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30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

#0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위대하고 초라할 뿐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이 염불이듯이 빈곤의 덫에 걸린 가난한 이웃들이 치료비 걱정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7p)

#1
공공 의료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어렵게 사는 장애인 환자들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는 치료를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가난한 이웃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병원 문턱은 언제쯤 낮아질는지... 의료복지 사회는 정말 그림의 떡이다. 돈보다 사람과 노동이 먼저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26p)

#2
1년에 몇 천억 원 어치의 쓰레기를 만드는 우리나라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생각하면 세상이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의 1%만이라도 이들과 나누면, 이들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입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43p)

#3
사람들이 병원을 이용할 때 가장 먼저 들르는 곳과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 수납 창구라는 사실에서 보더라도, 우리나라 의료 기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병원의 이윤 추구에 있다. 국가가 의료를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사회복지가 천박하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현상이 도드라져 사회의 양극화가 심한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63p)

#4
 관광 수익을 올리고 국가 브랜드 가치 운운하며 노점상을 철거하고 노숙자를 지방으로 내쫓는다는 기사를 볼 때면, 개인의 삶이 국가의 체면과 체제 유지를 위해 유린당하는 현실에 화가 나곤 한다.
 어린이 노동 실상을 고발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왔던 15살의 눈 먼 인도 소녀 소니아는 어두컴컴한 자신의 집에서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축구공 2개를 만들어도 우유 1리터를 사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월드컵으로 뜨거웠던 2002년 6월은 달동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진 그런 해였다. (90p)

#5
그동안 부자가 되는 것은 능력 때문이고, 가난한 것은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알게 모르게 주입받아 온 것은 아닌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가난과 소득의 불평등은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은 생존권보다 소유권이 더 신성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124p)

#6
외과 의사는 수술한 환자가 방귀를 뀌거나 똥을 누었다는 소리를 듣는 게 가장 반가운 법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행복이 뭐 별것이겠는가? 잘 먹고 잘 싸는 것 아니겠는가! (162p)

#7
내 아이의 맹장 수술을 하던 날
나에게는 돌·팔·이란 별명이 생겼다
'돈에 팔리지 않는 의사'가 되라는 뜻이라고
내 맘대로 위로하며 이 별명을 사랑하기로 했다 (183p)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최충언/책으로여는세상 20080825 208쪽 11000원

아무도 없는 집에서 냉동실에 있는 어느 바자회에서 사다 먹고 남긴 수제 돈가스를 프라이팬에 데워 가위질한 후 젓가락질을 하며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두 개를 먹고 나서야 늦은 점심을 때웠다. 배부른 몸뚱이를 찬물에 헹구고 나니 끈적거림이 가셨다. 한쪽 벽에 베개를 대고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책장을 넘겼다.

달동네 병원에는 생강 조각 같은 손을 가진 나병 환자 할머니가 소독하러 왔고, 필리핀에서 사범대학을 나와 신발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 기계에 오른손이 으깨져 가운데 발가락을 잘라 엄지손가락을 만들어 붙인 이주 노동자 글렌도 있었다.

스스로 돌팔이라고 하는 달동네 외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가난한 환자들은 촌지로 달걀 10개를 부끄러워하며 건네고 고마움을 표하기도 한다. 바다가 보이는 부산 남부민동 달동네는 삶의 바다를 품고 소유권보다 생존권이 먼저라며 오늘도 출렁이는 돌팔이 의사가 있다.

편한 자세로 책장을 넘기는 동안 돈가스를 먹어 배가 부른 온전한 몸뚱이가 스멀스멀하다. 숨어있던 염치가 슬그머니 기어 나왔다.

2009-06-27

탐욕의 시대, 다시 연대만이 희망이다

당신들은 잔뜩 겁에 질려서 내란을 막아야 한다고, 민중들 사이에 불화의 불씨를 더져서는 안 된다고 외친다. 하지만 한편엔 살인마들, 다른 한편엔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한 채 이들에게 죽어가는 희생자들이 늘어가는 이 같은 현실보다 더 구역질 나는 전쟁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제 우리는 저 유명한 평등과 재산이라는 항목을 놓고 투쟁을 벌여야 한다! 민중들이여. 그대들은 야만적인 구시대적 제도들을 모두 전복하라!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에서 더 이상 한쪽은 진취적이고 다른 한쪽은 비겁하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가치 판단을 버려야 한다. 그렇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현재 모든 병폐는 극한점에 도달했으므로 더 이상 나빠질 것이라고는 없다. 대대적인 현상 전복을 통해서 개선될 일만 남았다. (18쪽)

탐욕의 시대/장 지글러/양영란 옮김/갈라파고스 20090115


프랑스 대혁명 때 활동했던 정치가 그라쿠스 바뵈프(1760~1797)가 1791년 7월, 샹드르마르스의 학살이 있고 난 후 한 연설이다. 유엔 특별식량조사관 장 지글러는 "오늘날 지구상에는 18억이 넘는 인구가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수입에 의존해 극도의 빈곤 속에서 살고 있고, 반면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인구는 가장 가난한 사람 57퍼센트의 수입을 모두 합한 액수의 돈을 번다"고 한다. 매점매석과 다국적화는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기본이 되었고, 승자독식 자본주의자는 자신들이 축적한 잉여 이익을 조금이라도 남에게 분배하겠다는 마음이 추호도 없다고 일침을 가한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은 인간들을 착취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인권을 좋아"하고 이런 약육강식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고 다시 혁명을 시작해야 한다며 끝을 맺는다.

