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28

우정

一死一生 乃知交情 (일사일생내지교정)
一貧一富 乃知交態 (일빈일부내지교태)
一貴一賤 交情乃見 (일귀일천교정내현)
一浮一沒 交情乃出 (일부일몰교정내출)
사기 급정열전(史記 汲鄭列傳)

죽고 살고 해보아야 친구의 우정을 알 수 있고,
가난해 보기도 하고 부유해 보기도 해야 친구의 태도를 알 수 있다.
또 귀해 보기도 하고 천해 보기도 해야 친구의 우정이 드러나며,
한 번 뜨고 한 번 가라앉아 보아야 친구의 우정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볼 수 있다.

2007-12-25

산타를 기다리며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이 맘 때는 슬쩍 못 이기는 척 가곤 했었지.
산타가 옆집 누나였다는 걸 안게 열 살 무렵이었지만 개의치 않았어.
뚱뚱한 할아버지가 과연 우리 집 굴뚝을 타고 내려올 수 있을까 걱정하며 잠들곤 했지.

개똥철학을 떠들며 막걸리를 사발로 마시던 시절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지.
이제 염색을 하지 않으면 왜 이리 삭았느냐며 걱정하는 나이가 됐지만
그래도 마음 한 귀퉁이에는 산타가 오길 바라고 있지.

열 살 무렵처럼 머리맡에 종합선물세트를 몰래 놓고 가길 기대하지는 않지만
뭔가 그냥 막연히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는 게 행복할 뿐이야.

그것이 세월의 때를 비켜가려는 힘없는 저항이라고 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못해도 일 년에 한 번은 죄를 사하고 싶은 바람일지라도
혹은 그냥 모두가 행복해지면 좋겠다는 우격다짐이라고 해도......

그래.
당신은 나의 산타였어.
나는 당신의 산타였니?
이렇게 너나들이 산타가 그립다.

해피 크리스마스.

2007-12-21

벤또의 추억

오마이뉴스
강원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겨울 벤또에 대한 추억이 있다. 교실에 난로를 피게 되면서 노란 사각형 벤또에 김치를 깔고 그 위에 밥을 덮어 갔다. 계란 프라이라도 중간에 있으면 특식이었다. 등교하자마자 난로 위에 차곡차곡 쌓아 둔다.

당번은 쌓아둔 도시락이 골고루 덮이게 수시로 위아래를 바꿔준다. 그래서 당번은 난로 바로 뒤에 앉는다. 교실에서 제일 따뜻한 곳이다. 당번은 언제라도 일어서서 도시락을 바꿔줄 수 있는 자격이 있어 수업 중에도 당당하게 일어나 작업을 하곤 했다.

60여 개 도시락을 알맞게 익혀야 하는 것도 재주라고 점심때가 되면 어떤 도시락은 아직도 냉기가 가시질 않았고 또 어떤 것은 밑에 깔린 김치가 새까맣게 타 있곤 했다. 그러길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당번은 가차 없이 잘리고 자연스럽게 제일 재주 좋은 친구가 가장 따뜻한 곳에 앉아 도시락 데우는 일을 전담하곤 한다. 정말 재주가 있어 도시락 60여 개를 가장 알맞게 익혀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있다. 물론 배가 고파 점심시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쉬는 시간에 조금씩 파먹은 적도 부지기수다.

재주 좋은 그 친구를 자세히 보면 수업을 듣는 것보다도 언제 도시락 위치를 바꿔줘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다 정확히 그 시간이 되면 위에 있던 도시락을 맨 아래로 놓고 맨 아래 있던 도시락을 맨 위로 올려놓곤 했다. 오전 수업시간 내내 몇 번 그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난로 위에 있던 도시락 모두를 아주 먹기 좋게 만들어 놓곤 한다.

그렇게 재주 좋은 도시락 당번 덕에 냉기가 가시지 않았거나 새까맣게 타버린 도시락을 먹는 일은 그 후로 일어나질 않았다.

골고루 익힌 도시락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엊그제 본 민심이다. 내 도시락이 새카맣게 타서 못 먹거나 미쳐 데워지질 않아 다들 점심 먹을 시간에 난로에 올려놓고 다시 데워야 하는 일이 있으면 도시락 당번은 잘리게 돼 있다. 민심은 복잡하지 않다.

2007-12-15

우리 현주소


사람이 모여 있어도 이렇게 다른 모습입니다.
안면도에서는 비바람과 추위와 싸우며 기름 방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의도에서는 여야가 맞장 뜨며 단상 점거 방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앞일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안면도와 태안반도에는 이름이 참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많이 있습니다.
바람아래, 꽃지, 샛별, 연포, 십리포, 천리포, 만리포......
천연기념물 신두리 해안사구는 세계 최대의 모래 언덕입니다.
꽃지에 있는 할미 할아비 바위로 지는 저녁놀 풍경은 절경 중의 절경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수목원인 천리포 수목원도 있습니다.
길 따라가면 섬 곳곳에 옹기종기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안면도 앞바다에 기름이 유출돼 모두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마음으로 달려가 아름다운 손길을 보태고 있습니다.

안면도는 당장 먹고살 일을 걱정하며 시름을 내쉬고
여의도는 달고 있는 금 뺏지를 뺏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이 모여 있어도 정말 이렇게 다른 모습입니다.

안면도 생존의 모습과 여의도 1번지의 꼬락서니.
이것이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번지수에서 도로명으로 사는 주소가 바뀐다고
지금 우리 현주소도 따라 바뀌는 건 아닐 테지요.

조동이만 나불대는 내가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내 현주소도 다름 아닌 바로 그곳에서 살고 있는 것을.

2007-12-14

메이드 人 코리아


일주일 후면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입주자가 판가름 나네요.
내년 2월쯤에 입주를 하면 5년 전세라는군요.
제아무리 천지개벽할 재주가 있어도 5년 지나면
다음 입주자에게 집을 비워줘야 하겠지요.
다만, 걱정되는 건 중간에 집을 비우라고 연판장을 돌리고
헌재에서 망치질하면 입주기간도 못 채우고 나올 수도 있고요.
연판장 돌리는 것은 한 번 해봤으니 뭐 그리 어려울 일도 아니고
머리띠만 둘렀다 하면 집주인만 상대할 테니
1번지 주인은 어여 나오라는 세상이 됐으니
그 권세가 예전만은 못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정치 야그를 하며 울분을 토하던 시절도 지나갔고
왜 그렇게 변했느냐고 물으신다면 목구멍이 포도청이 돼 보면 안다는
궁색해 보이지만 정말 그 말 밖에는 변명할 말이 없네요.

Made 人 Korea.
사람이 코리아를 만든다는 저 그림을 보면
이미지와 의미가 함축성 있게 아주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일 텐데
그 이면에는 그저 투표율을 높이려는 얄팍한 뜻이 보이기도 합니다.

세종로 1번지 단독주택 집주인을 뽑던
여의도 1번지 연립주택 집주인을 뽑던
입주하고 나면 그 나물에 그 밥,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나 듣기에
하루 널브러져 뒹굴뒹굴한 지 오래됐습니다.

5년 전, 선거 끝나고 가장 얄미운 사람이 누구냐는 유머가 있었죠.
바로 놈현 찍고 이민 간 사람이라는......

단독주택 집주인을 뽑을 때니 중요하겠지요.
그날 뽑힌 집주인이 우리 수준이 되니까요.
그렇지만 그날 기권을 한다는 것이 권리의 포기가 아니라
드러내 놓은 반대라는 것도 알았으면 합니다.

Made 人 Korea.
이제는 사람이 만드는 코리아가 되길 바랍니다.
물론 중요한 건 너나 잘하는 것이겠지요.

2007-12-12

30년 만에

국민학교 동창회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출신이 아닌지라
국민학교가 입에 붙었습니다.
30년 만에 보는 얼굴들이 대부분이지만
어렴풋이 그 시절 모습이 남아 있더군요.
다들 아줌마 아저씨가 됐지만
그 시절 얘기를 하며 즐거웠습니다.

동창생끼리 결혼해서 부부로 온 친구도 있고
워낙 숏다리 인지라 키가 컸던 여인들은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얼굴과 이름이 일치가 안됐지만
허물없이 얘기를 나누다 보니
불알친구라는 걸 새삼 느꼈답니다.

내가 누굴 짝사랑했는지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담임 선생님 함자는 기억하고 있더라구요.
절대음치인 내가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은 걸 보니
눈치 볼 필요 없는 친구들 앞이라 그랬나 봅니다.

이미 고인이 된 친구들도 있다고 하니
건강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건강해야 친구들도 만나고
더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연말연시는 술과의 전쟁이라 피하지만
어제는 아무 부담 없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소주잔을 나눴습니다.
금주 결심은 깨졌지만 친구들을 얻었으니
아쉬울 건 없습니다.

대굴빡이 허예진 게 나이를 먹기는 먹었나 봅니다.
젠장 할.

2007-12-06

염치 있는 사람이 그립다

지난 여름 강호(江湖)는 위계신공(僞計新攻)을 쓰는 세 명의 초절정 고수로 뜨거웠다.

처녀 고수 신정아(新靜雅)는 끗발 좋던 변승지와 연인 관계라고 시인했다. 저잣거리에서는 다 눈치채고 있던 터라 뭐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가객무사(歌客無思) 싸이(四異)는 시간지연술(時間遲延術)로 관가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딴나라 후보검증 대회는 전 한성판윤(漢城判尹) 맹바기(盲搏利)가 우여곡절 끝에 대권후보 유일종사(大權候補 唯一宗師) 자리를 차지했다.

작금 사헌부는 정치난장(政治亂張)에서 떠들썩한 비비쾌이(悲非快異) 전주(錢主)가 누구인지 중간발표를 했다. 비비쾌이는 딴나라 대권후보와 관계된 일이라 발표 내용을 가지고 따따부따 말들이 많다.

딴나라는 사필귀정이라며 반기고 있다. 열린뚜껑파에서 이름을 수차례 바꾼 대똥합민주쉰땅파는 전면 투쟁을 선언하며 특별암기를 날릴 태세다. 이에 강호를 떠나 기세은둔(棄世隱遁)하다 느닷없이 나타난 회창지존(會昌至尊)도 가세했다.

강호는 대권지존(大權至尊) 자리를 놓고 줄서기와 혈전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비비쾌이 전주가 누구냐 하는 것은 향후 대권지존 자리의 향방을 가리는 뇌관이었다. 그 폭발력은 감히 상상할 수 없어 누구를 향해 터지는지 귀추가 주목됐다. 신뢰성에 금이 간 지 오래됐지만 사헌부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발표를 했으니 대권지존 자리는 변수가 없는 한 맹바기가 바짝 다가섰다.

이를 잘 아는 사헌부인지라 미리 줄대기를 한 것인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비자금 사건으로 뒤숭숭한 삼성거상(三成巨商)은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맹바기를 지존의 자리에 올리려고 암암리에 육성한 사헌부 내 떡값 관료들을 움직였고, 그렇지 않아도 맹바기의 떨어질 줄 모르는 민심 때문에 줄타기를 하던 사헌부는 슬그머니 맹바기 쪽으로 발을 내려놨다는 설이다. 물론 청와대(靑窩臺)에 앉아 말년에 공력을 다 소진한 무현노자(無現勞子)의 묵인도 한몫을 했다. 삼십여 년 전에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가 지존을 해하는 세상이 된 뒤 청와대를 나와 평탄치 못한 길을 걸은 전임 지존들을 보며 평범한 촌로로 돌아갈 무현노자도 목숨을 연명하고자 일조를 할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사헌부를 그리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민심이었다. 저잣거리의 민심은 도덕과 인격이 있어 스스로 깨끗하다는 후보지존들과 경제를 살리겠다는 상품을 들고 나온 맹바기 중 하나를 선택하려는 백성들로 나뉘어 있다. 지금 대세는 인격보다 상품을 택하려고 한다. 무능한 선비보다 하자(瑕疵) 있는 상품이 낫다는 것이다. 떨어질 줄 모르는 맹바기의 인기는 어느 쪽으로 발표하던지 그 영향을 받지 않는데 굳이 스스로 제 목에 오랏줄을 걸 바보는 없으니 말이다.

뭐 그냥저냥 살아가는 하루살이꾼 나무(裸無)는 이바구로 노닥거리기만 한다.

人格商品 我不知也
百年不生 千年深愁
至尊地位 凡夫不登
至尊着席 如凡夫也
加飾有鼻 萬人必巨
廉恥識者 寤寐不忘

인격이고 상품이고 내는 모르것다
백 년도 못살면서 천 년을 걱정하느냐
지존자리는 아무나 오를 수 없지만
앉고 나면 다 그놈이 그놈이더라
피노키오 코가 있다면 누군들 커지지 않으리오
다만 염치를 아는 사람이 그립소이다

2007-12-05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사람들은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낙관주의자들이 아니라 현실주의자들이었다고 한다.

낙관주의자들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와 주위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다가,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다시 다가오는 부활절에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결국에는 상심해서 죽는다고 한다. 반면에 현실주의자들은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짐으로써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에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것이 개인이든 기업이든 성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을 가르치고 있다. 결국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과 눈앞에 닥친 냉혹한 현실을 결코 혼동하지는 말아야 한다. (34쪽)

#2
도요타의 인재상을 명확화한 것이 'T자형 인재'이다. T자에서 세로 방향의 선(┃)은 한 분야에서의 전문 지식 또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부분만 가지고는 전문가는 될 수 있어도 프로가 되지는 못한다. T자에서 가로 방향의 선(━)은 자신의 맡은 분야의 전후 공정에 대한 지식 또는 통상 업무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데, 이 부분까지 갖추고 있어야 프로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81쪽)

#3
관리자의 권한 위임은 스포츠에서 감독과 같은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경기는 선수에게 믿고 맡기지만, 감독은 전체적인 전략을 짤뿐만 아니라 각 선수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필요한 조언을 해주면서 경기를 이끌어 간다.

따라서 관리자가 권한 위임을 했다고 해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은 막상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쳐다보지 않고 신문만 보는 감독과 다를 바 없으며, 관리자가 실무자의 일들을 살펴본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는 것은 감독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경기를 진행하는 운동선수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109쪽)

#4
국내 기업이 망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금융권에서 기업에 대출할 때 대표이사의 연대 보증을 요구하는 관행이다. 기업의 신용도를 평가하기 힘드니 대출 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기업이 망하면 기업의 빚이 전부 대표이사 개인의 빚이 되어 버리고 만다. 기업을 정리할 적절한 시기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대표이사인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업을 계속 끌고 갈 수밖에 없다. (141쪽)

#5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1만 불 수준까지 빠르게 도달할 수 있게 만든 두 가지 키워드는 제조업과 위험 감수(risk taking)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2만 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키워드가 필요하다. 바로 지식정보 산업과 위험 관리(risk management)이다. (204쪽)

#6
우리나라에는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무리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할지라도 이해 관계자들의 정서적인 부분에 대한 고려 없이는 우리나라에서 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미국은 철저하게 논리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사회이기 때문에 규정을 어기면 가차 없이 거기에 따른 피해를 감수해야 하며, 또한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 없는 사회이지만, 우리나라는 규정을 어긴 경우에도 법과 함께 정서적인 요소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사회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음에도 시간이 지나면 이제 고생할 만큼 했는데 봐주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정서이다. (228쪽)

#7
나는 리더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리더십의 핵심은 원칙과 일관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리더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근간으로 한 것이어야 한다. (233쪽)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안철수/김영사 20041210 259쪽 10900원

2007-12-04

아랫도리

1. 비밀경찰

유럽의 어떤 나라는 경찰들만 콧수염을 기르고 있답니다.
별다른 신분증이 없어도 콧수염을 보고 모두 경찰이라고 짐작 하지요.

그 나라로 여행을 간 스피드광 아무개씨.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했습니다.
규정속도의 두 배로 신나게 달리는데 멀리서 차를 세우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 아이쿠. 너무 달렸나. A18.
똥 밟은 얼굴이 돼 속력을 줄이며 차를 세웠죠.
- 라이센스 주세요.
아무개씨 면허증을 꺼내다 말고 그 인간을 쳐다보니 콧수염이 없네요.
- 어이. 이 자슥아. 경찰도 아니면서 왜 잡아?

빙그레 웃으며 그 사람은 아랫도리를 훌러덩 까내리며 말했습니다.
- 비밀경찰이야.

2. 임꺽정과 No2

산채에 기거하는 임꺽정이 멀리 출장을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쁜 색시를 남정네만 우글거리는 산채에 홀로 두고 가기가 걱정스러웠죠.
고민 고민하다 출장 가기 전날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 그래. 이렇게 하면 아무도 못 건드릴 거야.
임꺽정은 색시를 불러다 아랫도리에 쥐덫을 개량한 커터기를 붙여놨습니다.

일주일 후.
출장에서 돌아온 임꺽정은 쫄따구들을 연병장에 일렬로 집합시켰죠.
- 자 모두 아랫도리를 깐다. 실시.
허걱. 임꺽정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많은 쫄따구들이 다 거시기가 잘려 있었습니다.
이런 C8. 믿을 놈 하나도 없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꺽정이 마지막으로 No2 앞으로 가보니 어라 요놈은 거시기가 멀쩡하네.
- 역시 넌 내 왼팔이야. 너만은 믿을 수 있겠군.
너무 기쁜 임꺽정은 No2의 어깨를 두드리자 No2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 어버버버

3. 에필로그

오늘 점심시간에 껌 씹는 소리를 했습니다.
지저깨비님 블로그를 보다 아랫도리 얘기가 생각나 우스갯소리를 했죠.
이제 웃기는 재주도 세월 따라 빛이 바랬는지 별로였습니다.
아님 케케묵은 EDPS가 감각적인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았던지요.
그래서 듣는 이는 정말 껌 씹는 소리로 들렸을 겁니다.

