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30

남의 매뉴얼에서 건지는 횡재

  • 전문성, 독창성, 네트워크로 승부하는 편집자의 길에서 사실 직위나 호칭은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원고로 말하고, 편집자는 책으로 말한다. (38)
  • 편집자는 단순히 저작의 군더더기를 치우는 청소부가 아니다. 자신이 다루는 분야의 방향과 전망을 읽는 눈을 가져야 한다. (43)
  • 사재기와 서평 조작은 저자나 편집자를 향한 최악의 범죄행위이다. 편집자라면 절대 손대지 말고, 만일 이를 지시하는 출판사가 있다면 미련 없이 떠나라. (60)
  • 원고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흥분이야말로 편집자를 붙잡는 최고의 매력이다. (67)
  • 내 떡이 아니면 빨리 옆집을 찾아가도록 도와줘라. 그것이 출판의 도리다. (88)
  • 불평은 구체적이며 불만은 근본적이다. (107)
  • 삼각형을 그리고 각 꼭짓점에 첫째, 개발 가치(독자·사회·출판사), 둘째, 개발 가능성(저자·인력·예산), 셋째, 채산성(총비용 대비 예상 손익)을 적는다. 이것이 아이디어 선별의 삼각형이다.(111)
  • 보물을 손에 넣으면 지도를 준 사람을 잊는다. (118)
  • 비슷한 주제로 다른 출판사에서 먼저 책이 나왔다고 실망하지 말아라. 책은 10대들을 위한 청바지가 아니다. 방송과 언론은 '먼저'에 초점을 맞추지만, 편집자에게는 '최고'와 '최선'이 더 중요하다. (119)
  • 인류애를 향한 물음은 먼 훗날로 유보하지 않아도 좋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부자들의 논리는 참혹할 정도로 안쓰럽다. 아름다운 기획은 더운 여름날 연거푸 아이스크림을 찾는 아이에게 배탈 나니 오늘은 그만 먹으라며 돌려보낸 내 어린 시절 동네 가게 아주머니의 배려처럼 일상의 일과 삶에서,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어야 한다. (121)
  • 읽히지 않는 기획안을 쓰지 말고, 강력하고 간결한 한 장의 기획안을 쓰라. (137)
  • 출판계약은 저자-편집자-출판사 모두가 최고의 책에 대한 각자의 준비가 확실하다는 상호 확인이다. (172)
  • 내 직업의 머리말을 써라. 남의 책에서 인용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우러나온 나의 머리말로 내 직업의 세계를 열어라. (264)
  • 내 후배들이 내가 안주로 삼았던 낡은 문제들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문제로 밤을 세울 수 있도록 개혁과 변화의 주체가 되어라. (272)
  • 편집장은 사장처럼 사고하고, 사장은 편집장처럼 행동하라. (296)
  • 오늘 편집장의 자리에 오른 내가 어제의 편집장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내일의 사장이 오늘의 사장을 넘지 못하면 출판의 진보를 이야기할 수 없다. (302)
편집자란 무엇인가/김학원/휴머니스트 20090817 428쪽 17000원

나는 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줄 알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수많은 원고가 출판사 문을 두드리다 운이 좋아 책으로 엮어져 서점에 깔리거나, 유명한 소설가에게 선인세를 지급하고 마감을 독촉하며 원고를 가져다 뚝딱 책으로 만드는 줄 알았다는 말이다. 그런 내게 이 책은 간접적으로나마 어떻게 책이 만들어져 독자의 손에 이르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편집자란 말 대신 CEO, 기획자, 엔지니어, 영업사원, 정치인, 보수 혹은 진보 등등 지금 바로 자기 자신으로 바꿔놓고 읽어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부제와 같이 '책 만드는 사람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숨겨진 행간의 의미는 오늘을 사는 사람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출판 편집자 매뉴얼이라지만 문외한이 읽어도 지루하지 않아 뜻밖의 타산지석과 금과옥조를 주울 지도 모른다.

