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1

오뎅 팔자는 뒤웅박 팔자


나는 오뎅을 무척 좋아한다. 출장을 가서도 야심한 시간에 배가 출출하면 혼자서 몰래 숙소를 빠져나와 길거리에서 파는 오뎅을 양껏 먹고 슬그머니 들어오곤 한다. 아, 양껏이라는 말은 취소다. 요즘은 가냘픈 오뎅 한 꼬치가 오백원이나 해서 양껏 먹지는 못한다. 대신 오뎅 국물이 맛나면 양껏 퍼먹는다.

주책 맞게도 동남아 어느 곳에 놀러 갔을 때도 느닷없이 푹 삶은 오뎅이 먹고 싶어졌다. 튜브에 담긴 고추장도 비행기에서 몇 개 꼬불쳐 갔는데 간장에 콕 찍은 오뎅을 입안 가득 욱여넣고 우적우적 먹고 싶다는 생각이 유독 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소원을 하늘도 눈치챘는지 스팀보트를 먹게 되었는데 오뎅 비스무리한 것이 있어서 원 없이 먹었던 적도 있다.

오뎅을 어묵이라고 부르면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 맛이 뚝 떨어진다. 그냥 불러온 대로 오뎅이라고 하는 게 숭덩숭덩 썰어 넣은 무가 푹 울어난 느낌이다. 오늘같이 저절로 옷깃을 여미며 입김이 허옇게 나는 날이면 뜨끈한 오뎅 국물이 무척 땡긴다. 물론 예전 코흘리개 시절에 먹던 그 맛이 나지는 않지만 아무렴 어떠랴. 오뎅 한 점 베어 먹고 국물을 호호 불며 마시면 가슴까지 따스해지는 걸.

그런 오뎅 팔자도 뒤웅박 팔자인가 보다. 어떤 오뎅은 가카 입으로 들어가고 또 어떤 오뎅은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한파가 몰아친 지난 18일, 마포구청에서는 용역을 출동시켜 홍대입구역 인근에 있는 노점 철거를 하였다고 한다. 디자인 서울을 위해서 그랬는지 철거 예산이 남아 올해가 가기 전에 집행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러는 거 아니다. 초상집에 빚 받으러 가는 거 아니고 한겨울에 방 빼라고 하는 거 아니다.

굳이 아이매직으로 감정이입을 하거나 내가 오뎅이라는 자기최면을 걸지 않고도 사진을 보면 가카 입으로 들어가는 선택받은 오뎅이 아니라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오뎅이 나라는 생각이 든다. 손님 잘못 만난 오뎅 팔자도 뒤웅박, 가카를 잘못 만난 우리네 팔자도 뒤웅박. 눈물이 절로 난다. 한겨울 칼바람이 볼때기를 후려칠 때만 눈물이 나는 거 아니다.

2009-12-14

부러진 화살

  • 수학자로서 출제된 문제의 오류를 못 본 체할 수 없는 책임 의식과 교수 사회 내지 대학 사회의 일원으로서 조직 문화에 원만하게 적응하라는 요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았던 것일까. (26)
  • 개인이 정직할 수 있는 사회, 정직해도 최소한 안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정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27)
  • 검사는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증거를 제출하는 국가기관'이라고 정의된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검사는 피고인의 범죄 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진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57)
  • 여기 온 사람들, 죄를 짓지 않았다 해도 한마디 말도 못해. 그걸 거부했을 때는 괘씸죄에 걸려서 없는 죄도 지었다고 인정해야 적게 형을 때려. (81)
  • 우리가 이기느냐 지느냐 가지고 이렇게 억울하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정상적으로 재판을 진행하면서 따져 주고 넘어갔으면 그런 비극이 없었다는 거죠. (128)
  • 석궁 사건에서는 김교수가 잘했다기보다는 사법부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131)
  • 사법부 이외에 나는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어요. (147)
  • 죄질이 아주 나쁜 재벌들과 그 자녀들은 사회에 봉사 많이 하고 가정교육 잘 받았다며 내보내는 판결을 생산해 내는 곳도 대한민국 법원이고 판사들이다. 그런 그들이 오늘도 우리를 판결한다. (160)
  • 2007년 10월 15일 서울동부지방법원 석궁 사건 4년 실형 선고 2009년 6월 현재 의정부 교도소 복역 중 (200)
부러진 화살/서형/후마니타스 20090617 200쪽 12000원

어느 조직이든 동업자 의식이 없으리오마는 법마저 그러면 어디에 하소연 하리오.