2007-12-02

너나 잘하세요

1.
어제 콘서트 7080을 보다 최혜영의 '물 같은 사랑'을 들었습니다. 대학 신입생 때 먼발치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노래가 한참 인기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캠퍼스 시절'이라는 노래를 더 좋아했지요.

이젠 고백을 할까요
그냥 모른 척할까요
숱한 이야기 나누며
캠퍼스 언덕을 거니는 두 사람
우리 애인이 될까요
그냥 친구가 될까요
약속할 수는 없지만
그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네요
아카시아 그늘 밑으로
꽃비가 내릴 때 꽃비가 내릴 때
쓸쓸한 우리의 두 마음
사랑이 필요한데
이젠 고백을 할까요
그냥 모른 척할까요
약속할 수는 없지만
그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네요

몇 해 전 최혜영 누님이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더군요. 이십여 년 전 모습과는 다르게 세월의 살이 있더군요. 전 예전 그 모습이 아니어서 조금 실망했습니다. 어제는 캠퍼스 시절 그 모습을 본 것 같아 기뻤습니다.

2.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 동창인 친구가 한 놈 있습니다. 3년 내내 같은 반이었고 대학도 같은 과로 진학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열심히 운동을 했고, 임수경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는 무슨 협의회 의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월급쟁이를 할 때도 그는 여전히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몇 년이 흐르고서 고향에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 친구는 말했습니다.
- 나 이제 운동 안 할란다. 힘들다.
저는 실망했습니다. 용기가 없어 고민만 하는 나를 대신해 너만은 끝까지 행동하는 소수로 남아있길 바랬습니다.

3.
캠퍼스 시절을 부르던 최혜영 누님을 보면서, 열심히 운동하던 그 친구를 보면서 나는 마음 한구석에 영원히 변치 말라고 잡아 놓고 있었습니다. 정작 나 자신은 괴물이 돼가는 줄도 모르고요. 참 한심하고 철없는 꼬락서니입니다. 가끔 세면대 위 거울을 보면서 한마디 합니다.

너나 잘하세요.

2007-11-30

정수의 꽃을 아시나요?

정수 한창때 들리는 세 마디…조공, 장비, 빵

한 달여의 정기보수 기간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고 피곤함을 잊으려고 모두가 애쓴다. 처음 일주일은 작업 진행을 위해 서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말도 많다. 그다음 일주일은 상대방과 아웅다웅하며 싸우기도 하고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그다음 일주일은 이제 피곤함이 누적되고 지쳐 있기 때문에 모두가 말이 없다.
휴식시간이 돼도 묵묵히 담배를 피우거나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고 대화가 좀처럼 없다. 그러다 보면 한 달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만다.

정수 상황실에 있으면 요란하다. 6대의 무전기에서 오가는 대화 소리가 어느 시장판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서로 찾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반나절만 앉아 있으면 귀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그러는 가운데 정수가 한창 무르익어 가면 무전기에서 들리는 단어가 딱 세 개 있다.

조공, 장비, 빵.

아침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조공을 대 달라고 시끄럽다. 계획된 인력을 수급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긴급하게 작업인원이 필요하게 되면 조공을 원하는 일자에 맞추지 못할 때가 가끔 있다. 정수기간이 농번기와 겹치기도 하지만 3D 업종은 원하는 단가에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조공이 제때 수급이 안 되면 아침부터 아우성들이다.

그런 아침이 지나가면 이제는 크레인 몇 톤짜리가 필요하다고 난리다. 모두가 맡은 일이 있고 그것을 계획된 시간에 마치려면 장비가 스케줄대로 운영이 돼야 하는데 현장 작업이라는 것이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법.

조그만 크레인이나 지게차 하나라도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기다리는 작업자들이 난리다. 몇 톤 크레인을 어디로 보내라. 왜 아직도 도착 안 했느냐. 정말 안 대줄 거냐는 둥 애원과 협박이 난무한다. 따지고 보면 모두 제 일에 열심이니까 그렇겠지만.

그런대로 장비 문제를 교통정리하고 나면 오후 세시가 느닷없이 다가온다. 그 시간에는 빵과 음료수가 현장으로 배달돼서 작업자들은 간식을 먹으며 잠깐의 휴식을 가진다. 그런데 아침에 인원을 파악해서 필요한 분량만큼씩 상자에 포장해 배달을 하지만 워낙 인원이 많다 보니 제 몫을 못 찾아 먹는 사람이 나온다. 어떤 때는 상자 하나가 통째로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왜 빵이 없느냐고 전화기에 불이 나고 무전기가 일제히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없어진 빵을 당장 만들어 낼 수도 없는 지경이니 상황실에 앉아 있는 것이 큰 곤욕이 아닐 수 없다.

조공, 장비, 빵으로 하루가 시작돼서 하루가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정수의 꽃은 조공과 빵 그리고 장비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이 세 가지만 해결되면 정수작업은 이상 없이 잘 돌아간다고 봐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닐 게다. (1999년 정기보수 기간에)

2007-11-29

행복한 눈물

요즘 행복한 눈물(Happy Tears)이라는 그림이 화제입니다. 이 그림은 2002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710만 불에 팔렸답니다. 그림을 그린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Fox Lichtenstein 1923~1997)은 만화를 미술로 옮긴 최고의 팝아트 작가라는군요. 피카소나 고흐만 아는 문외한이 보기에는 허접하기만 합니다.

재주가 있으나 공부는 하기 싫은 고딩이 짝사랑하는 옆집 예쁜 처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려 장미꽃 100송이를 건넸을 때 처자가 감격하는 것을 상상하며 그린 것 같네요. 전문가들의 해설을 제쳐놓고 보면 무식한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어쨌든 그림 제목이 「행복한 눈물」이라고 하니 행복한 눈물을 보고 그린 것이겠지요. 리히텐슈타인이 어떤 상황에서 그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림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저 그림이 누구 집에 걸려있는지 그림 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덕분에 훌륭한 미술작가와 작품을 알게 되어 고맙기도(?) 하고요.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모두가 행복하게 눈물을 흘리는 그림의 주인공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요즘 아주 바쁘신 분들이 많이 있네요. 이때만 되면 아는 체하며 악수를 하자고 손을 건네는 사람들이지요. 국민이라는 말이 차갑게 식은 쉰밥이나 처먹는 기르는 똥개 이름도 아닌데 자꾸 들먹이고 있어 정말 궁민(窮民)은 눈물을 흘립니다.

12월 19일까지 20일 남았네요. 그 후로 오랫동안 궁민은 행복한 눈물만 펑펑 흘리는 국민이 되었으면 합니다.

12월 19일. 아주 눈에 익은 날인데 생각이 나질 않다가 문득 생각이 났답니다. 음력으로 제 생일이더군요. 그날 행복한 눈물을 흘리는 그림의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

2007-11-28

인간에 대한 예의

슬픈 사람이 울고 있을 때 우리는 따라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그의 슬픔이 나의 슬픔과 다르기 때문이다.
숭고한 일을 하는 사람을 볼 때 그는 울지 않으나 우리는 운다.1

우리의 조상들이 동물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수천만년 동안 몸부림쳐 진화한
결실을 새삼 스스로 인식할 때 우리들은 스스로 존엄해지지 않을까.2

여기, 시대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켰던 한사람이 있다.3


1. 인간에 대한 예의/공지영/창비(2006) 「개정판을 내면서」 중에서
2. 같은 책 「작가의 말」 중에서
3. 같은 책 「인간에 대한 예의」 중에서

2007-11-24

샐러리맨이란?

엊그제가 IMF 구제금융 신청을 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랍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는 말을 쓰곤 하는데 지난 10년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움도 많고 탈도 많았던 때는 없었을 듯싶네요.

구조조정(restructuring)으로 평생직장이라는 말 대신 평생직업이라는 말이 생겼고 정년퇴직이라는 말은 점점 사라질 것이라는 자조 섞인 소리도 하곤 했지요.
어느 날, 열심히 일하는 당신에게 회사를 떠나라는 통지서가 날아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뭐 대충 세 부류로 나뉠 것입니다.
- 이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쳤는데 무슨 소리냐? (청춘보상형)
-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애걸복걸형)
- 그래. 더러워서 간다 가. 빡뀨. (감정폭발형)


당신은 어디에 속하시나요?
열심히 일한 당신에게 왜 떠나라고 했을까요?
샐러리맨이란 무엇일까요?

샐러리맨이란 일정 기간 회사(조직)에 기여하다 떠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기간의 조건(period)입니다. 평생을 회사에서 일하고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지요. 자신이 원해서 떠날 수 있고 회사가 원해서 떠날 수도 있지요. 그 기간이 하루가 될지 십 년이 될지 아니면 정년퇴직하는 날이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영원히 있을 수는 없지요. 반대로 단 한순간도 근무하지 않으면서 그 회사의 구성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둘째는 기여의 조건(contribution)입니다. 기여라 함은 이익을 주는 행위지요.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구성체를 위해 기여하지 못하면 도태되거나 격리되거나 유배될 수밖에 없지요. 하물며 이윤추구가 절대적 명제인 회사에 기여하지 못하면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사람의 조건(humanism)입니다. 모든 일의 중심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없듯이 회사라는 조직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죠. 회사라는 법인은 그저 문서상에 존재하는 법률적 개념이지만 인적자원으로 구성되어 유기체가 되고 비로소 살아서 진화하지요.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중요해지고 결국 회사는 또 하나의 사회가 되지요.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샐러리맨에게는 아편과도 같은 월급이 나옵니다.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회사를 떠나라는 통보를 받겠지요.
회사는 당신에게 떠나라는 통보를 하며 이런 답변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청춘보상형 - 그동안 준 월급은 뭐였니?
애걸복걸형 - 그동안 있을 때 뭐했니?
감정폭발형 -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

떠나라는 통보를 받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이걸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샐러리맨이여! 당신이 먼저 사장을 해고시켜라."

2007-11-21

IMF 10년

오늘은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 신청을 발표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랍니다. 그날 한국 대표가 사인한 만년필이 어떤 명품이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지요. 설마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길라고......

그 일 년 후 구조조정이라는 것을 직접 목격했지요. 또 일 년 후 2차 구조조정이 있었지요. 떠나는 자는 떠나면서 말이 없었고 남는 자는 남는 자대로 고개를 숙였답니다. 회사의 주인은 바로 직원들이라며 주인정신을 가지라고 해 놓고 그 주인을 자르는 걸 보고는 그때 비로소 주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요.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일 하는 척하다가 시간이 점점 흐르며 BJR(배째라)이 돼 가는 내 모습을 봤답니다.

직장인을 위한 신기도문을 암송하며 보냈지요.

바라옵건대...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오늘은 회사 가기 싫다"는 유혹이 저를 미혹치 않게 해주소서. 오늘도 피로가 저의 영혼을 잠식하오나, 지각의 두려움이 이부자리에서 떨쳐나게 하였나이다.

대신, 어젯밤 술안주로 씹어 돌린 상사와 선배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할 얍실한 웃음의 은총과 경쟁대상인 동료와 치고 올라오는 후배 얼굴을 여유있는 척 마주할 수 있는 후까시의 은혜를 오늘도 허락하여 주소서.

또한, 술값의 환란을 피해 화장실에 머무르는 잔대가리 지혜의 샘이 마르지 않게 해주시옵시며, 직장내 성희롱으로 찍힐 것을 무릅쓰고 미스 김의 엉덩이를 슬쩍 칠 강고한 배짱을 허락해 주시옵시며, 내가 찍은 박대리를 넘보는 동료, 선후배 뇬들의 마빡에 벼락을 쳐내려주시옵소서.

스스로는 사내 인트라넷 접속조차 두려워하면서 하급자들에게는 "엑셀은 기본, 파워뽀인트 프레젠테이션 정도는 마스터해야 한다"는 택도없는 훈시를 내리는 중간 관리자들의 조디를 무지 엄하게 쎄려주시옵소시며, 또한 저의 이 미미한 힘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사의 어떠한 잔소리에도 무릎꿇지 아니할 강건한 '완전 딴생각'의 은총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자신의 생각은 진리, 타인의 생각은 궤변으로 간주하면서도 유독 '사장님 앞에서의 "NO"는 곧 죽음'이라 의심치 않는 그의 철학을 저도 내면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시며, 명퇴나 조퇴에 대해 병적인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상사가 내는 변태적 짜증을 넓은 아량으로 대할 수 있도록 '개무시'의 배포를 기르게 해주소서. 그가 나의 10년 후 모습임을 잘 알겠사오니,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속으로 '십세이...'라는 따듯한 애정의 구호를 되뇌일 수 있는 내공을 허락해 주소서.

내 책상 없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면 되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회사가 사라지지 않도록 빌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나이다. 또한, 회사가 요구하던 '주인의식'이 사기극임을 깨달았나이다. 주인이 짤리는 거 없는 줄로 알고 있나이다. 어흑.

그러면서도 회사의 발전이 내 발전과 '무관'했던 지난 날의 관성에서 벗어나, 회사는 내 비즈니스의 파트너임을 깨닫고 늘 자기 계발에 용맹정진할 줄 알게 해주소서. 회사에 충성하는 동안에도 돈 되는 건 뭐든지 다 하겠나이다.

또한, 하루에 한 번쯤은 인터넷의 드넓은 정보바다에서, Adult Hardcore XXX site에 밀착하여 글로벌 에로산업을 탐방할 수 있는 정력을 허해 주시며, 더불어 이를 탐닉해 점심을 걸르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제력과 상사에게 들키지 않는 은폐, 엄폐의 생존술 또한 하사해 주시옵소서.

골프나 스키 같은 건 멀리한 지 이미 오래되었나이다. 운동은 피티 체조와 숨쉬기로, 레저는 등산으로, 문화생활은 비됴로 바꾸었으니, 이들 저예산 취미생활로도 저의 정신세계가 충만하도록 저를 심히 쪼잔하게 만들어 주시며, 오직 휴가와 보너스를 위해서는 한 없이 열정적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무임금이면 무노동인줄 알고 있사오며, 일한 만큼 받지 못한다면, 받은 만큼은 일할 수 있나이다. 플랙시블 타임제가 빤스고무줄 근무시간이 되지 말며, 사원명부에서 제 이름이 지워지는 그 날까지 칼 출근 칼 퇴근할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소서.

회사 떠난 동료들이 남겨놓은 일로 실직사 대신 과로사를 택한 셈이 되었나이다. 천수를 다하다 안락사하는 길을 열어주시고, "25세에 죽고 70세에 매장당한다" 는 경구가 꿈이 없는 사람을 두고 한 말임을 가슴에 새기며, 내 운명의 주인이 더 이상 회사가 아닌 나 자신일 수 있도록 지헤와 창의를 내려주시고, 그래서 마침내 회사 그만두는 것에 두려움이 없게 하여주시며, 마침내 생을 마감하는 날에 "내 청춘을 월급과 바꾸었구나!"하고 한탄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오늘도 아내 몰래 자존심과 인격을 집에 두고 나왔나이다. 내일도 몰래 두고 온 구져진 자존심이 쓰레기통에 쳐박히지 않도록 거듭 바라오며 기도를 마치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또한
부처님, 공자님, 모세님, 마호메드님, 조로아스터님, 월급수호신님 등...
그 모든 위대하신 님들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졸라.
아 참... 한 가지 더 있사옵니다.
쿠오바디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좋은 데 있음, 저도 델꼬 가줘여...

딴지일보

삶의 무게가 부자나 서민이나 비슷한지 고민도 했고요.

'부자의 비애'라는 세간의 속설이 있다. 많은 돈에 반비례해 부자의 개인생활은 불행하다는 것이다. 부자가 기를 쓰고 도달한 정상에서 발견하는 것은 바로 슬픔이나 허무라는 가설이다. 이런 '부자의 비애'는 "돈이 없는 사람들이 꾸며낸 말장난"이라고 C.라이트 밀스라는 정치사회학자는 잘라 말한다. 대부호들은 자신의 변덕스러움, 공상 또는 괴로움까지도 거대한 규모로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 돈 벌기 무섭게 생계를 위해 써야하는 서민의 물레방아 인생과 '질적으로' 다르다. 부호들은 도저히 혼자 쓸 수 없는 엄청난 돈을 갖고 있다. 식당 메뉴의 가격을 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명령을 받지 않으며 돈 벌기 위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야말로 '완전한 자유인'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은 건축비 4,000만달러를 들여 1,000평의 최첨단 장비로 꾸며진 초호화 저택에 살고 있다. 세계 유수의 부호인 브루나이 공화국의 하사날 볼키아 국왕은 비행기 편대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비행기 17대, 롤스로이스 등 최고급 승용차 2,000대를 소유하고 있다. 공상같은 생활을 부자는 누린다. 우리나라 재계 최고경영자들도 수십대의 외제차를 굴릴 정도의 풍부한 돈,여기에 따르는 명예와 대기업이란 소(小)제국에서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

재계 최고 경영자들이 잇따라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뜨거나 투병중이라는 소식은 '모든 것을 가진'사람들이 왠지 자신의 건강은 빠뜨린 것 같아 착잡한 느낌을 준다.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지난해 말 폐암 수술을 받았으며 김영환 현대전자 사장은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투병중이다. 연초에 대우 건설부문 정진행 부사장은 심장마비로 갑자기 운명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관련, 확인되지 않은 중병설이 돌고 있다.

잇따른 급사와 와병은 무엇때문인가. 우선 한 그룹 회장이 지적한 대로 '마취도 하지 않고 갈비살을 드러내고 폐를 잘라내는 고통'이라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스트레스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채권단과의 마찰, 대량 감원과 구조조정 후의 허탈감도 고위 경영자들을 쓰러뜨리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이들의 건강악화는 개인의 불행인 동시에 경기회복 후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많은 재계의 손실인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자문해본다. 주치의를 가까이 둔 최고경영자가 쓰러질 정도의 스트레스라면 지난 2년간 평범한 샐러리맨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치러야 했을까. 삶에서 돈, 권력, 명예는 무언가를 희생한 대가이며 그래서 삶의 무게는 부자나 서민이나 비슷한 게 아닐까.

