. 언제 이리도 많은 자를 꼬불쳐 두었는지...ㅜㅜ

2010-01-19

인간은 갈대다

인간은 한 개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가운데 가장 약한 갈대이다. 그런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부수는 데는 전우주가 무장하지 않아도 된다.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을 가지고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부순다 해도, 인간은 자기를 죽이는 자보다 존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사실과 우주가 자기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팡세 347)

인간은 나약한 갈대다. 인간은 갈대보다 더 나약해져야 우주가 깜짝 놀라는 존귀함을 보여준다. 인간은 유한함을 깨닫는 순간 나약해져 무한을 생각하고, 우주는 무한해서 무관심할 것 같지만 전혀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데 모든 인간이 에로틱하지 않아도 된다. 한순간이라도 사랑했다면 인간을 살리기에 충분하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인간은 행동하는 갈대다. 인간은 사랑하는 갈대다. 인간은 생각하는 만큼 행동한다. 인간은 행동하는 만큼 사랑한다. 인간은 사랑한 만큼 움직이는 갈대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고, 그만큼 움직이고 싶다. 인간은 사랑이 있어 존재하는 나약한 갈대다. (나무생각)

2010-01-16

아이티 그리고 용산

아이티에서 일어난 강진으로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없는 집에 제사 돌아오듯 가난한 나라에 유독 자연재해가 잦은 지 안타깝다. 강추위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은 우리야 그렇다 쳐도 겨울이라는 계절이 없는 나라에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런 아이티라는 나라가 유독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어디서 들어봤는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다가 지난 여름에 읽었던 「가난한 휴머니즘」을 아이티 대통령이었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지었다는 게 뒤늦게 생각났다. 아이티는 나폴레옹이 지배하던 프랑스로부터 1804년 1월 1일 독립한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라고 한다.

1982년 돼지들이 병이 들었는데 다른 나라로 퍼지지는 걸 염려하여 미국이 압력을 가한(?) 국제기구는 새 돼지들을 주는 조건으로 아이티에 있던 토종 돼지들을 모조리 도살하도록 하였다. 2년 후 미국에서 새 돼지들이 들어왔다. 그런데 미국 출신 돼지들은 워낙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놈들인지라 아이티 전국민의 80퍼센트가 식수난에 처해 있는데도 과장해서 말하면 생수를 먹여야 했다. 더군다나 당시 국민소득은 130달러인데 90달러나 되는 초호화 수입 사료를 쳐드셔야 했다. 부티나는 돼지들은 적응을 못 했고, 토종 돼지들은 이미 멸종한지라 더 먹고 살기 어려워져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단다.

일련의 돼지 사태도 그렇고 턱밑에 쿠바가 있고, 쿠바 코밑에 아이티가 자리하고 있어 한때 점령하기도 했던(1915~1934) 미국은 아이티를 좌지우지했다. 신부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주도한 민주화 투쟁으로 물러난 뒤발리에는 미국이 뒤를 봐주었던 정권이었다. 아리스티드 신부는 뒤발리에가 물러나고 1990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쿠데타로 망명길에 올랐다. 2000년에 92퍼센트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지만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가 일어났고 안하무인 미국은 해병대를 시켜 그를 자택에서 붙잡아 외국으로 보냈다. 지진으로 국가가 마비된 아이티는 지금 남아공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그가 돌아오길 고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무자비한 자유주의로 아이티 경제를 초토화시켜 더 가난하게 만들었고, 제 입맛에 맞는 정권을 앉혀 아이티를 쥐락펴락한다는 말씀이다. 강진이 일어나자 미국이 신속한 원조를 시작하고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이런 속사정이 있음이다. 아이티가 안고 있는 속내를 몰랐다면 발 빠르게 대처하는 미국의 참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고부터 연일 보도하는 아이티 참사를 볼 때마다 용산참사가 오버랩된다. 지구 반대편에서 각각 일어난 참사는 약하고 없는 나라와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자에게만 너무나 가혹해서 원망스럽다. 서양에 있는 미국과 아이티, 동양에 있는 한국과 용산.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은 천재(天災)이고 용산에서 일어난 참사는 인재(人災)라는 것 하나만 빼고는 너무나도 닮았다.

