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31

화려한 휴가

나는 1984년 3월 2일생이다.
다시 태어나기 전
화려한 휴가는 빨갱이들의 난동인 줄 알았다.
그곳은 광주였다.
나는 1984년 3월 2일 다시 태어났다.
청춘, 꿈, 미래, 순수, 사랑, 열정, 변화, 파쇼, 혁명
그리고 민주주의……
캠퍼스에 배인 최루탄과 지랄탄 냄새가 암내인 줄 알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유행가였고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나의 유아교육 교재였다.
이러한 나를 요즘 386세대라 부른다.

이제 23살이다.
그러나 제조연월일은 40년이 넘었다.
좌우명은 事必歸正, 塞翁之馬
취미는 지난 신문보기
직업관과 경영방침 사이에서 고민한다.
생물학적 평균 유통기한이 절반을 넘어섰다.
진열대에서도 이제는 중간 한구석에 놓여 있다.
이마저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다.
로또대박 꿈을 꾸며 화려한 휴가를 계획한다.

청년은 이미 극한 이기주의자가 됐고 편집된 인생을 살고 있다.

2007-08-30

때로는

사랑을 알아?
…………

사랑을 믿어?
…………

사랑이 뭐야?
…………

나 사랑해?


…………

때로는 침묵 혹은 짧은 대답이 수많은
얘기를 대신해줄 때가 있다.

2007-08-25

간판과 사람

크고 화려해야 눈에 잘 띄고 장사가 잘 될 거라는 간판들.
옆집보다 더 크고 잘 보이게 하려고 점점 어지러워지는 간판들.
학력 위조하고 거짓말을 거짓말로 둘러대는 사람들.
슬쩍 내걸고 그런 간판이 걸려있는 줄 몰랐다는 사람들.

간판과 사람들은 닮았다.

아름다운 간판이 도시를 생기 있게 바꾼다.
생기 있는 도시가 사람을 아름답게 바꾼다.
간판이 사람을 바꾼다.
사람이 간판을 바꾼다.

간판과 사람들은 닮아가고 있다.

2007-08-19

일기예보와 정치인

요즘 일기예보 맞는 것 보셨나요?
내일 비가 온다는 마감뉴스를 보고 다음 날 일어나면
다시 내일 비가 올 거라며 하루 늦춰지곤 하지요.
막상 당일이 되면 불볕더위로 폭염 주의보가 내려져 있고요.
장마는 끝났습니다 라고 하니까 비가 엄청나게 오더군요.

일기예보가 뉴스 시간마다 달라집니다.
일기예보가 정치인을 닮아 갑니다.

도곡동 땅이 그 사람 땅인 줄 알았는데 제삼자 땅이라네요.
100년은 간다며 우리끼리 모여 축포를 쏘아 대더니
4년도 못 가서 지들끼리 간판을 내리네요.
이달 말에 차 타고 북으로 간다더니 시월로 느닷없이 바꾸기도 하고요.
오늘 비가 오면 이씨가 유리할지 박씨가 유리할지 저울질도 하네요.

정치가 거짓말을 하나요?
정치하는 인간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요.
날씨가 거짓말을 하나요?
날씨를 예측하지 못한 예보관이 곳에 따라 거짓말을 한 거지요.

정치인과 일기예보는 뉴스 시간마다 달라지고
일기예보는 정치인을 닮아 가지만 날씨가 정치를 따라 하지는 않지요.
대권 기상도를 그리는 어설픈 예보관들만 있을 뿐이지요.

2007-08-16

내가 무서워하는 사람

등산을 같이하기로 한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 남한산성 책 갖구와

지난 제헌절에 남문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남한산성을 일주하고 동동주를 한잔하며 이제 <남한산성>을 완독 해야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산행 길에 가지고 오라는 말이다. 내가 무서워하는 일이 닥쳤다.