대한매일(2000.1.11)

힘없고 빽 없는 국민들만 빼이 쳤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군요. 나는 아무것도 한 일 없이 멍청하게......

2007-11-20

첫눈


첫눈은 살포시 내려야 한다.
첫눈은 산뜻하게 내려야 한다.
첫눈은 조용히 내려서 살짝 쌓여야 한다.
첫눈은 예고 없이 내리고 여운을 남겨야 한다.
첫눈은 새색시 마냥 수줍게 내려야 한다.
첫눈은 소박하게 내려야 한다.

질펀하게 내리는 눈은 첫눈이 아니다.
천둥이 치며 내리는 눈은 첫눈이 아니다.
우산을 쓰게 만드는 눈은 첫눈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2007-11-19

樂書 남과 여

첫사랑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묻어둔다.
여자는 첫사랑을 가슴에서 도려낸다.

연애편지
남자는 연애편지를 받으면 비트겐슈타인이 된다.
여자는 연애편지를 받으면 샤갈이 된다.

바람
남자는 바람맞으면 바람 쐬러 간다.
여자는 바람맞으면 바람난다.


남자의 힘은 지갑에서 나온다.
여자의 힘은 눈물에서 나온다.

결혼
남자는 결혼을 새로운 생활의 출발이라고 한다.
여자는 결혼을 지나온 생활의 종지부라고 한다.

심리
남자는 단순하다.
여자는 복잡하다.



남자는 사랑을 잊지 않으려고 술을 마신다.
여자는 사랑을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

수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로 마감한다.
여자들은 백화점에서 쇼핑한 얘기로 마감한다.

해석
남자는 여자의 무언을 긍정으로 해석하고,
여자는 남자의 무언을 부정으로 해석한다.

종교
남자는 애인때문에 종교를 바꾼다.
여자는 종교때문에 애인을 바꾼다.

2007-11-08

가을이 저만치 가네요


2007 가을이 떠나가네요.
낙엽 사이로 가는 가을을 잡을 수는 없겠지만
첫눈 오는 날까지 그리워하겠지요.

하마 오늘이 입동이라네요.

2007-10-30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우리의 일생이 고작 70~80년이 한계이고, 그 후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 없이 '무'로 돌아간다면, 무슨 성실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인지,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영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세월은 순간에 불과한데, 그 짧은 동안 즐기지 않고 언제 즐길 것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즐거움을 찾아 인생을 만끽해야 이치에 맞을 것이다. 기껏 노력한들 죽고 나면 끝인데 왜 사서 고생을 해야 하며, 아무리 남에게 피해를 주고 몹쓸 짓을 해도 죽고 나면 끝인데 뭘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우리에게 죽지 않는 영혼이 정말 있다면, 문제는 심각해 진다. 더구나 그 영혼은 살았을 때의 자신의 삶에 따라 적절한 보상과 문책을 받기도 하고, 새로운 몸을 얻어 지상에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면...... (들어가는 말 中)

전생여행/김영우/정신세계사 19960731 290쪽 10,000원

2007-10-28

스포츠는 폼이다

난 운동을 싫어한다. 눈으로 보는 것은 좋아하는데 몸을 써가며 하는 것은 정말 싫다.

석유화학 공장은 2~3년에 한 번씩 대정비 작업(Turn Around)을 한 달 동안 진행하는데 사전작업 기간을 포함해 서너 달을 야근과 밤샘작업으로 지샌다. 정비작업이 끝날 즈음 어느새 여름이 다 되곤 한다.

1999년. 대정비 작업이 무사히 끝나고 여름이 시작될 무렵. 담당 임원은 부하 직원들의 체력이 너무 떨어졌다며 축구를 반강제로 시작했다. 나를 포함해서 몸 쓰는 걸 싫어하는 부류들은 슬슬 눈치를 보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지만 워낙 강력한 직급의 압박으로 할 수 없이 유니폼을 맞추게 됐다.

평소 숨쉬기 운동만 하던 이들에게는 고문에 가까웠다. 운동을 좋아하는 몇몇 직원들 빼고는 대부분이 냅다 뛰어올라가면 상대편 골대 부근에서 서성거리기만 했지 되돌아오지를 못했다. 하프라인을 건너 내려올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주 한두 경기를 하기 시작했고 서너 달이 지나 가을 무렵에는 제법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포지션이란 개념도 생겨서 상대방 골대까지 갔다가도 이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정도까지 발전했다.

안전축구를 지향하며 부상당하지 않게 태클은 절대엄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 연배가 있으신 분들이 공을 잡으면 가로채기 금물. 그분들은 가만히 냅둬도 제풀에 지친다. 운동 신경이 없는 나 같은 사람끼리는 뛰어가다가 제어를 못 해 부딪히는 경우가 있지만 불가항력이요 천재지변이라 서로 용서가 된다.

깡패 같은 계급에 눌려 시작한 축구는 2개 있는 운동장을 사전에 예약하고 일정을 조정해야 될 정도로 전사적으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혹 동문 체육대회라도 참석했던 직원들은 그렇게 시작한 축구 덕에 운동장을 날아다녔다고 자랑도 했다.

덕분에 나도 축구 유니폼이 세 벌이나 있다. 여러 팀을 만들다 보니 세 개 팀에 소속이 됐다. 가지고 있는 유니폼 한 벌 가지고 대충 입고 뛰자는 것을 "스포츠는 폼이다"라는 평소 지론을 내세우며 우기는 바람에 대부분이 서너 벌을 가지게 됐다.

나는 유니폼이 통일되고 용도에 맞아야 한다고 우겼다. 반바지에 맨발로 축구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조금 허름해 보인다. 그렇다고 노란색 이소룡 츄리닝 입고 하기도 그렇고. 축구할 때는 축구 유니폼을 입어야 하고 등산할 때는 등산복을 입어야 한다고 우긴다. 폼이라도 잡아야 50% 먹고 들어가니까.

물론 스포츠는 실력이 중요하겠지만 그전에 구색에 맞는 유니폼을 갖춰 입어야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다. 예비군복을 입혀 놓으면 아무 데나 퍼질러 앉아 신문을 보게 되지만 정장을 입고는 바지에 주름이 생길까 의자에 앉는데도 조심스러워지게 되듯이 말이다. 스포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스포츠는 폼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운동장에 나와 경기를 시작하려고 하프라인 근처에 두 줄로 서 있는 팀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팀이 이길지 예상이 된다. 유니폼을 통일해서 딱 맞춰 입은 팀이 대부분 승리를 한다. 상의가 울긋불긋 섞여 있어 할 수 없이 조끼를 입고 뛰는 팀이 무승부는 할지언정 승리하기는 가뭄에 콩 나듯 어렵다.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고 적중하곤 한다.

그렇게 운동을 싫어하던 나도 그해 십일월 국제규격 축구장에서 난생처음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게 됐다.

2007-10-26

진정한 인간관계가 그리운 날

인간관계는 결혼식을 보면 안다.
얼추 세 부류로 나뉜다.
축의금 봉투만 인편으로 보내는 사람.
축의금 내고 재빨리 갈비탕을 먹으러 가는 사람.
사회자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리에 제일 먼저 앉고 제일 나중에 일어서는 사람.

나는 몇 번의 결혼식을 생깠을까?

인간관계는 사람이 죽어보면 안다.
얼추 세 부류로 나뉜다.
조의금 봉투만 인편으로 보내는 사람.
조의금 내고 영정 사진 앞에서 절하는 사람.
밤새 향불이 꺼질까 곁을 지키며 고스톱을 쳐주는 사람.

내 사진 앞에서는 몇이나 밤을 지새워 줄까?

2007-10-24

타임머신

시간여행을 하게 되면 어디로 가고 싶나요? 가장 즐거웠던 추억이 있는 그곳으로 갈까요.
미래의 나를 찾아갈 건가요?

로미오와 줄리엣을 쓰는 셰익스피어에게 다가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해달라고 할 건가요. 악법은 법이 아니라고 말하며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를 말릴까요. 누가 당신에게 총을 쏠 거라며 경교장에 있는 김구 선생을 피신시킬까요. 천만 원을 빌려 달라는 친구가 전화하기 직전에 손전화를 꺼놓을 건가요. 헤어지자는 애인을 가로막고 이렇게 헤어지면 안 된다고 옷고름을 부여잡을까요.

노벨상을 받는 한국인 과학자를 위해 스톡홀름에서 기립박수를 칠 건가요. 주식 객장에 앉아 삼십 년 동안 가장 많이 오른 주식을 찾고 있을까요. 통일되는 그날 가장 먼저 군사 분계선을 건너갈까요. 이번 토요일 로또 추첨을 보러 갈 건가요.

바로 당신 앞에 타임머신이 놓여 있다면 어디로 가실 건가요?

그런데 만약 그 타임머신이 일회용이라면 어떡하실래요? 과거든 미래든 갈 수는 있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없는 혼자 타는 일회용 타임머신이라면 당신은 타고 가실 건가요?

2007-10-22

오솔길이 좋아진다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까/이정숙/산악문화
온 가족이 함께 떠난 히말라야 트레킹/한동신/다밋
히말라야, 40일간의 낮과 밤/김홍성, 정명경/세상의 아침
우린 숲으로 간다/이유미, 서민환/현암사

요 며칠 히말라야 트레킹과 등산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답니다. 고산병을 피하고자 아주 천천히 오르는 길은 자연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순응하고 히말라야가 받아들여야 완주할 수 있다는군요. 인간이 저절로 겸허해지는 그런 오지도 길이 넓어지고 사람들의 왕래가 늘어나면서 점점 옛 인심을 잃어 간다며 아쉬워하고 있군요.

분기탱천하던 젊은 시절은 파괴가 곧 건설이라고 믿었답니다. 배낭에 A형 텐트를 둘러메고 떠났던 젊은 여름에 처음 찾았던 영월 어라연. 버스에서 내려 한 시간을 걸어서 가며 차가 들어갈 길이 어여 나길 기대했습죠. 그 후 십여 년이 지나서 어라연을 다시 찾았을 때도 역시 한 시간을 걸어서 갔답니다. 길이 뚫려 휴가 온 차들로 도로가 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으니 걸어서 갔던 게지요. 도착한 어라연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더군요. 처음 찾았던 그때 발가벗고 물놀이를 하였던 기억은 여지없이 부서졌지요.

지리산 노고단을 관통하는 길이 뚫렸을 때 이제는 쉽게 뱀사골 산채 비빔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하며 속으로 내심 반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막상 야유회를 가서는 지리산에 대한 경외감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지요. 계곡에 틀어박혀 놀기 좋아하는 나 같은 놈상까지 지리산을 범하고 있으니 말 다했지 뭡니까.

길은 새로운 문명이 소통하는 역사적 전환을 하기도 하지만 점점 넓어지며 파괴의 지름길이 되기도 하지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넓혀지는 길을 볼 때마다 아쉬운 마음도 점점 늘어만 갑니다. 가만히 놔두면 당장은 불편하고 아쉽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숨은 가치가 서서히 나타날 텐데 조바심에 길을 냅다 뚫어 버리는 세태가 아쉬울 뿐입니다.

나무들이 아무 말 없이 반겨 주는 오붓한 길을 걸어가면 번잡한 아스팔트에서 느끼지 못하는 상쾌함이 있지요. 자신을 도드라져 보이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슬며시 일부가 되면 오솔길이 너그러이 받아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답니다. 저 길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요즘은 점점 오솔길이 좋아집니다.

2007-10-20

시월유신


오랜만에 가을 분위기 나는 노래가 없을까 CD를 뒤적이다 숨어 있던 CD 한 장을 발견했답니다. 케이스도 없이 어떤 가수 CD 뒤에 같이 들어 있던 놈이랍니다. 촌스런 그림이 영락없는 70년대 풍입니다. 재킷 이름은 시월유신이네요.

역사 속 시월유신은 무시무시했지만 재킷에 실린 노래들은 너무나도 귀에 익은 곡들입니다.

You're My Heart You're My Soul (Modern Talking)
Yes Sir I Can Boogie (Baccara)
Rivers Of Babylon (Boney M)
Another Cha Cha (Santa Esmeralda)
Y.M.C.A. '93 Remix (Village People)
Happy Song (Boney M)

한 시대를 풍미했던 18곡이 들어 있네요. 80년 초 나이트를 몰래 들어갔을 때도 이 노래들이 쿵쾅거리며 흘러나왔던 기억이 나네요. 전곡을 다시 들으니 친숙한 곡들이어서 무척 반갑고 감회가 새롭네요.

비 내린 가을에 조금은 센티해져서 낙엽 따라 가버린 노래를 찾다가 뜻밖의 노래를 만나 오히려 이십여 년을 거슬러 가 젊어졌답니다. 숨어 있던 시월유신을 찾아 기분이 좋아지네요. 시월유신 시절을 그리워하지도 않고 그런 시절이 다시 오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시월유신 노래는 듣기가 참 좋네요.

한동안은 시월유신과 함께 가을을 보낼 것 같네요.

2007-10-18

주는 거 없이 싫은 사람

"정부가 말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협상금은 정부에서 지원을 하고, 다음에 선주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고 했다. 그러나 협상이 다 된 이제 와서 협상금을 지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도 언론의 접촉을 막고, 엄청난 지원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해오던 정부가 이제는 국민적 여론이 없다고 한다. 저는 표현이 어떨지 모르지만 해적보다 더한 정부를 만나고 있는 꼴이다"
- 소말리아 피랍 선주 안현주 씨가 MBC 시사매거진 2580 앞으로 보낸 이메일 중

김 원장은 2일 피랍자 19명과 귀국한 뒤 국정원에서 열린 간부회의에서 "앞으로도 우리 국민이 위협에 처하면 설사 그것이 死地라 할지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아프칸 인질 석방 후 국정원장 말씀 중

서해교전에서 남편 한상국 중사를 잃은 아내는 2005년 "이런 나라에서 과연 어떤 병사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던지겠느냐"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이민 갔다.

사람 사이는 세 종류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주는 거 없이 싫은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좋아할 여지가 있다. 뜻밖의 계기로 말미암아 참모습을 보게 되면 싫어하는 감정이 사라진다.

그런데 주는 거 없이 싫은 사람은 여간해서 좋아하는 사람으로 둔갑하기 어렵다. 예쁜 짓을 해도 미워 보이고 혹 실수라도 하면 그럴 줄 알았다며 고소하다. 특별한 억하심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주 사소한 것까지 꼴사납게 보이기 일쑤다.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특별한 도움을 요청할 사정은 더더욱 없으니 주는 거 없이 싫은 사람은 그렇게 자꾸만 싫어진다.

대한민국 정부여. 주는 거 없이 싫은 정부가 더는 되지 마시게. 해적보다 더한 정부가 되면 어쩌란 말인가. "국민 여러분. 제발 도와주십시오."라고 할 때가 한 번은 꼭 있을 게다. 그때 모두가 고소하다며 손가락질하고 등을 돌리면 어쩌시겠는가?

2007-10-17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런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 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을 해야것다.

2007-10-15

인생 수업

우리는 부와 힘을 동등한 것으로 여기고,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돈을 갖게 되어도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나면 크게 실망합니다. 가난을 못 이겨 자살하는 사람들만큼 많은 수의 부자들이 자살을 합니다. 프로이트는 만일 자신에게 부유한 환자를 진찰할지 가난한 환자를 진찰할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망설이지 않고 부유한 쪽을 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부자들은 더 이상 자신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돈을 갖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돈이라는 것도 결국엔 경험에 불과합니다. 다른 경험들과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별로 나을 것 없는 경험일 뿐입니다. (109쪽)

변화는 늘 우리와 함께 있지만 우리는 변화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변화에 겁을 먹기도 합니다. 그 대신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 변화를 선호합니다. 예기치 않은 변화가 생기면 불안해하고, 혹시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환영하든 거부하든 변화는 일어납니다. 삶의 다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변화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어나는 것일 뿐입니다. (136쪽)

두려움(fear)이란 '실제처럼 보이는 가짜 증거'(False Evidence Appearing Real)의 약자입니다. (149쪽)

받아들이는 것과 포기하는 것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불치병 진단을 받고 나서 양손을 치켜올리며 "희망이 없어. 난 죽게 될 거야!" 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포기입니다. 받아들임은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치료법을 선택해 시도해도 효과가 없을 경우, 우리의 삶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질병에 희생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음을 아는 것은 순종입니다. 상황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은 포기이며, 그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은 받아들임입니다. (217쪽)

인생 수업/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류시화 옮김/이레 20060606 266쪽 12000원

2007-10-11

되물릴 수 없는 한 번의 삶을 위하여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떤 '틀' 속에 갇히게 된다. 이것은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되어지지 않는 인간의 불행이며 숙명이다. 누구의 자식이 된다는 것, 황색인종이라는 것,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 그것들은 우리 스스로의 의지와 선택과는 무관하게 주어져버린 '틀'이다. 아무도 자신의 '틀'을 깨뜨릴 수 없다. 우리는 평생 누구의 자녀가 되어, 황색인종으로, 남자 혹은 여자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더구나 우리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에 의해 결정된 그 '틀'은 결정적으로 우리 삶을 어떤 형태로 규정해버린다. 그 '틀'은 무조건적으로 수락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 혹은 현실적인 것, 제도적인 것으로 우리 삶의 절대적인 규정력으로 작용하고 우리 삶을 속박한다.

하지만, 인간에겐 거부할 길 없이 선험적으로 굴레지워진 그 '틀'속에 살면서도 그 '틀' 바깥을 꿈꾸는 자들은 언제나 영원한 자유인이다! (153쪽)

절망에 대해 우아하게 말하는 방법/장석주/프리미엄북스 19970618 198쪽 6,000원

2007-10-07

즐거운 인생


돈은 많은데 건강하지 못하면 정말 억울할 게다.
건강한데 돈이 없다면 분통이 터질 게다.
그럼 건강하고 돈은 많은데 친구가 없다면 무척 외로울 게다.