지금 대한민국 CEO를 바라보며 드는 염려가 지식인의 의무를 상기시키고 있다.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고,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1

1. 레지 드브레(1940 ~ )의 말. 프랑스 출신 철학자, 교수, 기자. 볼리비아에서 체 게바라의 혁명 동지로 지낸 일화로 유명하다. (같은 책 17p)

2009-06-20

올빼미가 동쪽으로 가는 까닭은?

梟逢鳩, 鳩曰 『子將安之?』 梟曰 『我將東徙』 鳩曰 『何故?』 梟曰 『鄕人皆惡我鳴, 以故東徙』 鳩曰 『子能更鳴, 可矣, 不能更鳴, 東徙猶惡子之聲』

올빼미가 비둘기를 만나자 비둘기가 물었다.
『그대는 장차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이에 올빼미는 『나는 장차 동쪽으로 옮겨가려 한다』라고 했다.
비둘기가 다시 『무슨 까닭인가?』라고 묻자, 올빼미는 『이 고을 사람들은 누구나 나의 울음소리를 싫어한다. 그래서 동쪽으로 이사 가려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비둘기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능히 그 울음소리를 바꿀 일이다. 그 울음소리를 바꾸지 않고는 듣기 싫어하는 그대의 울음소리를 동쪽으로 옮기는 것과 같다』

산이 높으면 마땅히 우러러볼 일이다/劉向/임동석 옮김/東文選 19941010 5000원

울음소리를 바꾸지 않고 쇄신을 말하는 쥐가 한 마리 있다.
올빼미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 그런 쥐라고 한다.
울음소리를 바꾸지 않아도 좋으니 쥐를 잡으면 떡 돌리고 싶다.

2009-06-18

법대로 하자


1.
고스톱을 치다 보면 식겁하는 판이 한 번은 있다. 판이 다 끝나 가는데도 광박과 피박을 면하지 못할 때가 그렇다. 다행히도 막판에 비 쌍피가 놓여 있어 쥐고 있던 비광으로 내려치며 한마디 한다.
- 법대로 해!

2.
부서 간에 이견이 생겨 왈가왈부하는 회의가 종종 있다. 가령 설계부서가 실행부서에 설비를 개선해야 한다며 도면을 툭 던질 때가 있다. 설계부서는 생산부서의 요청사항을 반영하였으니 그대로 실행하라고 하고, 실행부서는 불요불급하다며 거절을 한다. 왈가왈부하던 회의는 시시비비를 따지다 결론 없이 끝난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누군가 한마디 한다.
- 법대로 합시다.

실행부서는 사무실로 돌아가 도면 대신 규정집을 펴놓고 조목조목 살펴보기 시작한다. 안 되는 이유를 찾기 위해.

3.
속초에 법대로가 개통했단다. '법대로'라는 말이 면피나 다툼을 전제로 하고 있어서 그런지 반대가 심하자 법대로는 법대로 지었다며 법대로라는 이름을 고치자면 법대로 3년이 지나야 한단다.

2009-06-17

짜장면과 노무현

짜장면 두 그릇을 주문한다. 보통 하나, 곱빼기 하나. 군만두 서비스와 단무지 좀 많이 가져다 달라고 한다. 십 분도 채 안 돼 다시 전화를 한다. 출발했나요? 예, 방금 출발했습니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황급히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연다. 철가방에서 나오는 짜장면과 군만두를 받아서 미리 펴놓은 신문지 위에 내려놓는다.

뜨끈한 짜장면 그릇을 싸고 있는 랩은 매번 벗겨 내기가 쉽지 않다. 비비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젓가락질을 한다. 면발을 다 먹을 때쯤 군만두를 하나 집어 짜장을 찍어 한입 베어 문다. 남은 반토막으로 나머지 짜장을 가지런히 모으고 나서 아가리를 있는 대로 벌리고 쓱 밀어 넣으며 냅킨으로 조동이를 훔친다. 곱빼기나 보통이나 먹는 시간은 똑같다.

다 먹은 그릇을 보기 좋게 포갠다. 토까지 달며 서비스로 달라고 한 군만두는 항상 서너 쪽이 남아 그릇 맨 위에 놓인다. 젓가락과 조동이를 훔친 휴지를 마지막으로 올려놓고 깔았던 신문지로 두루뭉술 말아 싸서 현관문을 빠끔히 열고 내놓는다. 빨리 가져오라고 재촉까지 한 짜장면을 배달한 시간보다 더 빨리 먹고는 허접하게 신문지로 말아 내놓는다. 군만두는 다 먹지도 않은 채. 그릇을 말아 싼 찌라시 신문에는 자장면이 표준어라며 표준어를 사용하자고 쓰여 있다.

맛있게 먹은 짜장면을 자장면이 표준어라고 강요한다. 우리도 노무현을 자장면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까? 바뀐 짜장면집 주인은 자장면집이라고 우기며 군만두 서비스도 주지 않는다. 자장면 좋아하네. 짱개라고 부른 지 오래됐다.

