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9

Goodbye Babo, Goodbuy Babo


가버린 당신도 바보고
보내는 우리도 바보입니다
바보를 떠나보내는 세상
바보가 하나 둘 늘어갑니다

바보도 사람이 되고
사람도 바보가 되는
바보가 득실대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오늘 영원한 바보를 보내며
우리는 영원한 바보를 얻습니다
Goodbye Babo
Goodbuy Babo

2009-05-28

담배 하나 피우며


1.
가끔 도끼라도 휘두르고 싶을 때가 있다.
가령, 인파가 붐비는 신촌로터리를 지날 때가 그렇다. 횡단보도에까지 침입한 차들을 피해 지그재그로 걸어야 할 때, 운전석에 앉아 모른 척 껌을 질겅질겅 씹는 자들을 향해 난 마음속의 흉기를 빼든다.1

2.
인생에는 도처에 이별이 기다리고
한겨울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아카시아 꽃잎
그 아래
어깨를 늘어뜨리고
모르는 사람 하나 떠나가는 모습
나는 맨발에 사금파리 박히는 아픔을 배우나니2

3.
마오가 그의 역사적 과오에도 불구하고 일반 중국 인민들의 가슴 속에 아직도 살아 남아 있는 것은 관료주의와 부패, 그리고 불평등의 심화로 특징되어지는 오늘의 중국 현실이 그가 꿈꿨던 평등한 사회를 더욱 갈구하게 만들기 때문은 아닐까?3

4.
어젯밤, 아주 오랜만에 꿈을 꿨다. 악몽이었다. 담배 한 대 피우며 궁상맞은 생각을 다 한다.


1. 제3의 쿠데타/이철준|프리미엄북스(1998) 「작가의 말」중에서
2.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이외수/고려원(2000) 「5月」부분
3. 20세기 사람들/한겨레신문 문화부/한겨레신문사(1996) 「마오 쩌둥」에서

2009-05-25

선입선출의 원리


재고관리의 기본은 선입선출의 원리다.
신이시여!
재고관리는 하지 않으십니까?

2009-05-24

시민의 불복종

#1
나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하루 빨리 조직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9p)

#2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단체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인 단체는 양심을 가진 단체이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 (13p)

#3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대중은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전이 느린 진짜 이유는 그 소수마저도 다수의 대중보다 실질적으로 더 현명하거나 더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처럼 선하게 되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단 몇 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어디엔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이기 때문이다. (20p)

#4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

(...) 만약 불의가 정부라는 기계의 필수불가결한 마찰의 일부분이라면 그냥 내버려 두라. 모르긴 하지만 그 기계는 매끄럽게 닳아서 돌아갈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닳아서 없어질 것이다. (...)

그러나 이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을 어기라. 당신의 생명으로 하여금 그 기계를 멈추는 역마찰이 되도록 하라.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극력 비난하는 해악에게 나 자신을 빌려주는 일은 어쨌든간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26p)

#5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는 이미 소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소수가 전력을 다해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 (33p)

#6
내가 지키는 법보다 더 숭고한 법을 지키는 사람들만이 나에게 뭔가 강요할 수 있다. (41p)

#7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민주주의가 정부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진보일까?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고 조직화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는 없을까?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는 대접을 개인에게 해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 (57p)

시민의 불복종/헨리 데이빗 소로우/강승영 옮김/이레 19990831 211쪽 7000원

謹弔

1.
어느 서양 저술가가 '세계 역사를 바꾼 27권의 책'에 넣은 [시민의 불복종]은 처음에는 소로우의 다른 저서들처럼 독자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가 19세기말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에게 발견되어 그의 정치, 사회사상에 획기적인 전환을 초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정작 세계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은 간디를 통해서였다. 20세기초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간디는 이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으며, 자신의 이념을 정리해 준 하나의 교과서 같은 책으로 여겼다. 간디는 "나는 소로우에게서 한 분의 스승을 발견했으며, [시민의 불복종]으로부터 내가 추진하는 운동의 이름을 땄다"고 말했다. - 같은 책 "옮기고 나서" 중에서

2.
20090523 09:30 제16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하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유서,
담배를 가지고 있느냐? 사람이 지나가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2009-05-23

대한민국, 뿌레땅뿌르국을 잉태하다


1.
뿌레땅뿌르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인구가 3명뿐인 섬나라 뿌레땅뿌르국은 대통령이 장관과 경찰서장을 겸직하고 있다. 때로는 병무청장도 하느라 엄청 바쁘지만 동양의 어떤 나라보다 깨끗하고 부정부패가 없다고 한다.