죽을 때까지 건강하고 약간 부족하지만 돈도 조금 있고
언제든지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옆에 있다면 좋것다.

참 즐거운 인생이다.

2007-09-25

소원

동그란 지구에서 태어나
동그란 돈을 벌려고 발버둥 치다
동그란 묘지로 가는 인생.

오늘은 하나 더 있다.
동그란 대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자.

"나는 괜찮은데, 그래도 당신은 행복하시오."

2007-09-14

명품의 정상


가을은 가을이네요.
산행하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
언제 그렇게 무더운 여름이 있었느냐는 듯
얼린 물이 하산길까지도 녹지 않고 얼음으로 남아있네요.
북한산을 몇 차례 올라 봤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별 볼일 없는 서울에 이런 명품이 하나 정도 있다는 것은
정말 커다란 행운입니다.

명품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는 인간이
명품의 정상에 잠시 서봤습니다.

2007-09-11

배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밤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걸었다.
그와 마주친 사람이 물었다.

"정말 어리석군요.
당신은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을 왜 들고 다닙니까?"

그가 말했다.

"당신이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배려/한상복/위즈덤하우스 20060110 259쪽 10000원

2007-09-06

여행생활자


세상에는 차를 한 대도 팔지 못하는 자동차 외판원이 있고,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 있으며
여행하지 않는 여행자가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여행하지 않는 여행자는 있다.
사랑을 잃은 자는 사랑의 흔적으로 살고,
여행이 막힌 자는 여행의 그늘 아래 살아가니
여직 길 위에 있는 사람들아,
너무 외롭거나 아프지 마라.
세상 끝에 걸쳐 눈이 눈물처럼 빛나는 그대의 여행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다.
사라지지 말고 이 말을 가슴에 새겨다오.
오래오래 당신은 여행생활자다.

여행생활자/유성용/갤리온 20070601 359쪽 12000원

2007-09-05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1
프로이트는 일찌기 "나는 30년 동안이나 여성의 영혼에 관하여 연구를 했지만,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 있다. 도대체 여자들은 뭘 원하는 것인가?" (59쪽)

#2
인간의 경우 여성들은 약 200만 개의 난모세포를 가지고 태어난다. 물론 200만이란 숫자는 그 자체로는 엄청나지만 건강한 남자가 한 번 사정하는 정자 수의 몇백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 200만 개를 모두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사춘기에 이를 때면 약 40만 개로 줄어든다. 줄잡아 80%를 솎아내는 셈이다. 이 40만 개를 다 쓰는 것도 아니다. 35년 동안 4주마다 난자 하나씩 성숙하여 배란이 되니까 평생 동안 455개 정도를 사용할 뿐이다. 그렇다고 여성들이 이 455개의 난자를 다 사용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중의 몇 개를 자식으로 키워낼 따름이다. (68쪽)

#3
성을 대하는 암수의 태도는 난자와 정자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수컷은 이를테면 갑싼 주식을 여러 개 구입한 다음 그 중에서 몇 개라도 운좋게 성공하기를 바라는 전략을 사용한다. 수컷은 단 한 번 사정에도 천문학적인 숫자의 정자를 쏟아낸다. 단가가 낮은 배우자들을 다량 생산하여 양으로 승부를 보려는 전략이다.

이에 비하면 암컷은 소수의 황금주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주식회사의 경우에도 개미 주주보다는 큰손의 발언권이 더 큰 것처럼 암수 사이에도 투자를 더 많이 하는 쪽이 선택권을 행사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투자할 곳을 신중하게 고를 것 역시 너무나 당연하다. 다윈은 이같은 현상을 가리켜 암컷선택(female choice) 또는 성간선택(intersexual selection)이라 일컬었다. (103쪽)

#4
우리는 흔히 질투란 여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질투는 사실 수컷들의 속성이다. 암컷은 자식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자기 몸으로 직접 낳은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컷은 자기 자식이 진정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 자식인지에 대해 의심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컷들은 진화의 역사를 통해 다른 수컷들로부터 암컷을 보호하는 온갖 방법들을 개발했다. (116쪽)

#5
프라빗은 입덧이 병리학적 현상이 아니라 산모로 하여금 음식을 가려 먹어 태아가 독소에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진화한 적응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133쪽)

#6
유전자의 50%를 공유하는 부모 자식간에도 갈등이 있는데, 하물며 유전적으로 볼 때 전혀 남남인 부부간의 갈등은 오죽하겠는가? (228쪽)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최재천/궁리 20030331 230쪽 9500원

2007-09-04

베르나르 베르베르


90년 초.
개미를 읽고 개미에게 말을 건네 봤다.
07년 8월.
파피용을 읽으며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환생을 보았다.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참 재미있는 현실이다.

2007-09-01

심장

나는 심장이 하나랍니다
외심이랍니다
그래서 무척 외롭답니다
한심하기도 하지요
나는 양심도 없는 놈이랍니다

심장이 세 개인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요?
세심한 사람이니까요
네 개면 너무 많아요
사심이 생기잖아요

나는 시방 외로운 심장 하나를 기다립니다
만나면 내 심장을 떼 주겠어요
나는 무심한 사람이 되겠지만
우리는 그제야 양심 있는 인간이 되겠지요

2007-08-31

화려한 휴가

나는 1984년 3월 2일생이다.
다시 태어나기 전
화려한 휴가는 빨갱이들의 난동인 줄 알았다.
그곳은 광주였다.
나는 1984년 3월 2일 다시 태어났다.
청춘, 꿈, 미래, 순수, 사랑, 열정, 변화, 파쇼, 혁명
그리고 민주주의……
캠퍼스에 배인 최루탄과 지랄탄 냄새가 암내인 줄 알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유행가였고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나의 유아교육 교재였다.
이러한 나를 요즘 386세대라 부른다.

이제 23살이다.
그러나 제조연월일은 40년이 넘었다.
좌우명은 事必歸正, 塞翁之馬
취미는 지난 신문보기
직업관과 경영방침 사이에서 고민한다.
생물학적 평균 유통기한이 절반을 넘어섰다.
진열대에서도 이제는 중간 한구석에 놓여 있다.
이마저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다.
로또대박 꿈을 꾸며 화려한 휴가를 계획한다.

청년은 이미 극한 이기주의자가 됐고 편집된 인생을 살고 있다.

2007-08-30

때로는

사랑을 알아?
…………

사랑을 믿어?
…………

사랑이 뭐야?
…………

나 사랑해?


…………

때로는 침묵 혹은 짧은 대답이 수많은
얘기를 대신해줄 때가 있다.

2007-08-25

간판과 사람

크고 화려해야 눈에 잘 띄고 장사가 잘 될 거라는 간판들.
옆집보다 더 크고 잘 보이게 하려고 점점 어지러워지는 간판들.
학력 위조하고 거짓말을 거짓말로 둘러대는 사람들.
슬쩍 내걸고 그런 간판이 걸려있는 줄 몰랐다는 사람들.

간판과 사람들은 닮았다.

아름다운 간판이 도시를 생기 있게 바꾼다.
생기 있는 도시가 사람을 아름답게 바꾼다.
간판이 사람을 바꾼다.
사람이 간판을 바꾼다.

간판과 사람들은 닮아가고 있다.

2007-08-19

일기예보와 정치인

요즘 일기예보 맞는 것 보셨나요?
내일 비가 온다는 마감뉴스를 보고 다음 날 일어나면
다시 내일 비가 올 거라며 하루 늦춰지곤 하지요.
막상 당일이 되면 불볕더위로 폭염 주의보가 내려져 있고요.
장마는 끝났습니다 라고 하니까 비가 엄청나게 오더군요.

일기예보가 뉴스 시간마다 달라집니다.
일기예보가 정치인을 닮아 갑니다.

도곡동 땅이 그 사람 땅인 줄 알았는데 제삼자 땅이라네요.
100년은 간다며 우리끼리 모여 축포를 쏘아 대더니
4년도 못 가서 지들끼리 간판을 내리네요.
이달 말에 차 타고 북으로 간다더니 시월로 느닷없이 바꾸기도 하고요.
오늘 비가 오면 이씨가 유리할지 박씨가 유리할지 저울질도 하네요.

정치가 거짓말을 하나요?
정치하는 인간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요.
날씨가 거짓말을 하나요?
날씨를 예측하지 못한 예보관이 곳에 따라 거짓말을 한 거지요.

정치인과 일기예보는 뉴스 시간마다 달라지고
일기예보는 정치인을 닮아 가지만 날씨가 정치를 따라 하지는 않지요.
대권 기상도를 그리는 어설픈 예보관들만 있을 뿐이지요.

2007-08-16

내가 무서워하는 사람

등산을 같이하기로 한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 남한산성 책 갖구와

지난 제헌절에 남문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남한산성을 일주하고 동동주를 한잔하며 이제 <남한산성>을 완독 해야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산행 길에 가지고 오라는 말이다. 내가 무서워하는 일이 닥쳤다.

사실 나는 책을 빌려 달라는 사람이 돈 빌려 달라는 사람보다 더 무섭다. 보너스 받은 날, 기가 막히게 알고 급하게 돈 빌려 달라는 친구에게 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니 통화 끝나기 무섭게 넣어 주곤 한다. 당장 통장이 바닥이라도 사정을 듣고 나면 현금 서비스라도 해서 넣어 주기도 했다.

급하게 빌린 돈은 여유가 되면 제일 먼저 돌려줘야 할 텐데 그 사람들은 까맣게 잊고 있는지 돌려받은 기억이 없다. 빌려 준 돈이야 어찌 보면 적은 액수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쌓이다 보니 지금은 조그마한 소도시에 집 한 채 값은 족히 될 듯싶다. 또 그런 돈은 날짜를 정해 돌려받을 생각도 없고 어쩌다 조금이라도 되돌려 주면 오히려 내가 고맙고 공돈을 받은 것 같으니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책 욕심은 있어 누가 빌려 달라고 하면 선뜻 내주기가 쉽지 않다. 가끔 서점에 가서 책을 훑어보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아예 두 권을 산다. 읽다 보면 이 책을 읽어 볼 사람이 떠오르고 한 권을 선물로 주곤 한다.

그동안 경험에 의하면 빌려 준 책을 한 번도 되돌려 받지를 못했다. 만원이면 살 수 있는 책을 빌려 달라는 사람 치고 열에 여덟은 다 읽지도 않고 한구석에 처박아 놓기 십상이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빌려 가서 되돌려 주지 않는 사람은 훔친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다. 눈 뜨고 있는데 코 베간 사람이다.

빌려 간 사람이야 까짓 돈 만원짜리 종이로도 생각하지 않겠지만 빌려 준 사람은 책꽂이가 허전한 게 맞추다 만 퍼즐 같은 기분이다. 다 읽었으면 돌려 달라는 말도 못 한다. 아직 다 읽지 못했다거나 행여 그 책이 어디 있더라 하며 기억을 더듬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다.

비가 와서 산행이 취소되는 것은 반갑지 않고, 둘러댈 핑계거리를 생각하느라 완소남은 더 작아진다.

2007-08-13

완소남

담배와 라이터를 잃어버리면 상처투성이 라이터만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옥션에서 10원 더 싼 물건을 찾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답니다. 명품 가방을 잃어버리고도 그 속에 든 허름한 만년필만 생각납니다. 계약서 뒷면에 붙이는 인지세는 계약금액이 커질수록 정말 아깝습니다. 만원짜리를 쓴 것보다 담배 사고 남은 오백원을 어디에 썼는지 생각합니다. 마트에서 1+1을 사면 나만 땡잡은 것 같습니다. 삼만구천구백원에 바지를 세벌 준다기에 어떤 색깔로 할지 고민합니다. 우유를 먹기로 하고 받은 황토쌀독에 든 쌀로 밥을 하면 밥맛이 더 납니다. 스끼다시를 너무 많이 먹어 회를 남겨도 배가 부릅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목청을 높여도 내 땅이 한 평도 없으니 무덤덤합니다. 촛불 들고 반미집회를 해도 누가 비행기만 태워주면 미국에 가고 싶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할 때 중국집 주문 메뉴나 통일했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여권이 후지다고 투덜대면서도 사증 도장은 또 찍고 싶답니다.

현충일에 걸린 태극기를 봐도 무덤덤한데 오래된 책을 넘기다 떨어지는 만원짜리에 가슴이 울컥합니다. 니 똥 굵다, 그러면 물 내리기 전에 내 똥을 내려다봅니다. 굵고 짧게 살래, 가늘고 길게 살래 물으면 벽에 굵은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니 꿈은 뭐였니...라고 물으면 요새는 꿈도 못 꿔...라고 대답합니다.

나는 정말 완전 소심한 남자입니다.

2007-08-10

끼니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 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197쪽)

칼의 노래/김훈/생각의나무 20011031 389쪽 11000원

2007-08-09

나는 촌놈이어서 좋다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특혜다. 요즘 어린이들은 방학만 되면 농촌체험을 하러 부모님 손을 잡고 줄줄이 도시를 떠난다. 학교와 학원 사이에서 쳇바퀴 도는 비슷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곳은 금대국민학교 애신분교다. 요즘 아이들에게 얘기하면 무슨 소리인지 씨도 안 먹힐 소리지만 사실이다.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달고 아버지 꽁무니를 따라간 입학식에 신입생이라고 한 줄로 서 있지만 산골동네에서 같이 멱감고 소꿉놀이하던 코흘리개 친구들 대여섯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입학 기념으로 책가방을 선물로 받고 그것을 메고 다닌 놈은 내가 유일했다. 밤색 가죽 책가방을 메고 다닐 때 모두가 보자기를 둘둘 말아서 등판에 가로질러 둘러메고 다녔다. 산동네 맨 꼭대기에 사는 놈이 내려오면서 친구들을 하나씩 불러 모아 고개를 하나 넘어 가는 등교 길은 지루하지 않았다. 매일 보는 나무고 풀인데도 지날 때마다 새로워 보였다. 어쩌다 새집이라도 발견하면 오가며 들여다 보고 새끼들은 얼마나 컸는지 보는 게 즐거움이었다.

교실은 달랑 3개뿐이었고 두 개 학년이 한 교실을 반씩 나누어 썼다. 선생님은 두 분뿐이었고 한 학년을 가르치는 동안 옆에 있는 학년은 숙제를 하거나 자습을 했다. 교과서가 없어 선생님이 칠판에 판서를 하면 누런 공책에 옮겨 적거나 그나마 공책이 없는 친구는 눈으로 따라 읽고 손가락으로 책상에 적었다. 이십여 일이 지나서 아버지가 시내에서 국어와 산수 헌책 3권을 사 오셨다. 우리는 그것을 서로 돌려 보며 일학년을 보냈다. 첫 통지표는 모두 '우'였다. 동네 형은 우등상은 안 받았느냐고 물었다. 우등상이 뭔지 모르는 나는 통지표에 모두 우를 받으면 주는 상인 줄 알았다.

방학이라고 해봤자 특별한 것이 없다. 학교에서 보내던 시간만큼 더 놀면 그만이었다. 냇가 옆에 있는 개복숭아 나무에서 설익은 복숭아를 따서 물속에 던져 넣고 누가 먼저 꺼내 오나 자맥질을 하면서 온종일 보냈다. 그 냇가에는 전교생의 절반은 항상 나와서 발가벗고 멱을 감았다. 입술이 파래지도록 놀다 추우면 그대로 누워 몸을 말리면 됐다. 방학숙제를 한 기억이 없다. 교과서도 없는 판국에 숙제를 내 줄 형편이 안됐다. 그렇게 여름 내내 멱감고 매미 잡은 기억만 있다.

이학년이 됐지만 교실을 옮길 필요가 없었다. 삼학년이 된 언니들이 옆 교실로 가고 새로 들어온 신입생 몇 놈이 그 자리에 대신 앉아 우리가 물려준 헌책으로 철수와 영희와 바둑이를 따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구구단을 한쪽 칠판에 적어 놓고 산수 시간만 되면 장단에 맞춰 이단부터 구단까지 흥얼거렸다. 한 달은 족히 그랬던 것 같다. 그해 봄이 다 가기 전 신통하게도 내가 맨 처음으로 구구단을 깨우쳤다. 만화책은 옆집-담장을 사이에 둔 그런 옆집이 아닌- 형이 어디서 구했는지 다 떨어진 소년 월간지를 들고 낄낄대고 있기에 옆에서 같이 처음으로 보게 됐다. 이런 신기한 세상이 있다는 걸 난생처음 알게 됐다. 몇 번을 보고 또 봐도 항상 재미있었다. 그 감동과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해 겨울 방학에 시내로 이사를 했다. 개학이 돼 교실에 가보니 애들이 너무 많아 당황했다. 교과서도 공짜로 나눠 주었다. 신입생이 돼 여름 방학에 서울에서 내려온 사촌 동생은 오후반이라고 했다. 서울은 애들이 너무 많아 한 교실에 다 앉아 배울 수가 없어 오전 오후로 나눠서 등교한다고 했다. 남의 나라 얘기처럼 신기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시골생활이자 여름 방학이다. 그 후 학창생활은 다른 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을 경험한 친구들이 주위에는 없다. 교과서가 없어 헌 책을 돌려 봤다는 얘기를 듣는 이들은 껄껄 웃지만 그런 경험을 한 나를 조금은 부러워하는 눈치다. 시골에서 자라다 도시로 나와 공부한 촌놈에게 다시 돌아갈 고향 같은 여름 방학의 기억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나는 애신분교에 입학했었다는 사실이 즐겁다. 나는 촌놈이어서 좋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그리워하는데 방학 때만 잠시 뛰어노는 아이들은 과연 나이가 들면서 무엇을 그리워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와 같은 기억들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방학 때 서울서 동생이 들고 올 종합선물세트를 기다리는 설레임이나 말린 고사리며 옥수수를 싸들고 올라가는 동생의 기쁨을 모른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런 여름 방학을 만든 모든 것이 우리의 죄다.