2009-11-23

생각의 속도 vs 세계를 터는 강도

생각의 속도

세계를 터는 강도

빌게이츠
청림출판 199905 519쪽 13000원
로베르토 디코스모 외
영림카디널 199904 204쪽 6800원
"다가올 10년의 변화가 지난 50년의 변화보다 더 클 것이다"라고 빌 게이츠는 말한다. '생각의 속도'에서 빌 게이츠는 정보화를 이끌어 가는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다가올 미래사회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디지털 신경망 비즈니스에 대해 유감없이 꿰뚫는 혜안을 보여준다.

한편 '세계를 터는 강도'에서는 점점 독과점이 돼 가고 있는 MS사를 경계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은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등장했던 빅 브라더의 모습이 바로 MS사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미래사회는 우리의 생각까지도 MS사가 지배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글쎄. 어느 쪽 얘기가 맞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두 저자가 경고하는 대로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이미 시작되고 있고, 내가 어디쯤 서 있나 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우리의 죄일 뿐이다.

2009-11-16

인지세를 아시나요?

어느 날 갑자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점심을 배불리 먹고 눈꺼풀이 절로 감기는 한가로운 오후 어느 날. 전화벨 소리가 아주 짜증 나게 울린다.

- ○○팀 나무삼.
- 관리팀 아무개삼. 큰일났삼.
- 밥 잘 먹고 이 무슨 호들갑?
- 며칠 후에 세무조사가 나오는데 계약서에 수입인지가 붙어있는지 확인해주삼.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웬 수입인지.
- 인지세를 붙여야 하는데 몇 년이 누락된 것 같삼.
- 인지세가 뭥미? 내가 올라갈게 기둘리삼.

관리팀에 들르니 그제야 내막을 알게 됐다. 세무조사가 예정돼 있어 회계장부를 정리하던 중 그동안 수입인지를 산 흔적이 없다고 한다. 계약을 맺으면 인지세로 수입인지를 붙여야 하는데 누락이 된 것 같으니 계약서를 확인해서 수입인지를 붙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무실로 내려와 계약서를 확인해 보니 예상대로 수입인지가 몇 년 동안 붙어 있질 않았다. 예상되는 수입인지 금액을 계산해서 관리팀에 통보하니 차 한 잔 식을 시간이 지나자 수입인지를 들고 왔다. 보통 때나 이렇게 업무처리를 빨리하지. 그때부터 계약서 파일을 꺼내 계약서 뒷장에 붙이기 시작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사람은 수입인지를 자르고 한 사람은 풀칠하고 한 사람은 계약서에 붙이길 개 발에 땀이 나도록 했다. 그나마 계약서 파일 정리가 잘 돼 있어 빨리 끝났지 아니면 밤샐 뻔했다.

그런 정성(?) 때문인지 세무 조사는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세무조사하는데 인지세가 차지하는 비중이야 별 볼일 없지만 행여나 생길 불상사를 예방하고자 함이었으니 탈이 났으면 경치는 소리가 났을 게다. 그 후 기성금이나 준공금이 나가기 전 지급품의를 할 때 계약서에 인지세를 붙이는 것으로 업무 프로세스가 정착됐다.


인지세가 뭥미?

그런 일이 있고 나자 인지세가 뭔지 궁금해 검색을 하였다. 계약을 하는데 왜 세금을 내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었다. 「인지세법」 제1조에는 고상하게 구시렁 대며 씨부려 놨지만 한마디로 "돈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뜻이다. 주변에서 수입인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면 바로 그것이 인지세다. 무심코 지나쳤지만 관심 있게 보면 의외로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지세 유래를 알면 정말 억지스럽게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1624년 네덜란드에서 전쟁비용을 조달할 목적으로 처음으로 채용되었고, 점차 유럽 여러 나라로 퍼져서 시행되고 있는 문서세라고 한다.

