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9

일요일

이제 안녕 행복하세요
우리 2월 30일에 만나요

강제견인된 기억들 사이
흘리고 간 추억마저 되돌려 주려
사랑금지라는 빨간 부적을 붙인다

타인의 삶에 철철 넘치던 하루는
아주 잠시 직립보행을 거부하고
잉여기억 뒷전에 매달린
압류된 미래를 되새김질하는 동안
시간은 과거로부터 쌓여 포개진다

오늘 비틀거리는 달력이
부러 기다림을 경매한다

2008-06-26

영점(零點) 없는 영혼이 두려운 까닭

군대에서 사격해 본 사람이라면 영점사격이라는 걸 해봤을 겁니다. 총이 조준하는 곳과 총알이 박히는 곳이 일치하도록 조정하기 위한 사격을 말합니다. 표적지 한 군데에 일정하게 총알이 세 발 박힌 걸 보고 가늠자와 가늠쇠를 이용해서 한가운데에 맞도록 조정을 합니다. 이렇게 한 후 사격을 하면 비로소 과녁을 제대로 맞힐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점사격을 한 총알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으면 영점을 잡을 수가 없게 되고 사격수는 얼차려의 세계에서 피똥을 싸다 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도 이와 비슷합니다.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반복하면 영점조정을 통해서 바른 행동을 하게 합니다. 조정 역할을 하는 것은 가정, 학교, 사회 혹은 자기학습 등 다양합니다. 그런 영점조정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하고 있고 해야만 합니다. 표적지라는 가치는 변화무쌍하고 한 군데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흔히 표적지의 좌측에 총알 자국이 몰려 있으면 진보좌파라 하고 우측에 있으면 보수우파라고 하지만 과녁의 한 복판을 맞추려고 영점조정은 쉬지 않고 합니다. 또한 중도성향이라고 표적지의 정중앙을 관통하며 백발백중하지는 않습니다. 총알이 총구를 떠나는 순간 표적지는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좌파, 우파, 중도를 가리지 않고 영점조정을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영점조정을 멈추는 순간 그들은 이미 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영점조정이 멈췄다며 두려워하지는 마세요. 생각이나 행동이 진부한 것이 됐을 수는 있지만, 왕년에 한 번 정도는 과녁을 맞혔던 것이라 틀린 것은 아니니까요. 멈춘 시계가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정확하게 시간을 가르쳐 주는 이치와 같답니다. 그리고 영점조정을 멈춘 사람은 남에게 총을 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총알이 사방에 박히는 사람입니다. 영점조정도 수시로 하는 것 같은데 총알이 좌상귀에 박혔다가 우하귀에 박혔다가 일관성이 없습니다. 노무현 탄핵 촛불 땐 가만있다가 쇠고기 촛불에는 물대포를 쏘는 경찰, 대통령과 맞짱 뜨던 기백은 어디로 사라지고 한 술 더 뜨는 검찰, 뼛조각 쇠고기는 당장 수입금지하라더니 지금은 베리 굿이라는 CJD와 딴나라당, 아니되옵니다 하다 CEO가 바뀌었다고 냉큼 도장 찍고 오는 공무원. 모두 총알을 사방으로 쏴대는 영점 없는 영혼들입니다.

영점 없는 영혼들은 썩은 물과 같습니다. 크리스털 컵, 찌그러진 양푼이, 똥장군 등 어디든지 담기며 담긴 그릇에 딱 맞게 완벽한 변신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혼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심한 악취가 나지만 이미 익숙해져서 무덤덤합니다. 가끔 독특한 악취 때문에 흠칫 놀라지만 그때뿐입니다. 이렇게 중독된 우리는 그들의 숙주가 되고 다음 세대를 감염시킵니다. 이것이 영점 없는 영혼이 두렵고 미운 까닭입니다.

영점 없는 영혼은 우리가 숙주인 이상 멸종시킬 수는 없습니다. 정신 차리게 하는 방법이 알려진 것도 뾰족한 게 없습니다. 다만, 사격수에게 얼차려를 주며 피똥 싸게 하면 영점이 잡히는 일도 있으니 그 방법을 수시로 써 보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2008-06-24

이 글은 소설이다? 일러두기와 인터넷에 관한 짧은 생각

작년 여름, 김훈의 『남한산성』을 사놓고 이제나 읽을까 저제나 읽을까 잡았다 놨다 하던 차에 남한산성 일주를 하였다. 그리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산성을 한 바퀴 돌아본 덕분인지 소설 속 배경이 훤히 그려지며 단숨에 읽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닥본사였기에 『칼의 노래』가 원작이며, 탄핵 기간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읽었다 하여 다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남한산성을 읽은 후 전작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 '칼의 노래'도 읽게 됐다.

