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7-31

정원 일의 즐거움

#1
농촌 생활은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거칠지는 않지만 온화한 것도 아니다. 정신적이거나 영웅적인 생활도 아니다. 하지만 마치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고향처럼 모든 정신적인 인간과 영웅적인 인간의 마음을 그 깊은 곳까지 끌어 당긴다. 왜냐하면 이런 것이야말로 가장 오래 존속돼 온 가장 소박하고 경건한 인간생활이기 때문이다.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근면과 노고로 가득 차 있으나 성급함이 없고 걱정 따위도 없다. 그런 생활 밑바닥에는 경건함이 있다. 대지, 물, 공기, 사계절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이 잇고 식물과 동물 들이 지닌 생명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다. (126쪽)

#2
세계는 작아졌어. 노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평생 동안 이 노인은 무수한 사람들을 만났고, 높은 관직들을 거쳤으며, 전세계를 여행하며 돌아다녔다. 그는 괴테처럼 "모든 태양의 빛과 모든 나무들과 모든 해안, 모든 꿈을 마음속에 함께 붙들어보고 싶다."는 동경을 끊임없이 키웠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노인의 활동 공간은 그의 좁은 정원 안으로 한정되었다. 나무와 풀, 관목과 꽃 들이 자라는 화단과 친숙해진 그는 직접 화단을 가꾸고 자신의 생각대로 형태를 만들고 스스로 관리했다. 그렇다고 노인의 생활이 전보다 덜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작은 장미 화단조차 해안이나 넓은 세계처럼 감각과 관념에 의해 다 퍼올릴 수 없음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소유란 무엇이든지 제한적인 것이었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건 바로 체념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체념하는 일은, 미소와 명상을 통해 성스럽게 변모되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220쪽)

#3
중국의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같은 인물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반복해서 나온단다. 젊은 시절에 그 사람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여 직업을 갖기 위해 무언가를 배운다. 성인이 되어서는 결혼을 하고 가족을 보살피며 살아간다. 그러다 조국애를 배우고 무엇보다 선조와 자손의 일을 염려하게 되지. 그는 열심히 일하고 유익한 사람이 되어, 나서서 국가를 끌어가는 일을 돕는다. 그러나 결국 나이를 먹게 되자 자신이 여전히 고독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해온 모든 일들이 이기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서, 어느 날 밤 집과 논밭, 아내, 하인들, 직무와 서책을 모두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자신의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산 속으로 들어가 이슬과 꽃잎만을 먹고살면서, 자신에게 붙어 있던 껍질을 모두 벗어던져 버린다. 그러고 나서 그는 不死의 사람들 사이에 끼게 된다. (246쪽)

정원 일의 즐거움/헤르만 헤세/두행숙 역/이레 20011031 324쪽 12000원

2007-07-28

개만도 못한 인간

지난 주말에 등산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에어컨 바람이 춥게 느껴지더니만 짐작대로 이틀 지나니까 콧물이 나오고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얼른 약국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감기약 좀 주세요"
"증상이 어떠세요?"

약사는 에어컨 바람 좀 작작 쐬라는 눈으로 묻고는 이틀치를 줬다.

다행히 약을 먹고 하루 지나니 콧물이 멎기 시작하고 이틀분을 다 먹으니 정상으로 회복이 됐다. 이틀 동안 약만 먹으면 졸려서 봄볕에 쪼그리고 앉은 병아리 새끼처럼 시도 때도 없이 졸면서 보냈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고 하는데 그만 감기에 걸렸다. 이틀이지만 개만도 못한 인간이 돼 버렸다. 듣는 개가 있으면 왜 꼭 비교를 해도 개와 비교하느냐고 기분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개가 기준점이 돼 버렸다. 개똥철학도 있고 술 먹으면 개가 된다는 말도 있다. 개새끼는 그나마 나은 욕이다. 개만도 못한 놈에 비하면.