또한 1765년에 영국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하여 각종 증서, 신문, 광고, 달력 따위의 인쇄물에 인지세를 매기는 조례를 정하자 식민지 측은 자치권의 침해로 여기고 강력히 반대하여 이듬해 폐지하였지만 반항운동으로 확산되어 미국 독립 전쟁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유추하건대 인지세는 전쟁비용을 마련하고자 대굴빡를 쥐어짜다 나온 것 아닌가 싶다.


수입인지, 아깝지만 붙여야

비과세 문서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재산에 관한 문서 혹은 증서는 반드시 인지세를 납부하여야 한다. 납부할 인지세는 인지세법 제3조를 참조하면 된다. 그런데 수입인지를 붙이려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10억원 초과하는 계약서는 세액이 35만원이나 되고 그 건수가 100건이라고 하면 3500만원이다. 소액이지만 1천만원 계약을 1000건 한다면 2000만원이나 된다. 갑, 을이 수입인지를 붙인다면 세액은 두 배가 된다.

인지세는 수입인지를 붙이도록 하지만 그 시행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가 쉽지 않아 인지세법을 위반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조세범처벌법」 제9조에는 "인지세의 경우에는 증서·장부 1개마다 포탈세액의 5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한다."라고 꼭 집어 놓았다. 벌금이야 물면 되지만 이름 있는 회사라면 세금포탈이라는 불명예를 안을 수밖에 없으니 그것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눈물 나는 정착민들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부가세가 포함돼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듯이 문서로 된 거래를 할 때 인지세가 부과된다는 것을 간과하곤 한다. 최근 중국이 경기를 부양하고자 인지세율을 인하한다는 뉴스를 보면 인지세가 실생활에 아주 밀접하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부가가치세가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가치(같이) 내는 세금'이라는 눈물 나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절세하는 방법(?)이 유독 발달한 것을 보면 세금은 힘없고 빽도 없이 눈먼 사람만 내는 돈이라는 인식이 지워지질 않는다. 우리와 비슷한 직접세와 간접세 비율을 가진 유럽의 나라들은 복지국가라고 불리는데 말이다.

자크 아탈리가 쓴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을 보면 정착민이 발명한 것은 국가와 세금 그리고 감옥뿐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정착민이 돼서 부쩍 눈물이 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2009-11-14

세상은 내 속도로 함께 걷는 길

  • 또 10킬로그램이 넘었다. (15)
  • 여행 도중에, 어쩌면 여행이 끝나고 난 뒤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될지도 모를 여행의 이유를 처음부터 분명히 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21)
  • 자물쇠와 호루라기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 들여다보다 쓰레기통에 휙 던져 넣고 방을 나섰다. (76)
  • 죽은 감각을 두드려 깨우고 싶다면 카미노를 걸어볼 만하다. (88)
  • 덜 사랑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휘두르다 떠나버린 뒤, 더 많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사랑을 철회하지 못해 쩔쩔맨다. (101)
  • 시간에 한참 지나고 난 뒤에야, 관계의 파탄과 무관하게 사랑했던 기억만큼은 오롯이 내 것임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104)
  • 모두가 산티아고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모두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는지 모른다. 각자 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진정하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158)
  • 내일과 다음 생 중 무엇이 먼저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191)
  • 내가 죽음을 앞둔 시점이라면 지금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는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대, 선택의 결과, 성취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230)
  • 중요한 것은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 자신의 속도였다. (300)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김희경/푸른숲 20090515 311쪽 13000원