2009-06-15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 1959년 10월 28일
백인 남부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피부색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19p)

# 11월 10일 ~ 12일
저들은 우리가 돈을 벌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는, 결국 수입이 없어서 세금을 많이 낼 수도 없게 하지요. 그리고는 자기들이 거의 모든 세금을 내니까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일을 처리할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 저들은 우리를 낮은 곳으로 밀어놓고는 우리가 저 아래 뒤쳐저 있는 게 우리 탓이라고 비난합니다. (85p)

# 11월 14일
"......우리가 사람의 가치 또는 무가치를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정의를 통해서다. 정의가 없다면 바로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플라톤.' 이 말이 금언의 형태로 달리 표현된 것을 언젠가 본 적이 있다. '공평하지 않은 사람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106p)

내가 속한 백인들이 증오의 시선을 보낼 수 있고 사람들의 영혼을 시들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슬펐다. 또한 자기들이 키우는 가축에게는 주저 없이 권리를 인정해 주면서도 인간에게는 이 권리를 함부로 빼앗는 점이 슬프다. (133p)

올바른 법보다는 편리한 법이나 이익이 되는 법을 제정하려는 경향이 남부 주 의회들 사이에 급속히 퍼졌다. (148p)

# 11월 15일
이스트의 표현을 빌면 남부 지역의 '더러운 치부(assdom)'에 해당하는 사실을 수집해 놓은 정말 방대한 자료였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볼 때 가장 더러운 세력은 무식하게 떠드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그들을 대신해 앞장서서 법안 제안서의 '초안'과 선전내용을 작성해 주는 법률가들이었다. (152p)

# 11월 21일
이번에도 내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모든 백인이 당연하게 여기는 기본적인 것, 예를 들어 식사할 만한 곳, 물을 마실 수 있는 곳, 화장실, 손 씻을 곳을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188p)

# 11월 25일
내가 만난 흑인들은 두 가지를 두려워했다. 우선 그들 중 누군가 폭력 행위를 저질러서 이 때문에 백인 입에서 흑인은 권리를 누리기에는 너무 위험한 존재라는 말이 나오고 흑인을 위험스런 상황을 빠뜨릴까 봐 두려워했다. 또 다른 측면에서 흑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책임한 백인의 섬뜩한 조소, 교도소, 기존의 주어진 틀이었다. (225p)

# 12월 1일
백인이든 흑인이든 나는 어디까지나 똑같은 나였다. 그러나 백인일 때에는 백인으로부터 형제 같은 따뜻한 웃음과 특권을 제공받고 대신 흑인에게서는 증오의 시선이나 아첨을 받았다. 그러다가 흑인이 되면 백인은 나를 잡동사니 더미에나 어울릴 법하 존재로 여기는 반면 흑인은 나를 매우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233p)

# 12월 7일
남부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신문은 심지어 대도시 일간지조차 매우 근시안적이고 비겁한 모습을 보였으며, 심한 경우에는 백인 시민 평의회와 KKK단의 기관지가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줄 정도로 편파적인 선전 활동을 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책임을 다하는 신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정도다. (257p)

# 12월 15일
지난 시간 동안 내가 겪은 일은 거의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 일이 너무 가까운 때에 일어난 일이었고, 너무 마음이 쓰라렸다. (269p)

# 1960년 6월 19일
남부 지역의 보통 백인은 이웃 눈에 비치는 것에 비해 훨씬 올바른 성향을 지녔고 흑인보다는 오히려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를 더 두려워한다는 내 주장이 이를 통해 확인되었다. (301p)

# 에필로그 1976년
[블랙 라이크 미]를 쓰기 위한 실험은 1959년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 이뤄졌다. (...) 그 시절에는 인종차별이라고 하면 나치가 유대인을 억압했던 일이나 집단 수용소, 가스실 같은 것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거칠게 항의했다. (311p)

내가 가진 인간 개인의 자질을 보고 나를 판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내 피부색을 보고 판단했다. (...) 백인은 흑인이 자신과 기본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여긴다. (312p)

1967년에 성냥불이 그어지고 화약고가 폭발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이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체제전복 세력의 음모라는 견해 속으로 숨어 버렸다. (338p)

# 1979년
[블랙 라이크 미]에서 나는 분명한 사실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한 인간을 판단할 때 인간성 면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의 피부색이나 철학적으로 '우연한 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미친 상황인가 하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363p)

모드 인간은 사랑하고 아파하고, 자신과 자기 아이들을 위한 인간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저 존재하고, 필연적으로 죽는, 이 모든 동일한 근본 문제에 똑같이 부딪힌다. 이는 모든 인간 안에 들어 있는 기본 진리며, 모든 문화, 모든 인종, 모든 민족이 다 같이 가진 공통의 특징이다. (365p)

블랙 라이크 미/존 하워드 그리핀/하윤숙 옮김/살림 20090210 414쪽 16000원

저자 존 하워드 그리핀(1920 ~ 1980)의 개인사는 이제껏 보고 들었던 어떤 이보다도 파란만장하다. 1935년 15살의 나이에 프랑스로 가난한 유학을 떠난 그는 아프리카 학생과 함께 수업을 받는 것을 보고 '고전 교육' 덕분에 무의식적인 차별의식이 남아 있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의과대학 장학생이 된 19살에 독일 부대에 징집된 원장을 대신하여 유대인을 구하는 지하운동을 하였고, 1941년 미 공군에 입대하여 솔로몬 제도에서 일본 점령군과 싸웠다. 1945년 공습으로 시력에 손상을 입었고, 18개월 후에는 시각장애인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1946년 다시 프랑스로 건너간 그리핀은 1947년 수난일에 눈이 완전히 멀었고 그 후 10년 동안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

시각장애인이 된 그리핀은 1953년 엘리자베스 홀랜드와 결혼하여 아내 가족 소유의 농장 내 작은 집에서 아이 4명을 낳아 기르며 27년간의 결혼생활을 시작하였다. 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 여러 편의 소설을 썼고, 그중 포로노그래피에 대한 풍자소설 [일곱 천사가 사는 거리]라는 소설은 쓰인 지 40년 만인 2003년에 출간되기도 하였다.