책을 다 읽고 책꽂이에 꽂기 전에 작가의 약력이나 작가의 말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다. 그렇게 남한산성을 읽고 뒤적거리다가 소설이 시작되기 전 오른쪽 구석에 일러두기라는 게 눈에 띄었다. 이 책은 소설이라고 작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그걸 누가 모르나 하며 칼의 노래도 찾아보니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뒤에 구입한 『바람의 화원』을 보니 거기에도 쓰여 있다.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 [남한산성]
이 글은 오직 소설로서 읽혀지기를 바란다. [칼의 노래]
이 글은 소설이다. [바람의 화원]

그래서 눈에 띄는 『소설 대장경』(조정래, 민족과 문학사, 1991)을 꺼내 앞뒤를 살펴봐도 그런 글은 찾을 수 없었다. 언제부터 소설책에 '이 책은 소설이다'라고 일러두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왜 이런 말을 써 놨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추측을 하며 인터넷을 떠올려 봤다.

인터넷은 개인이 꿍치고 있던 노하우(know-how)를 무색하게 만든 지 오래다. 지금은 노웨어(know-where)의 시대다. 소유의 종말이 인터넷에서 시작되고 있다. 다양한 정보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얻을 수 있다. 이런 순기능과 함께 정보공해의 삼투압 현상, 즉 사실과 다르거나 잘못된 정보를 여과 장치 없이 흡수하는 역기능도 나타나고 있다.

가령 '남한산성'이라는 소설이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며 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작가를 향해 악플을 던지는 개인이 있다고 치자. 분명히 출발은 잘못된 시선에서 시작하였지만 악플은 또 다른 악플을 양산하여 눈덩이처럼 커지며 악화가 양화로 둔갑한다. 그래서 '남한산성'과 '불멸의 이순신'은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가치 없는 소모적 담론으로 변질되고 끝내는 그것은 틀렸다며 낙인을 찍는다. 소설과 드라마라는 본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억조차 하질 않는다.

소설은 소설로써 먼저 읽혀야 하고 드라마는 드라마로 먼저 봐줘야 한다. 그 경계를 벗어나 찾아낸 해답은 선천적 기형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으로 급속히 퍼지는 카더라 통신이나 마녀사냥도 그 사실 여부를 떠나 이미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 기형아로 탈바꿈(變態)하고 결국에는 누군가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기고 만다.

이와 같은 인터넷 역기능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역시 개인의 역량이다. 편집되고 왜곡된 현상을 바르게 볼 줄 아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무수히 널려 있는 데이터를 보며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하고 '행간(行間)의 뜻'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곳이 인터넷이다. 그래야 데이터는 비로소 가치를 가진 정보로 다가온다. 인터넷이 넓고 깊어질수록 생각은 좁고 얕게 적응된 나머지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이 되지는 않았나 수시로 자가진단을 하고 피드백을 보내야 할 것이다.

소설책 첫머리에 굳이 '이 글은 오로지 소설이다'라고 친절하게(?) 일러두기를 한 것은 떼거리로 달려들어 역사적 사실이 맞네, 아니네 하는 걸 염려한 작가의 선견지명이거나 무지한 세상에 던지는 사용 설명서는 아닐까 하는 짐작을 감히 해 본다.

2008-06-23

팽형 미수에 그친 도무지 대책 없는 구케의원

조선시대에 5대 극형이라는 것이 있었답니다. 효시(梟屍), 육장(肉醬), 석형(石刑), 거열(車裂), 도모지(塗貌紙).

반역을 일으킨 주모자의 목을 베어 그 머리카락을 장대에 묶어 매달아 널리 알림으로써 대중들로 하여금 경계를 시키는 일을 효시라고 합니다.