2007-08-08

파피용

#1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세 가지 적과 맞서게 되지. 첫 번째는 그 시도와 정반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두 번째는 똑같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지. 이들은 자네가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생각하고 자네를 때려눕힐 때를 엿보고 있다가 순식간에 자네 아이디어를 베껴 버린다네. 세 번째는 아무것도 하지는 않으면서 일체의 변화와 독창적인 시도에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다수의 사람들이지. 세 번째 부류가 수적으로 가장 우세하고, 또 가장 악착같이 달려들어 자네의 프로젝트를 방해할 걸세. (49쪽)

#2
제 생각에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인, 군인, 목사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정부도 군대도 종교도 없는 최초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권력과 폭력, 신앙 이 세 가지야말로 대표적인 의존형태지요. (98쪽)

#3
<역설>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밤보다는 낮에 더 잘 보인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틀린 생각이에요. 낮에는 기껏해야 수십 킬로미터 밖에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하늘에 있는 구름과 대기층 때문에 우리 시야가 제한되죠. 하지만 밤에는...... 밤에는 몇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별들도 눈에 보이죠. 밤에는 멀리 보입니다. 우주를, 그리고 시간을 보는 겁니다. (114쪽)

#4
그녀의 주례사는 <이제 두 사람은, 사랑이 식어 서로 헤어지는 순간까지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고 마치곤 했다. <유머리스트> 질은 자신의 공연 레퍼토리에 이를 패러디한 냉소적인 문장을 하나 넣었다. <이제 두 사람은......둘 중 하나가 더 괜찮은 사람을 찾기 전까지 서로 하나가 되어 상대방에게 충실합니다.> (221쪽)

#5
우리가 현재 상태에 절대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소. 인간은 지구에 있을 땐 우주로 떠나고 싶어 하지. 그리고 우주에 있으면 다시 지구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고. (266쪽)

#6
인류는 환생하는 거야. 다시 태어날 때마다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지구라고 부르는 행성에 자기 혼자 존재한다고 믿는 거지. (388쪽)

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전미연 역/열린책들 20070710 433쪽 10800원

2007-08-07

남한산성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9쪽)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32쪽)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38쪽)

- 전하, 이제 화친의 길을 끊고 싸움의 길로 나섰으니 한 사람의 목을 베어 길을 분명히 밝혀주소서.
임금이 말했다.
- 그 한 사람이 누구냐?
- 이조판서 최, 명, 길이옵니다. (201쪽)

임금은 말했다.
- 애초에 화친하자는 명길의 말을 쓰지 않아서 산성으로 쫓겨오는 지경이 되었다고들 하면서, 이제 명길을 죽여서 성을 지키자고 하니 듣기에 괴이하다. (209쪽)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244쪽)

김상헌이 말했다.
- 전하, 명길은 전하를 앞세우고 적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려는 자이옵니다. 죽음에도 아름다운 자리가 있을진대, 하필 적의 아가리 속이겠나이까?
최명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 전하, 살기 위해서는 가지 못할 길이 없고, 적의 아가리 속에도 삶의 길은 있을 것이옵니다. 적이 성을 깨뜨리기 전에 성단을 내려주소서. (270쪽)

최명길이 말했다.
-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것이옵니다. (339쪽)

임금은 새벽에 성을 나섰다. (352쪽)

남한산성/김훈/학고재 20070414 384쪽 11000원

2007-08-06

시라는 것은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본디 비겁하다면
제아무리 고상한 표현을 하려 해도
이치에 맞지 않으며,
사상이 본디 협애하다면
제아무리 광활한 묘사를 하려 해도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때문에 시를 쓰려고 할 때는
그 사상부터 단련하지 않으면
똥무더기 속에서 깨끗한 물을
떠내는 것과 같아서
일생토록 애를 써도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묻은 잔재를 씻어내고
그 깨끗한 진수를 발전시키면 된다.

- 茶山 정약용

2007-08-05

樂書 살맛안나

제로섬
주식시장에 있는 섬.
먹는 놈이 있으면 토하는 놈도 있는 아주 공평한 섬.

첫사랑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묻어둔다.
여자는 첫사랑을 가슴에서 도려낸다.

살아가는 법
남자는 고독하다.
여자는 독하다.

모순
라식수술을 설명하는 의사 선생님은 안경을 쓰고 계신다.

살맛안나
식인종이 밥투정할 때 하는 말.
요즘 식인종이 돼가는 사람이 늘어난다.

S 라인
입에 문 치약 거품이 배꼽으로 떨어지는 몸매

2007-08-04

D+200, 술 권하는 사회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 마지막 구절이다. 대한민국은 술 권하는 사회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싫어도 마셔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술 한 잔 하지 않으면 서로 가까워지지 않은 것 같고 서먹서먹하다. 밤늦게까지 어깨동무를 하며 마셔야지 친해진 것 같고 중간에 도망간 놈은 배신자로 낙인이 찍힌다. 그런 사회다.

정초면 3금(禁煙, 禁酒, 禁錢)을 결심하는데 오늘이 금주를 시작한지 200일째 되는 날이다. 금연 결심은 번번이 무너지곤 했는데 금주 결심이 100일이 넘어간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대학에 복학하던 해. 정초부터 금주를 하다 100일째 되는 날, 사회학 강사가 된 선배가 자기 과목을 수강하는 동문 후배에게 생맥주를 하사하는 바람에 깨졌다.

7~8년 전, 한참 달리기에 취미가 붙어 새벽에 십리 길을 달리고 퇴근해서 이십 리를 달릴 때는 술 생각이 전혀 나질 않았다. 퇴근 무렵 누가 공술을 사준다 해도 오로지 달리는 즐거움에 그 소리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반년을 달리다 연말 송년회 자리에 참석해서 소주 첫 잔을 입에 대면서 아주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이 두 번째 금주의 기억이다.

그동안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등산하고 내려오는 길에 도토리묵에 한두 잔씩 마신 동동주가 전부다. 아니 딱 한 번 어쩔 수 없이 삼겹살에 소주 한 병 마셨다. 그게 전부다. 절대로 알코올을 입에 대지 않아야 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라면 할 말이 없다. 자발적 의지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핑계로 너그럽게 넘어간다면 200일 동안 금주를 했다.

전보다 몸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정황도 없고, 가끔 부슬부슬 비가 내리면 막걸리와 파전이 생각나지만 그전만큼 강하게 이끌리지는 않는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겠다는 호언장담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사회가 술을 권한다는 탓은 하지 않을 듯싶다. 모든 게 다 내 탓이다. 이것이 술을 마시지 않으며 얻은 깨달음이다.

2007-07-31

정원 일의 즐거움

#1
농촌 생활은 도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거칠지는 않지만 온화한 것도 아니다. 정신적이거나 영웅적인 생활도 아니다. 하지만 마치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고향처럼 모든 정신적인 인간과 영웅적인 인간의 마음을 그 깊은 곳까지 끌어 당긴다. 왜냐하면 이런 것이야말로 가장 오래 존속돼 온 가장 소박하고 경건한 인간생활이기 때문이다.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근면과 노고로 가득 차 있으나 성급함이 없고 걱정 따위도 없다. 그런 생활 밑바닥에는 경건함이 있다. 대지, 물, 공기, 사계절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이 잇고 식물과 동물 들이 지닌 생명의 힘에 대한 믿음이 있다. (126쪽)

#2
세계는 작아졌어. 노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평생 동안 이 노인은 무수한 사람들을 만났고, 높은 관직들을 거쳤으며, 전세계를 여행하며 돌아다녔다. 그는 괴테처럼 "모든 태양의 빛과 모든 나무들과 모든 해안, 모든 꿈을 마음속에 함께 붙들어보고 싶다."는 동경을 끊임없이 키웠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노인의 활동 공간은 그의 좁은 정원 안으로 한정되었다. 나무와 풀, 관목과 꽃 들이 자라는 화단과 친숙해진 그는 직접 화단을 가꾸고 자신의 생각대로 형태를 만들고 스스로 관리했다. 그렇다고 노인의 생활이 전보다 덜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작은 장미 화단조차 해안이나 넓은 세계처럼 감각과 관념에 의해 다 퍼올릴 수 없음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소유란 무엇이든지 제한적인 것이었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건 바로 체념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체념하는 일은, 미소와 명상을 통해 성스럽게 변모되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220쪽)

#3
중국의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같은 인물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반복해서 나온단다. 젊은 시절에 그 사람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여 직업을 갖기 위해 무언가를 배운다. 성인이 되어서는 결혼을 하고 가족을 보살피며 살아간다. 그러다 조국애를 배우고 무엇보다 선조와 자손의 일을 염려하게 되지. 그는 열심히 일하고 유익한 사람이 되어, 나서서 국가를 끌어가는 일을 돕는다. 그러나 결국 나이를 먹게 되자 자신이 여전히 고독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해온 모든 일들이 이기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서, 어느 날 밤 집과 논밭, 아내, 하인들, 직무와 서책을 모두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자신의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산 속으로 들어가 이슬과 꽃잎만을 먹고살면서, 자신에게 붙어 있던 껍질을 모두 벗어던져 버린다. 그러고 나서 그는 不死의 사람들 사이에 끼게 된다. (246쪽)

정원 일의 즐거움/헤르만 헤세/두행숙 역/이레 20011031 324쪽 12000원

2007-07-28

개만도 못한 인간

지난 주말에 등산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에어컨 바람이 춥게 느껴지더니만 짐작대로 이틀 지나니까 콧물이 나오고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얼른 약국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감기약 좀 주세요"
"증상이 어떠세요?"

약사는 에어컨 바람 좀 작작 쐬라는 눈으로 묻고는 이틀치를 줬다.

다행히 약을 먹고 하루 지나니 콧물이 멎기 시작하고 이틀분을 다 먹으니 정상으로 회복이 됐다. 이틀 동안 약만 먹으면 졸려서 봄볕에 쪼그리고 앉은 병아리 새끼처럼 시도 때도 없이 졸면서 보냈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고 하는데 그만 감기에 걸렸다. 이틀이지만 개만도 못한 인간이 돼 버렸다. 듣는 개가 있으면 왜 꼭 비교를 해도 개와 비교하느냐고 기분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개가 기준점이 돼 버렸다. 개똥철학도 있고 술 먹으면 개가 된다는 말도 있다. 개새끼는 그나마 나은 욕이다. 개만도 못한 놈에 비하면.

가만히 개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억울한 면이 참 많을 듯싶다. 개는 개답게 사는 것뿐인데 자꾸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인간들을 찍어다 붙이니 억울한 면이 참 많겠다. 그네들은 오히려 인간만도 못한 개라는 아주 심한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잠시 개만도 못한 인간이 돼 봤지만 개들 눈에 우리만도 못한 인간으로 비치지 않는지 조심스러워진다. 사람 목숨을 볼모로 흥정을 하는 인간들, 군대를 두 번 가야 하는 인간들, 가짜 참기름을 유통한 인간들, 탈세한 인간들. 개들이 보고 있어요.

2007-07-27

악랄한 자

악랄한 자란 진리를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의 이해가 거기에 일치하는 경우에만 진리를 지지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일단 자신의 이해에서 벗어나면 진리를 버리고 돌보지 않는다. (팡세 583)

우리는 악랄한 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랄한 자가 버려진 진리를 돌보지 못하게 하려고 불의를 직권상정하여 산성처럼 쌓아올린 담을 허무느라 손톱이 뭉그러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악랄한 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악랄한 자를 허무느라 정작 기다리던 내일이라는 열차를 놓치는 것입니다.

2007-07-25

테세우스의 배

#1
백 개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테세우스의 배가 있다. 그런데 한 조각이 떨어져나가 다른 조각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부분적인 공사가 진행되어 결국엔 백 조각 모두를 다른 조각으로 대체했다. 이 경우 새로 보수된 배는 원래의 배와 동일한 배인가, 아닌가? 즉 모든 조각을 대체했음에도 원래의 배는 정체성을 유지하는가의 문제이다. 또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자. 테세우스의 배를 한 조각씩 옮겨서 원래의 배와 동일한 순서와 구조로 재조립했다면, 그 배는 원래의 배인가, 아닌가? 그리고 한 조각씩 옮기면서 그 자리에 다른 조각을 하나씩 붙여놓았다면, 그 배는 원래의 배가 지녔던 정체성을 유지하는가, 상실하는가? (31쪽)

#2
철학은 빵을 구울 수 없다고 한다. 철학의 무용함과 비현실성을 지적한 말이라 짐작한다. 사실 철학은 빵을 구울 수 없다. 하지만 왜 빵을 구워야 하는지, 더 나아가 왜 빵을 먹어야 하는지를 말해줄 수 있다. 철학이 꼭 빵을 구워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못하고 빵을 굽는 이유, 빵을 먹는 이유도 알아야 한다. (118쪽)

한국의 정체성/탁석산/책세상 20011231 143쪽 4900원

2007-07-20

거짓말은 계가(計家)도 못하고 끝난다


작금(昨今) 강호(江湖)는 화려한 무공으로 신출귀몰하며 흥미진진한 공방전을 펼치는 세 가지 사건으로 시끌시끌하다.

정치 난장(政治亂張)에서는 뒤통수를 치는 건 예사고 암기도 서슴없이 날리며 대권지존 유일종사(大權至尊 唯一宗師) 자리를 차지하려고 딴나라 무림도장의 후보검증 수련대회에 참가해 혈투를 벌이는 의남매가 관전의 재미를 주고 있다. 정치 난장판에서 강력한 쌍벽이었던 열린뚜껑파가 지존의 은퇴를 앞두고 잠시 사분오열되어 서로 적통임을 내세우며 암중모색(暗中摸索)인 가운데 딴나라파 의남매는 본선도 나가기 전 백척간두에 서서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절대무공을 내뿜으며 용쟁호투(龍爭虎鬪)를 벌일 것이라는 건 그 바닥 생존비법이 된지 오래다.

화류계(花柳界)는 평소 사이비(似而非) 같은 춤과 노래로 아무 생각없이 딴따라 판을 달궜던 싸이(四異)라는 가객무사(歌客無思)가 병졸로 다시 군대에 가니 마니 하며 병조 직속기관인 병무도감을 향해 감히 전가게시 묵필신공(電家揭示 墨筆新攻)이라는 최신예기(最新銳氣)를 날리더니 급기야 행정소송이라는 시간지연술(時間遲延術)을 펼치고 있다. 시간지연술은 정도가 아닌 사술(邪術)이어서 절대 안쓴다며 병무도감을 안심시키고 순식간에 말을 뒤집는 현란한 반전(反轉)의 절정을 보여 주고 있다. 실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대단한 허허실실 무공이다.

한편, 점잖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묵객 거리(墨客距離)는 십여 년을 암중비약하던 신정아(新靜雅)라는 처녀 고수가 공력은커녕 출신 도장과 계보가 허위로 밝혀지며 심한 내상을 입고 후일을 기약하며 바다 건너에 있다는 미국(米國)으로 잠행비행(潛行飛行) 경공술(輕功術)로 피하자마자 후환을 두려워하는 무리가 스스로 자신의 수학능력을 공개하고 있어 그야말로 아수라장(阿修羅場)이다.

저들이 쓰는 공법의 공통점은 위계신공(僞計新攻)이라 하는 무시무시한 절대비책(絶對秘策)이다. 위계신공은 연마하기도 간단할뿐더러 한 번 시연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펼치기 시작하면 주위의 모든 눈과 귀를 무색무취로 현혹할 수 있고 급기야는 자신마저 위계신공에 사로잡히는 무서운 필살기다.

위계신공은 출발은 보잘 것 없으나 한 번 두 번 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결국에는 공력을 사용한 고수마저 주화입마(走火入魔)의 지경에 이르게 한다. 그리하여 강호에서는 위계신공을 펼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내려오고 있다. 무림계를 모르는 평인(平人)들은 그들을 일컬어 대사기꾼(大詐欺君)이라 칭하고 위계신공을 흔히 거짓말이라고 편하게 부른다.

그동안 금지된 위계신공의 유혹을 이길 수 없어 화려한 사위(詐僞)를 펼치다 회복불능의 상태가 돼 강호를 떠난 초절정 고수들이 부지기수다. 신정아(新靜牙) 고수가 잠행한 미국(米國)엔 수지추문(水之醜聞, Watergate)으로 만신창이가 돼 쓸쓸히 백악관(白堊館)을 떠난 닉수거사(匿囚居士,Richard Milhous Nixon) 얘기는 전설이 된 지 오래다.

근자에는 승준도령(Steve Seungjun Yoo)이 병졸로 군대에 꼬~옥 간다며 초보 위계신공을 쓰다 강호에서 영원히 추방되었고, 정지영 아줌마(亞主魔)는 마시멜로 이야기를 자신의 지공(指攻)으로 번역탈고(飜譯脫稿)했다며 위계신공을 몇 번 써보지도 못하다 힘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줄기세포 복제술 대가 황우석 박사(博士)는 조정(朝廷)은 물론 백전노장이 즐비한 학계에서 위계신공의 절정을 보여주다 신진 과학파(新進 科學派)들의 반격으로 시작돼 포도청 내사(內査)까지 받음으로써 황우거석(黃愚巨石)이 돼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기도 했다.

그 중 백미는 절대강자 회창지존(會昌至尊)의 삼풍일화(三風逸話)다. 이른바 병풍(兵風), 총풍(銃風), 세풍(稅風)으로 불리는 위계신공의 초절정 신풍(迅風)은 결국 회창지존의 육십갑자 내공(六十甲子 內空)을 다 소모시키며 주화입마에 빠져들게 하여 강호를 떠나 은둔하게 만들었다. 요즘 기운을 차렸는지 저잣거리에 가끔 나타나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를 않는다.

이에 너저분한 강호무림을 안주 삼아 노닥거리는 卒夫裸無가 한마디 안 할 수가 없구려.

僞計新攻 必不計敗
詐欺行者 犬亡身終

자고로 거짓말은 계가(計家)도 해 보지 못하고 끝나고
 사기친 놈은 결국 개망신 당한다는 걸 왜 모르는고.    