2.
2008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출산율이 1.2명으로 세계 192개국 가운데 꼴찌라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세계 최저출산국 1위라는 말인데 등수 따지기를 유독 좋아하는 나라에서 꼴찌라고 하니 우습기도 하다. 이 추세라면 2018년 인구가 4934만명으로 최고점에 이르고 이후로는 2030년 4863만명, 2050년 4234만명, 2100년 1621만명으로 계속 줄어들다 2200년 80만명, 2300년 6만명, 2305년에는 소멸하게 된다고 한다.

3.
뿌레땅뿌르국 건설이 시작됐다. 꼴 보기 싫은 사람도 없고, 사교육도 없고, 양극화도 부조리도 없고, 국격을 논할 일도 없고, 여당이니 야당이니 친이 친박, 주류 비주류를 따질 필요도 없고, 좌파 우파도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저 조용한 복수를 자근자근하고 싶다는 한 마리 나비의 시간을 향한 날개짓일 뿐이다. 최저출산은 역설적이게도 뿌레땅뿌르국을 잉태하고 있다. 300년 남았다.

2009-05-22

선택


1.
알프스에 North Face의 대명사로 불리는 1800미터 직벽으로 이루어진 아이거 북벽이 있다. 그 빙벽에 한 사람이 매달려 있다. 또 한 사람은 온몸으로 자일을 감고 버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피톤이 빠지면서 둘은 추락할 위기에 놓인다. 매달려 있던 친구는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칼을 꺼내며 말한다. "너 만은 고향으로 돌아가"

2.
담배도 피고 싶고 오늘같이 비 오는 날에는 술도 마시고 싶다. 담배 한 갑과 참이슬 두 병을 사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수중에 달랑 2500원밖에 없다. 하나를 골라야 한다.

3.
쌍용자동차가 정리해고에 맞서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회사는 최대한 구조조정 규모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파업을 자제해 달라고 하고, 노조는 회생방안을 제시했지만 정리해고를 강행하고 희망퇴직을 강요하고 있다며 옥쇄파업을 한다고 한다.

2009-05-19

Anti Clock


4대강 살리기와 녹색성장에 올인하시는 가카!
시간을 되돌리지는 마세요.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도 있답니다.

2009-05-15

황석영의 개밥바라기


푸른지붕에서 시집 『신의 침묵』에 이어 작가의 자전적이자 내면의 쇠퇴를 다룬 비정상 소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를 펴냈다. 누구나 품고 있는 기억을 혼자 발랑 뒤집고 개밥을 바라며 긴 블랙홀을 따라가는 여정을 불안하고 별 볼일 없게 그려내고 있다.

2009-05-14

저질 체력이 경험하는 등산의 3대 미스터리

산에 가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미스터리 하니까 뜬금없이 종로에 있던 나이트클럽이 생각난다. 이태원에 있는 라이브러리와 쌍벽을 이뤘던 것 같다. 도서대출증 없이도 갈 수 있었던 라이브러리와 미스터 김도 미스터 박도 입장이 되던 미스터리를 출입하던 시절에는 굳이 힘들여 산에 갈 이유가 없었다. 아~~~ 옛날이여.

삼천포로 빠지는 뻘소리는 각설하고 저질 체력을 이끌고 산에 갈 때면 종종 드는 의문이 세 가지 있다.

등반시간은 누굴 기준으로 했을까?

등산 안내도에 있는 등반시간은 누가 쟀는지 궁금하다. 저질 체력인 나 같은 이들은 적혀 있는 시간을 맞추다가는 객사하기 딱 좋다. 물론 그럴 일이 저질 체력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렇다는 야그다. 행여 완전군장보다 더 크고 빵빵한 배낭을 메고 오르막길을 뛰어올라 가는 강철 산악인을 기준으로 했다면 시간이 더 줄어들었을 것 같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나 같은 저질 체력을 기준으로 했을 리는 없고.