육장은 죄인을 삶아 죽이는 형벌로 팽형(烹刑)이라고도 합니다. 저잣거리에 솥을 내다 걸고 흰옷을 입힌 죄인을 데려와 그 솥으로 들어가게 한 다음 장작에 불을 때는 시늉을 합니다. 죄인의 가솔들은 소리 내어 울면서 장례 준비를 하지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죄인은 솥에서 꺼내지는데 이 순간부터 죄인은 살아 있으되 죽은 것이 되며 이름이 불리지 않습니다. 호적이나 족보에는 사망으로 기록되고 죄인은 머리를 산발한 채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죽은 자가 되어야 하는 벌이죠. 팽형은 사람의 생명을 해하지 않고 인격적인 살인을 한 것인데, 대개는 자결을 했다고 합니다.

석형은 목에 동아줄을 감아 잡아당겨 돌담에 머리를 부딪쳐 깨서 죽이는 형벌입니다.

죄인의 사지(四肢)를 두 대의 달구지에 묶어 좌우로 당겨 찢어 죽이는 혹형을 거열이라고 합니다. 능지처참(陵遲處斬)과 혼용되기도 한다는군요. 능지처참은 팔다리와 어깨, 가슴 등을 잘라내고 마지막에 심장을 찌르고 목을 베어 죽이거나 죄인을 묶어 놓고 살점을 베어내되, 출혈 과다로 죽지 않도록 포를 뜨듯 조금씩 베어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형벌입니다.

도모지는 물을 묻힌 한지를 얼굴에 몇 겹으로 착착 발라놓으면 종이의 물기가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을 못 쉬어 죽게 되는 형벌입니다. 도모지에 그 기원을 둔 '도무지'는 그 형벌만큼이나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의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뚱딴지같이 갑자기 극형 얘기는 왜 하냐고요? 지난 19일 100분 토론 말미에 어떤 구케의원이 하신 말씀을 들으며 팽형이 생각나서 그렇습니다.

그 구케의원은 고대녀로 알려진 김지윤 학생을 지목하며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고려대 학생이 아니다. 고려대학교에서 제적을 당한 학생이다. 이력을 보면, 민주노동당 당원이고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도 선거운동을 했다. 정치인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에 나올 때는 고려대학교 재학생으로 나왔다. 이게 이야기가 되나.

허걱. 테레비를 지켜보던 제가 놀랐습니다. 그날 토론 주제와도 동떨어진 생뚱맞은 말씀이더군요. 일주일 전 김지윤 학생이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한 발언은 그녀가 고대생인지 아닌지가 중요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명색이 구케의원이라는 양반이 반론이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신상자료를 들고 학력이 가짜라며 김지윤 학생의 발언은 물론 당사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디다. 더군다나 격정적으로 말씀하신 내용은 거짓으로 판명된 상태이고요.

결국 구케의원은 아주 심각한 명예훼손을 저질렀고 그것은 한 인격체를 팽형시키려다 미수에 그친 뻘짓거리로 보입니다. 도무지 대책 없어 보입니다. 지금 솥단지에 강제로 떠밀려 들어갈 뻔한 그녀는 법적 대응을 한다고 합니다.
도무지가 도모지라는 형벌에서 유래했다지요. 팽형 미수에 그친 대책 없는 구케의원 얼굴에 물 묻은 종이를 착착 바르는 것은 도무지 할 방법이 없고, 법원이 가혹한 판결을 내린다 해도 가벼운 벌금형 정도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양반에게 팽형을 언도할 배심원 자격이나 수준이 우리에게는 있지 않을까요?

2008-06-21

닮은꼴


기름과 지갑의 관계
대통령 재임일수와 지지도의 관계

2008-06-20

세상, 칼라 테레비를 보다 인터넷에 길을 묻다

1. 6.29 선언은 칼라 테레비가 만들었다?

87년 6월 항쟁의 결정적인 시발점은 호헌철폐를 외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었고, 그 열망이 그해 여름을 뜨겁게 했다. 절대권력이 만든 철권통치 시대에 민주화 열망으로 기꺼이 동참한 민중은 끝내 6.29 선언을 이끌어 냈고,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6.29 항복선언이 민주화 염원에 대한 결과라면 그것을 촉발시킨 원동력은 무엇일까?