1957년 1월 9일 그리핀의 눈에 어렴풋이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처음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본 그리핀은 인근 수도원에서 묵상을 하며 서서히 시력을 다시 찾게 되었다. 시력을 잃고 살았던 10년 동안 장애인으로 겼은 열등과 편견은 모든 사람에 대한 평등한 정의를 인간의 권리로 요구한다는 동기를 키우게 됐다. 그 후 활발한 인권운동과 많은 저술활동을 하였다.

1959년에 시도한 흑인이 되어 남부를 여행한 [블랙 라이크 미]는 1961년 출판되었고, 검열이 부활했던 1970년대 중반에는 도서관에서 사라지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금지 도서는 문학의 규범이 되었고 권장 도서로 꼽히게 되었다. 그리핀의 개인사만큼 인권과 평등을 실천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흑인으로 변장하고 남부를 여행했던 몇 주간의 일기는 흑인이 겪는 보이지 않는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아는 화려한 미국의 숨기고 싶은 불공정하고 비열한 사실은 그리핀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도 미완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흑인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듦으로써 대전환의 기회를 만들었지만 불행하게도 처절하게 슬픈 우리들의 현실은 10%의 백인과 90%의 흑인으로 구성된 낯선 나라에 사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흑인 여성이었다면 더 참혹했으리라 생각하는 니그로 그리핀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2009-06-14

고속도로 휴게소도 식사 예약이 될까?

세상 좋아졌다는 말 가운데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예전에는 휴게소도 적었고 배가 고파 울며 겨자 먹기로 들렸지만 사실 맛이나 위생상태는 변변치 못했다. 요즘은 휴게소마다 특색 있는 별미도 많이 생겨 고속도로를 달리며 골라 먹는 재미도 생겼다.

서해고속도로가 개통됐을 당시 상행선 방향에 있는 화성휴게소는 돈가스가 참 맛있었다. 배가 고파서였는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났던 것 같다. 매주 상경할 때마다 도로가 막힐 줄 알면서도 꾹 참고 기다렸다가 돈가스를 먹는 낙이 쏠쏠했다. 수학여행철이 되면 학생들이 돈가스만 먹고 가는지 조금이라도 늦으면 똑 떨어지는 비극적인 일도 생기곤 했다. 개통 당시에는 라면 코너까지 모두 남자 주방장-혹은 정식 주방장-이어서 그랬는지 맛이 괜찮았는데 조금 지나자 주방장들이 한둘 바뀌기 시작하면서 맛이 떨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초창기처럼 아주 맛난 것은 아니지만 형편없지는 않아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행담도나 추풍령처럼 항상 붐비는 휴게소에 들르게 된다면 2층으로 가서 조용하게 식사를 할 수도 있다. 대개 1층에서 볼일과 식사를 해결하기 때문에 2층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복잡하거나 길게 늘어선 줄이 지루하다면 음식값이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2층으로 올라가시라. 줄을 서는 불편함과 번잡함을 피해 오붓하게 즐길 수 있다.

몇 해 전 일이다. 울산으로 출장 가는 길에 금강휴게소를 재단장했다는 알림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지나다니며 리모델링하는 것을 보아왔던 터라 들려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휴게소 건물도 독특하고 예쁘게 꾸며놨다. 휴게소 바로 뒤편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일몰이 아름답다는 안내문도 눈에 띈다. 경치가 썩 괜찮아 운이 좋으면 멋진 일몰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울산은 저녁때까지 도착하면 되기에 동료들과 이리저리 구경을 다니다 보니 휴게소 건너편으로 굴다리가 보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굴다리가 있는 것이 신기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저기는 뭐 하는 곳일까 궁금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굴다리를 지나자 식당가가 나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일반 식당가가 있는 것을 처음 봤고 그런 풍경은 전국에서 유일할 듯싶다.

그곳은 죄다 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가였다. 이럴 때는 멀리 갈 것 없이 가까운 곳으로 가는 것이 장땡이다. 오른편에 보이는 경상식당으로 들어섰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보니 도리뱅뱅이 유명하단다. 도리뱅뱅과 매운탕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니 검정 프라이팬을 들고 오며 도리뱅뱅이라고 한다. 이름만 들어봤지 처음 보는지라 젓가락질을 하며 주인장에게 어떻게 만드는 거냐며 말을 건넸다. 금강에서 잡은 피라미에 양념을 해서 기름을 듬뿍 두른 프라이팬에 가지런히 놓고 튀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양념맛과 튀김맛이 어우러져 바삭바삭하며 고소했다. 넷이 둘러앉아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리며 바닥을 박박 긁어대는 동안 매운탕이 들어왔다. 소주 한잔하고 싶지만 사정이 그런지라 배만 듬뿍 채웠다. 술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매운탕이 꽤 많이 남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할 수 없는 일, 제일 직급이 높은 양반이 계산을 치르는 동안 식당 전화번호를 저장하며 예약도 되느냐고 물었다. 지날 때 전화만 주면 준비를 해 놓는단다. 맛있게 먹었다는 인사를 건네고 휴게소를 출발했다.

울산에서는 하루하루가 전투(?)의 연속이었다. 올라오기 전날에는 세 번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가볍게 기름칠을 하자마자 이동해서 미리 진을 치고 있던 다른 팀과 본격적인 술자리를 하고 또 다음 팀이 있는 장소로 건너가는 식으로 강행군을 하며 옮겨 다녔다. 피아 구분이 안 되는 전투가 예상될 때는 아군에게 절대로 술잔을 돌리지 않고 순번을 정해 이번 자리에서는 네가 집중적으로 잔을 주고받고 다음 자리에서는 내가 그렇게 한다는 눈빛을 교환하며 암묵적 담합을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첫 전투에서 모두 장렬히 전사하는 참극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질펀하게 세 탕을 뛰고 아군끼리 조용한 데 가서 입가심하며 무너지는 것이 수순이고 또 그렇게 했다.

