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31

담배와 헌재


담배연기에는 발암성 물질인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이 들어 있습니다.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판매 금지! 당신 자녀의 건강을 해칩니다. 담배연기는 재가 되어 금세 헌재가 된다.

시월의 마지막 밤, 담배 한 모금과 첫사랑 생각하기도 빠듯한데 헌재가 여러 사람 태운다.

2009-10-28

업(業)의 개념

국내에서 업의 개념을 처음 말한 사람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다. 이 회장은 술집을 예로 들어 이야기했다. "여러분이 술집 경영자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술집의 경영자들은 술장사가 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술집 경영자의 업은 수금(收金)입니다. 매출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금이 가능한 매출, 손님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 수금 방법, 수금 기간을 줄이는 좋은 프로세서 등에 관심이 있으면 그는 성공합니다. 이런 것이 업의 개념입니다."

한 번은 신세계 사장더러 "백화점의 업(業)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래서 "유통업입니다"라고 얘기했더니, 회장이 질책하면서 "그러니 신세계가 아직 1등을 못하지"라며 "신세계의 업의 개념은 부동산"이라고 얘기했다. 길목 요지를 선점하는데서 승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경영이념이 회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철학을 멋있게 포장했다고 하면, 업의 개념은 철학을 실현하려는 구체적인 핵심 성공요인을 찾아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효율적으로 돈을 버는 키워드가 업의 개념이다. 신용카드 회사의 업은 카드를 많이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체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면 신용카드 회사에 근무하는 영업사원의 업의 개념은 무엇일까? 새 카드로 바꾸라고 강권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아닐까?

업의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입체적 사고와 발상의 전환을 통해 매크로와 마이크로, 하드와 소프트적 속성을 모두 분석해야 한다. 업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게 하고 변화는 물론 중요한 가치창조의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한다.

업의 개념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업의 개념은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누가 먼저 정확하게 변화하는 업의 개념을 잡아내느냐가 기회선점의 관건이다.

2009-10-27

리스크 광고와 새치기

1.
공원에서 미모의 여인과 데이트를 하다 아내를 만나자 깜짝 놀라는 남편에게 아내가 묻는다.
- 이 여자 누구야?
순간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이렇게 대답한다.
- 처제.

2.
최근 어떤 나라에서 신종플루와 관련하여 비서진이 가카에게 건의했다.
- 먼저 가카께서 신종플루 백신을 맞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가카는 생색내지 않는 척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 특별히 새치기하지 않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맞으련다.

3.
비서진은 가카에게 건의하기에 앞서 당신과 본관 근무 직원들만 우선 접종하고 나머지 참모들은 수석비서관까지도 모두 일반 국민과 같은 순서로 접종을 받는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를 종합하면 가카/본관 근무자>의료인>학생>영유아/임산부>노인층 순으로 접종하겠다는 방침이다. 허나 가카께서 새치기하지 않고 순서대로 기다렸다가 맞는다고 하였으니 방침대로 한다면 마지막에 해당하겠다.

전자는 리스크 관리를 강조하는 아무개 은행의 광고이고, 후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철저한 방역대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한 말씀이다. 전자는 허무맹랑한 대답에 웃음이 나오지만 그만큼 리스크에 대처할 준비를 아직 못했다는 방증이다. 후자는 모범답안이지만 그만큼 광고할 준비를 아주 많이 했다는 방증이다.

전자는 리스크 관리를 못했지만 순진해 보이고, 후자는 리스크 광고를 했지만 사악해 보인다. 신종플루 접종은 방침대로 하면 될 것 같은데 부쩍 이 시대의 방침은 물구나무를 설 것이라는 생각이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든다. '선거 때는 무슨 말을 못 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시었던 가카이기에...

덧.
아내 몰래 데이트를 할 때나 신종플루를 예방할 때나 마스크를 착용하시라. 인생이 무료하거나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회나 시위를 하는 곳에 가시라. 푸른 지붕이 먼 발치서라도 보이는 곳이면 안성맞춤이다.