전두환은 피로 정권을 잡고 성난 민심의 관심을 돌리려고 3S 문화정책을 시행한다. 이른바 Sport, Sex, Screen을 널리 보급함으로써 민중을 정치로부터 무관심하도록 시선을 돌리게 하는 우민화 정책을 편다. 야구를 좋아했던 전통은 프로야구단을 만들었고, 에로영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비디오가 나오면서 포르노를 맘껏 볼 수 있게 만든다. 칼라 방송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 당시 집에 있던 테레비는 미닫이로 브라운관을 가려 자물쇠로 잠글 수 있는 네 발 달린 흑백 테레비였다. 칼라 테레비가 가전제품 쇼윈도에 진열되면서 구매 목록의 첫 번째를 차지하게 된다. 가격도 상당한 고가여서 20만 원 내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사립대학 등록금의 절반이었다. 칼라 테레비가 나올 거라는 소식에 사긴 사야겠는데 너무 비싸다는 걸 알고 아주 커다란 돼지 저금통에 100원짜리 동전을 가득 채우면 살 수 있다는 말을 친구들과 하기도 했다.

총천연색 세상을 만들다

칼라 테레비는 일종의 문화충격이었다. 주위에서 총천연색을 접하던 것이라곤 단체관람 영화와 선데이 서울 가운데에 있던 길게 늘어지는 수영복 입은 화보밖에 없던 시절에 색깔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흑과 백으로 보이던 세상을 총천연색 세상으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생각도 총천연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흑과 백으로만 가득하여 천편일률적이던 뇌의 구조가 시나브로 다양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각자 좋아하는 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개성이라는 게 만들어지고, 갇혀 있던 관념의 족쇄가 풀리며 생각은 들판의 꽃들처럼 흐드러지게 피게 된다.

그렇게 예뻐 보이던 여배우가 색깔을 입으니 기미도 보이고 작은 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던 티끌이 자연스럽게 나타났고, 그럴수록 여배우는 우리 옆에 있는 그저 그런 사람이 돼갔다. 물론, 두꺼운 화장을 하게 되는 폐단도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했지만.

정치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땡전 뉴스를 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됐고, 주입식 화면을 거부할수록 주관식 의문을 가지며 변화의 조짐이 잉태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결국 '탁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라는 말을 믿지 않으며 끝내 억누르던 총천연색 열망은 거대한 활화산처럼 폭발하며 6월 항쟁으로 나타났다.

칼라 테레비가 6월 항쟁으로 나타났다는 인과관계나 학술적 근거를 밝히라면 할 말이 궁색해진다. 그렇지만 만약 86 아시안 게임도 열리지 않았고, 88 올림픽이 예정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여전히 흑백 테레비를 보고 있었다면 6월 항쟁은 몇 해 더 늦춰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민화를 위한 칼라 방송이 결국에는 6.29 선언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역사의 아이러니 혹은 선순환은 아닐까?


2. 촛불을 밝힌 인터넷

인터넷을 처음 접한 것은 십여 년 전이다. 시장에 내놓기 전에 미리 사내 시운전을 하던 유니텔이라는 PC 통신을 처음 접하고 채팅이라는 것을 알면서 왜 그리 신기했는지 퇴근도 미루던 시절이었다. 인터넷이라는 것도 모르고 넷스케이프는 더더욱 생소했지만 정보화 자격증을 반강제로 따야 했다. 넷스케이프를 이용해서 주어진 문제에 대해 검색을 하고 찾아낸 정답과 주소를 함께 적어냈다. 지금이야 너무 많은 검색결과가 나와 선별하는 것이 더 어려운 시대지만 당시에는 네 문제를 한 시간에 풀어야 할 정도로 만만한 게 아니었다.

신문을 화장실로 보내다

플레이 보이에서 므흣한 사진이나 보며 낄낄대던 무렵 인터넷 확산의 기폭제가 나타난다. 오양 비디오 사건은 인터넷 문외한을 컴퓨터 앞에 앉게 했다. 학창시절, 여름에 해수욕장에 놀러 가면서 어깨에 커다란 카세트를 얹고 갔듯이 바야흐로 인터넷은 내 눈으로 들어와 지화자 하며 함께 놀게 된다.

넷스케이프가 사라지기 시작하고 익스플로러가 슬며시 자리 잡으며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게 된다.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로 배달된 조간신문은 접힌 상태 그대로 하루가 지나는 날이 많아졌고, 어쩌다 간택된 행운을 잡은 신문은 화장실에서 몇 번 펼쳐지지도 못하고 그대로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근무시간에 어떻게 땡땡이를 쳤는지 기억도 나질 않을 만큼 자연스러워졌다. 주식 좋아하는 이들은 순간순간에 일희일비하기 시작했으며, HTML을 배워 개인 홈페이지를 꾸미게 된 것이 99년 말이다.