아침에 돼지국밥으로 해장을 했지만 알딸딸한 기운이 그대로 남은 채 다시 올라갈 길을 재촉했다. 추풍령을 지날 때쯤 되니 다들 배가 출출함을 느꼈다. 깔깔한 입맛에 돼지국밥 국물만 들이켰으니 배가 고프기도 하겠지. 내려올 때 들린 경상식당도 생각나고 정말 예약이 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전화를 걸었다.

- 경상식당이죠. 예약 좀 하려고요.
- 그러세요. 지금 어디세요.
- 예. 한 30분쯤 후에 도착할 것 같은데요.
- 그러지 마시고 금강 휴게소까지 몇 키로 남았어요?
스치는 이정표를 보며 대답을 했다.
- 아, 예. 50킬로미터 남았네요.
- 뭐로 준비할까요?
- 도리뱅뱅 하고 매운탕이요.
- 알겠습니다.

정말 예약이 된단다. 특이한 것 하나는 몇 분 후에 도착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금강 휴게소가 몇 킬로미터 남았는지 알려 준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시간을 알려 주는 것보다 몇 킬로미터 남았는지 알려 주는 게 시간을 가늠하기가 더 편한가 보다.

금강 휴게소에 도착해서 경상식당에 들어서니 구석에 차린 상에는 밑반찬과 함께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자리에 궁둥이를 붙이자마자 부리나케 도리뱅뱅을 내 온다.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도리뱅뱅을 먹을 수 있었다. 거기다 적당히 출출할 때 얼큰한 매운탕에 반주를 곁들여 먹으니 비로소 해장이 되었다. 안전운전을 책임진 운짱에게는 미안해서 미리 마지막 남은 도리뱅뱅 세 마리와 바닥을 긁을 수 있게 해줬다.

요즘도 가끔 도리뱅뱅의 고소함이 생각나지만 그렇다고 한걸음에 달려가서 먹을 수 없으니 여간 섭섭한 게 아니다. 다른 휴게소도 식사 예약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사실 물어도 안 봤다- 그 후로 들릴 기회가 없어 지금도 예약이 되는지 장담할 순 없지만 다시 지날 일이 있으면 도리뱅뱅을 주문하려고 전화번호를 찾고 있을 게다.

2009-06-13

마지막 강의

1.
만약 당신이 일을 잘못 처리하고 있는 것이 명백한데 아무도 당신에게 한마디 해줄 생각조차 안 한다면, 그거야말로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60p)

2.
그는 한 번도 자신이 부하들보다 뛰어나다고 공언한 적이 없었다. 커크 선장은 부하들이 그들의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대신 그는 비전을 제시하고 기강을 확립했다. 그는 부하들의 사기를 책임졌다. (70p)

3.
내 인생에서 마주쳤던 것들 중 가장 완강하게 나를 가로막은 장벽은 높이가 고작 167 센티미터에 불과했다. 하지만 장벽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 "......장벽은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려고 존재합니다. 장벽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거기 있는 것이지요." (107p)

4.
자신의 어릴 적 꿈을 성취하는 것도 신나는 일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꿈을 돕는 일에 더 흥미를 느낄 수도 있다. (160p)

5.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결국 깨달은 사실인데요. 여자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을 판단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오직 그들이 하는 행동만 집중해서 보면 되지요." (198p)

6.
행운이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생기는 것이다. (200p)

7.
"자네 생명보험에는 들었지?" 그가 물었다.
"네. 다 되어 있어요." 내가 말했다.
"자, 자네에게는 감정의 보험도 필요하다네." 그는 감정보험의 보험료는 돈이 아닌 시간으로 지불된다고 설명했다. (256p)

8.
"오늘 이 마지막 강의는 내 아이들에게 남기는 것입니다." (282p)

마지막 강의/랜디 포시/심은우 옮김/살림 20080616 286쪽 12000원

'당신의 어릴 적 꿈을 진짜로 이루기'라는 주제로 유쾌하게 진행한 마지막 강의는 내 아이들에게 남기는 것이라며 끝을 맺는다. 시한부 인생이 남긴 여운은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만큼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묻어 나온다. 꿈과 인생을 정리하는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가족이었다.

말기 췌장암 선고를 받은 카네기멜론대학교 컴퓨터공학 교수 랜디 포시는 2007년 9월 18일 피츠버그 캠퍼스에서 마지막 강의를 하고 2008년 7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2009-06-12

공구리 십장

그때도 그랬지. 다 잡아들이라고. 그때는 1군 사령부에 계엄사령부 분소라는 말뚝도 박아놨었어. 어 이 사람. 믿지 못하는 눈치구먼. 자네는 믿지 못하겠지만 내 두 눈으로 그 말뚝을 똑똑이 봤단 말일세. 말뚝만 박아놓고 막상 써먹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군바리 출신 대통령도 알았던 게야. 그건 총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걸. 세월이 지나고 보니 다 잡아들일 게 아니라 한 놈만 잡으면 됐던 거 같아.

이십여 년이 흘러 그 시절도 이젠 추억이 된 줄 알았어. 그런데 요즘이 더 가관이야. 어젯밤에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라구. 그때는 겨우 별 네개 출신이 대통령이었지만 시방은 무려 별을 열네개나 달아봤던 양반이 대통령인 게야. 게다가 근본이 공구리 십장 출신인지라 곤조가 말도 못 하지. 하지만 곤조 부리는 십장을 다루는 방법은 자네도 알다시피 딱 하나 있지 않은가. 모른다구. 조금만 더 짬밥을 먹어보면 자연스레 알게 돼. 나도 그랬으니까. 재들은 말로 조근조근 얘기해봤자 말짱 꽝이야. 여럿이 보는 앞에서 찍소리 못하게 한방에 아주 쎄게 조져버리면 되거든. 그러면 곤조를 부리는척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꼬랑지를 내리게 돼 있다구.