2009-10-20

잘 때리고 박수받는 정권

마지막으로 야구장에 가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최고의 마무리로 활약하던 김용수 선수가 마운드에 오르던 때니까 오래됐네요. 특별하게 응원하는 팀이 없는지라 맞붙은 팀과 관계없이 무조건 공격하는 팀을 응원하곤 했습니다. 좋아하는 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것보다 박진감은 없어 보이지만 대신 승패에 상관없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좋더군요. 잠실 야구장 외야석에 앉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응원을 했지만 유일하게 김용수 선수가 마운드에 오르면 반말로 응원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나이가 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격하던 팀을 응원하다가도 김용수 선수가 등장하면 꼬박꼬박 존댓말로 외쳤었습니다. "형님 잘하세요"

그 뒤로 이종범이나 이승엽 선수가 아니면 성도 이름도 몰랐는데 작년 베이징 올림픽 때 전승을 하며 우승을 한 덕분에 그나마 몇몇 선수들 이름을 알게 됐습니다. 그 경기는 지금 생각해도 예전 김재박 선수가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한일 결승전에서 보여 준 개구리 번트 이후로 가장 짜릿한 감동이었습니다.

어제는 한국시리즈 3차전을 테레비로 보는데 비가 와서 경기가 잠시 멈추더군요. 과거 몇 차례 요맘때 관람했지만 비가 내리지 않았어도 야간 경기는 꽤 추웠던 기억이 있는지라 야구장에서 응원하던 관람객들은 고생깨나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제도 승패에 상관없이 보는 둥 마는 둥 하는데 SK 일루수가 강습 타구를 막는 장면을 봤습니다. 빠졌으면 2루타는 족히 돼 보였는데 잘 막더군요. 그 선수가 안타도 치고 홈런도 치데요. 그래서 그 선수 이름을 알게 됐습니다. 아마도 베이징 올림픽에서 뛰지 않았던지라 이름이 낯설었나 봅니다. 하지만 잘 때리고 잘 막았던지라 이제는 이름을 새기게 됐습니다. 성과 이름이 낯설지가 않아 쉽게 잊지 못할 거 같네요. 박정권 선수더군요.

박정권 선수를 다시 보려고 스포츠 뉴스를 기다리며 마감 뉴스를 보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받은 선물과 유품 200여 점을 서거 30주기를 맞아 오늘부터 공개한다는 자막이 하단에 흘러가는 걸 봤습니다. 박정권 선수 이름과 오버랩되며 묘한 감정이 들더군요. 둘 다 박정권인데 한 사람은 잘 때리고 박수를 받았고, 한 사람은 민주와 인권을 잘 때리다 생을 마감해서 그런 감정이 들었나 봅니다.

어제 오후 3시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이 새로운 시민정치 운동을 선언한 '희망과 대안' 창립식이 라이방을 쓴 보수 단체가 깽판을 쳐 무산되었답니다. 어림짐작이지만 잘 때린 박정권에게 박수를 보내는 열렬한 팬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입만 벌리면 그건 오해라며 손사래 치는 실용 정권 시대에 낡은 영사기가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인 백무산은 "아름다운 권력은 박살이 난 권력"이라고 했지만 권력은 영원히 박살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정권인가 봅니다.

어제는 잘 때리고 박수받은 박정권 선수와 잘 때렸던 박정권이 받은 선물과 유품을 공개한다는 뉴스를 동시에 봤고, 라이방을 쓴 박정권 팬들이 깽판을 쳤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딱 한 세대가 지난 30년 후, 우리는 어떤 유품을 공개하여야 할까요?

2009-10-19

나는 5-0을 원한다


1.
지난 추석날 새벽에 미국과 붙은 U-20 월드컵 예선전을 보았습니다. 참 잘하데요. 무엇보다 똥볼없이 아기자기하게 패스를 하며 골을 넣는 것이 달라 보이더군요. 3대 0으로 승리하며 16강에 진출해서 밤새워 본 사역을 헛되게 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16강에서 만난 가나에 져서 8강 진출이 좌절됐는지라 유선방송에서 다시 보여주는 브라질과 겨루는 결승전을 보았습니다. 후반전이 끝날 무렵부터 봤는데 가나 선수 한 명이 전반전에 퇴장당하고도 연장전까지 득점 없이 비기고 승부차기를 하데요. 그런데 승부차기가 명승부였습니다.