지금 우리는 너무 춥고, 아이티는 너무 슬프다. 아이티 강진 참사에 미국에 사는 아무개 영화배우 커플은 100만 달러를 기부했단다. 용산 참사를 일으킨 아무개 정부도 100만 달러를 지원한단다. 용산 참사를 일으키고도 나 몰라라 하던 정부 치고는 통 크다고 해야 하나. 같은 금액이지만 너무나 다르게 느껴진다.

2010-01-14

소탕 말고 소통을 하는 방법

  • 내가 생각하기에 토론은 서로의 '다름'을 드러내놓고 그것의 정당성을 객관적 근거를 통해 입증하는 것이며, 종국에는 합의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15)
  • 토론이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주장을 펼치면서 합의를 이루거나 공통의 이해 기반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30)
  • 쌍방 간에 극단적으로 상대를 낙인찍으려고 한다. (94)
  • 점심 메뉴 정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토론에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취하던 사람들이 선거를 앞두고는 서로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다는 이유로 칼부림까지 부린다. (116)
  • 사실 위에 정의를 세울 수는 있어도 정의 위에 사실을 세울 도리는 없다. (131)
  • 이제는 성공신화를 바꿔야 한다. 성공신화를 대체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행복신화이다. (174)
  •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193)
  • 절대 다수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사람들이다. (...) 다만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고 '소통'이 아니라 상대편을 '소탕'하려는 소수의 횡포 앞에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225)
  • 중간에 서 있다는 것이 곧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 사안별로 시시비비를 가려내겠다는 뜻이다. (225)
  • 회색은 검은색, 흰색 둘 다를 가진 당당한 색깔이다. 경우에 따라 사안에 따라 검은색과 흰색의 장점만을 가려내고 적절히 섞어서 우리 공동체 전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만들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색하는 사람들이 회색인이다. (...) 이런 회색 지대가 넓어져야 한다. (...) 이들이 중심 세력이 되어야 한다. (227)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정관용/위즈덤하우스 20091126 256쪽 11000원

그럴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방송에서 하는 토론 역시 방송용이었다. 방송용이라는 말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라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극과 극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잡아먹을 듯 양보 없는 토론을 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런 방송 토론이 모범 답안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서로 물어뜯다 결론 없이 끝나는 방송 토론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한다.

스스로 회색인이라 칭하며 불통의 현장을 중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소통이 아니라 소탕을 하려는 시대에 침묵하는 회색지대를 넓히자는 제안을 한다. 책은 술술 읽힐 정도로 쉽게 쓰여있는지라 책갈피 넘기는 속도가 빠른 편이었지만 그가 제공하는 실마리는 절대 가볍지 않다.

2010-01-13

폭설이 8000억 가치? 하늘에서 돈이 내렸나

1.
아이엠에프로 가뜩이나 어려워 마른 수건도 다시 짜라던 시절. 제안 사무국에 있는 양반과 술 한잔 찌끄리며 청승을 떨다 아주 재밌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양반 왈, 일 년에 나오는 제안 효과를 다 합치면 영업이익보다 많다고 하더군요. 제안자가 최초 입력한 유형효과를 합치니 그런 결과가 나왔다네요. 이익을 내도 이자 같은 금융비용 부담이 워낙 커서 빅딜설이 나돌던 시절인지라 깜놀했죠. 물론 제안심사를 하며 걸러지지만 상상 이상으로 제안 효과가 부풀려졌음을 알 수 있었죠. 마른 수건도 짜라는 강한 압박이 제안을 많이 하도록 했고, 그만큼 허수를 낳았다는 얘기입니다.

2.
지난 1·4 폭설의 경제적 가치가 8254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상청이 밝혔답니다. 분석 항목에는 가뭄피해나 산불 방지를 한 효과뿐만 아니라 스키장 운영비 절감이라는 것도 보입니다. 오보청을 넘어 구라청이라는 오명을 안은 기상청이 별걸 다 연구해서 발표하네요. 계량화가 가능한 항목만 적용하셨다는 토를 달면서 말입니다. 딱 하나만 되묻고 싶어 지네요. 죄송하지만 그날 점심때 짜장면을 배달 못 한 것과 족발집에서 야식 배달 못 한 것은 빼셨는지...

자꾸 그렇게 고상한 뻘짓을 하시니까 경제적 가치를 발표하는 순간 존재 가치가 떨어지십니다.

2010-01-11

세종시와 4대강, 퉁 칩시다!