가만히 개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억울한 면이 참 많을 듯싶다. 개는 개답게 사는 것뿐인데 자꾸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인간들을 찍어다 붙이니 억울한 면이 참 많겠다. 그네들은 오히려 인간만도 못한 개라는 아주 심한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잠시 개만도 못한 인간이 돼 봤지만 개들 눈에 우리만도 못한 인간으로 비치지 않는지 조심스러워진다. 사람 목숨을 볼모로 흥정을 하는 인간들, 군대를 두 번 가야 하는 인간들, 가짜 참기름을 유통한 인간들, 탈세한 인간들. 개들이 보고 있어요.

2007-07-27

악랄한 자

악랄한 자란 진리를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의 이해가 거기에 일치하는 경우에만 진리를 지지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일단 자신의 이해에서 벗어나면 진리를 버리고 돌보지 않는다. (팡세 583)

우리는 악랄한 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랄한 자가 버려진 진리를 돌보지 못하게 하려고 불의를 직권상정하여 산성처럼 쌓아올린 담을 허무느라 손톱이 뭉그러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악랄한 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악랄한 자를 허무느라 정작 기다리던 내일이라는 열차를 놓치는 것입니다.

2007-07-25

테세우스의 배

#1
백 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테세우스의 배가 있다. 그런데 한 조각이 떨어져나가 다른 조각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부분적인 공사가 진행되어 결국엔 백 조각 모두를 다른 조각으로 대체했다. 이 경우 새로 보수된 배는 원래의 배와 동일한 배인가, 아닌가? 즉 모든 조각을 대체했음에도 원래의 배는 정체성을 유지하는가의 문제이다. 또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자. 테세우스의 배를 한 조각씩 옮겨서 원래의 배와 동일한 순서와 구조로 재조립했다면, 그 배는 원래의 배인가, 아닌가? 그리고 한 조각씩 옮기면서 그 자리에 다른 조각을 하나씩 붙여놓았다면, 그 배는 원래의 배가 지녔던 정체성을 유지하는가, 상실하는가? (31쪽)

#2
철학은 빵을 구울 수 없다고 한다. 철학의 무용함과 비현실성을 지적한 말이라 짐작한다. 사실 철학은 빵을 구울 수 없다. 하지만 왜 빵을 구워야 하는지, 더 나아가 왜 빵을 먹어야 하는지를 말해줄 수 있다. 철학이 꼭 빵을 구워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못하고 빵을 굽는 이유, 빵을 먹는 이유도 알아야 한다. (118쪽)

한국의 정체성/탁석산/책세상 20011231 143쪽 4900원

2007-07-20

거짓말은 계가(計家)도 못하고 끝난다


작금(昨今) 강호(江湖)는 화려한 무공으로 신출귀몰하며 흥미진진한 공방전을 펼치는 세 가지 사건으로 시끌시끌하다.

정치 난장(政治亂張)에서는 뒤통수를 치는 건 예사고 암기도 서슴없이 날리며 대권지존 유일종사(大權至尊 唯一宗師) 자리를 차지하려고 딴나라 무림도장의 후보검증 수련대회에 참가해 혈투를 벌이는 의남매가 관전의 재미를 주고 있다. 정치 난장판에서 강력한 쌍벽이었던 열린뚜껑파가 지존의 은퇴를 앞두고 잠시 사분오열되어 서로 적통임을 내세우며 암중모색(暗中摸索)인 가운데 딴나라파 의남매는 본선도 나가기 전 백척간두에 서서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절대무공을 내뿜으며 용쟁호투(龍爭虎鬪)를 벌일 것이라는 건 그 바닥 생존비법이 된지 오래다.

화류계(花柳界)는 평소 사이비(似而非) 같은 춤과 노래로 아무 생각없이 딴따라 판을 달궜던 싸이(四異)라는 가객무사(歌客無思)가 병졸로 다시 군대에 가니 마니 하며 병조 직속기관인 병무도감을 향해 감히 전가게시 묵필신공(電家揭示 墨筆新攻)이라는 최신예기(最新銳氣)를 날리더니 급기야 행정소송이라는 시간지연술(時間遲延術)을 펼치고 있다. 시간지연술은 정도가 아닌 사술(邪術)이어서 절대 안쓴다며 병무도감을 안심시키고 순식간에 말을 뒤집는 현란한 반전(反轉)의 절정을 보여 주고 있다. 실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대단한 허허실실 무공이다.