인터넷, 생활 속에서 진화하다

인터넷은 이제 생활이 되었다. 그냥 물 흐르듯 생활의 일부분이 돼 버렸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한 여름날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팥빙수를 만들어 먹었던 것처럼. 오죽하면 시골집에 놀러 온 막 걷기 시작하는 꼬맹이까지 컴퓨터가 보이지 않으니 재미없다며 빨리 제집으로 돌아가자며 보채는 시대다.

그렇게 무덤덤하게 지내던 날. 쇼킹한 사건이 일어났다. 촛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백 만개의 촛불이 불사조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쟁을 생중계로 보기도 했고 미국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테레비에서 보기도 했지만 시위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냥 내 생활의 일부분이라고 느꼈던 인터넷이 말을 걸기 시작하고 대화를 하며 토론을 하고 있다. 자발적 상호작용을 하고 정반합의 변화를 거듭하며 진화한다. 그곳에서는 나이, 성별, 학력을 불문하고 오로지 하나의 생명체로 살아가는 원초적 생각의 광장이 된다. 이천 년 전 넓은 광장에서 소통하던 소크라테스가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광장에 운집해 대화하는 수많은 소크라테스로 환생했다.

쌍방향 소통을 원하는 인터넷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와 촛불을 밝혔음에도 권력은 인터넷을 증오하며 일회성 조건반사라고 단정하는 우를 범하려고 한다. 화장실이나 휴지통을 전전하는 처지로 전락한 소수 신문이 떠드는 민중은 우매하다는 소리를 철석같이 믿으면 정말 곤란하다. 인터넷은 이미 지난날 칼라 테레비처럼 우리를 바꿔 놓고 있다.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이미 우리와 공생하고 있다. 세상은 인터넷에 길을 묻고 인터넷은 세상과 접속하려고 한다.


3. 에필로그

칼라 테레비는 이분법적 사고를 다양하게 확장했고, 인터넷은 다양한 사고의 공통점을 찾아 정방향 지향점으로 움직인다. 물론 칼라 테레비가 두꺼운 화장으로 진실을 은폐했듯이 인터넷은 익명성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굴절돼 보이는 물 잔 속의 젓가락을 꺼내보면 항상 바르듯이 왜곡된 진실을 물속에서 꺼내 볼 줄 아는 현명함을 인터넷은 깨우치고 있다.

지금 인터넷이 큰소리로 하는 대화를 듣지 못했던 권력은 촛불로 나타난 민심에 당황하고 있다. 하지만 더 커다란 근심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예측을 못 하는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야누스의 모습을 한 인터넷을 보며 칼을 들을지 악수를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우스로 쥐를 잡는 일이 벌어지면 우리 모두 불행한 일이다.

2008-06-18

날씨! 너무 정치적이야

비가 내렸습니다.
하마 올해 장마가 시작됐다는군요.

재미있는 것은 장마가 시작은 됐는데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다고 합니다.
일기예보가 자주 틀려 슈퍼 컴퓨터를 사주었는데도
예보 방식은 더 아날로그틱 해진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장마시작...언제 끝날지는 '미지수'

어떤 이는 장마를 무척 기다렸다네요.
장마가 시작되면 촛불이 꺼질 거라면서......

그래서 그런가요?
무릇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하는데
장마는 그 끝을 알 수가 없다고 하네요.
날씨가 정치적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뭐 그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요.

서슬 퍼렇던 유신 시절.
신문 한 귀퉁이에 기상도와 날씨예보를 실으며
짤막한 한 줄짜리 촌평을 쓸 때
성큼 봄이 다가왔다는 둥,
지리한 장마가 곧 끝날 거라는 둥
암흑의 세월이 종 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은유적으로 썼다는 기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투표하는 날.
날씨가 맑으면 이쪽이 유리하고
비가 오면 저쪽이 유리하다며
민심을 날씨 탓으로 돌리기도 했었지요.

날씨!
당신 너무 정치적으로 변한 것 아니야?
하며 따져 물으려고 맘을 단단히 먹고
집게 손가락으로 턱밑을 찌르려는 순간,
멈칫하게 되네요.

생각해 보니 날씨가 잘못한 건 없네요.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흐리기도 하고 아주 화창하게 맑은 날도 있는 것이
모두 조물주의 뜻이거늘
지레짐작으로 넘겨짚어 미리 떠벌리는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날씨가 정치적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날씨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더군요.
장마가 시작되면 촛불이 꺼질 거라며
어디선가 쾌재를 부르고 있는 분들이 계시면
이제는 날씨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시고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마른하늘에서 날벼락 치는 것이 날씨랍니다.
벼락 맞은 인간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만도 못하답니다.