2007-07-19

빗소리 들으며

요즘은 비 오는 소리가 참 좋아집니다. 오늘처럼 밤에 내리는 빗소리는 더더욱 그렇답니다. 천방지축 날뛸 때 느끼지 못한 차분함이 있어요. 비 오는 소리를 독차지하고 남몰래 꺼내서 듣는 느낌입니다.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오래된 책을 꺼내 펼쳤을 때 떨어지는 단풍잎처럼 추억이 하나씩 떨어집니다. 첫사랑과 헤어질 때 꼭 오늘같이 비가 내렸던 것 같습니다.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도 생각이 나고 생머리를 흩날리던 그 소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고 싶습니다.

빗소리가 가늘어지며 처마 끝에서 똑똑 떨어지는 소리는 잠시나마 순수하게 만듭니다. 이팔청춘으로 되돌아간 것도 아닐 터이고 갑자기 개과천선하여 순한 양이 된 것도 아닌데 예전에 느끼지 못한 순수함이 있어요.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더 착해진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가 봅니다. 극장에 앉아 슬픈 영화를 볼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슬쩍 삐져나올 것 같네요.

그렇다고 너무 많이 내려 슬퍼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저 순수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부록의 인생이 비 맞은 땡추처럼 주절거리며 어깨에 놓인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만큼만 딱 고만큼만 내려 주길 바랍니다.

2007-07-15

대한민국 사용후기

#1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 앞에서 미소를 짓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정신병자나 얼간이가 아니면 아무도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예쁜 여자에게 미소를 지으면, 못 본 척 외면하거나 아니면 무슨 변태라도 만난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눈길을 돌려 버린다. 인도네시아 사람에게 미소는 미소일 뿐이며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주고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일 뿐이다. 그들은 미소가 사회 전체에 활력을 북돋는 이외의 어떤 불순한 의도도 개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만큼 세련된 사람들이다. (23쪽)

#2
하지만 많은 도덕주의자, 돈에 눈먼 개발업자, 도심의 고급화를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낡아빠진 이 오욕의 전당을 관광객들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낙원동 빈민가로 밀어낸 것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성인들 사이의 합의에 의해 성(性)을 사고파는 것과, 단지 돈을 벌려고 자기 자신의 역사를 강간하는 것, 둘 가운데 무엇이 더 나쁜지는 선뜻 판단하기 어렵다. (57쪽)

#3
이른바 '네티즌'이라 불리는 인간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유치하고 막돼먹은 행동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자신들에게 붙은 '네티즌(인터넷 시민)'이라는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진정한 시민은 현실 세계든 온라인에서든 언제나 자기가 속한 정치적 공동체의 성숙하고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행동한다. (71쪽)

#4
전 세계 주요 대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에만 차이나타운이 없는데는 구체적인 역사적, 법적 이유가 있다. 그리고 비한국인이 한국 땅에서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경우 즉시 제 발로 이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강제 추방을 면치 못한다. 한국 사회에 성, 나이, 지역, 계급, 교육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민족적, 이종적 배경을 가진 비한국인에 대한 차별도 엄연히 존재하며, 당장 나 자신부터 일개 소수자로서 그 같은 편견과 차별을 수시로 경험하고 있다. (125쪽)

#5
쿨한 것과 잘난 척하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인간들, 정말 싫다. 그 차이가 뭔지 아냐? 간단하다. 쿨한 사람은 절대 쿨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는 사람은 쿨하게 보이려고 겁나게 애쓴다. (172쪽)

대한민국 사용후기/J. 스콧 버거슨/안종설 역/갤리온 20070409 255쪽 12000원

2007-07-14

햇살

건조한 시간 사이로
미소 지으며 다가온 햇살에
차마 눈을 뜨지 못했지
만남은 원래 그런 거
설레는 만큼 눈부시다

빛바랜 가로등 아래
낯가림하는 손끝이 마주치다
시나브로 끌어안은 입술
사랑은 원래 그런 거
어색한 만큼 익숙해진다

미안해요 안녕
기별 없이 가 버린 햇살은
마저 못다 준 미래를 놓고 갔다
이별은 원래 그런 거
더 사랑할 만큼 슬퍼진다

널 놓아주지 않는 계절은
찢어 놓고 덮어 버릴수록
어김없이 돌아오곤 한다
기억은 원래 그런 거
지우면 지운만큼 생각난다

이제는 익숙해진 가로등과
만날수록 어색해지는 그림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서 있다
인생은 원래 그런 거
기다린 만큼 또 만날 수 있겠지

2007-07-11

나는 마흔이 좋다

#1
불혹의 나이가 그런 모양이다. 아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아들을 통해 나의 아버지를 돌아보는 나이가 불혹인 모양이다. (96쪽)

#2
어쨌거나 '좋은' 직장을 박차고 나와서 보란 듯이 잘 먹고 잘살았는지 이야기할 순서인 것 같은데 임금 피크제라는 것을 갖고 설명해 보면 어떨까 싶다. 나이나 경력이 최고 수준에 도달한 후 일정 단계를 넘으면 다시 임금이 인하되면서 일자리를 보장받는 똑똑한 제도 말이다. 개인의 수입이나 재산에도 이런 개념을 적용하면 나의 경우도 재산상의 피크를 지나 이제는 하강곡선을 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얼마 안 되는 재산이나마 까먹고 있다는 얘기다. (126쪽)

#3
외국계 회사에 다닐 때 내가 모시던 영국인 사장은 늘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나오고 또 그만큼 일찍 퇴근하곤 하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아침 시간에 집에 있어봐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집안일을 도울 수도 없을 뿐더러 또한 일찍 출근해야 어느 직원이 부지런한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었고, 퇴근을 서둘러 하는 이유는 집에 가서 할 일이 많다는 것과 사장이 자리에 없어야 혹 일이 있어 빨리 퇴근하려는 부하 직원들이 눈치 안 보고 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정과 회사 두 분야를 고루 배려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148쪽)

#4
우리 사회가 너무 빨리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후배들과 우리는 전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자라왔는지도 모른다. 단칸방에서 대여섯 식구가 함께 생활하거나 국가가 두발과 복장까지 관리하던 사회에서 자라던 우리들과 80년대에 태어난 후배들이, 또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50대 선배들이 서로를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처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선배들을 보면서 가책을 느끼고 후배들을 보면서 낯설어하는 일이 우리 세대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늘 이렇게 이어져오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들을 어느 누군가는 낯설어하면서 말이다. (198쪽)

#5
그런 반성 끝에 이 나이는 한없이 쑥쓰러운 것이다.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강팀을 만나 전반전은 1:0으로 끝났고, 후반전이 시작된 지 10여 분 경과한 시점이 이 나이다. 동점이라도 만들 수 있을까 불안한 나이다. 어렵게 동점이라도 만든다면 '등'의 땀이라도 닦을 최후의 여유라도 주어질 것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설령 2:0으로 끝난들 어떠랴. 나는 당당히 이 시합에 출전했고, 휘슬이 울릴 때까지 열심히 뛰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리라. 더 이상 인생의 승패에 매달리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이 시합을 마치는 것, 그뿐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 시합의 당당한 주전선수 아니었던가? (241쪽)

나는 마흔이 좋다/한재희 등/마고북스 20070409 255쪽 9800원

2007-07-07

경쟁력 제고를 위한 조직분위기 활성화 방안

목     차
1. 머리말
2. 소집단 활동과 도전의식
3. 고객중심의 업무
4. 기본을 지키는 기업문화
5. 비젼을 위한 장기적 혁신운동 전개
6. 결론

1. 머리말

우리는 흔히 "기업은 유기체다"라고 말한다. 이는 기업은 많은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고 조직은 사람 즉 인적자원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뜻한다. 인적자원이란 스스로 성찰하고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방식으로든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기업이 유기체라는 것은 결국 그 기업체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초일류 기업은 조직 속에서 시너지 효과를 통해 효력을 나타 낼 수 있다. 조직은 적대적인 풍토에서는 생존할 수 없고, 구성원의 관심과 지원 없이는 현존할 수 없다. 기업과 조직, 조직과 구성원은 분리할 수 없으며 동일한 환경에 일치된 행동으로 적응해 가야만 한다.

지금 우리의 경영환경은 외적으로는 경기침체와 국경 없는 가격경쟁, 신노사관계로 인하여 무한경쟁의 시대를 지나 적자생존의 시기에 이미 접어들었고, 내적으로는 현상유지와 책임의식이 부족한 수동적인 자세와 과거지향적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심각한 경영현안에 대하여 구성원 간의 인식에 대한 공유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만 느끼고 있다. 그럼으로써 위기의식에 대한 적응 자세가 피동적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비관적인 물음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현상을 타파하고 개척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해답을 구해야만 한다. 그 해답은 여러 방면에 걸쳐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지만 결국 경쟁력의 기본은 조직을 구성하는 인적자원이다. 갈수록 첨단화되고 세계화되는 시장에서 구성원 하나하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구성원 또는 그가 속한 조직의 분위기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찾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은 경쟁력 제고의 기본이라 할 수 있겠다.

2. 소집단 활동과 도전의식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개선하여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자세는 도전의식에서 시작한다.

소집단 활동의 목적은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를 가급적 최대한 달성하여 회사에 알려주는 데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스스로 정한 기준과 비교하여 생산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구체적이고 정형화된 결과를 제시하여야 한다. 활동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소집단 활동을 위해서는 적절한 자율시간(3M사의 경우 15% 정도)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 시간을 통해 그룹을 형성하여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다. 이때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고서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일러주는 것보다 훨씬 더 회사에 도움이 된다. 구성원이 진실로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성사가 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유연하지 못한 조직에게 있는 것이다.

시간과 창의력도 있어야 하지만 비용도 든다. 그러나 좋은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지원금은 지급해도 그것이 성공하였다면 금전적인 보상은 없어야 한다. 현금으로 보상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구성원(또는 소집단)들은 서로가 정보를 교환하지 않고 자기 아이디어를 보호하려고 한다. 소집단 활동의 승패는 기술과 정보를 지속적으로 교환하고 공유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금보상이 없다는 것은 소집단 활동의 실패에 대해서도 벌금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도 창조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실패한 사례도 노하우로 인정을 하여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도전의식이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다양한 기능의 구성원들이 현 위치에서 나름대로 공헌을 해야 한다는 자세와 또 좋은 아이디어를 자꾸 생각해 내는 창조 심리를 자극하고 동기를 부여하여야 한다. 즉 TOP이 문제를 제기하고 BOTTOM이 해결방안을 제시해나가는 것이 요구된다.

3. 고객중심의 업무

지금은 고객만족(CS)의 시대다. 우리는 흔히 고객이라면 제품의 최종 소비자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매체를 통해보면 고객은 내부고객과 외부고객으로 나눌 수 있다. 외부고객은 물론 제품의 최종 소비자를 말하며 내부고객은 "내 일의 결과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객의 개념을 외부고객으로만 한정해서 업무를 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내 일의 결과를 사용하는 사람 즉 내부고객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업무처리가 경직화되고 관료주의적 성격이 나타나곤 한다.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모든 업무가 고객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고객중심의 업무처리를 하게 되면 고객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신경 쓰게 되고 상대방의 요구를 충족시키려고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부서의 업무가 내부 구성원이 아닌 고객에게 향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의 부서가 아니라 서비스를 창출하는 개념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 부서 이익 또는 개인적 이익만을 생각하고 행해지는 업무는 고객에게 원치 않는 서비스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너무 자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고객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기 쉽기 때문이다.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는 고객감동에 관한 교육이나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행할 필요가 있다. 일의 존재가치가 고객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조직 내에서는 동료나 타 부서도 고객으로 인식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고객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 구성원 모두가 상호 고객이 된다. 일의 종류에 따라 자신과 상대방이 서로 고객의 입장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관리편의주의나 수동적인 업무형태는 사라질 것이다.

4. 기본을 지키는 기업문화

현대에 와서 기업을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요소로써 기업문화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기업문화는 구성원의 업무 방식은 물론 사물을 보는 견해와 사고방식, 행동까지 규정한다. 그러므로 기업의 문화라는 것은 그 조직의 소프트웨어이자 무형의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무형의 자산인 기업문화는 내부적으로는 구성원 각자의 삶과 일의 보람을 방향 지울 수 있고, 대외적으로는 기업의 이미지가 된다. 따라서 기업의 생명을 제어하는 전략적인 테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기본 지키기를 꾸준히 전개해 왔다. 정해진 규칙과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그것을 위반했을 때는 명확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안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로 필요하고 지키는데 불편함이 없게 단순하고 규격화된 가치, 시스템, 행동양식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표준이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효용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지킬 수 있도록 단순하고 간단한 실질적인 생활방식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한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활발하게 의견이 교환되는 활기찬 조직으로 될 것이다. 구성원에 있어서 회사는 단순한 직장이 아닌 인생과 생활의 터전이다.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은 동기부여와 만족감을 통한 성취의욕으로 이어져 상호 개선 업무에 대한 협력된 분위기를 만들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하게 할 수 있다.

기본 지키기 하드웨어를 수정, 보완하는 과정에서 조직의 성격이 형성되고 그것이 마침내는 기업문화로 이어져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기업문화가 되어야 한다.

5. 비전을 위한 장기적 혁신운동 전개

현상을 개선하여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혁신은 회사의 위기의식을 전 구성원에게 확산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하여 달성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성패의 열쇠는 구성원이 위기감을 실감하고 있느냐 하는 데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절박감으로 필사적인 선택을 하여야만 한다. 경영현안에 대한 구성원의 인식이 부족하고 위기감이 없으면 현상유지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경영환경에 대한 위기감을 공유하였으면 목표가 명확히 설정되어야 한다. 불분명한 목표로는 구성원을 한 곳으로 몰고 갈 수는 없다. 이렇듯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때에 구성원과 조직은 함께 성장한다. 혁신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조직은 이념, 이상, 목적을 높이 내걸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사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하나의 집단으로 묶고 성장을 추구해 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해야 한다는 당면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불합리한 요소를 제거하고 고비용 저효율적인 부문을 개선하려는 실천행동을 마스터플랜에 의하여 추진하여야 한다. 중장기적인 계획 아래 단계별 소목표를 정하여 이것만은 해보자 라는 의지로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단기성, 일회성으로 끝나는 캠페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강력한 리더십과 자발적인 참여만이 성공으로 갈 수 있다.

6. 결론

이상에서와 같이 도전의식을 키우는 소집단 활동의 장려, 관료적이거나 수동적인 부서 간의 폐쇄성을 고객에게 업무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서비스를 창출하는 협력 분위기로 조직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 기본을 지키는 것이 우리 고유의 기업문화로 될 수 있으며 중장기적인 계획에 의한 혁신운동을 전개하여 우리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남의 것을 모방하여 그대로 적용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거나 고유의 경영혁신 방법을 창조하여 필사의 집념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혁신운동이나 활동을 시작하여 처음 20 퍼센트의 노력이나 시간을 들여 80 퍼센트의 결과나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나머지 20 퍼센트의 효과를 얻으려면 80 퍼센트의 노력을 경주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리더의 관심과 사후관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19970603 승급 Report)

2007-07-02

편지를 쓴다는 것

손으로 글을 써 본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지금이야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들겨야 하는 세상이고 또 익숙해 지다 보니 손으로 쓰는 것보다 진도가 빨리 나간다. 그러다 보니 필체가 엉망이 됐다. 학창시절에는 펜팔한다며 불특정 다수에게 편지를 쓰는 건 다반사였고 연애편지를 대필 해 주기도 했다.

제일 많이 글씨를 써 본 것이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급문집을 만들던 시절이다. 급우들 원고를 모아 둘이서 이틀 밤을 새워 가며 쓴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제법 괜찮은 필체를 가지고 있었다.

입사해서도 90년대 초중반까지는 보고서를 육필로 쓰던 시절이었는데 개인별 PC가 보급되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자판이 대신하게 됐다. 그러고 보니 펜대를 놓은 게 벌써 십여 년이 넘어 버렸다.

이제는 펜대를 굴린다는 것이 축의금 봉투나 연하장 보낼 때 이름 석 자 써 넣는 게 고작이다. 그러다 보니 괜찮았던 글씨체가 나도 모르게 바뀌어 버렸다. 수첩에 메모라도 할라치면 처음 대하는 글씨를 보며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요즘은 편지라야 무슨 고지서 아니면 청첩장뿐이다. 그러니 친필로 쓴 편지가 더욱 그리워진다. 손으로 편지를 쓰게 되면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고 받는 이의 모습을 그려보는 상상을 하며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곤 한다. 6월 혁명의 단서가 됐던 이부영 의원의 옥중편지만큼 역사를 바꿀만한 가치는 없을지라도 예전에 받았던 편지를 꺼내 보면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장맛비와 함께 올해도 절반이 지나갔다. 편지를 쓰는 기쁨과 답장을 기다리는 설레임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손으로 한글자 한글자 정성을 다해 즐겁고 가벼운 상상을 하며 한 열 통쯤 편지를 써야겠다.

2007-06-30

전교회장은 아무나 되나?

2004년 4월 15일. 대한국민학교 제 17대 대의원을 뽑는 날이다. 그 전날. 나를 비롯해 놈상들 몇 명이서 술내기를 했다. 결과를 맞혀 꼴찌가 술을 사기로. 대의원을 뽑는 대한국민학교는 전교회장 탄핵이라는 교무회의 발표에 엄청난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었다. 탄핵의 후폭풍이 거세지만 대한국민학교 학생들 성향을 봐서는 뚜껑열린반이 과반수를 넘기기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과반수를 차지하리라고 예측한 놈은 내가 유일했다.


선거 다음 날. 소위 말하는 수구꼴통은 절대 아니지만 전교회장은 무조건 싫다며 딴나라반에 올인했던 B가 술을 샀다. 투표는 팽개치고 개심사 입구에 있는 백숙 집에 가서 닭다리를 같이 뜯었던 그 놈상이다.