한편, 점잖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묵객 거리(墨客距離)는 십여 년을 암중비약하던 신정아(新靜雅)라는 처녀 고수가 공력은커녕 출신 도장과 계보가 허위로 밝혀지며 심한 내상을 입고 후일을 기약하며 바다 건너에 있다는 미국(米國)으로 잠행비행(潛行飛行) 경공술(輕功術)로 피하자마자 후환을 두려워하는 무리가 스스로 자신의 수학능력을 공개하고 있어 그야말로 아수라장(阿修羅場)이다.

저들이 쓰는 공법의 공통점은 위계신공(僞計新攻)이라 하는 무시무시한 절대비책(絶對秘策)이다. 위계신공은 연마하기도 간단할뿐더러 한 번 시연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펼치기 시작하면 주위의 모든 눈과 귀를 무색무취로 현혹할 수 있고 급기야는 자신마저 위계신공에 사로잡히는 무서운 필살기다.

위계신공은 출발은 보잘 것 없으나 한 번 두 번 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결국에는 공력을 사용한 고수마저 주화입마(走火入魔)의 지경에 이르게 한다. 그리하여 강호에서는 위계신공을 펼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내려오고 있다. 무림계를 모르는 평인(平人)들은 그들을 일컬어 대사기꾼(大詐欺君)이라 칭하고 위계신공을 흔히 거짓말이라고 편하게 부른다.

그동안 금지된 위계신공의 유혹을 이길 수 없어 화려한 사위(詐僞)를 펼치다 회복불능의 상태가 돼 강호를 떠난 초절정 고수들이 부지기수다. 신정아(新靜牙) 고수가 잠행한 미국(米國)엔 수지추문(水之醜聞, Watergate)으로 만신창이가 돼 쓸쓸히 백악관(白堊館)을 떠난 닉수거사(匿囚居士,Richard Milhous Nixon) 얘기는 전설이 된 지 오래다.

근자에는 승준도령(Steve Seungjun Yoo)이 병졸로 군대에 꼬~옥 간다며 초보 위계신공을 쓰다 강호에서 영원히 추방되었고, 정지영 아줌마(亞主魔)는 마시멜로 이야기를 자신의 지공(指攻)으로 번역탈고(飜譯脫稿)했다며 위계신공을 몇 번 써보지도 못하다 힘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줄기세포 복제술 대가 황우석 박사(博士)는 조정(朝廷)은 물론 백전노장이 즐비한 학계에서 위계신공의 절정을 보여주다 신진 과학파(新進 科學派)들의 반격으로 시작돼 포도청 내사(內査)까지 받음으로써 황우거석(黃愚巨石)이 돼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기도 했다.

그 중 백미는 절대강자 회창지존(會昌至尊)의 삼풍일화(三風逸話)다. 이른바 병풍(兵風), 총풍(銃風), 세풍(稅風)으로 불리는 위계신공의 초절정 신풍(迅風)은 결국 회창지존의 육십갑자 내공(六十甲子 內空)을 다 소모시키며 주화입마에 빠져들게 하여 강호를 떠나 은둔하게 만들었다. 요즘 기운을 차렸는지 저잣거리에 가끔 나타나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를 않는다.

이에 너저분한 강호무림을 안주 삼아 노닥거리는 卒夫裸無가 한마디 안 할 수가 없구려.

僞計新攻 必不計敗
詐欺行者 犬亡身終

자고로 거짓말은 계가(計家)도 해 보지 못하고 끝나고
 사기친 놈은 결국 개망신 당한다는 걸 왜 모르는고.    

2007-07-19

빗소리 들으며

요즘은 비 오는 소리가 참 좋아집니다. 오늘처럼 밤에 내리는 빗소리는 더더욱 그렇답니다. 천방지축 날뛸 때 느끼지 못한 차분함이 있어요. 비 오는 소리를 독차지하고 남몰래 꺼내서 듣는 느낌입니다.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오래된 책을 꺼내 펼쳤을 때 떨어지는 단풍잎처럼 추억이 하나씩 떨어집니다. 첫사랑과 헤어질 때 꼭 오늘같이 비가 내렸던 것 같습니다.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도 생각이 나고 생머리를 흩날리던 그 소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고 싶습니다.