박정희에 대한 공과만큼 노무현의 공과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노무현은 인간적인 대통령이었지만 훌륭한 대통령은 아니라는 평가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훌륭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평가에 일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세종시다. 세종시가 그에게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땅 놓고 농간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였다.

세종시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충청남도는 발길 닿는 곳마다 외제차가 허연 먼지를 날리며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길가에 들어서는 가건물마다 『땅』으로 도배된 중계업소가 활개를 쳤다. 세종시 때문에 사방 몇백 리는 들썩였다는 얘기다. 노태우가 백만호 주택을 건설하면서 모래가 없어 짠맛이 가시지도 않은 바닷모래를 가져다 집을 지었다는 말을 들었고, 주중에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목포 휴게소에 들르면 손님보다 종업원 수가 더 많은 한적한 모습을 보면서 지금 꼭 필요했는지 의문이 들면서 생긴 물음이기 때문이다. 대전을 기점으로 자동차를 타고 출발하면 한반도 이남은 두 시간이면 닿는 거리인데도 선거가 끝나면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도통 구경할 수 없는 지방 비행장을 만들어 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는 시대를 앞서간 혜안이라고 칭송을 할지도 모르지만 침이 마르게 두바이를 떠받들다 이제는 계륵으로 치부하는 우를 이제는 반복하지 말자는 염려이기 때문이다. 불탄 숭례문-우리는 남대문이라 부르다 불타 없어지고서 숭례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자리에 있는 재를 치우기도 전에 뚝딱거려 다시 만든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런 염려가 기우가 아님을 절감했다.

대운하는 정녕 아니라면서 4대강을 뒤집어 놓는 MBc가 세종시를 과학기술 명품 도시를 만든다고 했을 때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떠나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 같아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노무현도 세종시는 표를 얻기 위한 즉흥적 공약이었는데 그런 공약에 화답을 보냈던 이가 손바닥 뒤집듯 홱 돌아서는 건 가볍다 못해 간과 쓸개에 번갈아 붙는 박쥐만도 못해 보여 씁쓸함을 금하지 못했다.

이런 MBc가 노무현보다 더 무서운 것은 4대강 사업을 임기 내에 끝내겠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이 말을 세종시와 연결해서 뒤집어 보면 그 속뜻을 음미할 수가 있다. 권력을 가진 자만 공약을 실현해야 한다는 말로 세종시는 죽은 권력의 유산이기 때문에 지속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4대강-이라고 쓰면서 대운하라고 읽는다-은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 후다닥 끝내겠다는 말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종시 문제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쥐도 새도 모르게 4대강을 뒤집어 놓겠다는 속내인지도 모르겠다. MBc는 대통령 단임제가 연임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제도라며 단임제가 가진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지 않았는가.

시냇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것이 보기 싫다고 반듯하게 만들고 양옆으로 공구리를 치던 시절이 있었다. 당장은 보기에 좋았다. 한 해 두 해가 지나자 물이 마르고 썩어가기 시작했고, 장마철에는 물이 넘쳐 난리가 났다.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우리는 생태를 복원하자며 공구리치던 이전 모습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공구리 열심히 치던 시절에 서구에서는 진작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노무현과 MBc, 둘 다 미래를 내다보며 고뇌에 찬 결단을 한 것이 하나 있다. 대통령 전용기를 도입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노무현은 야당의 반대로 좌절했지만 MBc는 착수금을 예산에 반영했다고 한다. 자신이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닌데 비행기 한 대를 도입하는데 오 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세종시나 4대강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한 세대가 흐르고 나서 어떤 모습이 될지 고민을 하면 어디 덧나랴.

2010-01-08

위대한 사람의 보통 이야기

연초에 집어 든 두 권의 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스티브 잡스에 관한 것이었다. 아이폰이 없어 본의 아니게 아이리스 조직원이 된 것이 억울(?)해서 어떤 양반이 만들었나 궁금하기도 하고, 애플이 만든 제품을 보면 단순한 디자인에 마음이 가는 걸 숨길 수 없어서이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에 관한 책인데도 정작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iCon 스티브 잡스》가 출간되는 게 탐탁지 않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대를 앞서가는 화려한 거인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애인과의 사이에 태어난 딸의 아버지임을 강하게 부정하며 부양을 하지 않았거나, 인정사정없는 M&A로 핵심기술을 빼오고 구조조정을 하는 악덕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사실 그래서 더 재밌게 읽었다. 주차장에서 시작한 애플에서 승승장구하다 자신이 불러들인 경영자에게 쫓겨나 넥스트스텝을 차리고 후에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 대박을 친 픽사를 사들이는 협상의 기술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쫓겨난 지 십 년 만에 화려하게 복귀하는 이면에는 스티브 잡스의 농간이 있었음도 알 수 있다. "우리들의 영웅들에게도 결점은 있기 마련이다. 결점 없는 영웅들은 오히려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결점이 아니라 업적이다." (426p) 스티브 잡스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으면 책 두께에 질려 진작 덮었을지도 모른다.