이봐. 공구리 박. 뭘 그렇게 턱 빼고 앉아 듣고 있어. 다 껌 씹는 소리야. 고만 씨부리고 담배 끄고 일어나세. 장마지기 전에 어여 시마이 해야지. 이따 일당 받으면 함바집에서 막걸리나 한잔하자구. 내가 쏠게.

2009-06-11

2MB


우리 동네에는 미장원이 하나 있습니다. 주인 아줌마한테는 애지중지하는 거울이 하나 있습죠. 아줌마는 그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자기로 알고 있답니다. 비키니를 입고 해변을 거닐 때 주위 사람들이 쑥덕대기라도 하면 자기 몸매를 부러워하며 그런다고 생각한답니다.

아줌마는 자기 모습을 온전히 보여준다며 그 거울을 실용거울이라고 부른답니다. 한 번은 주변머리만 잘라달라고 하고 깜빡 졸다 깨 보니 빡빡 밀어놓고 거울을 보며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해서 환장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그런 황당함을 겪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랍니다. 아줌마는 실용거울이 최고라며 다른 거울을 보려고 하질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미장원을 MB숍(Mad Brain Shop)이라고 부른답니다. 일 년 전 세종로 1번지에 낸 2호점은 2MB라고 부르고요.

소통에 처박은 이발소는 발길을 끊은 지 오래됐고 가까운 2MB에 가서 대굴빡을 깎기도 참 거시기합니다. 이웃동네 하이드파크에 유명한 이발소가 있다는데 거긴 너무 멀고요. 어디 맘 편히 제대로 대굴빡 깎는 곳 좀 알려 주세요.

2009-06-10

선량한 권력

백무산

옥상 위에 놓인 물탱크를 청소한다
언제부터인가 수도에서 냄새가 났다
발목까지 빠지는 침전물은 썩어
악취가 나고 온통 하수도나 같다
물은 계속 들어오고 또 나가므로
언젠가 새 물갈이가 저절로 되리라 믿었던가
썩은 물이 빠지고 천천히
선량한 권력이 들어올 것이라 믿었던가

행여 이타적인 권력을 꿈꾸는가
정직한 권력을 꿈꾸는가
착하고 선량한 권력을 못내 기다리다가
이타적인 자는 권력 경쟁의 무기가 항상 부족하고
착한 성품은 더이상 권력을 꿈꾸지 않는다
정직한 자는 스스로 백의종군을 원한다

행여 아름다운 권력을 꿈꾸는가
혹시 겸손한 권력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권력을 지배해야 한다

권력은 종말에 가서야 아름답다
아름다운 권력은 박살이 난 권력이다
모든 걸 잠그고 끄고 한번씩 비우는 순간
권력은 그때만 겸손하다
권력 아닌 것으로 권력을 비우라
그렇다면 권력을 지배해야 한다

길은 광야의 것이다/백무산/창작과비평사 19990131 136쪽 5000원

오늘은 진종일 비가 내려 촛불이 켜지지 않길 비는 사람도 있겠지.
권력은 박살이 나야 아름답다는 의미가 새삼 새롭다.

2009-06-09

순자


내게 순자의 이미지는 딱 두 가지다. 대학 동창이었던 순자와 그 당시 청와대 안주인이었던 순자. 순자 때문에 순자는 놀림도 많이 받았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그때는 어떻게 사느냐보다는 왜 사느냐를 더 많이 고민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순자는 극과 극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나는 반기문 총장과 박순자 의원을 모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일면식 없이 뉴스에서만 봤다는 뜻이다. 오늘 그분들이 도둑이라는 이미지로 내게 남았다. 반기문 총장은 도둑혼사를 올려서 공직자 결혼식 전범(?)이 되었고, 박순자 국개의원은 뒷말이 무성한 혼사를 올렸다. 한 분은 유엔 사무총장이고 한 분은 딴나라당 최고의원이다. 두 분 다 혼사를 치렀지만 둘 중 하나는 진짜 도둑놈이 틀림없다.

순자 때문에 또 많은 순자가 욕을 먹을 것 같고, 순자와 나는 '박'이라는 한 단어로 또 엮였다. 이런 된장. 오늘, 그 시절 이름만큼 순했던 순자가 그립다.

2009-06-08

박c, 슬픈 시대와 엮이다


1.
김재박 감독이 한국화장품에서 야구를 하던 시절. 코리언 리그에서 7관왕을 하자 엄마 뱃속에서 야구를 배워 나왔던 놈이라는 시기 어린 비아냥을 들었던 1977년에 나는 국민학생이었습니다. 그때 다짐했습니다. 아들을 나면 박재김이라고 짓겠다고.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개구리 번트를 대며 동점을 만들었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박재김 엄마를 언능 찾겠노라고. 김재박 선수와 나는 '박'이라는 한 단어로 데자뷰 하는 관계였습니다.

2.
2명박이라는 양반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오년마다 하는 기대를 했습니다. 전과 14범이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며, 그래 당신만은 썩 괜찮은 대통령으로 기억하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닷새 만에 금이 가더니 오십일이 돼서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3.
난 박c입니다. 그래서 지금 박가라는 게 서글퍼집니다. 자식을 낳으면 박명이로 지으라고 농반진반 권할 일이 개구리 겨드랑이에 털 날 확률보다 적어 슬프고 또 슬퍼집니다. 2명박과 나는 '박'이라는 한 단어로 엮이게 돼 기분이 참말로 더럽습니다. 그 악연이 일천삼백오십팔일 남았습니다. 현재까지는...