빗소리가 가늘어지며 처마 끝에서 똑똑 떨어지는 소리는 잠시나마 순수하게 만듭니다. 이팔청춘으로 되돌아간 것도 아닐 터이고 갑자기 개과천선하여 순한 양이 된 것도 아닌데 예전에 느끼지 못한 순수함이 있어요.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더 착해진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가 봅니다. 극장에 앉아 슬픈 영화를 볼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슬쩍 삐져나올 것 같네요.

그렇다고 너무 많이 내려 슬퍼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저 순수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부록의 인생이 비 맞은 땡추처럼 주절거리며 어깨에 놓인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만큼만 딱 고만큼만 내려 주길 바랍니다.

2007-07-15

대한민국 사용후기

#1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 앞에서 미소를 짓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정신병자나 얼간이가 아니면 아무도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예쁜 여자에게 미소를 지으면, 못 본 척 외면하거나 아니면 무슨 변태라도 만난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눈길을 돌려 버린다. 인도네시아 사람에게 미소는 미소일 뿐이며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주고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일 뿐이다. 그들은 미소가 사회 전체에 활력을 북돋는 이외의 어떤 불순한 의도도 개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만큼 세련된 사람들이다. (23쪽)

#2
하지만 많은 도덕주의자, 돈에 눈먼 개발업자, 도심의 고급화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낡아빠진 이 오욕의 전당을 관광객들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낙원동 빈민가로 밀어낸 것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성인들 사이의 합의에 의해 성(性)을 사고파는 것과, 단지 돈을 벌려고 자기 자신의 역사를 강간하는 것, 둘 가운데 무엇이 더 나쁜지는 선뜻 판단하기 어렵다. (57쪽)

#3
이른바 '네티즌'이라 불리는 인간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유치하고 막돼먹은 행동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자신들에게 붙은 '네티즌(인터넷 시민)'이라는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진정한 시민은 현실 세계든 온라인에서든 언제나 자기가 속한 정치적 공동체의 성숙하고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행동한다. (71쪽)

#4
전 세계 주요 대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에만 차이나타운이 없는데는 구체적인 역사적, 법적 이유가 있다. 그리고 비한국인이 한국 땅에서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경우 즉시 제 발로 이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강제 추방을 면치 못한다. 한국 사회에 성, 나이, 지역, 계급, 교육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민족적, 이종적 배경을 가진 비한국인에 대한 차별도 엄연히 존재하며, 당장 나 자신부터 일개 소수자로서 그 같은 편견과 차별을 수시로 경험하고 있다. (125쪽)

#5
쿨한 것과 잘난 척하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인간들, 정말 싫다. 그 차이가 뭔지 아냐? 간단하다. 쿨한 사람은 절대 쿨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는 사람은 쿨하게 보이려고 겁나게 애쓴다. (172쪽)

대한민국 사용후기/J. 스콧 버거슨/안종설 역/갤리온 20070409 255쪽 12000원

2007-07-14

햇살

건조한 시간 사이로
미소 지으며 다가온 햇살에
차마 눈을 뜨지 못했지
만남은 원래 그런 거
설레는 만큼 눈부시다

빛바랜 가로등 아래
낯가림하는 손끝이 마주치다
시나브로 끌어안은 입술
사랑은 원래 그런 거
어색한 만큼 익숙해진다

미안해요 안녕
기별 없이 가 버린 햇살은
마저 못다 준 미래를 놓고 갔다
이별은 원래 그런 거
더 사랑할 만큼 슬퍼진다

널 놓아주지 않는 계절은
찢어 놓고 덮어 버릴수록
어김없이 돌아오곤 한다
기억은 원래 그런 거
지우면 지운만큼 생각난다

이제는 익숙해진 가로등과
만날수록 어색해지는 그림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서 있다
인생은 원래 그런 거
기다린 만큼 또 만날 수 있겠지

2007-07-11

나는 마흔이 좋다

#1
불혹의 나이가 그런 모양이다. 아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아들을 통해 나의 아버지를 돌아보는 나이가 불혹인 모양이다. (96쪽)