브라질이 선축한 승부차기는 3명이 모두 성공했지만 가나는 3번째 킥이 브라질 골키퍼에 막혀 3-2가 되었습니다. 4번째 킥은 양팀 모두 골키퍼에 막혔고, 브라질은 5번째 키커만 성공하면 우승할 기회를 잡았는데 그만 골대를 넘기는 똥볼을 차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가나는 5번째 킥을 넣어서 3-3을 만들었습니다. 6번째로 나선 브라질 선수의 킥은 가나 골키퍼가 막아냈고, 이어 가나의 6번째 키커가 승부차기를 성공하며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더군요.

가나의 우승은 아프리카 팀으로는 처음으로 우승한 것이라고 합니다. 브라질의 슈팅을 두 번이나 막아낸 가나 골키퍼는 골대 위로 올라가 승리를 만끽했습니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지만 축구 강국인 브라질보다는 아프리카 가나를 응원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모처럼 스포츠만 만들 수 있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보여줬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명승부였습니다.

2.
올 국정감사에서는 왕건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소총은 몇 발 쐈지만 그닥 이슈를 만들지는 못했죠. 짐작은 했지만 전경들에게만 미친소를 먹였다는 것을 보며 혼자서 욕을 바가지로 했지만요. 하루아침에 피감 기관이 개과천선 했을 리가 만무한데 소총이나 쏘다 만 것은 오는 28일에 있는 재보선 때문이겠지요.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데 국정감사를 제대로 할 리가 없으니까요. 아쉬운 것은 야권이라도 발에 땀이 나도록 준비를 해서 왕건이를 건졌으면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도 있었지만, 막판 바람에 따라 좌우되는 총선과 달리 아무래도 재보선은 지역색이 강하니 먹히지 않을 것을 알고 어영부영 후다닥 넘긴 감이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국회의원 중에 국정감사 때 가장 좋은 보직은 외통부라고 하더군요. 국외에 있는 기관을 감사한다며 비행기를 타고 가니 아마도 놀러 가는 기분이 들어서일 겁니다. 물론 확인 안 된 유비통신입니다.

10월 28일에 있을 재보선은 5곳이네요. 공식 선거기간이 이제 막 시작했는데 벌써 당선을 점치고 있습니다. 뻔한 유세지만 여권은 힘 있는 일꾼을 뽑아야 한다며 나불대고, 야권은 정부를 견제하려면 나를 뽑아 달라고 읍소하고 있습니다. 참말로 변하지 않는 식상한 레퍼토리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권자인 우리가 변한 거 없이 개차반이니 딱 투표 전날까지만 굽실거리며 표를 달라는 그들만 탓할 수는 없겠지요.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이번 재보선에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어느 한쪽에서 싹쓸이를 해서 5-0으로 끝나면 좋겠습니다. 여당에서 싹쓸이하면 기고만장하며 어깨에 더욱 힘을 주겠지만 대신 완봉패를 당한 야권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가까이는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옹골차게 준비할 것이고, 멀리는 대선을 위해 더는 분열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쓸개를 씹어 먹으며 와신상담을 할지도 모르니까요. 반대로 야당에서 싹쓸이하고 여당이 참패하면 두말할 필요 있나요. 민심이 진작 떠났음을 알고 각성하는 계기로 삼아 다시는 삽질하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싹쓸이하지 못하고 뿜빠이를 할 경우인데, 언제나 그렇듯이 제각각 유리하게 선거 결과를 해석하며 안주를 하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다시 지겹게 샅바 싸움하는 그들을 지켜보다 가슴을 후려치며 이 땅을 떠나려는 희망을 품고 로또를 사러 갈 겁니다.

3.
가나가 보여준 멋진 승부차기는 김수현 작가도 쓰기 어려운 장면이었습니다. 10월 28일, 우리는 가나보다 더 기똥차고 알찬 승부차기를 하길 기대합니다. 개인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바램은 5-0으로 일방적이면서 아주 잔인하게 끝나길 원합니다. 젭알...

2009-10-14

미친소 먹이고 촛불 막다가 경친다

1.
구조조정을 하며 신식 군대를 우대하는 통에 불만이 가득했다. 게다가 13개월이나 급료가 밀려 있어 주둥이가 한 사발이나 나와 있었다. 성질이 뻗칠대로 뻗쳐 있던 차에 한 달치 급료를 쌀로 줘서 받아 들었다. 이런 육시랄. 양도 절반밖에 안 됐고 그나마 받은 쌀에는 모래와 겨가 섞여 있었다. 항의하자 주동자를 포도청에 가두며 모진 고문을 가하고 2명이나 처형하도록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구식 군인들이 격분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1882년(고종 19년)에 일어난 임오군란의 발단이다.