이제는 요령이 생겨 적혀 있는 시간에 20% 정도 할증을 해주면 얼추 맞아 들어간다. 구간 가운데 빠져 있는 시간과 쉬고 밥 먹는 자투리 시간을 나름대로 할증해 준다는 말씀. 여기에다 북한산이나 도봉산을 주말에 등반한다고 하면 러시아워에 대한 특별할증으로 10%를 더해주면 딱 떨어진다.

그나저나 등반시간은 공원 관리공단 직원 중 갓 제대한 제일 막내가 산들바람 살랑살랑 부는 오월 어느 평일에 아침을 든든히 먹고, 김밥 두 줄과 오이랑 사과를 싸들고 산행한 것을 기준으로 한 건 아닌지 참말로 궁금하다. 게다가 날머리에선 이쁜 애인까지 기다리고 있고.
왜 하산길은 언제나 험해 보일까?

오르막길은 숨이 턱까지 차지만 내리막길은 무릎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난다. 가뜩이나 종아리도 뻐근한데 한 발 한 발 내딛으면 아랫도리가 욱신욱신거린다. 까딱 잘못해서 미끄러지는 경우도 오르막길보다는 오히려 내리막길에서 더 많이 나오곤 한다.
그렇게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이 길로 올라갔으면 정상까지 가지도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번번이 들곤 한다. 그러면서 이 길로는 들머리를 삼지 않겠다고 투덜거린다.

그런 잡생각을 하다 보면 완만하게 경사진 평탄한 길이 시작되고 잠시 뒷걸음질로 걸어가면 참 편하다. 사람 발이 내리막길보다는 오르막길에 더 적합하도록 진화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추측을 해 본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정상으로 오르려고만 하지 정작 멋있게 내려오는 모양새를 본 적이 없으니 아예 근거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왜 하산을 하면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가는 것이 귀찮아질까?

내리막길이 끝나면 역시 평지를 걷는 게 가장 편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가장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 현자가 있었던 것도 같다. 아니면 말고.

그런데 이때부터 사악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몸 생각해서 산을 탔는데 고작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가는 게 귀찮아진다. 평지길이 걷기 좋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걷기가 싫어진다. 너무 편해서 그런가. 사악한 마음은 누가 태워주길 바라며 뒤를 흘깃거린다. 참말로 분수도 모르는 몸땡이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는 염치라고는 쥐뿔도 없는 대굴빡이 문제다.

에필로그

그동안 저질 체력을 보충하고자 산에 오르지만 아직도 세 가지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는다. 무협지를 보면 심신을 수련한 제자에게 더 가르칠 게 없으면 그만 하산하라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따지면 평생을 산에 갇혀 강호 구경은 고사하고 하산 한 번 해 보지 못할 팔자라는 말씀인데 세상이 좋아져서 엄배덤배 꼽사리 껴서 강호에 살고 있다. 주구장창 민폐를 끼치면서 말이다.

2009-05-12

비탈이 비탈을 오르다

근래 하루 동안 이렇게 많은 욕을 한 적은 없다. 600 고지만 오르다 갑자기 1000 고지를 오르려고 하니 욕이 절로 나온다. 치악산을 찾은 것도 근 십여 년 만이고 더군다나 향로봉과 남대봉 코스는 난생처음 가는 길이라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역시 만만치 않다. 북한산은 산성문까지 헐떡거리며 오르다 산성을 따라 걸으면 숨이 차지 않아 안성맞춤인데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계속되는 비탈길은 나로 하여금 욕을 하게 만든다. 열 걸음을 오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랄 맞은 비탈길이라고 욕을 바가지로 한다.