사실 나는 책을 빌려 달라는 사람이 돈 빌려 달라는 사람보다 더 무섭다. 보너스 받은 날, 기가 막히게 알고 급하게 돈 빌려 달라는 친구에게 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니 통화 끝나기 무섭게 넣어 주곤 한다. 당장 통장이 바닥이라도 사정을 듣고 나면 현금 서비스라도 해서 넣어 주기도 했다.

급하게 빌린 돈은 여유가 되면 제일 먼저 돌려줘야 할 텐데 그 사람들은 까맣게 잊고 있는지 돌려받은 기억이 없다. 빌려 준 돈이야 어찌 보면 적은 액수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쌓이다 보니 지금은 조그마한 소도시에 집 한 채 값은 족히 될 듯싶다. 또 그런 돈은 날짜를 정해 돌려받을 생각도 없고 어쩌다 조금이라도 되돌려 주면 오히려 내가 고맙고 공돈을 받은 것 같으니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책 욕심은 있어 누가 빌려 달라고 하면 선뜻 내주기가 쉽지 않다. 가끔 서점에 가서 책을 훑어보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아예 두 권을 산다. 읽다 보면 이 책을 읽어 볼 사람이 떠오르고 한 권을 선물로 주곤 한다.

그동안 경험에 의하면 빌려 준 책을 한 번도 되돌려 받지를 못했다. 만원이면 살 수 있는 책을 빌려 달라는 사람 치고 열에 여덟은 다 읽지도 않고 한구석에 처박아 놓기 십상이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빌려 가서 되돌려 주지 않는 사람은 훔친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다. 눈 뜨고 있는데 코 베간 사람이다.

빌려 간 사람이야 까짓 돈 만원짜리 종이로도 생각하지 않겠지만 빌려 준 사람은 책꽂이가 허전한 게 맞추다 만 퍼즐 같은 기분이다. 다 읽었으면 돌려 달라는 말도 못 한다. 아직 다 읽지 못했다거나 행여 그 책이 어디 있더라 하며 기억을 더듬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다.

비가 와서 산행이 취소되는 것은 반갑지 않고, 둘러댈 핑계거리를 생각하느라 완소남은 더 작아진다.

2007-08-13

완소남

담배와 라이터를 잃어버리면 상처투성이 라이터만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옥션에서 10원 더 싼 물건을 찾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답니다. 명품 가방을 잃어버리고도 그 속에 든 허름한 만년필만 생각납니다. 계약서 뒷면에 붙이는 인지세는 계약금액이 커질수록 정말 아깝습니다. 만원짜리를 쓴 것보다 담배 사고 남은 오백원을 어디에 썼는지 생각합니다. 마트에서 1+1을 사면 나만 땡잡은 것 같습니다. 삼만구천구백원에 바지를 세벌 준다기에 어떤 색깔로 할지 고민합니다. 우유를 먹기로 하고 받은 황토쌀독에 든 쌀로 밥을 하면 밥맛이 더 납니다. 스끼다시를 너무 많이 먹어 회를 남겨도 배가 부릅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목청을 높여도 내 땅이 한 평도 없으니 무덤덤합니다. 촛불 들고 반미집회를 해도 누가 비행기만 태워주면 미국에 가고 싶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할 때 중국집 주문 메뉴나 통일했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여권이 후지다고 투덜대면서도 사증 도장은 또 찍고 싶답니다.

현충일에 걸린 태극기를 봐도 무덤덤한데 오래된 책을 넘기다 떨어지는 만원짜리에 가슴이 울컥합니다. 니 똥 굵다, 그러면 물 내리기 전에 내 똥을 내려다봅니다. 굵고 짧게 살래, 가늘고 길게 살래 물으면 벽에 굵은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니 꿈은 뭐였니...라고 물으면 요새는 꿈도 못 꿔...라고 대답합니다.

나는 정말 완전 소심한 남자입니다.