7킬로그램짜리 배낭을 만들기 위해 짐을 덜어내는 모습을 보면 순례자 길이라 불리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굳이 걸어갈 이유가 없어 보이는 그녀가 화살표를 따라 걸어간다. 배낭을 묶어 둘 자물쇠와 치한 퇴치용 호루라기를 챙겨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알게 되면서 내게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세상에 널린 것이 길인데 왜 꼭 그 길을 걸어야 깨달음을 얻을까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정답이 있겠느냐마는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이 걸은 이유 가운데 나와 같은 이도 있었을 것이리라. 산티아고로 가는 초반, 힘겨워하는 동행을 보며 마운틴 폴을 하나 빌려줄까 말까 고민하던 이가 산티아고에 도착해서는 돈을 빌려 달라는 여행자에게 두말없이 지갑을 여는 이로 변했다면 한번 걸어 볼만한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9-11-11

하마 십 년이나 됐답니다

1.
인터넷이라는 걸 처음 접했을 때 엄청 신기했습니다. 넷스케이프가 깔리고 유니텔 시험판에 접속해서 채팅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중했습니다. 아침마다 테이블에 놓여 있기 바쁘게 없어지던 신문이 눈길 한 번 받지 못하고 쌓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습니다. 요래 놀고 있는 걸 그냥 눈뜨고 보고 있을 회사가 아니죠. 정보화 자격증을 취득하라고 하데요. 뭐 늘 그렇듯이 진급시험 때 가점 사항은 아니지만 결격사유가 된다는 엄포와 함께 말이죠.

정보 검색하는 방법부터 기초적인 HTML 만드는 법까지 배우고 시험도 치렀습니다. 지금이야 원하는 단어만 치면 검색 결과가 너무 많이 나와 입맛에 맞는 걸 찾는 것이 더 고역이지만 초창기에는 검색 사이트 주소를 외워 주소창에 처넣어야 했지요. 물론 검색 결과를 얻기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배우고 나서 HTML 만드는 나모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고 덜컥 샀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든다며 며칠 동안 쪼물딱 거리다 사이버 세상에 집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bioengine.pe.kr이 맨 처음 구입한 도메인입니다. 그렇게 홈페이지를 만들었답니다. 1999년 11월 11일이었습니다. 딱 십 년 전 오늘이었습니다. 초창기 홈페이지 첫 화면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몇 해 전에 아쉽게도 노트북 하드가 맛이 가는 바람에 몽땅 날려버렸습니다.

2.
홈페이지를 만들었지만 관리하는 것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금방 티가 나데요. 글을 하나 올리면 연관된 링크가 있는 문서나 메뉴를 일일이 수정하는 것도 엄청 귀찮고 말입니다. 그렇게 방치하다 보면 어느새 거미줄이 덕지덕지 쳐 있고 백만 년 묵은 고가로 변해 있더군요.

그러던 차에 우연히 구글에 접속했는데 지메일이 초대장 없이 가입할 수 있는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는 성격인지라 가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가에 있던 몇 가지만 달랑 가져와 블로그도 만들었습니다. 2007년 2월이었습니다.

3.
지금 블로그 이름이 된 「나무사이」도 우연히 만들게 됐습니다. 구글 계정을 만들 때 영문자나 숫자로 된 여섯 글자 이상을 입력하라고 해서리 그동안 써오던 나무(namu)라는 닉네임에 뭐를 덧붙일까 잠시 생각하다 숫자 42를 붙였습니다. 딴에 42를 '사이'로 읽어주길 바라는 얄팍한 계산을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만들어 놓고 나무사이(namu42)라는 말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裸無思理. '벌거벗은 나무처럼 욕심 없이 생각하며 살자'라고 딴에 조금 거창하게 붙였지만 사실은 '나(만)무사히(이)'라는 응큼한 생각을 살짝 가리면서 말이죠. 뭐 그렇게 나무사이라는 블로그를 시작했더랬지요.

4.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루에 영어 단어 하나씩을 외웠으면 3600개를 외웠을 테고, 담배를 끊고 그 돈을 모았으면 몇 백만 원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허송세월 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허나 어떻게 보면 이해관계를 떠나 내 맘대로 찾아갈 수 있는 너나들이를 더 많이 만난 세월이기도 합니다. 편향된 시각을 조금이나마 교정할 기회를 만나기도 했고, 사람 사는 소소한 얘기들에서 찔끔거리는 주접을 떨기도 하며 아직도 내 가슴 한구석에 오염되지 않은 신대륙 감성이 있음을 종종 발견하기도 했더랍니다.