지금 대한국민학교는 연말에 다음 전교회장을 뽑는다며 벌써 난리다. 선거를 이십여 년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나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가관이다.

뚜껑열린반은 말 그대로 뚜껑이 열려 옆반하고 합치느니 마느니 하며 책걸상을 옮기느라 시끄럽다. 우리반을 지켜야 한다는 학생들은 이미 기타반으로 자리를 옮긴 회장과 꿍짝을 맞추고 있다.

관전의 재미는 지금 딴나라반이 쥐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UCC보다 흥미롭다. 회장선거에 나갈 수 있는 유력한 후보 두 커플-놈상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서리-은 내가 잘 났니 네가 못났니 하며 껍씹는 소리를 하고 있다. 날마다 교탁위로 뛰쳐 올라가 조동아리로 완투 펀치를 날린다. 그 뒤로는 똘마니들이 우르르 서 있고. 그동안 같은 반 동급생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는다. 마치 예비고사만 통과하면 대학 수석입학은 떼논 당상 인줄 알고 치고받고 난리부르스다. 한심하다 못해 측은해 보인다.

이럴 때면 꼬박꼬박 냈던 연금회비를 돌려받고 전학 가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러지도 못한다. 아니면 외국인 학교에서 전교회장 해 봤던 놈을 데려오고 싶은 심정이다.

전교회장 자리에 앉혀놓으면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이번 전교회장은 누가 될까? 지난번 결과처럼 전교회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닐 게다. 선거 전날까지 대한국민학교에서는 개그 콘서트나 거침없는 하이킥이 계속될 성 싶다. 쭈~~~욱.

2007-06-28

지조, 여자만 있다?

병자호란 때 놈상은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전쟁터에 나갔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반가운 얼굴 대신 놈상을 기다리는 건 그미가 끌려 갔다는 소식. 놈상은 연인이 풀려나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소식도 알 수 없었다. 북한산 자락에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풀려 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여인들이 모여 살았다. 놈상은 북한산 자락을 떠돌며 그미를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하였다.

놈상은 북한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언제고 돌아올 그미를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 지금도 그미를 기다리며 서있다. 사람들은 그 바위를 사모바위라 부른다.

망부석 여인은 남편을 기다리고, 사모바위 놈상은 애인을 기다린다.

2007-06-24

노무현 대통령의 최대 업적

하늘에 계시던 대통령 각하를









땅으로 내려 놓았다.
다시 하늘로 올라 갈 수는 없다.
이제 사람들은 우러러보는 하늘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가카(閣下)를 가카(脚下)로 만들었다.

2007-06-23

금강산과 국립공원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계곡에 몸 전체를 담그면 자연공원법에 따라 2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공지를 발표했다. 지정된 장소 밖에서 야영하면 50만원, 취사행위와 쓰레기 투기는 과태료 10만원이다. 요즘도 그런 몰상식한 사람이 있으랴 마는 작년 7~8월에 301건이 적발됐고 그중에 10건이 계곡에서 목욕이나 세탁한 경우란다. 주의를 주거나 계도한 것을 합치면 더 많았을 것은 뻔하다.

요즘 산행을 하면 나부터가 조심하게 되고 의식수준도 많이 높아져 예전처럼 눈살을 찌푸리는 행위를 목격하기는 쉽지 않다. 정말 산을 좋아해서 산에 오르기 때문에 무척 아끼고 폐를 안 끼치려 한다. 그런 발칙한 행위를 뻔뻔스럽게 저지르고 있는 놈들은 뜨내기들일 게다. 단속하려고 하면 언성부터 높이고 왜 나만 잡고 그러냐고 엉길 게 분명하다. 이런 씨방새 같으니라고.

2004년 9월 초 금강산 관광을 했을 때다.

통일 전망대에 있는 남측 출입사무소에서 수속을 마치고 휴전선을 넘어갈 때 모두가 긴장해서 말들이 없어지고 지시에 고분고분 따른다. 이동중 사진촬영은 물론 휴대전화 사용도 안 되니 가방 깊숙이 집어넣는다. 미국 잔재인 청바지 차림은 출입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운전기사의 말에 몇몇은 큰소리 한 번 쳐 보지 못하고 전전긍긍. (후에 알았지만 초창기에는 그랬다고 한다.) 주민등록증이 없어 운전면허증이 있음에도 여권을 가지고 온 양반도 있다.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받는데 남측 사무소와 달리 모두가 조용하다. 인민군이 입국심사를 하고 있고 사방에 부동자세로 서 있으니 기가 죽을 수 밖에. 팽팽히 흐르는 알 수 없는 긴장감과 불안감. 노인네 어린애 할 것 없이 모두 끽소리 없이 지시에 잘 따른다. 줄을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고 인원파악을 위해 일련번호를 부르라면 부르고. 사람들로 북적대지만 조용하고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산에서는 흡연이 일절 금지돼 있고 도중에 볼일을 보려면 지정된 유료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출입금지 선을 넘어 가서는 안된다. 몇 시까지 관광을 마치고 이곳으로 모여라. 북측 안내원과는 민감한 대화는 하지 말 것이며 음식물 휴대도 하지 마라.

이런 금지사항이 많음에도 이를 어기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관광은 자유스럽게 즐길 수 있지만 중간 중간 안내원들이 있어 가벼운 제재를 하기도 하고 도가 지나치면 큰일 날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는 나이불문 지위불문. 지킬 걸 지키면 모두가 편안하게 관광을 즐길 수 있다.

말로만 들었던 옥빛 물결.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산행길. 너무나 자연적이어서 신선의 세계에 들어 온 듯한 풍경. 형언할 수 없는 감동. 저녁 식사를 하며 흥겹게 북한 소주를 마셨지만 취하지가 않는다. 예전 시골에서 마셨던 막소주보다 더 썼지만.

1박 2일 일정을 마치고 다시 남쪽으로 향하자 긴장이 슬슬 풀어지기 시작하려는 순간 갑자기 버스가 섰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는데 단체로 남측을 향해 움직이던 버스 중 한 대에서 이를 어기고 촬영을 한 놈상이 있어 지금 검문 중이라는 것이다. 그 놈상 덕분에 관광버스 30여 대가 꼼짝없이 사십여 분을 묶여 있었다. 휴전선을 넘어서자 소주를 마시기 시작하고 노래를 부른다. 도착한 남한 출입사무소는 난리다. 어제 북쪽 상황과는 정반대. 왜 통과시켜 주지 않느냐며 고함이 들리고 취기가 오른 어떤 관광객은 직원과 대판 싸우고 있었다. 신선 세계에서 노닐다 온 고즈넉한 금강산 여흥은 이내 산산이 부서졌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등산을 하게 되면 공원관리를 북한에 위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북한 땅이라는 묘한 긴장감 때문이겠지만 금지사항은 예외 없이 모두가 지켜야 하는 그런 분위기 반의반만이라도 있으면 씨방새 같은 행위들은 엄청나게 줄어들 게다. 남북교류 차원에서 검토해 볼만한 일이기도 하고 기합이 쑥 빠져서 욕을 바가지로 쳐 먹는 요즘 공무원들 정신 바짝 차리게 하는 효과도 있을 성싶다.

금강산에서 받은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감동을 느끼시라고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한 번 가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못 지키고 있어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2007-06-21

樂書 Life

노블레스 오블리주
냄새나는 또랑에 100원짜리 동전이 빠졌다. 꼬맹이는 울면서 그 동전을 꺼내 달라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동전을 건지는데 200원의 비용이 든다.

손해나는 장사가 뻔하니 또랑에서 꺼내는 것을 포기하고 주머니에서 100원을 끄집어 내 꼬맹이에게 건네주는 사람과 손해나는 게 뻔한 줄 알지만 동전을 건지지 않으면 영원히 그 가치가 사라진다는 걸 알고 망설임 없이 선뜻 동전을 건지는 사람과의 차이

家長
한순간의 최악에 대처하고자 늘 최선으로 존재하는 사람


한 물체의 질량은 다른 물체들의 존재 혹은 그 역사에 대한 표현이다.

Life
if 라도 있으니 그나마 살만하다.

창조력
정해진 예산에서 끝에 붙어 있는 한 자리를 잘라내면 창조력이 발휘되고 두 자리를 자르면 창조력이 폭발한다. - 브라질 꾸리찌바 시 자이메 레르네르 前 市長

萬古不變의 眞理
世上에 공짜는 없다.

욕심
움켜진 손을 놓아야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

2007-06-19

첫인상

올해 107회째가 되는 2007년 US OPEN Golf에서 앙헬 카브레라가 우승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카브레라는 15살이 되던 해 그 당시 아르헨티나가 낳은 세계적인 프로골퍼 에두아르도 로메로가 헤드 프로로 일하던 골프장 캐디로 취직하면서 골프를 시작하게 됐고 남미 출신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1967년 브리티시 오픈에서 로베르토 데빈센조(아르헨티나)의 우승 이후 40년 만이란다. 더군다나 추격하는 타이거 우즈와 짐 퓨릭(이상 미국.6오버파 286타)을 1타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대회 마지막 날 경기가 월요일 새벽 네 시(한국시간)부터 중계방송을 시작하는 터라 꼼지락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전날 선두였던 배들리가 우즈와 마지막 조로 나서며 무너지기 시작한 초반 3번 홀까지 보다 잠이 들었다. 다행히 낮에 케이블 TV에서 후반부 경기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계방송 도중에 아나운서와 해설자 왈.
"1타차로 경기를 마친 카브레라와 뒤쫓아 오는 우즈나 짐 퓨릭 중 누가 유리할까요?"
"경기가 벌어지는 펜실베이니아주 오크몬트 골프장(파70.7천230야드)은 언더파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카브레라가 우승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카브레라 선수가 1969년생이라고 언급을 한다. 그 멘트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젊게 봐줘도 40대 중반은 돼 보이는데 나보다 어리다니. 짜슥. 내 동생뻘이잖아.

사실 그랬다. 무명에 가까운 카브레라 선수 프로필을 모르니 방송에 나오는 모습만 보고 지레짐작했던 것이다. 특히 서양인은 외모만 봐서는 연식을 가늠할 수 없다. 물론 같은 동양인끼리도 짐작 못 하는 경우도 있지만.

2005년 1월 말. 골프에 입문해서 드라이버도 잡아 보지 못하고 7번 아이언으로 똑딱이 연습만 하다 느닷없이 머리를 올리러 간 곳이 필리핀 마닐라였다. 같이 간 일행 분들은 5년이나 10년 연상이었지만 캐디들은 자치기 놀이하는 내 눈치를 더 보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황제 골프를 치고 있으니 그늘집에서 쉬는 시간도 많아 아이스 맥주를 마시며 노닥거리다 일행 중 한 분이 검지 손가락으로 우리를 싸잡아 가리키며 캐디들에게 물었다.

"Hey. Old boy?" (누가 제일 늙어 보이냐?)

일제히 손가락으로 날 가리킨다. 이유가 뭐냐고 되묻자 머리가 하얘서 그렇단다. 헉. 새치가 좀 있기는 하지만 내가 나이가 제일 들어 보이다니. 急OTL

하지만 피장파장이다. 캐디들이 모두 40대로 보였지만 제일 나이 든 아줌마가 30대 초반이고 모두 20대 초중반 아가씨들이란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서로 낄낄대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심리학에 첫인상 3초의 법칙이 있단다. 단 3초면 그 사람을 파악한다고 한다. 카브레라 선수를 보는 순간 오십은 돼 보인다고 넘겨 짚었다. 나이만 가늠한 것이 아니라 고생 끝내고 이제는 출세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너무나 정확히 틀렸다. 그동안 PGA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2001년 유럽골프투어 아르헨티나오픈에서 생애 첫 빅리그 우승을 했고 한때 세계랭킹 9위까지 오르기도 했다는 걸 우승기사를 보고 알았다.

첫인상. 참 중요하다. 그렇다고 첫인상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닐 게다. 오늘 처음 본 카브레라 선수를 비롯해 지금까지 만난 분들을 보자마자 그렇게 단정 짓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니 할 말이 없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3초 만에 내 첫인상을 결정했으리라.

하지만 점쟁이 빤쓰를 입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어찌 사람을 3초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으랴.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온 이에게서 뜻밖의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좋든 싫든 시간이라는 추억을 공유하며 서로 익숙해 지는게 더 좋다. 사람은 더 깊이 사귀어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고 그러면서 점점 friend(친구는 또래라는 뜻이 강해 friend 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가 되어간다.

카브레라 선수 덕분에 오늘 한 수 배웠다. 상대방에게는 좋은 첫인상을 남기도록 온 힘을 다하고 내가 보는 타인의 첫인상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아니니 속단하지 말라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만 노력은 하며 살아야지. 보자마자 예쁜 모습만 집어내는 족집게 속성학원은 어디 없을까?

덧. 지난해 초 같이 술 마시던 짱가라는 후배가 바람막이와 보스톤백을 포함해서 골프세트를 홀라당 자기 차에 싣고 나른 뒤부터 TV 중계를 보며 이미지 스윙만 열심히 하고 있는 신세다. 혼마 아이언세트, 다이와 드라이버세트, 퍼터는 히로마쓰모토였는데 아깝다. 자기 중고차보다 값이 더 나가는 풀세트를 들고 튀다니...

2007-06-09

Konglish

대학 신입생 시절 영문과에 다니는 1년 선배에게 물었다.

- 형. 영어를 잘하려면 어떡해야 해?
- 쉬워. 생각나는 대로 그냥 말해

그러면서 가르쳐 준 몇 마디.

실업자(또는 시간많아) : everyday holiday
내가 살게 니가 쏴라 : i buy you pay.
빨리 서둘러 : hurry hurry!
있을 사람 있고 갈 사람은 가라 : is man is, go man go.

요즘도 친구들과는 통한다.

- 요즘 뭐하냐? 바쁘냐?
- 바쁘긴 뭐. everyday holiday야
- 야 왜 이리 늦어? hurry hurry!!!
- 술 마시러 가자. i buy you pay
- 2차 가자. is man is, go man go

공감대가 형성되면 다 통하는 게 영어인가 봅니다.

이런 전투영어를 가르쳐 준 선배이름은 'hotel nin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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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구

2007-06-06

무모한 도전


이 년 전 은행에서 네가 내민 이면지에 나는 인감도장 콱 찍고 넌 지장을 냅다 찍으면서 각서를 썼었지. 그리고 지금부터는 술 마시고 담배 피우려면 적어도 제주도까지는 가야 한다며 굳은 결심을 했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각서의 내용이 너무 가혹하다며 제3조를 추가했었지.

"제3조 상호 합의 시에는 예외로 한다"

우리는 수많은 합의를 했고 그 수만큼 술과 담배를 줄기차게 마시고 피워댔지. 그 후로 이 각서는 도루묵 됐고 채 한 달도 안돼 흐지부지 되고 말았지. 맞아. 그날 우리는 술이 덜 깬 상태에서 각서를 썼었어.

난 이제 다시 시작하려 한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무모한 도전이라는 거 안다. 사람이 갑작스럽게 변하면 급사한다는 것도 안다. 2007년 6월 6일부터 나는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련다. 정말 내가 술 담배를 하려면 비행기를 타고 나가서 한다. 아니면 국적을 바꿔 이곳을 해외로 만들어 버린다. 무모한 도전이 무한도전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며 마지막 담배를 피운다.

내 인생의 절반을 함께한 술과 담배여 아듀.

2007-06-03

박무가네 보이스

몇 해 전 직장 동료였던 한모 차장이 자리에 들렸다가 이면지에 나를 그려줬다.

십여 년 전 어느 날. 악기를 하나 배워 보고 싶던 차에 인사동에 갈 일이 있었고 마침 낙원상가가 근처에 있어 무작정 발길을 돌렸다. 기웃거리며 구경하다 들려서 사 온 것이 색소폰이다. 끝이 꼬부라진 멋있는 놈으로 고르려니 주인장은 초보자에게 너무 어렵다며 알아서 골라 준다. 더 싼 거 없어요? 대만제가 제일 싸다며 그걸로 하겠느냐기에 거금 30만 원을 카드로 긁었다.

딸려 온 초보 색소폰 교본을 보며 마우스피스를 끼워 넣고 바람을 불었다. 소리가 난다. 다음날 회사에서 색소폰을 샀다고 자랑을 하며 올 송년회를 기대하라고 했다. 내가 멋지게 색소폰 연주를 해주겠노라고.

음계 연습을 한답시고 도레미를 손가락으로 잡고 부는 연습을 하다 잘 닦아서 상자에 고이고이 모셔서 옷장 한구석에 세워 놨다. 흐뭇해하면서. 내일부터 연습하지 뭐. 늦게 퇴근하고 저녁 술자리도 잦아지다 보니 그놈을 꺼내 볼 새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지금 그놈은 내방 책상 밑에 가로로 누워있다. 편안하게.

색소폰이 잠든 지 이삼 년 후. 아침 출근버스를 타고 막 정문을 들어서는데 앞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보인다. 공장에서는 규정속도가 시속 30km로 한정돼 있어 버스가 그 자전거를 뒤따라 가는데 문득 외발 자전거를 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쇼핑몰에 들어가 탐색을 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바퀴가 하나뿐인데 값은 두발자전거보다 비싸고 무슨 종류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바퀴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초보자가 타기에 쉬운 18인치(20인치 인지 기억이 가물가물)로 결정했다. 허름한 놈으로 고르니 이번에도 대만제가 제일 싸다. 결정을 하자마자 바로 질렀다.