#2
어쨌거나 '좋은' 직장을 박차고 나와서 보란 듯이 잘 먹고 잘살았는지 이야기할 순서인 것 같은데 임금 피크제라는 것을 갖고 설명해 보면 어떨까 싶다. 나이나 경력이 최고 수준에 도달한 후 일정 단계를 넘으면 다시 임금이 인하되면서 일자리를 보장받는 똑똑한 제도 말이다. 개인의 수입이나 재산에도 이런 개념을 적용하면 나의 경우도 재산상의 피크를 지나 이제는 하강곡선을 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얼마 안 되는 재산이나마 까먹고 있다는 얘기다. (126쪽)

#3
외국계 회사에 다닐 때 내가 모시던 영국인 사장은 늘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나오고 또 그만큼 일찍 퇴근하곤 하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아침 시간에 집에 있어봐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집안일을 도울 수도 없을 뿐더러 또한 일찍 출근해야 어느 직원이 부지런한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었고, 퇴근을 서둘러 하는 이유는 집에 가서 할 일이 많다는 것과 사장이 자리에 없어야 혹 일이 있어 빨리 퇴근하려는 부하 직원들이 눈치 안 보고 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정과 회사 두 분야를 고루 배려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148쪽)

#4
우리 사회가 너무 빨리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후배들과 우리는 전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자라왔는지도 모른다. 단칸방에서 대여섯 식구가 함께 생활하거나 국가가 두발과 복장까지 관리하던 사회에서 자라던 우리들과 80년대에 태어난 후배들이, 또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50대 선배들이 서로를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처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선배들을 보면서 가책을 느끼고 후배들을 보면서 낯설어하는 일이 우리 세대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늘 이렇게 이어져오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들을 어느 누군가는 낯설어하면서 말이다. (198쪽)

#5
그런 반성 끝에 이 나이는 한없이 쑥쓰러운 것이다.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강팀을 만나 전반전은 1:0으로 끝났고, 후반전이 시작된 지 10여 분 경과한 시점이 이 나이다. 동점이라도 만들 수 있을까 불안한 나이다. 어렵게 동점이라도 만든다면 '등'의 땀이라도 닦을 최후의 여유라도 주어질 것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설령 2:0으로 끝난들 어떠랴. 나는 당당히 이 시합에 출전했고, 휘슬이 울릴 때까지 열심히 뛰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리라. 더 이상 인생의 승패에 매달리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이 시합을 마치는 것, 그뿐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 시합의 당당한 주전선수 아니었던가? (241쪽)

나는 마흔이 좋다/한재희 등/마고북스 20070409 255쪽 9800원

2007-07-07

경쟁력 제고를 위한 조직분위기 활성화 방안

목     차
1. 머리말
2. 소집단 활동과 도전의식
3. 고객중심의 업무
4. 기본을 지키는 기업문화
5. 비젼을 위한 장기적 혁신운동 전개
6. 결론

1. 머리말

우리는 흔히 "기업은 유기체다"라고 말한다. 이는 기업은 많은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고 조직은 사람 즉 인적자원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뜻한다. 인적자원이란 스스로 성찰하고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방식으로든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기업이 유기체라는 것은 결국 그 기업체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초일류 기업은 조직 속에서 시너지 효과를 통해 효력을 나타 낼 수 있다. 조직은 적대적인 풍토에서는 생존할 수 없고, 구성원의 관심과 지원 없이는 현존할 수 없다. 기업과 조직, 조직과 구성원은 분리할 수 없으며 동일한 환경에 일치된 행동으로 적응해 가야만 한다.

지금 우리의 경영환경은 외적으로는 경기침체와 국경 없는 가격경쟁, 신노사관계로 인하여 무한경쟁의 시대를 지나 적자생존의 시기에 이미 접어들었고, 내적으로는 현상유지와 책임의식이 부족한 수동적인 자세와 과거지향적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심각한 경영현안에 대하여 구성원 간의 인식에 대한 공유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만 느끼고 있다. 그럼으로써 위기의식에 대한 적응 자세가 피동적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비관적인 물음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현상을 타파하고 개척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해답을 구해야만 한다. 그 해답은 여러 방면에 걸쳐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지만 결국 경쟁력의 기본은 조직을 구성하는 인적자원이다. 갈수록 첨단화되고 세계화되는 시장에서 구성원 하나하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구성원 또는 그가 속한 조직의 분위기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찾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은 경쟁력 제고의 기본이라 할 수 있겠다.