2.
불량 식품으로 골머리를 앓던 정부는 식약국장의 사형을 급하게 처리했다. 뇌물을 챙기고 허가한 약품이 가짜로 밝혀졌고 일부 약품은 사망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더 많은 뇌물을 처먹고도 사형을 받지 않은 이들이 많았지만 식약품 안전관리로 망신을 당한 정부의 시범 케이스에 걸려 운이 없게도 사형이 집행됐다. 2007년 7월 10일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3.
"1년 동안 정부종합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에게 꼬리곰탕과 내장탕을 먹이겠다"고 큰소리치며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했던 정부는 단 1g의 미국산 쇠고기도 먹지 않았다. 대신 정부 청사를 경호하던 전경에게만 1년 동안 미국산 쇠고기를 실컷 먹였단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지난 일 년 동안 국격을 높이자며 목청을 높이던 MBc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4.
전경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이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 집회를 막게 했다는 얘기다. 참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참 정말 몹쓸 짓거리다. 먹는 거로 장난치면 난이 일어나던지 누구 하나 경을 치던지 둘 중 하나다.

강준만 교수의 『현대 정치의 겉과 속』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국에서 정의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미국처럼 개인의 총기 소지를 자유화하는 것이란다. '욱'하는 기질 때문에 총으로 복수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건 재앙이 아니겠느냐고 묻자, 답은 간단했다. 그게 무서워서라도 권력·금력을 가진 사람들이 함부로 약자를 괴롭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딸려 1+1으로 총도 진작 들어왔던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 기회에 미국산 쇠고기뿐만 아니라 개인의 총기 소지 자유화를 허하고 후딱 미제 총기를 수입하자는 지청구가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2009-10-13

사람 일은 딱 두 가지 경우만 존재한다

1.
누이동생과 일곱 명의 조카를 부양하던 날품팔이 노동자가 빵을 훔치다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받지만 남은 식구들의 생계가 걱정되어 탈옥을 시도하다 형이 19년으로 늘어난다. 13년 만에 출옥하여 사회에 나왔을 때 중년이 된 사내는 불만이 가득하게 변해있었다. 거리를 배회하지만 그가 전과자라는 소문 때문에 아무도 음식이나 잠자리를 주지 않았다. 우연히 들린 성당에서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받았지만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은접시를 훔쳐 달아난다. 그 사내 이름은 장발장이라고 한다.

은접시를 훔친 그 사내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은촛대까지 내주며 그 죄를 용서하는 신부만큼의 아량이 내게는 없다.

2.
가난에 못 이겨 스웨덴으로 입양이 된 네 살 난 여자아이는 양부모의 학대와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13살에 처음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18살에 자립해서 친모를 찾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한 남자의 아이를 낳고 미혼모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 친모가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딸과 함께 꿈에 그리던 어머니와 해후한 그녀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실화를 영화로 만든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의 주인공 신유숙의 이야기다. 영화 속 실제 인물인 수잔 브링크는 향년 46세로 얼마 전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던 수잔 브링크는 친어머니가 왜 자기를 버렸는지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해후하는 순간 이미 어머니를 용서하였으리라.

3.
어느 사학자가 말하길 옛날 옛적 전쟁은 잠복하여 기습하거나 적의 후방을 공격하면 비겁하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양쪽 진영이 마주 보며 맞짱을 떠야 비로소 정당한 싸움이 성립되고 승자와 패자가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하였다고 한다. 야인시대라는 드라마가 인기 있었던 이유와 비슷하다. 그 후 전쟁은 기만과 기습이 등장하며 전술이라 불렸고, 야인시대는 칼이 등장하며 건달이라는 이름이 양아치나 조폭으로 바뀌게 되었다.

김제동과 손석희가 방송에서 잘린다고 한다. 진작 윤도현은 잘렸다. 자르는 이유가 경영여건이 어려운데 출연료가 고액이기 때문이란다. 방송가에서 출연료 문제로 당연히 하차할 수도 있지만 뒷말이 스멀스멀 나오는 것은 구린 구석이 있다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친정부 성향이 아니라며 방송인을 하차시키는 모양새가 전술은 고사하고 양아치나 조폭이 쓰는 사시미만도 못 해 보인다. 참 이해도 안 되고 용서도 안 되는 황당 시대극이다.