2007-08-10

끼니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 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197쪽)

칼의 노래/김훈/생각의나무 20011031 389쪽 11000원

2007-08-09

나는 촌놈이어서 좋다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특혜다. 요즘 어린이들은 방학만 되면 농촌체험을 하러 부모님 손을 잡고 줄줄이 도시를 떠난다. 학교와 학원 사이에서 쳇바퀴 도는 비슷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곳은 금대국민학교 애신분교다. 요즘 아이들에게 얘기하면 무슨 소리인지 씨도 안 먹힐 소리지만 사실이다.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달고 아버지 꽁무니를 따라간 입학식에 신입생이라고 한 줄로 서 있지만 산골동네에서 같이 멱감고 소꿉놀이하던 코흘리개 친구들 대여섯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입학 기념으로 책가방을 선물로 받고 그것을 메고 다닌 놈은 내가 유일했다. 밤색 가죽 책가방을 메고 다닐 때 모두가 보자기를 둘둘 말아서 등판에 가로질러 둘러메고 다녔다. 산동네 맨 꼭대기에 사는 놈이 내려오면서 친구들을 하나씩 불러 모아 고개를 하나 넘어 가는 등교 길은 지루하지 않았다. 매일 보는 나무고 풀인데도 지날 때마다 새로워 보였다. 어쩌다 새집이라도 발견하면 오가며 들여다 보고 새끼들은 얼마나 컸는지 보는 게 즐거움이었다.

교실은 달랑 3개뿐이었고 두 개 학년이 한 교실을 반씩 나누어 썼다. 선생님은 두 분뿐이었고 한 학년을 가르치는 동안 옆에 있는 학년은 숙제를 하거나 자습을 했다. 교과서가 없어 선생님이 칠판에 판서를 하면 누런 공책에 옮겨 적거나 그나마 공책이 없는 친구는 눈으로 따라 읽고 손가락으로 책상에 적었다. 이십여 일이 지나서 아버지가 시내에서 국어와 산수 헌책 3권을 사 오셨다. 우리는 그것을 서로 돌려 보며 일학년을 보냈다. 첫 통지표는 모두 '우'였다. 동네 형은 우등상은 안 받았느냐고 물었다. 우등상이 뭔지 모르는 나는 통지표에 모두 우를 받으면 주는 상인 줄 알았다.

방학이라고 해봤자 특별한 것이 없다. 학교에서 보내던 시간만큼 더 놀면 그만이었다. 냇가 옆에 있는 개복숭아 나무에서 설익은 복숭아를 따서 물속에 던져 넣고 누가 먼저 꺼내 오나 자맥질을 하면서 온종일 보냈다. 그 냇가에는 전교생의 절반은 항상 나와서 발가벗고 멱을 감았다. 입술이 파래지도록 놀다 추우면 그대로 누워 몸을 말리면 됐다. 방학숙제를 한 기억이 없다. 교과서도 없는 판국에 숙제를 내 줄 형편이 안됐다. 그렇게 여름 내내 멱감고 매미 잡은 기억만 있다.