강원도는 집 밖에서 똥을 눌 때 발을 가지런히 하고 쭈그리지 못한다. 발을 가지런히 하고 엉덩이를 까면 데굴데굴 굴러 내려간다. 어슷하게 발을 디디고 발에 힘을 잔뜩 주며 앉아야 안심하고 볼일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강원도 출신을 비탈이라고 한다. 비탈 출신이 고향에 있는 산을 오르며 지랄 맞다고 하니 누가 들으면 도회지 출신인 줄 알겠다. 그렇게 쉼 없이 욕을 해대며 해발 1042미터라고 적혀 있는 향로봉에 도착했다.

향로봉이라고 해봐야 비석이 따로 서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펑퍼짐한 서너 평 공간뿐이다. 원주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라며 널찍한 알림판을 비스듬하게 만들어 놓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칠지도 모르겠다. 알림판은 시내 전경을 비교하며 보라고 세워놨지만 실제 그 자리에 서면 서장훈 같은 키다리가 아니면 알림판이 시선을 가려 전경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애써 세워놨지만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서서 같이 구경하던 어르신에게 말을 건네며 알림판 얘기를 했더니 공무원들 하는 일이 다 그렇다는 듯이 껄껄 웃으시고는 하산을 한다며 내가 온 길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워매 부럽다.

향로봉에서 남대봉으로 가는 능선에 앉아 김밥을 먹는다. 산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김밥이나 컵라면이 있어 배낭도 가볍고 자연보호를 저절로 하는 것 같다. 예전엔 당일치기 산행인데도 버너를 가지고 다니며 정상에서 밥을 지어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 삼겹살에 막걸리며 소주를 마신 기억도 있다. 그러고 보면 산에 오르는 예의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김밥 두 줄을 먹으니 담배 생각이 간절했지만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꾹 참는다.

한참 걷다 보니 널찍한 헬기장이 나온다. 색시 가수-요즘은 섹시하고는 거리가 먼 모습이 자주 보이는지라 이렇게 부른다- 이효리가 자기 이름의 약자가 산정상마다 있다고 우기는 H자가 쓰여 있다. 조금 내려가니 상원사와 영원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남대봉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내리막길인가. 산악회에서 온듯한 분들이 왁자지껄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일요일인데도 이정표를 고쳐 세우고 있는 공원 관리공단 여자 직원분이 있어 남대봉이 어디냐고 물으니 조금 전 지나왔던 헬기장이라고 한다. 서울 근교에 있는 산-특히 청계산-에는 눈에 번쩍 띄는 커다란 비석이 있지만 남대봉은 이정표에만 쓰여 있어서 그냥 지나쳤나 보다. 해발 1182미터로 최근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올랐는데 인증샷없이 지나친 게 무척 아쉽다.

영원사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도 무척 험하다. 발 디딜 곳만 찾느라 코앞만 보며 내려오니 고개가 아프다. 오르막길은 가슴이 터지고 뇌에 산소가 공급이 안 되는 느낌(?)이 들지만 내리막길은 고개가 아파 쉬어야만 했다. 또 욕이 나오기 시작한다.

가파른 길을 한참 내려가니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마침내 고개 아플 일이 없을 것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니 아직도 한겨울 같은 서늘함이 남아있다. 고양이 세수를 하니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하다. 얼마를 걸어 내려오니 야영장도 있다. 여름 날씨라고는 하지만 밤에는 서늘한데 텐트를 치고 아이들과 놀이를 하는 가족들이 눈에 띈다. 펜션이나 민박을 하지 않고 굳이 야영을 택한 것이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자연을 즐기기 위한 것으로 보여 다시 한번 산에 대한 예의가 좋아졌다는 걸 느낀다.

관리사무소를 지나서 적당한 곳에 앉아 담배 하나를 피워 물었다. 굴러 내려갈 염려가 없으니 이제 다 내려왔나 보다. 버스 타는 곳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느냐고 물으니 한참을 가야 한단다. 얼추 반 시간은 넘게 걸리는 거리 같다. 비탈길이 아니라 힘은 적게 들지만 비탈길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평지에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터벅터벅 걸으며 생각해보니 비탈길도 치악산도 그대로지만 변한 건 저질 체력이 된 나뿐이다. 홀로 변한 내가 변함없는 비탈길을 오르며 욕을 해댔다. 평지만 걸었던 비탈 출신은 잠시 비탈이 고향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신작로에서 포장도로로 바뀌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그림자 하나가 걷고 있다. 뒤돌아본 비탈진 산은 옛날 그 모습 그대로였다.

