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28

긍정적인 밥

함민복

詩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작과비평사 19961005 4000원

2007-02-25

서시(산경표 공부) - 이성부

물 흐르고 산 흐르고 사람 흘러
지금 어쩐지 새로 만나는 설레임 가득하구나
물이 낮은 데로만 흘러서
개울과 내와 강을 만들어 바다로 나가듯이
산은 높은 데로 흘러서
더 높은 산줄기들 만나 백두로 들어간다
물은 아래로 떨어지고
산은 위로 치솟는다
흘러가는 것들 그냥 아무 곳으로나 흐르는 것
아님을 내 비로소 알겠구나!
사람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들 흘러가는지
산에 올라 산줄기 혹은 물줄기
바라보면 잘 보인다
빈 손바닥에 앉은 슬픔 같은 것들
바람소리 솔바람소리 같은 것들
사라져버리는 것들 그저 보인다

*산경표(山經表) :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여암 신경준(旅菴 申景濬)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산의 족보격인 지리서.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중심축을 이루는 산줄기인 1대간(大幹),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을 지형·지리학적으로 기술했다.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적·지질학적 '산맥' 개념과는 사뭇 다른 책이다.

지리산/이성부/창작과비평사 20010720

산경표는 우리나라 산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흐르다 어디서 끝나는지를 족보형식으로 보여주는 책이라고 합니다. 백두대간이라는 말은 신라 말에 처음 등장하고, 여암 신경준이 편찬(1769년)한 산경표에 의해 완성이 됐다고 합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같은 조선 후기의 지리서는 모두 산경(山經)에 기초하여 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태백산맥, 소백산맥 같은 산맥의 개념은 일본의 지질학자가 1903년 발표한 논문에서 비롯되었는데 일제가 우리 전통을 말살하기 위해 도입이 되었습니다. 산맥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반도의 산은 모두 한 줄기로 엮여 있어 강이나 하천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만 타고 다 갈 수가 있답니다. 강을 위주로 산과 산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바로 산경표입니다.

우리는 산에 오르면 산경표의 한 점이 되어 산줄기 물줄기에 사람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 가는지 볼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2007-02-18

고민하지 마라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들이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데없는 것이다.

느리게 사는 즐거움(Dont Hurry, Be Happy)/어니 J 젤린스키

2007-02-13

삶은?


삶은 계란이다.
한때 유행한 7080식 유머입니다.
메아리를 영어로 하면 마운틴틴틴틴 하는 식이였죠.

"삶은 계란이나 오징어 있어요"

당시 기차를 타면 주전부리를 파시는 분이 승객들 사이로 외치던 말이죠.
얼마 전 KTX를 탈 기회가 있었는데 입석 손님도 없고 조용해서
사이다 마시고 삶은 계란을 까먹는 맛도 덜하더라고요.

계란을 가만히 보면 참 재미있어요.
한 손으로 계란을 움켜쥐고 힘을 주면 깨지지가 않습니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철학적 물음의 소재이기도 하고요.
콜럼버스의 달걀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주인공도 되고요.
알을 깨고 나오는 데미안의 아픔이 혹 지금 살아가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삶은 계란이라고 했나 봅니다.

2007-02-02

내가 기억하는 이름들

십여 년 전에 지금은 유명한 동강 근처 어라연이라는 곳으로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가에 텐트를 치고 후레쉬 불빛으로 책을 보다가 문득 내가 살아 오면서 알고 있는 이름들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종이를 꺼내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성과 이름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백여 명이 넘어가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속도가 느려지더군요. 얼굴은 생각이 나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고 이름은 알겠는데 얼굴이 생각 안 나고. 그러다 백 오십 명 정도 이름을 쓰니 더는 생각이 안 납디다.

아. 이게 내 한계인가보다.

그 백 오십 명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하더군요. 더 아쉬운 건 그분들은 나를 괜찮은 놈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썩 좋은 추억은 아니지만 내 이름이나 얼굴은 알고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