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31

지나간 사랑에게

그냥
이 지구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증거 하나만 던져주길 바란다.

2008-03-20

사랑은 경작되는 것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또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事後)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쓸데 없는 말은 없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 말은 거짓말이며, 그 이후라면 아무 소용없는 말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함이 없어야 한다.

Das beste sollte das liebste sein.
가장 선한 것은 무릇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 (22쪽)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돌베개 20031015 400쪽 13000원

신영복 선생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20일을 복역하다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는군요. 그의 나이 만 스물일곱에 감옥에 들어가서 마흔일곱에 출소하였습니다. 그 후 십 년이 지난 1998년 3월 13일에 사면 복권이 됐답니다. 그의 나이 쉰일곱에 말입니다.

196901 ~ 197009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197009 ~ 197102 안양교도소
197102 ~ 198602 대전교도소
198602 ~ 198808 전주교도소

시나브로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왠지 죄송한 맘이 생깁니다.

2008-03-15

얼리버드는 졸리다

- 얼리버드(early bird)와 작업투입률에 대하여

MB 실용주의 정부는 얼리버드(Early Bird)니 노 홀리데이(No Holiday)라 하며 공무원 기강 잡기를 빡세게 하고 있다. 변화를 강조하며 자율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몸으로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머리를 써서 창의적으로 하라는 게 이 대통령의 의도"라면 의도가 잘못된 것인지 의도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플랜트 공장에서는 작업의 효율을 측정하는 한 방법으로 작업투입률을 관리한다. 작업투입률은 실제 작업에 투입한 시간을 총근무시간으로 나눈 백분율로 나타낸다. 연도별 기간별로 등락은 있지만 대개 66% 내외로 나타났다. 회사에 출근해서 작업에 투입한 시간은 2/3에 지나지 않고, 1/3은 직접 작업에 관계없는 행위가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작업투입률을 관리한다는 것을 의식하면 어느 순간 급격히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80%를 넘어 90%에 육박하는 때도 있다. 이런 현상은 관리를 의식해서 과다하게 작업 투입시간을 입력한 결과지만, 3~4년을 꾸준히 비교해 보면 66% 내외를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66%가 나타나는 원인은 자명하다. 화장실도 가고 커피도 마시며 담배도 피워야 하고 교육도 받고 출장도 가고 엔지니어링 검토도 하는데 그 이상의 수치가 나타나면 오히려 이상현상이 되고 만다. 손실로 나타난 33% 시간에는 비효율적이고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이 포함돼 있을 것이지만 그것을 꼭 집어 제거하기는 쉽지 않다. 뒤집어 말하면 그런 농땡이 치는 시간이 도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는 용납되고 있다. 그래서 관리의 포인트도 작업투입률을 66% 이상 올릴 수는 없는가가 아니라 왜 66% 이하로 떨어졌는가에서 원인과 대책을 찾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새벽에 출근하고 휴일 없이 일하는 것은 근무시간만 늘어나서 오히려 작업투입률이 저하되는 것은 아닐까? 화이트 칼라의 작업투입률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33%는 존재한다. 눈치 보며 일찍 출근해서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있다면 서로 손해다. 개인은 개인대로 피곤하고 회사는 회사대로 전기세만 낭비하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짧은 시간에 생산성 높은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이지 일하는 시간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일이 터졌을 때 무조건 밤새우고 몸을 혹사하면 일 잘한다는 말을 들었다. 산업화 시대에는 이 방식이 통했다.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다. 일이 터지지 않게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사후처리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의 몇 분의 일만 써도 가능할 것이다. 정신 재무장을 위한 변화의 상징으로 택했다면 이해 못하는 봐도 아니지만 지식사회를 말하고 선진화 시대를 지향한다며 얼리버드나 노 홀리데이라는 산업화 시대의 발상을 하는 것은 자기모순 아닐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잡는 시대가 아니라 어제 주문한 먹이가 배달되는 시간에 일어나는 시대다. 얼리버드는 졸리다. 규제 철폐를 없애는 것은 개인의 쓸데없는 일을 없애는 것에서 시작된다. 몸으로 때우고 졸린 얼리버드가 아니라 나비 한 마리가 일으키는 창조적 효과를 더 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2008-03-13

발칙한 상상


회교 국가는 참 재미가 없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그네들 종교 때문인지 동네에 술집이 없다. 삐까번쩍하는 네온사인도 없고 해가 지면 썰렁하다. 오죽하면 놀러 온 한국인 놈상들은 재미없다며 배를 타고 태국에 가서 술을 마셨다고 한다.

코타키나발루 휴양지도 조용하다. 차분하게 쉬고 싶은 이들에게는 더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일행과 같이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한국 관광객 한 무더기가 들어온다. 우리는 먼저 들어와 앉아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는 서양인들을 보며 한마디 했다.
- 저 사람들 삼십 분 이내로 모두 일어날 거야.
아니나 다를까. 삼십 분도 안 돼 모두 나가고 바에는 한국 관광객 한 무리와 우리 일행밖에는 없었다. 그러던 우리도 시켜 놓은 맥주를 다 마시고는 서둘러 일어나야만 했다. 조용하던 바에 중국인들이 들어오며 시끌벅적한 목로주점으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조용조용 나누던 대화가 그들로 말미암아 이내 묻혀 버리다 소리를 질러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일행이 들어오기 전에는 아마 우리 목소리가 제일 컸을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 관광객에 대한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일본 관광객은 버스에서 내리면 가이드 깃발을 보고 행렬을 맞추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고 한다. 중국 관광객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왁자지껄 떠들며 무리를 지어 움직인다. 한국 관광객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사방으로 확 흩어진다고 한다. 목소리 크기는 중국인이 한수 위라고 한다.