2008-06-17

일주일 동안 꿈꾸게 하는 소식

실로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착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로또가 1000원으로 값을 내리고 나서 처음으로 당첨금이 이월됐다는군요. 다음 회 당첨금이 200억 원 정도 될 거라 하네요.

가끔 꿈을 꾸고 난 후 로또를 한 줄 사곤 합니다. 특별히 점찍어 둔 번호가 없어 자동빵으로 사서 곱게 모셔둡니다. 그러면 토요일까지 행복해집니다. 머릿속으로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마음은 이미 시차적응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쓸데없이 여권 유효기간을 확인해 보기도 하지요.

꿈을 꾼 후 로또를 사면 눈을 뜨고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이번 주에 한 줄 사야겠습니다. 그리곤 주말까지 대굴빡을 굴리며 열심히 공상소설을 쓰겠습니다. 대굴빡을 굴리면 과부하가 걸리며 삐걱거리기 마련인데 이럴 때는 신기하게도 가속도가 붙습니다.

요즘은 부쩍 쇠고기가 먹고 싶습니다. 미제를 최고로 쳐주던 시대, 승승장구하며 사장까지 하신 대통령께서 싸고 맛있다며 강추한 쇠고기가 솔직히 최고는 아니죠. 혹시 아직도 무조건 미제가 제일이라며 살고 계시는 건 아니겠지요?

1등에 당첨되면 제일 먼저 좋아하는 차돌박이를 먹으러 갈 겁니다. 도살장 옆에서 먹는 고기가 으뜸이지만 미국까지 가서 먹고 싶지는 않네요. 시골 고향 옆 동네 횡성 한우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가보질 못했습니다. 그곳에 가서 한 삼 년은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원 없이 처먹을랍니다.

주말까지 버킷 리스트를 만들려면 행복한 비명이 절로 나오겠지만 로또 한 줄이 꿈을 한없이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2008-06-14

도장 함부로 찍지 마라

1.
허공에 따발총을 쏴도 표시 안 나던 시대.
예쁜 처자를 꼬셔 도장 찍으면 내 것이 된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서라.
한강에 유람선 지나가도 티 안 나는 세상이 된 지 오래고
인감도장을 동사무소에서 보증하던 시대도 지났다.
도장 백 날 찍어봤자 도장밥값도 안 나온다.
뿔나면 다시 포맷해서 깨끗하게 만드는 세상이다.
도장 함부로 찍지 마라.

2.
쇠고기에 뼛조각이 있어도 반품시키던 시절.
그게 다 사장 때문이라고 했다.

"을"은 30개월 미만 뼈 없는 쇠고기만 납품한다.
"갑"은 뼛조각만 있어도 재깍 반품한다.
알간!

갑 : (주)대한민국 CEO 놈현   을 : USA Co. George Bush

그렇게 까탈스럽던 갑은 을이 미리 만들어 놓은 계약서에 덜컥 도장을 찍어줬다.
사장이 을의 별장에 놀러 가기 직전이었다.

모든 쇠고기는 "을"님이 알아서 납품하시면 됩니다.
"갑"놈은 그저 감사히 먹겠습니다.
죽거나 말거나......

갑 : (주)대한민국 CEO 2mb   을 : USA Co. George Bush

별장에 간 사장은 배알도 없이 을의 카트에 앉아 운전기사 노릇을 하더니
납품할 쇠고기를 미리 먹어 보고 이빨을 쑤시며 나타나 다 잘 됐다고 했다.
계약서를 들여다본 주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꾹 참으며
그냥 예전 계약서대로 계약기간이나 연장하라고 조근조근 타일렀다.
사장은 그런 주주들에게 한마디 한다.

됐거든. 먹기 싫으면 먹지 마.

사장은 한 번 도장 찍은 계약서는 절대 물릴 수 없다고 한다.
도장 찍으러 갔던 넘들도 덩달아 을의 대변인이 돼서 나불대고 있다.

임기가 보장된 계열사 사장들은 죄다 옷을 벗기더니
정작 자기는 임기가 보장됐다며 도무지 들은 체를 안 하고 있다.