2. 소집단 활동과 도전의식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개선하여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자세는 도전의식에서 시작한다.

소집단 활동의 목적은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를 가급적 최대한 달성하여 회사에 알려주는 데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스스로 정한 기준과 비교하여 생산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구체적이고 정형화된 결과를 제시하여야 한다. 활동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소집단 활동을 위해서는 적절한 자율시간(3M사의 경우 15% 정도)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 시간을 통해 그룹을 형성하여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다. 이때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고서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일러주는 것보다 훨씬 더 회사에 도움이 된다. 구성원이 진실로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성사가 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유연하지 못한 조직에게 있는 것이다.

시간과 창의력도 있어야 하지만 비용도 든다. 그러나 좋은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지원금은 지급해도 그것이 성공하였다면 금전적인 보상은 없어야 한다. 현금으로 보상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구성원(또는 소집단)들은 서로가 정보를 교환하지 않고 자기 아이디어를 보호하려고 한다. 소집단 활동의 승패는 기술과 정보를 지속적으로 교환하고 공유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금보상이 없다는 것은 소집단 활동의 실패에 대해서도 벌금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도 창조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실패한 사례도 노하우로 인정을 하여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도전의식이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다양한 기능의 구성원들이 현 위치에서 나름대로 공헌을 해야 한다는 자세와 또 좋은 아이디어를 자꾸 생각해 내는 창조 심리를 자극하고 동기를 부여하여야 한다. 즉 TOP이 문제를 제기하고 BOTTOM이 해결방안을 제시해나가는 것이 요구된다.

3. 고객중심의 업무

지금은 고객만족(CS)의 시대다. 우리는 흔히 고객이라면 제품의 최종 소비자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매체를 통해보면 고객은 내부고객과 외부고객으로 나눌 수 있다. 외부고객은 물론 제품의 최종 소비자를 말하며 내부고객은 "내 일의 결과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객의 개념을 외부고객으로만 한정해서 업무를 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내 일의 결과를 사용하는 사람 즉 내부고객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업무처리가 경직화되고 관료주의적 성격이 나타나곤 한다.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모든 업무가 고객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고객중심의 업무처리를 하게 되면 고객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신경 쓰게 되고 상대방의 요구를 충족시키려고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부서의 업무가 내부 구성원이 아닌 고객에게 향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의 부서가 아니라 서비스를 창출하는 개념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 부서 이익 또는 개인적 이익만을 생각하고 행해지는 업무는 고객에게 원치 않는 서비스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너무 자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고객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기 쉽기 때문이다.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는 고객감동에 관한 교육이나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행할 필요가 있다. 일의 존재가치가 고객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조직 내에서는 동료나 타 부서도 고객으로 인식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고객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 구성원 모두가 상호 고객이 된다. 일의 종류에 따라 자신과 상대방이 서로 고객의 입장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관리편의주의나 수동적인 업무형태는 사라질 것이다.

4. 기본을 지키는 기업문화

현대에 와서 기업을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요소로써 기업문화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기업문화는 구성원의 업무 방식은 물론 사물을 보는 견해와 사고방식, 행동까지 규정한다. 그러므로 기업의 문화라는 것은 그 조직의 소프트웨어이자 무형의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무형의 자산인 기업문화는 내부적으로는 구성원 각자의 삶과 일의 보람을 방향 지울 수 있고, 대외적으로는 기업의 이미지가 된다. 따라서 기업의 생명을 제어하는 전략적인 테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기본 지키기를 꾸준히 전개해 왔다. 정해진 규칙과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그것을 위반했을 때는 명확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안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로 필요하고 지키는데 불편함이 없게 단순하고 규격화된 가치, 시스템, 행동양식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표준이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효용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지킬 수 있도록 단순하고 간단한 실질적인 생활방식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한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활발하게 의견이 교환되는 활기찬 조직으로 될 것이다. 구성원에 있어서 회사는 단순한 직장이 아닌 인생과 생활의 터전이다.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은 동기부여와 만족감을 통한 성취의욕으로 이어져 상호 개선 업무에 대한 협력된 분위기를 만들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게 할 수 있다.