괴팍하고 채식주의자인 스티브 잡스는 우리가 원하던 손전화와 MP3를 족집게처럼 만든 것으로 봐서 그는 우리보다 더 영락없는 보통 사람이다.

[인상 깊은 만큼 생각하게 하는 대목]
애니메이션 영화「토이 스토리」로 대박을 치고 픽사의 주식을 공개하자 스티브를 포함해 몇몇 사람들은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러자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직원들은 갑자기 찬밥 신세가 된 것 같았고 내 몫을 받지 못했다는 불만이 가득했다. 감사 표시를 하지 않은 그에게 구두쇠란 비난을 했다. 그러자 주식 공개하기 오래전에 회사를 떠났던 어느 간부가 말했다.
- 스티브는 회사가 되살아날 희망이 없을 때에도 매달 픽사에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내 몫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직원들은 고용 계약을 맺을 때 스톡 옵션을 받을지 여부를 알게 되는데 애당초 더 많은 주식을 받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기는 했는지 의심스럽다. (309p~312p)

iCon 스티브 잡스/윌리엄 사이먼, 제프리 영/임재서 옮김/민음사 20060324 430쪽 20000원

2010-01-06

비행기는 바퀴가 없으면 날지 못한다

기차를 보는 것도 희귀한 일이었던 촌구석에서 비행기가 날아가는 걸 보는 날이면 난리가 났었다. 꼬리에 하얀 구름을 실타래처럼 풀어놓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쌕쌔기라고 불렀다. 하늘을 가로지르며 쌔액하는 소리를 내서 그렇게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빠르지도 않았던 전투기였지만 그 시절에는 푸른 창공에 남긴 한줄기 하얀 자국이 사라질 때까지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는 비행기 탄다는 말이 그 시절 신작로를 냅다 달리던 버스 정도 타는 일인지라 날아가는 비행기가 더는 경외의 대상이 되지 못한 지 오래됐다. 날아가는 비행기도 숨소리를 죽이며 지나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끄럽다며 동네에서 항의하는 시대다. 비행기 태우지 말라는 소리가 주변에서 가끔 들리는 걸로 봐서는 비행기를 대신할 뭔가가 아직은 없는 듯싶다.

섣달 그믐날이 정월 초하루가 되었다고 희망찬 새해가 되리라곤 꿈에도 기대하지 않은지 오래됐고, 이루지 못할 결심을 애당초 하지 않은지 진작됐지만 마음이 자연스레 새삼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정량적 새해 목표가 정성적으로 슬그머니 바뀌는 건 세월 탓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시나브로 변한 것도 있다. 젊은 시절이었으면 비행기가 나는 데 가장 중요한 부위는 엔진이라거나 뽀대 나는 날개라고 말했겠지만 요즘은 바퀴라고 말한다. 잘 날던 비행기가 착륙하기 직전에 바퀴를 내리지 않으면 큰일 난다. 바퀴가 없으면 이륙은 꿈도 못 꾼다. 그렇다고 엔진이나 날개의 중요성이 떨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바퀴처럼 눈길조차 받지 못하던 부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눈여겨보게 됐다는 말이다.

이렇듯 갈채받지 못하지만 그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바퀴 같은 존재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일등만 예찬하던 오만과 편견에 대한 반성일 수도 있고, 밀레니엄과 함께 사라진 낭만파에 대한 향수일 수도 있다. 어쩌면 초근목피 하던 시절에 먹던 끼니를 건강식이라고 칭송하면서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면받은 아무개 회장님이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비행기를 탔다는 소식보다 바퀴가 굴러가도록 말없이 눈을 치우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무명인에게 갈채를 보내며 시작하는 정월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