이학년이 됐지만 교실을 옮길 필요가 없었다. 삼학년이 된 언니들이 옆 교실로 가고 새로 들어온 신입생 몇 놈이 그 자리에 대신 앉아 우리가 물려준 헌책으로 철수와 영희와 바둑이를 따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구구단을 한쪽 칠판에 적어 놓고 산수 시간만 되면 장단에 맞춰 이단부터 구단까지 흥얼거렸다. 한 달은 족히 그랬던 것 같다. 그해 봄이 다 가기 전 신통하게도 내가 맨 처음으로 구구단을 깨우쳤다. 만화책은 옆집-담장을 사이에 둔 그런 옆집이 아닌- 형이 어디서 구했는지 다 떨어진 소년 월간지를 들고 낄낄대고 있기에 옆에서 같이 처음으로 보게 됐다. 이런 신기한 세상이 있다는 걸 난생처음 알게 됐다. 몇 번을 보고 또 봐도 항상 재미있었다. 그 감동과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해 겨울 방학에 시내로 이사를 했다. 개학이 돼 교실에 가보니 애들이 너무 많아 당황했다. 교과서도 공짜로 나눠 주었다. 신입생이 돼 여름 방학에 서울에서 내려온 사촌 동생은 오후반이라고 했다. 서울은 애들이 너무 많아 한 교실에 다 앉아 배울 수가 없어 오전 오후로 나눠서 등교한다고 했다. 남의 나라 얘기처럼 신기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시골생활이자 여름 방학이다. 그 후 학창생활은 다른 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을 경험한 친구들이 주위에는 없다. 교과서가 없어 헌 책을 돌려 봤다는 얘기를 듣는 이들은 껄껄 웃지만 그런 경험을 한 나를 조금은 부러워하는 눈치다. 시골에서 자라다 도시로 나와 공부한 촌놈에게 다시 돌아갈 고향 같은 여름 방학의 기억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나는 애신분교에 입학했었다는 사실이 즐겁다. 나는 촌놈이어서 좋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그리워하는데 방학 때만 잠시 뛰어노는 아이들은 과연 나이가 들면서 무엇을 그리워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와 같은 기억들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방학 때 서울서 동생이 들고 올 종합선물세트를 기다리는 설레임이나 말린 고사리며 옥수수를 싸들고 올라가는 동생의 기쁨을 모른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런 여름 방학을 만든 모든 것이 우리의 죄다.

2007-08-08

파피용

#1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세 가지 적과 맞서게 되지. 첫 번째는 그 시도와 정반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두 번째는 똑같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지. 이들은 자네가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생각하고 자네를 때려눕힐 때를 엿보고 있다가 순식간에 자네 아이디어를 베껴 버린다네. 세 번째는 아무것도 하지는 않으면서 일체의 변화와 독창적인 시도에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다수의 사람들이지. 세 번째 부류가 수적으로 가장 우세하고, 또 가장 악착같이 달려들어 자네의 프로젝트를 방해할 걸세. (49쪽)

#2
제 생각에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인, 군인, 목사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정부도 군대도 종교도 없는 최초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권력과 폭력, 신앙 이 세 가지야말로 대표적인 의존형태지요. (98쪽)

#3
<역설>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밤보다는 낮에 더 잘 보인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틀린 생각이에요. 낮에는 기껏해야 수십 킬로미터 밖에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하늘에 있는 구름과 대기층 때문에 우리 시야가 제한되죠. 하지만 밤에는...... 밤에는 몇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별들도 눈에 보이죠. 밤에는 멀리 보입니다. 우주를, 그리고 시간을 보는 겁니다. (114쪽)

#4
그녀의 주례사는 <이제 두 사람은, 사랑이 식어 서로 헤어지는 순간까지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고 마치곤 했다. <유머리스트> 질은 자신의 공연 레퍼토리에 이를 패러디한 냉소적인 문장을 하나 넣었다. <이제 두 사람은......둘 중 하나가 더 괜찮은 사람을 찾기 전까지 서로 하나가 되어 상대방에게 충실합니다.> (221쪽)

#5
우리가 현재 상태에 절대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소. 인간은 지구에 있을 땐 우주로 떠나고 싶어 하지. 그리고 우주에 있으면 다시 지구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고. (266쪽)

#6
인류는 환생하는 거야. 다시 태어날 때마다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지구라고 부르는 행성에 자기 혼자 존재한다고 믿는 거지. (388쪽)

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전미연 역/열린책들 20070710 433쪽 10800원

2007-08-07

남한산성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9쪽)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32쪽)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38쪽)

- 전하, 이제 화친의 길을 끊고 싸움의 길로 나섰으니 한 사람의 목을 베어 길을 분명히 밝혀주소서.
임금이 말했다.
- 그 한 사람이 누구냐?
- 이조판서 최, 명, 길이옵니다. (201쪽)

임금은 말했다.
- 애초에 화친하자는 명길의 말을 쓰지 않아서 산성으로 쫓겨오는 지경이 되었다고들 하면서, 이제 명길을 죽여서 성을 지키자고 하니 듣기에 괴이하다. (209쪽)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244쪽)