기본 지키기 하드웨어를 수정, 보완하는 과정에서 조직의 성격이 형성되고 그것이 마침내는 기업문화로 이어져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기업문화가 되어야 한다.

5. 비전을 위한 장기적 혁신운동 전개

현상을 개선하여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혁신은 회사의 위기의식을 전 구성원에게 확산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하여 달성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성패의 열쇠는 구성원이 위기감을 실감하고 있느냐 하는 데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절박감으로 필사적인 선택을 하여야만 한다. 경영현안에 대한 구성원의 인식이 부족하고 위기감이 없으면 현상유지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경영환경에 대한 위기감을 공유하였으면 목표가 명확히 설정되어야 한다. 불분명한 목표로는 구성원을 한 곳으로 몰고 갈 수는 없다. 이렇듯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때에 구성원과 조직은 함께 성장한다. 혁신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조직은 이념, 이상, 목적을 높이 내걸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사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하나의 집단으로 묶고 성장을 추구해 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해야 한다는 당면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불합리한 요소를 제거하고 고비용 저효율적인 부문을 개선하려는 실천행동을 마스터플랜에 의하여 추진하여야 한다. 중장기적인 계획 아래 단계별 소목표를 정하여 이것만은 해보자 라는 의지로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단기성, 일회성으로 끝나는 캠페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강력한 리더십과 자발적인 참여만이 성공으로 갈 수 있다.

6. 결론

이상에서와 같이 도전의식을 키우는 소집단 활동의 장려, 관료적이거나 수동적인 부서 간의 폐쇄성을 고객에게 업무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서비스를 창출하는 협력 분위기로 조직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 기본을 지키는 것이 우리 고유의 기업문화로 될 수 있으며 중장기적인 계획에 의한 혁신운동을 전개하여 우리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남의 것을 모방하여 그대로 적용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거나 고유의 경영혁신 방법을 창조하여 필사의 집념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혁신운동이나 활동을 시작하여 처음 20 퍼센트의 노력이나 시간을 들여 80 퍼센트의 결과나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나머지 20 퍼센트의 효과를 얻으려면 80 퍼센트의 노력을 경주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리더의 관심과 사후관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19970603 승급 Report)

2007-07-02

편지를 쓴다는 것

손으로 글을 써 본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지금이야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들겨야 하는 세상이고 또 익숙해 지다 보니 손으로 쓰는 것보다 진도가 빨리 나간다. 그러다 보니 필체가 엉망이 됐다. 학창시절에는 펜팔한다며 불특정 다수에게 편지를 쓰는 건 다반사였고 연애편지를 대필 해 주기도 했다.

제일 많이 글씨를 써 본 것이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급문집을 만들던 시절이다. 급우들 원고를 모아 둘이서 이틀 밤을 새워 가며 쓴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제법 괜찮은 필체를 가지고 있었다.

입사해서도 90년대 초중반까지는 보고서를 육필로 쓰던 시절이었는데 개인별 PC가 보급되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자판이 대신하게 됐다. 그러고 보니 펜대를 놓은 게 벌써 십여 년이 넘어 버렸다.

이제는 펜대를 굴린다는 것이 축의금 봉투나 연하장 보낼 때 이름 석 자 써 넣는 게 고작이다. 그러다 보니 괜찮았던 글씨체가 나도 모르게 바뀌어 버렸다. 수첩에 메모라도 할라치면 처음 대하는 글씨를 보며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요즘은 편지라야 무슨 고지서 아니면 청첩장뿐이다. 그러니 친필로 쓴 편지가 더욱 그리워진다. 손으로 편지를 쓰게 되면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고 받는 이의 모습을 그려보는 상상을 하며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곤 한다. 6월 혁명의 단서가 됐던 이부영 의원의 옥중편지만큼 역사를 바꿀만한 가치는 없을지라도 예전에 받았던 편지를 꺼내 보면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장맛비와 함께 올해도 절반이 지나갔다. 편지를 쓰는 기쁨과 답장을 기다리는 설레임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손으로 한글자 한글자 정성을 다해 즐겁고 가벼운 상상을 하며 한 열 통쯤 편지를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