2009-05-10

비영리 CEO와 약사, 다방 마담이 들려주는 경영 이야기

히말라야 도서관
존 우드/이명혜 옮김/세종서적 2008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잘나가던 그가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중에 책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1999년에 사표를 던진다. 두 개의 학위와 13년간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책과 도서관을 지어주고 소녀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룸 투 리드(Room to Read)'를 설립한다. 그의 열정은 2005년도에 개발도상국가에 100만 권의 도서를 기증했고, 2300개의 도서관과 200개의 학교를 지었다. 장학금을 받는 소녀는 1700여명이 되었다.

  • 렌트카를 청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00p)
  • 충성은 상호교환이다. (184p)
  • 당신이 한 소년을 교육하면 이는 어린이 한 명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소녀에게 공부할 기회를 준다면 그녀는 가족 전체와 다음 세대까지 교육을 전달할 것이다. (210p)
육일약국 갑시다
김성오/21세기북스 2007

약대를 졸업하고 마산에 있는 외진 동네에서 허름한 약국으로 시작해서 메가스터디 공동 CEO가 된 저자가 들려주는 경영 노하우. 비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섬김의 비즈니스와 정도를 걷는 것. 정직과 신념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나게 돼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 아기들은 일어서는 것을 배우지만, 이상하게도 어른이 되면 주저앉는 것을 배우게 된다. (140p)
  • 경쟁은 역전도 가능하도록 해주는 기회다. (175p)
민들레영토에 핀 사랑
지승룡/골든북 2001

신촌에서 10평짜리 허름한 카페로 출발해서 민들레영토라는 카페문화를 만들어 어릴적 꿈인 다방 마담이 돼 들려주는 사랑과 행복을 주는 경영 이야기. 감성 마케팅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에 이미 감성 서비스를 시작한 민들레영토가 들려주는 마더(Mother)마케팅의 출발을 들을 수 있다.

  • Human이즘, 休머니즘, 휴Money즘 (189p)
존 우드는 그의 상사였던 스티브 볼머를 닮아간다. 저돌적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스티브 볼머에게서 배운 경영마인드를 비영리단체에 적용한다. 후원금을 지원받으려고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고 그렇게 모금한 후원금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를 후원자 개개인에게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룸투리드라는 자선단체는 더 많은 일을 벌이고 있다. 인생을 180도 전환한 그의 용기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허름한 육일약국 주인 약사는 조제실에서 약만 짓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항상 약국을 경영한다는 생각으로 입소문 마케팅을 시작한다. 약국 이름을 알리려고 3년 동안 택시만 타면 '육일약국 갑시다'라고 외쳤다. 잘 나가는 약국을 찾아가 벤치마킹을 하고 왜 약국에 손님들이 없을까(?) 고민하고 개선하며 마산의 랜드마크로 만들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과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우리를 도태하게 한다. 군데군데 자기 자랑을 하는 느낌을 받지만 그럴 자격은 충분하다. 도둑질한 것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니까.

어릴 적 꿈인 다방 마담이 된 전직 목사 출신이 들려주는 민들레영토 확장 이야기는 알고 보면 쉬운 일이다. 엄마 품 같이 받아주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돈은 자연히 따라온다. 매장을 개설하려고 이해관계에 얽힌 경매를 풀어가는 얘기는 민들레영토가 도약하는 키워드 같은 인상을 받지만 초심을 지키려는 모습이 엿보여 용서한다.

비영리단체와 약국, 카페를 차례대로 방문한다면 공통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세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경영기법을 가졌다고 해도 정도를 걷는 열정과 초심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지금 그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 같으면 어땠을까, 어떻게 경영했을까 생각하며 읽으면 분명히 얻어걸리는 것이 있다.