2009-06-07

완장의 세월

ⓒ경향만평 20080318

완장을 차고 좋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이십년 전 MBC 미니 시리즈에서 하찮은 완장 하나 얻어 차고
명연기를 펼친 탤런트 조형기가 유일할 겁니다.
임종술은 거덜 났지만 조형기의 연기는 그야말로 명품이었죠.

세월이 좋아졌는지 김회장댁 둘째 아들도 완장 하나 차고
문화예술계를 강간하는 연기가 참 가관입니다.
여기저기 이죽거리며 들쑤셔대는 모양새가
딱 완장 두르고 낮술 한잔한 똠방각하 꼴입니다.
가히 문화체육강간부 완장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습니다.

하빠리들이나 차고 뿌시레기나 주워 먹는
핫질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이라고
술집 작부 부월이가 이십년 전에 말했는데도 말입니다.

2009-06-04

왜 왕의 남자는 한미 FTA를 반대하는가?

1. 왜 노무현은 한미 FTA를 추진했나?

"노무현은 그렇게 문제가 많은 정책을 왜 수용하려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 노 대통령이 스스로 밝혔어요. "한나라당이,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못할 정책이기 때문에 내가 한다." 실제로 그래요. 노무현 대통령이 하니까 그만큼 반대가 적었어요. 이걸 한나라당이 했으면 정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역사에 남기 위해 이 일을 시작한 겁니다. 남긴 남을 거예요, 나쁜 쪽으로. 안타깝습니다.다른 좋은 정책들을 다 엎어버릴 만큼 어마어마한 정책을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할 용기가 어디서 나왔나 정말 궁금합니다. (239p)

386 세력은 금방 재경부와 손을 잡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광재 의원이예요. 2004년에 한미FTA를 해야 한다고 처음 말을 꺼낸 사람입니다. 이건 삼성에서 써준 리포트였어요. 삼성, 재경부와 손을 잡으면 자기 지위가 안전해지거든요. 그러면서 386들이 그쪽으로 급속히 끌려들어갔습니다. (242p)

2. 한미 FTA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한미 FTA 자체는 재벌에게 별 이익이 없습니다. 수출이 크게 늘어나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그로 인해 시행될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 완화는 재벌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줍니다. 제가 캐나다와 멕시코에 가서 현장을 보고 왔는데, 미국과 FTA를 추진하는 나라들은 똑같습니다. 그 나라의 대기업, 보수 언론, 경제부처, 이 세력들이 강력하게 밀어붙입니다. 이유는 보수 정권이 다음번에 집권을 못하더라도 지금의 경책기조를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정책기조인 시장 만능 정책들을 어떤 정권에서도 없앨 수가 없는 거예요. 미국과의 FTA는 헌법 위에 있다 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캐나다의 한 정치학자는 '초헌법적 상황'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제 이것이 우리나라의 앞날을 전부 결정해버리는 것이죠. (243p)

지금 미국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오바마(Barack Obama)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FTA가 미국의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게 FTA의 정확한 현실입니다. 기업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중산층 이하의 국민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바마는 전면적인 재검토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229p)

3. 물만난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의 '시장 만능의 정책'은 한미 FTA의 이상과 똑같습니다.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같은 것이 다 미국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221p)

4. 상위 10퍼센트면 찬성하시라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의 아이들, 아이들의 아이들까지 상위 10퍼센트에 계속 들 자신이 있으면 찬성하셔도 좋습니다. 계속 고급 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이건 반대해야 하는 겁니다. 너무나 위험한 협정입니다. 반대할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227p)

배신/한겨레출판 200809

'배신'을 주제로 한겨레21이 주관한 인터뷰 특강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에 대통령 비서실 국민경제비서관이었던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한 강의(20080407) 내용이다. 한때 '노무현의 경제 가정교사'란 별명을 얻은 왕의 남자였다가 노무현을 배신한 그가 한미 FTA 협정이 얼마나 무섭고 무지하고 무대포인가를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두 나라 기업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한미 양국 대다수 국민에게는 백해무익하다는 것이다. 한미 FTA의 본질과 신바람 난 삽질 정부가 염려된다면 꼭 일독하길 강추한다.

배우 오지혜의 사회로 2008년 3월 말, '배신'이라는 주제로 김용철 변호사를 시작으로 한 강연은 그 시점이 절묘했다. 강연을 엮은 [배신]을 읽게 된 지금, 그 시점 또한 참 기가 막힌다.

2009-06-01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1 조선이 아니라 한국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라는 말로 인해 한국문화는 고조선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는 생각을 너무나 쉽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는 단절에 의해 발전되어왔다. (14p)

#2
조선과 결별한 후 한국이 걸어온 길은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시대가 지향하는 가치를 향해 전진해온 것은 사실이다. 몇단계로 나누어 고찰해보자. 각 단계별 특징은 다음과 같다. 즉 생존-생활-행복-의미가 될 것이다. (34p)

#3 생존의 시대 : 각자 알아서 요령껏
조선의 몰락부터 1961년의 꾸데따까지를 생존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생존을 위해 집단이 더 유용한지 각자가 알아서 사는 것이 더 유용한지는 당시의 상황에서 판단할 일이다. 이 시기에 한국인들은 각자 알아서 요령껏 사는 것이 가장 유용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생각된다. (35p)