4.
너무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세상사는 일을 나눈다고 야박하다 할지 모르지만 사람 일은 딱 두 가지 경우만 존재한다. 이해하지만 용서 못 하는 경우와 이해는 안 되지만 용서하는 경우. 그 외는 사람 같지 않은 경우다.

2009-10-12

여백을 채우는 참모 리더십

  • 참모의 키워드가 선택 대안option이라면, 리더의 키워드는 결정decision이다. (34)
  • 정답은 없다. 결정하고, 결단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 결정에 따른 결과가 잘될 수도 있고, 못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정하지 않으면 오직 재앙뿐이다. 성공의 반대말은 패배가 아니라 주저다. (53)
  • 선택은 하나를 얻고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76)
  • 미친 군중은 개선이 아니라 오로지 변화만 요구한다. 가톨릭이라는 기성 체제에 도전해 개신교를 일궈낸 혁명가 루터가 말한 경험적 진리다. (82)
  • 사람은 슬플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분노하면 변화를 초래한다. (87)
  • 자동차왕 포드가 말했다. 이상주의자는 남들이 번영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88)
  • 인생은 과정이다. 지금의 모습에 맞춰 그 사람을 대하지 말라. 처음부터 큰 나무는 없다. 대저 사람에 대한 투자가 가장 큰 투자가 아니던가. 애옥한 삶에 투자하고, 어린 나무에 정성을 쏟으라. (89)
  • 사람과 민심이 텍스트text고, 재물과 보화는 레퍼런스reference일 뿐이다. 때문에 답은 언제나 공심위상이다. (107)
  • 이기고 지는 것은 다음 문제다. 승부수를 던질 때는 과감하게 던져야 한다. 머뭇거림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훗날을 기약한다는 것은 자기 합리화다. 내일은 없고, 훗날은 가상이다. (125)
  • 보스는 그릇이 커야 한다. 참모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참모가 물이라면 보스는 그릇이다. 참모가 새라면 보스는 나무다. 서로 맞갖아야 좋은 파트너가 된다. (129)
  • 참모의 예스, 그것은 먹기 좋은 독약이다. 참모의 노, 그것은 입에 쓴 양약이다. (142)
  • 자리를 탐하지 말고. 일을 욕심내라. 자리를 탐하면 반드시 그 끝이 좋지 않다. 자리에 앉더라도 조금 늦게, 조금 낮게 하라. 과욕하면 망신한다. (169)
  • 장대높이뛰기 경기가 있다. 보스의 입장에선 참모는 장대다. 참모를 이용해 높이 뛰는 것이다. 그런데 참모의 입장에서 보면 보스가 장대다. 그를 이용해 내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249)
  • 나폴레옹에게 물었다. "누가 최고의 전략가입니까?" 나폴레옹이 대답했다. "승자다!" (328)
  • 영혼없는 기술자가 되지 말라. 우스워지거나, 비참해진다. (329)
1인자를 만든 2인자들/이철희/페이퍼로드 20090430 351쪽 13500원

거문고의 달인 백아는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는 친구 종자기가 죽자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지음(知音)이 없으니 더는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로 채워가며 꿈을 실현하는 사이가 지음의 경지와 같은 진정한 리더와 참모의 관계가 아닐까 한다. 근래에 노라고 말하는 참모가 몇이나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그런 참모를 곁에 두는 리더가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생각해 보니 씁쓸하다. 우리가 사는 것 자체가 환경과 여건에 따라 리더와 참모의 역할을 번갈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는 게 인지상정인지라 여백을 채우는 참모의 리더십과 여백을 슬쩍 남길 줄 아는 리더의 포용이 찰떡궁합인 것이 한없이 부러울 뿐이다.

2009-10-08

사랑하지 않으면 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였거나 존재하는 모든 인간 문제를 미분하다 보면 결국에는 돈과 사랑이 그 원인이요 근본이다. 돈은 우리의 이성을 움직이고 사랑은 우리의 감성을 움직인다. 돈은 무생물이라 무한하고 사랑은 생물이라 유한하다. 돈은 무한하지만 무생물인지라 없어도 산다. 돈 없는 인간이 행복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비참하지는 않다. 그래서 아무리 사소한 중독이라고 해도 돈이라면 위험하다. 돈에 중독되는 만큼 깨어 있는 이성을 잠재우는 악물도 없다. 그러나 사랑은 유한하지만 생물인지라 살아있어야 한다. 사랑 없는 인간이 비참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행복하지는 않다. 그래서 아무리 극심한 중독이라고 해도 사랑이라면 위험하지는 않다. 사랑이라는 중독만큼 잠든 가슴을 깨우는 선물은 없다.