2009-05-09

산토리니에서 쓰는 엽서 한 장


공연히 더운 날은 훌쩍 섬으로 떠납니다.
산토리니 섬에서는 검은 마음도 시나브로 하얀 마음이 될 것 같습니다.
아주 천천히 걸으며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싸돌아다니다
털썩 주저앉으면 그대로 한 장의 엽서가 됩니다.
일몰이 아름다운 계단에 앉아 예쁜 엽서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장관을 네게 보여주지 못해 미안해.
여기서는 일천삼백팔십팔일도 하루같이 후딱 지나갈 거 같아.
나만 호사스러운 거 같아 정말 미안해...

목이 늘어나 후줄근하고 짬뽕 국물 자국이 튄 꼬질꼬질한 하얀 티를 입고
방금 꺼내 시원한 포카리 스웨트 한 깡 하면서 상상합니다.
세종로 1번지에 있는 푸른 지붕도 하얗게 칠하는 상상을 합니다.

2009-05-08

슬프고도 아름다운 혈연

자식은 가장 슬프고 가장 고독하고 무력할 때 부모를 찾는다. 애정에 실패하고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사업에 실패하고, 병들고 좌절당할 때 달려가는 품안, 그곳은 언제나 부모의 품안이 아니었던가? 그 어느 때 그 어떤 잘못을 저지른 후에도 부모는 용서할 수 있고 반겨 맞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닌가? (...) 부모를 필요로 하는 때는 행복하고 배부르고 기쁠 때가 아니다. 무력하고 서럽고 병들고 추울 때이다. (...) 자식과의 관계는 취소되거나 단절될 수가 없다. 그래서 혈연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것일까? (...) 이토록 아름다운 인연을 의지하지 않으면 외롭고 서러워서 마음 붙이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일까? 어찌하여 신은 인간에게 이토록 아프고 아름다운 인연을 주셨을까? (...)

아무리 세월이 지나고 천지가 개벽이 된다 해도 고쳐지거나 지월질 수 없는 관계, 이 슬픈 핏줄의 인연을 베고 사랑도 용서도 나누어 가질 수밖에 없는 것.

- 유안진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혈연" 중에서

카네이션 한 송이가 슬프고도 아름다운 인연의 무게를
티끌만큼도 덜어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점점 눈물마저 말라가는 영원한 탕자입니다.

2009-05-03

쾌도난마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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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나쁜 재벌 체제에 매우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보수'적인 사람들인데, 또 난데없이 노조 편을 드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진보'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정부 개입을 적극 옹호하는 것을 보면 박정희를 찬양하는 '수구'임에 틀림없는데, 또 자본 시장 자유화에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것을 보면 '극좌 민족주의자'가 아닌가 싶기도 한, 뭐라 딱 규정하기 힘든 입장을 펼치기 때문이다. (4쪽)

#1
경제 발전에 성공한 나라의 지배층과 실패한 나라의 지배층 간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바로 착취로 빨아들인 부를 어디에 사용했느냐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승만 체제와 박정희 체제의 차이는, 전자의 경우 민중들로부터 수탈한 부를 흐리멍텅하게 낭비해 버렸다는 겁니다. 남미도 마찬가지고요. 그에 비해 박정희 시대의 국가는 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해 수탈한 부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투자하도록 강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53쪽)

#2
박정희 체제의 특징을 첫째, 민주주의가 아니었고, 둘째, 자유주의도 아니었다고 하는 겁니다. (...) 그러니까 박정희가 경제 발전에 성공한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 '민주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제 경우에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자유주의에 매몰되어 있지 않은 나라를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핀란드의 경험을 연구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이고요. (81쪽)

#3
재벌들이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예요. 시장주의(자유주의)를 들여오면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1990년대 중반 자유기업원 등을 만들어 미국 공화당 극우파들의 극단적 개인주의나 수입하고, 주주 자본주의 이론 들여오고 그랬거든요.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은 거죠. 자유주의를 수입해서 '정부는 기업에 간섭하지 말라'고 해 놓고 보니, 그 논리대로 하면 그룹의 전체 주식 중 극소수만 보유했을 뿐인데도 그룹 전체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재벌 가문이야말로 대다수 주주들의 소유권을 침해하고 있는 셈이거든요. (83쪽)