#4 생활의 시대 : 역동성과 경쟁사회의 도래
이 시기는 꾸데따 이후 문민정부 이전까지를 말하는데, 산업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기 시작한 시기이다. (...) 사람들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고 여가를 누릴 수 있는 생활을 맛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군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37p)

#5 행복의 시대 : 경제적 지위와 정치적 권리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어느정도의 사유재산이 생기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게 된다. 재산이 없을 때에는 정치적 자유나 인권보다는 생존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 여가를 즐길 만한 경제적 지위는 정치적 권리도 요구하지만 동시에 행복에 대한 열망도 불러온다. (40p)

#6 의미의 시대 : '~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
노무현정부가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 중에 한국의 의미추구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즉 행복을 넘어서 인생의 의미를 탐색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42p)

#7
나는 한국의 문화는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46p)

#8 "지금 이 세상이 전부이다" 현세주의
왜 꼭 32평 아파트로 가야만 하고 일류대학을 나와야만 하는가? 신의 목소리를 듣고자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가만히 앉아 명상에 잠기는 것이 훨씬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하지만 현세주의의 장점은 현실에 나름 합리적으로 대처하면서도 최대한 행복해지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73p)

#9 "감각의 즐거움을 좇는다" 인생주의
인생주의는 제도보다 감정을 중시함과 동시에 사회적 성공보다는 삶의 쾌락을 더 중히 여긴다. (85p)

#10
한국인은 기록을 잘 남기지 않는다. 기록으로 화를 당하는 일이 많았다는 분석도 있다. 나는 그보다는 한국인은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중요한 것은 일이 아니라 인생이고, 인생에세도 자신이 즐거우면 그만인 순간들이라면 굳이 기록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어차피 죽으면 남는 것은 없는데, 죽음과 함께 기억은 사라질 것이고, 기억을 기록한 것이 남는다고 해도 어차피 자신의 기억은 아닌 것인데, 기록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유행하는 블로그는 자신의 기록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블로그를 통해 인생의 즐거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즉 필요하기 때문에 블로그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100p)

#11 "공수래공수거, 좌절할 필요 없다" 허무주의
한국의 허무주의는 수동적 혹은 능동적인 허무주의가 아니라 보험용 허무주의라고 할 수 있다. 즉 적극적인 주장이나 주의가 아니라 현세주의와 인생주의를 보완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하나뿐이고 한번뿐인 이 세상을 즐겁게 살기 위해 드는 일종의 보험과 같은 것이다. (...) 한국의 허무주의는 생이 힘들고 고단할 때 쉬어가는 곳이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믿음은 실패와 좌절을 맛볼 때 보험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 인생은 원래 이런 거야. 사실은 허무한 것이지.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다시 시작하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106p)

#12 "좋음을 추구하는 삶" 실용주의
한국은 지난 1세기 동안 실용주의를 철학으로 택해왔다. 즉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를 사상적 배경으로 하고 '어떻게'라는 문제에서는 실용주의를 취했다는 것이다. 하나뿐인 이 세상, 한번뿐인 이 세상, 즐겁게 사는 데 무엇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택한다. 이런 정신이 실용주의다. (126p)

#13
좋음은 진, 선, 미의 상위개념이다. 진리, 선함, 아름다움은 각각의 가치를 갖고 있지만 이 모두를 아우르는 상위개념은 좋음이다. (136p)

#14
개혁이나 보수는 겉으로는 거창한 문제로 보이지만 대중에게는 개혁과 보수도 인생에 도움이 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혁신 논쟁이 치열하고 진지해 보이지만 대중은 한 가지 기준으로 본질을 직시한다. 인생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그에 맞는 선택지를 택한다는 것이다. 진보의 물결이 필요한 때라면 진보를 택하고, 보수가 필요한 시기에는 보수를 택한다. (...)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하면 지나치지만 지식인사회 그리고 언론에서 논의되는 진지함을 대중도 공유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141p)

#15
이명박정부의 실용주의는 사이비 실용주의라고 할 수 있다. 말만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실제로는 무엇이 실용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효율이나 경제성이 높은 것을 실용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천박한 실용주의로 불러도 되겠다. (149p)

#16 유연하고 역동적인 한국적 실용주의를 위하여
나는 실용주의가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첫째는 구조를 갖고 있기에 유연성과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점이고, 둘째는 삶에서 도출된 생활철학이기에 힘이 있다는 것이다. (171p)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탁석산/창비 20081110 262쪽 12000원

'문화는 단절에 의해 발전되어왔다'는 뜻밖의 단정으로 시작한다.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가 흐르는 현대 한국인은 좋은 삶을 위해 문화를 창조하고, 언제나 실용적인 선택을 한다. 맞는 말이다. 엊그제 어떤 바보를 떠나보내며 슬퍼하고 분노하다가 싱글벙글쇼를 들으며 낄낄거리고 있으니.

우리는 지혜로운 개똥철학자인데 왜 이 시대는 후퇴한 것처럼 보일까? 여기에 대한 뾰족한 답을 들을 수는 없다. 간혹 승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말이다. 지금이 잊고 있던 이들에게는 혹독한 보충수업시간이고, 경험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소중한 역사체험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오늘 존재하는 이들은 조선을 지나 한국을 넘어 대한민주공화국 출발을 알리는 단절의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미를 곱씹으며 진정한 의미를 찾아 떠나는 출발점에 한 줄로 길게 늘어서게 한 지금이 단절의 출발이라고 회상하는 시절이 오리라 믿는다.

조급하게 생각지도 말자. 우리는 이제 겨우 인생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문화는 과거와 단절하며 발전한다. 꾸데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