오늘이 빼빼로데이라고도 하고 가래떡 데이라고도 하지만 십 년 전에는 그저 평범한 하루였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날부터 의미 있는 날이 됐고, 그런 세월이 오늘로써 하마 십 년이나 됐답니다. 빼빼로데이보다 나무사이가 오래간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 맘대로 정한 너나들이가 있어 살맛 납니다.

2009-11-05

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

  • 마키아벨리는 비난은 받더라도 결코 '미움'은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마르고 닳도록 경고하고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이 '미움'으로 발전하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9)
  • '사랑'을 쓰는 리더는 '경멸'을 받게 되면 파멸하고, '두려움'을 쓰는 리더는 '미움'을 받게 되면 파멸한다. (51)
  • 대한민국의 정치는 여전히 도덕이 문제가 된다. 보수진영의 경우 '도덕성 자체'가 문제가 되고, 진보진영의 경우 '도덕적 오만'이 문제가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보수도 진보도, 그리고 대한민국도, 미래가 결코 밝지 않을 것이다. (131)
  • 이명박 대통령이 자주 위기를 맞는 것은 공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촛불집회는 대통령이 우리나라 국민들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다는 국민들의 느낌 때문이었다. 용산참사로 인한 후폭풍도 정부가 약자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231)
  • 대선 때 그리도 대단한 공감 능력을 보여주었던 대통령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이제부터 '쇼'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참모들은 대통령이 직접 민생 현장을 자주 방문해 민심을 챙기라고 조언했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그게 그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쇼는 그냥 쇼일 뿐이라는 얘기다. '쇼' 덕에 대통령에 올랐던 대통령 노무현은 '쇼'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233)
  • 반대로 이명박 대통령은 민생탐방과 현장정치를 강조한다. 그러나 거기에 국민들과의 공감은 찾아볼 수 없다. 똑같이 스테이크를 구워 팔면서 한쪽은 지글거리는 소리가 필요 없으니 소리를 안 내겠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소 한마리 굽는 소리로 지글거리고 있다. 양쪽 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국민들의 편이라는 신호를 보내지 못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불행이다. (237)
  • 대한민국은 외눈박이와 같다. 이익도 보고 명예도 보는 두눈박이가 자라나기 어렵다. 이런 비유가 심하다고 한다면 짝눈같다고 하자. 어떤 때는 이익을 보는 눈만 크게 뜨고 어떤 때는 명예를 보는 눈만 크게 뜬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국민들이 뽑았다. 어느 경우나 실망이다. 대한민국도 이제 이익을 보는 눈과 명예를 보는 눈을 동시에 지닌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되었다. (327)
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박성래/베가북스 20090720 335쪽 13000원

이 책의 표지는 하늘의 명예를 가리키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땅의 이익을 가리키는 이명박 대통령을 그린 캐리커처다. '사랑'과 '두려움'을 내세우는 두 인물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빗대어 그리고 있는 내용과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사랑을 쓰는 리더가 경멸을 받으면 실패하고, 두려움을 쓰는 리더가 미움을 받으면 파멸한다는 마키아벨리의 틀을 빌어 얘기하며 '공감'이라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명예를 중시한 나머지 이익을 가벼이 여기거나, 이익을 중시한 나머지 명예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실패에 대한 좌절과 회한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남는 것이 리더를 선택한 대가라면 너무 잔인하다.

사랑을 쓰다 경멸을 받아 실패한 대통령과 두려움을 쓰지만 미움을 피해가지 못해 실패할 확률이 높은 대통령이 교차하는 지금, 대한민국 수준을 높이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