#4
미국에서 주주 자본주의와 소액주주 운동이 강화된 게 1980년대부터인데, 그 이후 기업의 배당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재미있는 현상 중의 하나는, 처음에는 전문 경영인을 감시하기 위해 소액주주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보면 미국 최고경영자들의 봉급이 엄청나게 올랐다는 겁니다. (...) 결국 주주들과 경영자들이 짜고 노동자를 벗겨 먹는 식으로 굴러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입니다. (134쪽)

#5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강자만이 살아남는 체제이자 저성장 체제다. 오늘날 우리 경제의 양극화는 거기서 배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주주 자본주의는 가진 자를 위한 것이다. 주주와 경영자들이 야합해 노동자들을 등치는 체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런 신자유주의와 주주 자본주의에 대해 개혁 세력들이 열광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에서 기인한다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141쪽)

#6
심지어는 숙련 노동자들의 질에 따라 그 나라의 국가 경쟁력이 결정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산업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선진국과 후진국의 가장 큰 차이는 노동자의 질(質)입니다.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왜 벤츠 같은 자동차를 못 만들겠어요? 다 기계로 하는 건데... 그 이유가 바로 벤츠를 만드는 기계에 체화될 수 없는 종업원들의 '암묵적 지식' 때문이란 말입니다. (161쪽)

#7
영국에서 우리가 정말 얻어야 할 교훈은, 공기업 민영화를 했더니 단기적으로 큰 수익을 얻으려 할 뿐 설비 투자는 기피하는 경향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더라는 거예요. 하지만 공기업이 뭡니까? 시민들의 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서비스, 즉 교통, 에너지, 물, 통신 들을 책임지는 업체 아닙니까? 때문에 공기업 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공공성이고요. 그런데 공기업들이 민영화되어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주주 자본주의 원리에 매몰되면서 공공성이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이 서민층이고요. (167쪽)

#8
재벌을 적으로 삼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재벌이 주적은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재벌 해체를 주장하는 노동 운동가들은 마치 재벌을 해체하고 계열사들을 독립 기업화시키면 그 독립 기업의 전문 경영자들이 노사 관계를 더욱 민주화시킬 거라고 은연중에 가정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단언하건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전문 경영진이 등장했다는 것은 기업에 대한 주주의 압력이 훨씬 더 강해진다는 이야기이고, 또 이 주주들은 재벌 기업이든 독립 기업이든 상관없이 정리 해고를 하고, 비정규직을 채용하면 박수를 치며 기뻐할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를 가진 분들이란 말입니다. 이분들이 인간적으로 악하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 결국은 이익을 따라 흘러가게 되어 있다는 거죠. (178쪽)

#9
사실 노무현 정부는 정치·외교적 측면에서는 진보적 냄새가 나는데, 경제·사회적 부문에서는 오히려 보수 우파적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어요. 앞뒤가 안 맞는 셈이죠. (197쪽)

#10
우리나라 시민 단체들은 간혹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한다고 느껴지는데, 한편에서는 '관치 경제 중지하라'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복지 강화'를 외치거든요. 사회복지를 강화하다 보면 국가 혹은 관료의 역할이 커지게 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221쪽)

#11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동반하며 양자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믿는 자유 민주주의자들(liberal democrats)의 신조와는 달리, 양자는 서로 분리되며 서로 다른 차원에 있다. (...)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장하준 박사와 나의 주장은 명확하다. 박정희 체제가 경제 발전에 성공한 이유는 독재(즉 반민주주의)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비자유주의적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긍정하는 점은 그 비자유주의적 측면이지, 반민주주의적 측면이 아니다. (236쪽)

쾌도난마 한국경제/장하준·정승일의 대화를 이종태가 엮음/부키 20050718 240쪽 9800원

옹졸하게 갇힌 주관이 어렵지 않게 풀어가는 대화를 들으며 이해의 폭을 확장하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일시되는 교육을 받은 과거의 때가 아직도 벗겨지지 않았음을 절감한다.

화자들이 밝혔듯이 이분법적인 사상의 관념을 넘나드는 흑묘백묘론은 2004년 5월에 시작해서 그 후 일 년이 지나서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지난 정부 시절에 한 좌담이지만 지금도 무릎을 치며 곱씹게 만드는 대목이 여러 군데에서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