한국인이 시끄럽다는 증거 또 하나. 점심을 먹고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일행이 안 보인다. 주섬주섬 옷을 차려입고 수영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아주 요란스럽다.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우리 일행이었다. 다들 그늘에 누워 책을 보거나 명상에 잠겨 있는 서양인들과는 달리
수영장에서 희희낙락 거리며 놀고 있었던 게다. 시끄러운 곳을 찾아가면 영락없이 만날 수 있다.

사진은 시내 관광을 하려고 오르던 버스에 붙어 있었다. 청결하라는 말인데 왜 자꾸 발칙한 상상을 하는 것일까? 이게 다 봄 너 때문이다.

2008-03-10

내 나이는 서른하나

사람의 정신적 나이는 삼십대 초반에서 정지한다는군요.
아마 이때쯤에는 가치관도 정립됐고
습관도 고착화돼서 더는 고치기 어렵다는 방증일 수도 있고요.

질풍노도의 변성기 시절에는 하루빨리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답니다.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해서
두세 그릇씩 먹었던 기억도 나네요.

지금 돌이켜보면 부질없는 짓이었고
후회막급인 일이었지만 그 시절이 그립기는 합니다.

내 나이는 서른하나에서 멈췄습니다.
물론 유통기한을 표시하는 생물학적 나이는 서른하나를 훌쩍 넘겼지만
생각하는 꼬락서니가 그때랑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봐서
정신은 서른하나에서 멈춘 게 틀림없습니다.
그 시절이 지나고 보니 생각의 한계는 그때 이후로
늘어나질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쪼그라들고 있네요.

서른하나라는 나이는 어찌 보면 인생의 꼭지점 인지도 모릅니다.
무서움을 모르고 결과를 미리 예측하길 거부했던 십 대 시절,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고 사랑, 자유, 순수만 외치던 이십 대 시절을 지나
조용히 거울 앞에 서서 현실과 이상의 벽을 깨닫고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혀보고 싶은 서른하나의 시절은
머리와 가슴을 찬찬히 돌아보게 하는 전환점이 아니었나 싶네요.

서른하나는 현실과 타협한 첫 번째 나이일 수도 있네요.
주민세와 갑근세가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며
변화를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첫 번째 나이였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융통성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예쁜 처자를 보면 가슴이 설레고
밤샘을 하면 이튿날이 고역이지만 그 열정이 남아 있는 걸 보면
마음은 언제나 서른한 살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유통기한이 점점 다가올수록
여기저기 몸에서는 하자보수를 해 달라고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서른하나에서 멈췄기 때문에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요 푸른 봄입니다.

만약 마음마저 나이를 들어 버린다면
그 끔찍함을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요?

2008-03-09

樂書 다양성의 시대

다양성의 시대
그 사람이 여자가 아니라면 꼭 남자일까?

토끼의 착각
히말라야의 높은 산에 살고 있는 토끼가 주의해야 할 것은
자기가 평지에 살고 있는 코끼리보다 크다는 착각을 하지 않아야 된다.
- 신영복

사랑
사랑은 정성적으로 시작해서 정량적으로 끝난다.
plus면 계속 사랑하고 minus면 쫑낸다.
zero면 부산물을 보고 결정한다.

우정
고독을 없애주는 힘


양(量)이 질(質)을 변화시킨다.

빈 수레
빈 수레는 더 이상 요란하지 않다.
빈 수레는 가볍다.

혼자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외로운 이유
대신 돈 내줄 사람이 없어 외롭다.

선택과목의 중요성
가정식 백반은 질리지 않는데 가정은 가끔 질릴 때가 있다.
가정을 모른다.
난 공업을 배웠다.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은 아마 노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걸 느끼고
상대성 이론을 만들었을 게다.
나는 주말마다 체험하고 있다.

2008-03-04

인재가 떠나는 5가지 이유

인재, 왜 떠나는가?

① 개인의 성장 비전이 없으면 떠난다.
② 업무 과부하로 피로도가 누적될 때 떠난다.
③ 구성원 간 보상의 불공정성을 느낄 때 떠난다.
④ 감성이 결여된 메마른 문화일 때 떠난다.
⑤ 리더와의 갈등이 지속될 때 떠난다.

CEO Report/LG 주간경제 (20040707) 박지원 선임연구원

인재도 아닌 나는 왜 자꾸 떠나고 싶을까?
떠나고 싶은 생각만 들면 인재가 아닙니다.
인재는 어디서든 인재 취급을 받습니다.
떠나고 싶은 생각만 하는 나는 인재(人災) 인지도 모릅니다.

2008-03-03

첫 잔을 좋아했던 그녀


그녀는 예뻤다.

처음으로 소주를 마시게 된 날.
그녀는 술은 좋아하지만 잘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첫 잔만 마신다고 했다.
그녀가 말하는 첫 잔은
뚜껑을 따고 제일 처음 따르는 술을 의미했다.
그녀는 첫 잔을 따를 때 나는 소리가 좋다고 했다.
통통통통 거리며 나는 맑고 고운 소리는
첫 잔에서만 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예쁜 그녀에게 첫 잔을 따르려고
그녀가 좋아하는 맑고 고운 소리를 들려주려고
그날 나는 소주를 무지하게 많이 마셨다.

엊그제 밤에 가내음주를 하다 생각이 났다.
20년 전 일인데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소주 첫 잔을 따를 때 통통통통 소리를 들으면
그녀가 생각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