파고다 공원 어르신들도 밥값내기 장기는 예민해서
불리하다 싶으면 판을 엎어 버리고 배째라 하는 마당인데
하물며 말도 안 되는 계약서는 파기하고 다시 계약을 하라는데
요 핑계 조 핑계 대며 못 한다고 뻐팅기고 있다.

점점 뿔이 난 주주들은 말로 해선 안 될 놈이라며 한 대 쥐어박을 기세다.

아서라.
그동안 변한 건 딸랑 사장 한 놈 바뀌었을 뿐이다.
주주들이 모르고 넘어갔으면 앞으로 사고 무지하게 칠뻔했다.
완투데이 사장해 본 것도 아니고 단물 쓴물 다 맛본 선수가
한 번 계약서는 영원한 계약서라고 하면 쓰나.
지가 무슨 해병전우회도 아니고.
국새와 생김새가 다르지만 인감 찍을 때는 꼭 좀 물어보고 찍어라.
요즘 2mb 포맷하는 건 일도 아니다.
고따위로 도장 함부로 찍지 마라.

2008-06-12

소통의 달인이 되는 방법

신입사원 연수시절. 커뮤니케이션 게임이라는 걸 했습니다. 무슨 거창한 게임이 아니라 열 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맨 앞사람이 종이에 적힌 문장을 보고 귓속말로 뒷사람에게 적힌 대로 전달하면 그 사람은 또 다음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마지막 사람은 그렇게 전달된 문장을 종이에 적어 원래 문장과 비교하는 식입니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라는 문장이 열 사람 입과 귀를 거치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 산다 로 변하더군요.

결과의 황당함 때문에 박장대소합니다. 들은 대로 전달하면 되는데 주관적인 생각이나 해석해서 문장 구조뿐만 아니라 억양이나 분위기까지 바꿔 전혀 엉뚱한 문장으로 변하니까요. 새삼 대화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점점 대화와 소통(疏通)이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뜻이 통하기 이전에 오해라도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커지더군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말이 통하지 않아 다투는 마당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과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럼 소통의 달인이 되는 비법은 있을까요? 입은 하나고 귀가 둘인 까닭은 적게 말하고 많이 들으라는 뜻이라는군요. 귓속말로 쑥덕대며 전달된 말을 듣는 게 아니고 내 귀로 직접 듣는 것이 아버지를 가방에 들어가게 하는 우를 막을 수 있겠지요. 소통의 달인이 되는 방법도 입은 다물고 두 귀를 활짝 열며 열공하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아, 또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컨테이너 박스로 대로를 막아 소통(小通)하는 길이 있습니다. 손쉽고 편한 길이지만 점점 귀는 없어지고 입만 자꾸 늘어나는 후천성 소통결핍증이라는 난치병에 걸릴지도 모릅니다. 병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높은 성을 쌓고 싶어 진답니다.

2008-06-10

더 멀리 뒤돌아 볼수록 더 멀리 앞을 볼 수 있다

1. 헨리 포드의 융통성 없는 경영의 종말

단호함이 지독한 아집으로 변한 예는 고대 그리스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극히 현대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동차 생산에 있어서 경이적인 성장과 계속된 생산성의 기록 갱신으로 산업의 기적을 이룬 그 유명한 헨리 포드의 경우를 보자. 포드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대중적이고 저렴한 가격의 차-그 유명한 모델 T-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의 사명은 계속해서 단가를 낮추어 나가면서 하루에 더 많은 차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기업가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 편집증적인 열정으로, 포드는 '누구든 내 차로 타고 갔다 올 수 있는 자동차를 많이 생산한다'는 거창한 계획에 몰두하였다. 그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어 갔다. 15년 동안 포드사의 자동차는 미국 자동차 시장의 66퍼센트를 점유했으며 전례없는 고속성장의 신화를 이룩하며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굳건한 아성을 쌓았다.

그러나 포드의 성공담은 아이러니하게도 초반의 성공의 밑거름이었던 목표에 대한 편집증적인 몰두의 희생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승차감이 좋고 외관이 아름다우며 기능이 다양한 쪽으로 변하자 모델 T는 구식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헨리 포드는 크레온처럼 시기를 놓칠 때까지 주위 사람들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윌리엄 너드슨은 그 당시 사장에게 모델을 바꿔야한다는 충언을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1921년에 회사를 떠난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제너럴 모터스사에 입사해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보레 자동차의 개발 생산에 더욱 박차를 가했으며 드디어 저가품의 자동차 시장을 주도하던 포드사를 따라잡았다. 반면 포드의 고집은 경악할 독재성(그는 권력의 집중화를 위해 비밀경찰단을 고용하여 강훈련을 시켰다)과 어우러져 1920년대에 회사를 거의 파산지경까지 몰고 갔다. (88쪽)

2. 부하는 상사의 스승이다

군주가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것보다 신하의 도리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없다. 이것이 신하의 존재 이유이다. 그의 역할은 단순히 상사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승처럼 가르침을 주고 때로는 언짢은 충고도 하는 것이다.