2009-12-11

이제 누워서 침 뱉지 맙시다


부끄럽게도 혼자 과자를 먹을 때와 여럿이 먹을 때가 다릅니다. 혼자 뒹굴 거리며 과자를 먹을 때는 부스러기부터 먹습니다. 여럿이 먹을 때는 깨지지 않은 온전한 것부터 입으로 가져갑니다. 오징어 먹을 때도 마찬가집니다. 혼자서는 다리부터 물고 질겅거리는데 여럿이 있으면 몸통부터 죽 찢어서 허겁지겁 처묵처묵 합니다.

이런 현상이 집단적으로 일어나기도 하더군요. 예전에 아파트형 사택의 난방 공급 방식을 바꾼 적이 있습니다. 애초에 공동난방 방식으로 지어졌는데 지하실에 있는 보일러가 오래되어 철거하고 집집마다 가스보일러를 다는 개별난방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그랬더니 생활방식이 조금 변했습니다. 공동난방 시절에는 다들 실내온도를 이빠이 올려놓고 한겨울에도 반바지에 난닝구를 입고 생활했답니다. 개별난방으로 바뀌자 다들 실내온도를 적당하게 낮추고 뜨거운 물을 쓰는 횟수나 양이 부쩍 줄었다고 하더군요.

혹시 돌아다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나 건강보험관리공단 같은 공기업이 어디에 입주해 있는지 눈여겨보신 적이 있는지요. 죄다 그 동네에서 제일 괜찮다 싶은 건물에 입주해 있습니다. 못 믿겠으면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두고 보시면 뻥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판국에 화룡점정을 찍은 곳이 바로 지방자치단체 신청사입니다. 자급자족률이 높은지 낮은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냅다 지어버렸습니다. 방방곡곡에서 제일 삐까뻔쩍한 건물은 죄다 구청이나 시청 건물입니다. 신축 백화점을 제외하고는 가장 튀는 건물입니다.

우리는 그런 청사를 보면서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을까요. 여럿이 과자를 먹거나 오징어를 뜯을 때 온전한 것에 먼저 손이 가고, 공동난방이면 뜨거운 물을 펑펑 쓰는 우리가 구민이고 시민인데 말이죠. 호화 청사를 보며 손가락질을 할수록 누워서 힘껏 내뱉는 가래침이겠죠.

입에 거품을 물며 4대강을 비토하던 양반들이 지역구 선심성 예산을 증액시키며 어물쩍 넘어가고 있나 봅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면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선거는 내 돈을 누구에게 맡길 건가를 결정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쉽게 포기할 일이 아니겠지요.

내 돈이면 저런 청사를 짓는 삽질을 할까요? 과자 부스러기를 먼저 먹고 오징어 다리부터 씹는 사람을 눈여겨보았다가 내 곳간 열쇠를 맡깁시다. 이제는 누워서 침 뱉지 말자고요.

2009-12-06

권력


권력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나게 한다.
그래서 좋은 사람은 더 좋아지고, 사악한 사람은 더 사악해진다.
- 어느 외화의 마지막 대사

저 말이 시대와 지역을 망라하는 만고불변의 진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21세기 특정지역의 특정인에게는 꼭 들어맞고 있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어떤 나라에서 입증되었고, 불과 단 한 사람만 바뀐 한반도에서 점점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그 두 사람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만나 함께 카트를 타고 손을 흔들 때 한반도 이남에서는 촛불이 들불처럼 번졌었다. 그때가 최악의 순간이 아니었다는 걸 체험하는 날이 늘어갈수록 좋은 사람은 더 좋아지고 사악한 사람은 더 사악해진다는 말을 확인한다. 권력은 커질수록 그 사람의 참모습을 더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