동그란 동전을 닮은 한가위처럼 계속 풍요로워지려면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하지 않으면 지는 것이다. 후회하면 무생물에 중독된 시대에 굴복하는 것이다. 가을은 사랑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2009-10-01

한계 영역에서 체험하는 존재의 확장

  • 스위스의 의사이자 히말라야를 체험한 등반가인 에트와르 위스 뒤낭은 높이 7,500미터가 넘는 곳을 '죽음의 지대'라고 일컬었다. (6)
  • 5,300미터가 넘는 높은 곳에서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보다 높은 곳에 정착해 보려고 한 적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따라서 안데스 산맥에 있는 '아우칼킬카'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부락이다. 그곳에는 대기 속의 산소 농도가 해면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7)
  • 인간의 본질을 파헤치면 그 특징은 누구나 거의 같다. 다만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아는 계기가 주어지는 행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다. (29)
  • 영웅은 자기 생명의 깊은 뜻을 알고 있으며 한층 높은 존재까지 믿고 있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희생하지만, 도박꾼은 자기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보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놀이에 건다. (56)
  • 추락 사고를 겪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클라이머들은 이구동성으로 낙하 중에 수없이 많은 영상들, 특히 전생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앞을 지나갔다고 한다. (100)
  • 떨어지는 동안 내 영혼은(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든) 내 육체 안에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바깥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141)
  • 자기 자신을 경험한다는 것은 '사는 것' 자체를 말한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지속적이고 생명력 있는 자기 경험을 말한다. 새로운 경험을 지속하지 않는 사람은 흐르지 못하고 고여서 썩어가는 물과 같다. (158)
  • 8,000미터 정상까지 가는 길은 멀다. 그것은 인생의 길인 동시에 죽음의 길이다. (...) 마치 자기 몸에서 나와 자기를 보듯이, 높이 오를수록 스스로가 더욱 맑고 뚜렷하게 보이며 감각이 예민해진다. 그가 온 정열을 쏟은 정상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의 것이 된다. 그는 환하게 빛을 내는 그 안으로 들어가서, 가장 이상적인 경우 열반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214)
  • 나는 자연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며, 다만 내가 자연을 어떻게 체험하며 자연 속에서 자기를 어떻게 체험하느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221)
  • 살아서 돌아온 자는 벌써 보통 사람과 다르다. (...) 그에게 그후의 인생은 덤이자 여생이며 그는 휴가를 얻고 다시 돌아온 사자(死者)다. (235)
  • 나는 이 책에서 이제까지 산악 문학에서 서자 취급을 당해 온 것들을 다루었다. 그것은 환상체험이며, 이 체험은 극한 상황에서 인식의 능력이 확장되는 것으로서,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참다운 자기를 인식하게 만든다. (247)
  • 인생을 아는 자, 다시 말해서 자기 인생을 걸고 '무無'와 대면한 일이 있는 자는 결코 남을 죽이지 못한다. 그에게는 재물, 권력, 우상, 이데올로기 등이 2차적인 의미밖에 지나지 못한다. (250)
죽음의 지대/라인홀트 메스너/김영도 옮김/한문화 20070326 262쪽 11000원

7,500미터가 넘는 산에 오를 일이 없으니 그곳에서 추락할 일은 더더군다나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다만 동네 뒷산을 오르더라도 평지와는 다른 느낌이 드는 것으로 봐서는 죽음의 지대라 부르는 한계 영역에서 체험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았다고 내면의 등반을 온전히 거부할 수는 없으리라. 그네들이 겪은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는 추락의 느낌을 알 수는 없지만 산에 오르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으로 봐서는 분명히 높이만큼 존재가 확장되는 체험을 하리라 추측할 뿐이다.

죽음의 지대를 경험한 등반가가 존재에 대해 겸허해지는 사연이 그곳에 있었다. 뒷산 약수터를 새벽마다 오르는 불한당이 세상에 없는 이유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