완벽한 신하의 할 일은 그가 보위하는 군주의 신임과 호의를 얻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신하는 군주가 언짢아할까 두려워하지 말고 언제나 군주가 알아야 할 모든 것에 대해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군주의 마음이 옳지 않은 족으로 기울어진 것을 알았을 때 신하는 과감히 반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의를 갖춰 그동안 얻은 호감과 신의를 이용해 악의있는 계략으로부터 군주를 구출하여 덕의 길을 걷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120쪽)

3. 보수와 개혁, 극단주의는 피하라

전통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관리자는 쉽게 파괴시켜 버리며, 다시 전통을 세우기는 어렵다. 따라서 조직을 변화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실행되어야 하며, 변화는 그 역사와 전통과의 맥락에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중략)

왜 기업인이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메이 교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여러 개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방법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사고하는 법을 배우는 데 도움을 준다. 정확한 정책결정자는 거의 본능적으로 어떠한 문제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한다. 신속하게 대처를 잘하는 경영자는 많다. 그러나 역사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효과적인 리더십과 정책 결정의 디딤돌이다." (187쪽)

4. 생각을 바꾼 포드

지도자에게는 언제나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어 왔다. 아마추어 역사가에다가 직업설명가까지 하라면 과한 요구일까? 그러나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살면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조직의 영속성에 대한 감각을 가지는 것은 장차 어떤 사업이 유망할까를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역사는 허풍이 아니다. 사실이다. 포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러나 더 현명해진 뒤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그는 미시간 이어본에 있는 포드 음악당의 출입문 위에 다음과 같이 새겨놓게 했다.

"좀 더 멀리 뒤돌아다 볼수록 더 멀리 앞을 내다볼 수 있다." (189쪽)

서양고전에서 배우는 리더십/존 K.클레멘스/김은정 역/매일경제신문사 19991130 254쪽 7000원

목표에 대해 편집증적으로 몰두하는 군주와
군주를 덕의 길로 걷도록 인도하지 못하는 신하가
100만 촛불을 만들고 있다.

2008-06-03

두 사람의 백일, 소탐대실과 고성방가

우리에게 백일은 의미가 깊은 날입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서 사회에 처음 신고하는 날이며,
생명을 잉태하고 얼추 일 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는다지요.

누구는 백일이 생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네요.
생일은 매년 돌아오지만 백일은 평생에 한 번뿐이라고요.
그래서 백일상은 인생의 신인상이라고 하더군요.

백일은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의 첫 번째 기념일입니다.
처음 만나 백일을 기념하며 사랑이 영원히 변치 않도록 기원합니다.

오늘은 세종로 1번지 집주인이 바뀐 지 백일입니다.
그래서 백일을 맞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국민을 섬기겠다며 입주를 했고
한 사람은 집을 비우고 고향으로 낙향했습니다.

한 사람은 손을 흔들며 "국민 여러분 성공하세요." 하며 그 집에 들어갔고
한 사람은 그 집을 나서기 전까지 세상일은 다 네 탓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은 첫 작품으로 강부자, 고소영 정부를 만들었고
한 사람은 첫 작품으로 발가락 양말을 공개했습니다.

한 사람은 쇠고기 협상으로 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했고
한 사람은 오리농법이 조류독감으로 무산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같이 백일을 맞았지만 세상인심은 극과 극입니다.

한 사람은 촛불을 든 수많은 사람이 방을 빼라고 아우성이고
한 사람은 그를 만나보고 싶다며 아우성입니다.

한 사람은 촛불을 끌 수 있는 묘수를 생각하고 있고
한 사람은 장미꽃 100송이를 받으며 축하를 받겠지요.

한 사람은 소탐대실(소고기를 탐하다 대통령 자리에서 실직한다) 할 위기를 맞았고
한 사람은 고성방가(고향으로 돌아온 성공한 대통령 방가방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