김상헌이 말했다.
- 전하, 명길은 전하를 앞세우고 적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려는 자이옵니다. 죽음에도 아름다운 자리가 있을진대, 하필 적의 아가리 속이겠나이까?
최명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 전하, 살기 위해서는 가지 못할 길이 없고, 적의 아가리 속에도 삶의 길은 있을 것이옵니다. 적이 성을 깨뜨리기 전에 성단을 내려주소서. (270쪽)

최명길이 말했다.
-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것이옵니다. (339쪽)

임금은 새벽에 성을 나섰다. (352쪽)

남한산성/김훈/학고재 20070414 384쪽 11000원

2007-08-06

시라는 것은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본디 비겁하다면
제아무리 고상한 표현을 하려 해도
이치에 맞지 않으며,
사상이 본디 협애하다면
제아무리 광활한 묘사를 하려 해도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때문에 시를 쓰려고 할 때는
그 사상부터 단련하지 않으면
똥무더기 속에서 깨끗한 물을
떠내는 것과 같아서
일생토록 애를 써도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묻은 잔재를 씻어내고
그 깨끗한 진수를 발전시키면 된다.

- 茶山 정약용

2007-08-05

樂書 살맛안나

제로섬
주식시장에 있는 섬.
먹는 놈이 있으면 토하는 놈도 있는 아주 공평한 섬.

첫사랑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묻어둔다.
여자는 첫사랑을 가슴에서 도려낸다.

살아가는 법
남자는 고독하다.
여자는 독하다.

모순
라식수술을 설명하는 의사 선생님은 안경을 쓰고 계신다.

살맛안나
식인종이 밥투정할 때 하는 말.
요즘 식인종이 돼가는 사람이 늘어난다.

S 라인
입에 문 치약 거품이 배꼽으로 떨어지는 몸매

2007-08-04

D+200, 술 권하는 사회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 마지막 구절이다. 대한민국은 술 권하는 사회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싫어도 마셔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술 한 잔 하지 않으면 서로 가까워지지 않은 것 같고 서먹서먹하다. 밤늦게까지 어깨동무를 하며 마셔야지 친해진 것 같고 중간에 도망간 놈은 배신자로 낙인이 찍힌다. 그런 사회다.

정초면 3금(禁煙, 禁酒, 禁錢)을 결심하는데 오늘이 금주를 시작한지 200일째 되는 날이다. 금연 결심은 번번이 무너지곤 했는데 금주 결심이 100일이 넘어간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대학에 복학하던 해. 정초부터 금주를 하다 100일째 되는 날, 사회학 강사가 된 선배가 자기 과목을 수강하는 동문 후배에게 생맥주를 하사하는 바람에 깨졌다.

7~8년 전, 한참 달리기에 취미가 붙어 새벽에 십리 길을 달리고 퇴근해서 이십 리를 달릴 때는 술 생각이 전혀 나질 않았다. 퇴근 무렵 누가 공술을 사준다 해도 오로지 달리는 즐거움에 그 소리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반년을 달리다 연말 송년회 자리에 참석해서 소주 첫 잔을 입에 대면서 아주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이 두 번째 금주의 기억이다.

그동안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등산하고 내려오는 길에 도토리묵에 한두 잔씩 마신 동동주가 전부다. 아니 딱 한 번 어쩔 수 없이 삼겹살에 소주 한 병 마셨다. 그게 전부다. 절대로 알코올을 입에 대지 않아야 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라면 할 말이 없다. 자발적 의지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핑계로 너그럽게 넘어간다면 200일 동안 금주를 했다.

전보다 몸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정황도 없고, 가끔 부슬부슬 비가 내리면 막걸리와 파전이 생각나지만 그전만큼 강하게 이끌리지는 않는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겠다는 호언장담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사회가 술을 권한다는 탓은 하지 않을 듯싶다. 모든 게 다 내 탓이다. 이것이 술을 마시지 않으며 얻은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