며칠 후 도착한 외발 자전거를 조립하고 안장에 앉아서 균형을 맞춰보니 몸을 가눌 수도 없고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다. 주말에 밖에 나가 난간을 부여잡고 연습을 시작해야지 하며 현관문 앞에 세워 놨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고 그동안 문을 열고 나다니기에 가로거치고 무척 불편했지만 외발 자전거는 처음 그 상태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이 년 전인가 이사를 하게 돼서 이삿짐을 다 나르고 외발 자전거를 놓을 때가 마땅치 않아 1층 계단 옆에 세워놨다. 다음날 아침에 내려가 보니 자전거가 없어졌다. 이런 젠장. 자물쇠 없이 놔뒀더니 누군가 재활용품으로 오인해서 들고 갔나 보다. 땅을 한 번도 밟아 보지도 못했고 달라는 사람도 많았지만 몇 년 동안 현관문만 지키던 놈이기에 아까운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미안하다 외발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던 한 차장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쓰윽하고 그려준 것이 저 그림이다. 박씨네 둘째 아들인 것도 알고 있고 한 번 심통을 부리면 막무가내라고 써준 말이다.

참 人生. 앞으로 바르게 잘 살라는 뜻일 수도 있고 막무가내로 살았지만 삐뚤게 살지 않았다는 격려일 수도 있다. 외발 자전거에 올라타 색소폰을 부는 모습이 정말 철없어 보인다. 하지만 저렇게 살고 싶은 게 진짜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2007-06-01

치과 가던 날

어제 오후에 차일피일 미루던 이빨 치료를 하려고 치과에 갔다. 예약을 하지 않고 갔더니 4~50분 기다리란다. 기다리는 거야 이제 익숙한 나이가 됐지만 한쪽 볼탱이를 쥐어 잡고 있는 곳에서 뭐 더 볼 게 있나 싶어 올라오기 전 눈여겨 두었던 지하 서점으로 내려갔다.

주중이라 그런지 한가하다. 책을 고르는 손님들이 치과에서 대기하는 환자 수만큼도 안돼 보인다. 바람 나오는 송풍구 밑에 서 있으니 시원한 게 벌써 피서 온 느낌이다.

이리저리 구경하다 세 권의 책을 골랐다. 정확히 말하면 한 권만 고르고 두 권은 찾지를 못해 매장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흔이 넘어가니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래서 골라잡은 것이 '나는 마흔이 좋다. '2007 신춘문예 당선시집'과 '말랑~말랑 여의도 보고서'는 진열대에서 아무리 찾아도 눈에 띄지 않아 찬스를 사용했다.

"이런 책하고 이런 책이 어디 있어요?"

매장 담당자는 단번에 책을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컴퓨터 앞으로 가더니 검색 찬스를 쓴다. 재고가 있는지 확인하고 책꽂이로 향한다. 몇 분 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한 뒤 한쪽에 있던 선배인듯한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지인 찬스를 쓴다. 이런 두 번의 찬스를 쓰다니... 고참 언니는 책 제목을 말하자마자 순식간에 찾아서 내 앞에 선다. 허걱. 이렇게 빠르다니. 소림사로 치면 이마빡에 점이 9개 정도는 고수일 듯싶다.

지난 4월 말에 은행에 갈 일이 있어 그때도 대기시간을 이용해 서점에서 사 온 책이 댓 권 있지만 다 읽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책꽂이에 꽂아 두면 언젠가는 읽을 것이고 행여 내가 읽지 못하고 지나간다 하더라고 누군가는 책을 보리라. 인터넷으로 주문을 많이 하지만 때로는 서점에 가서 책장을 넘겨 보기도 하고 표지 앞뒷면을 살피며 고르는 책은 더 애착이 간다. 계산을 마치고 총총걸음으로 서점을 나오니 진료 시간이 얼추 다 됐다.

이빨은 시큼시큼하지만 살랑살랑 흔들리는 책봉투를 들고 집으로 가는 날은 기분이 흐뭇하다. 통닭을 사 들고 가는 것과는 또 다르게.

2007-05-30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의 수필 ‘오월’의 마지막 부분이다.

-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
-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인연)
-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보기도 한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晩年)

한국 수필의 아버지 금아 선생이 향년 97세로 25일 별세했다.

영문학자의 길을 걸었던 금아 선생의 글은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라고 '수필'에서 밝혔듯이 맑고 정갈하다. 영문학자의 길을 걸었으면서도 번역투나 고어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70년대 중반 이후 "잊혀졌다고 생각하고 섭섭해서 별것들을 써내는데 옛것보다 못한 것들이야. 차라리 가만히 있는게 나아" 라며 수필 창작 활동을 멈추었다.

금아 선생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오래전에 읽었던 '수필'을 꺼내 들고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본다. 떠남과 보냄의 미학이라는 금아 작품에 대한 해설을 보며 선생과 아사코를 생각하니 새삼스레 추억에 잠긴다. 금아 선생은 사랑을 하고 가셨다.

내 책꽂이에 있는 '수필'은 1996년(3판 6쇄 발행/범우사) 판이다. 오늘은 십여 년 전 '수필'에서 향수를 느낀다.

그렇게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2007-05-26

이별

사랑한 만큼
사랑할 만큼
시방 그들은
돌아서서 걷는다

찰나의 기다림
억겁의 만남
그 한 점에서
다시 만나려고

2007-05-16

기계공학은 국가대표도 있다

며칠 전 요즘 애들은 이공계로 진학을 꺼린다는 화두가 나왔고 왜 그런지 원인과 처방에 대해 서로 두서없이 떠들었습니다. 정말 요즘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한가 봅니다. 그에 대한 해결방안도 많이 회자되고 있고요. 80년대 학번인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구요. 아마 90년대 이후부터 생긴 현상인가 봅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이과 계열에서 대학에 진학한다고 하면 앞뒤 잴 것 없이 공대였으니까요.

공과대학에 입학하고 학교생활에 적응될 무렵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막걸리집에 자리 잡았던 어느 날. 우연히도 탁자에 둘러앉은 친구들이 모두 공돌이였습니다. 막걸리 사발이 오고 가다 보니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면서 자기 학과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답니다.

-건축과가 최고야. 검사, 판사, 의사처럼 공돌이 중에 유일하게 士자가 붙는 사람이 건축사야. 그림 그리는 공돌이 봤어. 우리는 예술을 공부하고 있어
- 웃기지 마. 우리 과는 기전철학과야. 전기가 눈에 보이니. 손으로 잡을 수 있어. 하지만 존재하잖아. 우리는 그 존재를 공부하는 철학자야. 니들이 철학을 알아?
- 기전철학과 좋아하네. 정전이나 안되면 다행이지.
- 토목공학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civil engineering. 씨발 엔지니어링이 아니고. 우리는 문명을 만드는 사람들이야. 우리가 없으면 니들도 없어. 확 뽈대(pole)로 그냥.

이제 내 차례가 왔습니다.

- 기계공학은 3대 학파가 있어. 그리고 그중에 한 학파는 국가대표도 있어.

국가대표라는 말에 모두가 귀를 쫑긋한다.

- 기계가 왜 망가지는지 알아보려는 기계심리가 있고, 쇠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탐구하는 기계철학이 있어.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축이고 계속했다.

- 그리고 나라에서도 인정한 국가대표가 있지. 바로 기계체조야.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공돌이가 바로 기계체조야. 쨔샤.

모두가 그렇게 우스개 소리로 끝났지만 공대에 입학했다는 것은 취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죠. 그런 면에서 나는 그까이 거 대충 공부한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요즘 친구들은 공부도 똑소리 나게 하고 영어도 잘합니다. 이런 친구들이 꿈을 펼 수 있는 시대가 오게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에 계신 힘 깨나 쓰시는 분들은 통첩하시길 바랍니다.

그때 생각하며 요즘도 가끔 써먹습니다. 기계공학은 국가대표도 있다.

2007-05-15

사회공적(社會公敵) 이론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세 가지 부류의 사회공적이 있다.
1. 무식한 사람이 전문직에 앉아 있는 경우
2. 무식한 사람이 소신을 갖고 있는 경우
3. 무식한 사람이 부지런한 경우

사회공적의 첫 번째 부류는 무식한 놈이 전문직에 앉아 있는 경우다. 이들의 취임사를 들어 보면 "이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고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이러한 중책을 맡게 되어 어깨가 무거움을 느낍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무사히..."라는 것이다. 이 취임사의 요점을 좀더 정확히 표현하여 보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 통 모르겠다. 너희들만 믿는다. 재직하는 동안에 큰 실수나 없었으면 한다."는 뜻이 아닌가? 이를 듣고 놀라고 걱정해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칭찬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그래도 그 사람은 겸손하쟎아."

사회공적의 두 번째 부류는 무식한 놈이 소신을 갖는 경우다. 식견이 부족한 사람이 소신을 갖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무식한 사람이 만일 소신이라도 없었으면 모르는 것은 주위에 물어 보고, 본인이 몸소 배우기도 하고, 상대방과 대화라도 잘될텐데, 일을 하는 과정에서 모르는 일만 생기면 곧 소신론을 들고 나선다. '소신'이라는 말의 뜻은 "누가 무어라 해도 나는 이렇게 하겠다. 나는 비장하다"'일 것이다. 무식한 소신파는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점을 깨닫는 경우에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소신을 자주 바꾸는 사람을 보았는가? 실수도 보완대상이 아니다. "소신껏 추진하다 보니 다소 부작용이 있었다."라고 하면 되지 않는가? 이와 같이 위험한 사람을 우리들은 좋게 평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그래도 그 사람은 소신은 있잖아."

세 번째 부류는 무식한 놈이 부지런한 경우다. 중요한 자리에 사람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최상의 선택은 전문식견이 있는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는 길일 것이다. 이것이 어려울 때에는 무식하면서 게으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맡기는 것이 차선의 방책이다. 게으르다보니 하는 일도 적어서, 저지르는 실수도 자연 줄어들 것이 아닌가? 가장 최악의 선택이 무식하면서 부지런한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는 경우다.

무식한 사람이 부지런하면 어떤 현상이 야기되는가? 건드릴 것 안 건드릴 것, 갈 곳 안 갈 곳, 끌어들일 것 안 끌어들일 것 쉬지 않고 찾아다니면서 사고를 저지를 것이다.(86쪽)

신사고 이론 20/이면우/삶과꿈 19970731 200쪽 5000원

2007-05-10

박대통령의 4가지 실책

박대통령에게는 다음 4가지 아쉬운 실책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4가지 실책만 없었다면 그는 세종대왕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지도자로 영원히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첫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유신헌법을 만든 점이다.(중략)

둘째,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후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영·호남 대립을 조장하고 심화시켰다는데 있다.(중략)

셋째, 제주도를 제대로 개발하지 못한 점이다.(중략)

제주도 개발은 우리나라 발전을 10년 앞당길 수 있을 만큼 큰 기회였다. 국가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을 때 개발해야 했는데, 그 시기를 놓친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중략)

넷째, 국제화 시대에 영어교육을 생활화 하지 못하도록 한 점이다. 한국전쟁 후 우리가 가난하고 허기가 져서 미군부대를 뒤져가며 배를 채울 때 우리에게는 의욕과, 도전의식과,살아남아야 한다는 강인한 인적자원밖에는 없었다.(중략)

옛날 박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쓸데없는 국민교육헌장이나 달달 외우게 하지 말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어와 병행하여 영어공부를 시키고 고등학교부터는 본격적으로 영어로만 강의하며, 영어 실력이 부족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해야 했다. 이러한 것이 요즘과 같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그 당시 모든 국민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역량과 국민적 힘을 모을 수 있었던 사회분위기에서는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었다.(중략)

지금이라도 시작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제는 늦었다. 민주화 시대에 반발이 너무 세어 강제로 시킬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먹고 살만해졌으니 강제로 시킨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사는 집 아이에게 강제로 공부를 시키면서 초일류 과외를 붙여준들 큰 효과가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모든 국가 정책에는 반드시 적시와 적소가 있는 것이다. (300쪽)

대한민국리더십/정규준/다밋 20070301 319쪽 12500원

2007-04-15

코끼리가 대학을 못 가는 이유

이십여 년 전 여름날. 영월 역전에서 열차를 기다리다 한 초딩과 얘기를 나누던 중 그 아이 왈.

- 아저씨, 코끼리가 왜 대학을 못 가는 줄 아세요?

아니 뭐 이런 뚱딴지같은 질문이 다 있나. 잠시나마 코끼리는 왜 대학을 못 갈까 내심 궁금하기도 하고 그 답을 찾을 요량으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봤지만 도통 모르겠더이다.

- 왜 못 가는데?

빙긋이 웃으며 그 꼬마가 하는 말.

- 고등학교를 못 나와서요. 그것도 몰라요.

아하. 그렇구나. 참 간단명료한 답인데 미처 깨닫지를 못했다. 이미 세상 물정에 닳아 버린 나는 그 짧은 순간이나마 해답을 찾으려고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순수하게 생각하는 꼬마 같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남아 있지 않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요즘도 그때 생각이 나서 코끼리만 보면 요놈은 대학을 갈 수 있는 놈일까 궁금해지며 시나브로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2007-04-09

회사 때려 칠까 보다

"정말 불만이야"

반쯤 남은 소주를 한 잔 털어 마신 뒤 그가 말을 이었습니다.

"회사가 말이야.
돈은 쥐꼬리 만큼 주지.
상사란 놈은
걸핏하면 화만 낸다구.
인사평가도 불공평 하고...
자기들 끼리 다 해먹어요.
그래서 말인데..
나 형네 회사 가면 안될까?"

그가 내게 이런 불만을 얘기한건 처음이 아닙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제로백 5초 짜리 성능 좋은 스포츠 카.
인텔듀어코어2 최신 사양의 컴퓨터 한대.
성능은 쓸만한데 딱히 쓸일없는 믹서기
테이프를 씹어대는 낡은 비디오플레이어
몸에 유해하다고 보도된 구형 정수기...
음..또 뭐가 있을까.
아무튼 좋아 일단 여기까지.
니 재산이 이렇게 다섯개 밖에 없다고 치자.
넌 그 중에
어떤 물건에
애정과 돈과 시간을 쏟아 관리할 것 같냐"

"당연히 스포츠 카지."

"좋아 그런데 만일 그 기계들이
희로애락, 서운함을 느끼는 생명체라고 치자
누가 너한테 제일 앙심을 품고 불만이 있겠냐"

"…."

"니가 바로 정수기야."

"형 무슨 말 하는지 알겠지만
이건 나 혼자만 느끼는게 아니야
내 옆사람도…또 ..그 옆사람도"
저는 잔을 덮고 일어났습니다.

"물론 그렇겠지. 맞장구 치는 니 주변은
믹서기하고 비디오 플레이어 투성이일 테니까"

헌트블로그

2007-04-03

서시(만약에) - 조은지

신이 내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준다면
그런다면
이 세상 사는 동안 갖고 싶은 추억 하나 있습니다

서삼릉 입구에 가면
아름드리 미루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길고 좁은길 있습니다
투명한 가을 하늘 속에 숨겨져 있는 생각들
하나 하나 꺼내 이야기하며
떨어지는 낙엽 속으로
그대와 그곳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그 길 혼자 걸을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저녁 노을과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는 바람도
그리고
나도
늘 주문처럼 그대의 행복을 기도합니다

달을 따라 이 길을 그대와 걷는다면
길가에 한 식구로 모여 사는 갈대나
봉숭아 꽃잎 같은 표정으로
은밀히 우리들의 뒤를 따라오던 낙엽도
눈 껌벅이는 참새와 함께
날 보며 기뻐해 주지 않을까

그대와 그곳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그대 잊기로 한지 두달이 지났습니다/조은지/자음과모음 20010115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신 때문에
이마저 추억이 되고 시가 되었다.
기억 못 하는 추억마저도
모두 행복하시라.

2007-04-01

진달래

영취산에 진달래가 만발했어요
남녘이 전한 봄소식
그는 아직 겨울 보충수업이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입춘과 같이 날아든 문자
불량문자가 아니길 빕니다.

모퉁이를 돌아앉은 파전집
지글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허벌나게 매운 닭발들

그미에 맞는 안주 쓰러진 소주병
죽이 맞는 대화는 과거로 흐르고
그나저나 괜찮은 사람 사람들

습격당한 키스와 별을 보는 눈동자
지루한 침묵이 흐르는 눈빛
꿈이 아니길 바랍니다.

우린 정말 사랑했나요?
모서리마다 비치는 단편들
모자이크처럼 기억을 채운다.

미안해요 아듀
과거로 보낸 마지막 문자
가위로 싹둑 끊은 인연들

영취산에 진달래가 만발했어요
돌아서는 마지막 말처럼 피어난 진달래
굽이굽이 헤치며 오른 산등성이

떨어진 꽃잎마다 꼬박꼬박 사랑을 밟고
그 자국 자국마다 눈물 흘리는 사연
밟을수록 떠오르는 추억들

우리 정말 사랑했나요?
떨어진 꽃잎은 그냥 웃고 있지요.
사랑 혹은 추억처럼

2007-03-27

나무

기다림은 삶의 시작
모두들 그를 墮落者라 비웃다

삶의 난민과 난민들 사이
기다리는 자 기다리게 하라
기도하는 자 기도하게 하라
술 마시는 자 술 마시게 하고
노래하는 자 노래하게 하라
사시사철 햇귀를 바라보며
환절기에도 물 흐르듯 가게 하라

나무이고 싶다
벌거벗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나무이고 싶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르게 돌아간다는
믿음으로 남고 싶다
너나들이로 남고 싶다

시방 타락자는 자기의 哲學 위에서 방황하고 있다
나무는 지금 기다리고 있다

2007-03-22

삶이란

인생을 공중에서 5개의 공을 돌리는 것(저글링)이라고 상상해 보자.
각각의 공을 일, 가족, 건강, 친구, 그리고 영혼(나)이라 명명하고
모두 공중에서 돌리고 있다고 생각하자.
조만간 당신은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어서 떨어뜨리더라도 바로
튀어 오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4개의 공들(가족, 건강, 친구, 그리고 영혼(나))은
유리로 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중 하나라도 떨어뜨리게 되면 떨어진 공들은 닳고, 상처입고,
긁히고, 깨지고, 흩어져 버려 다시는 전과 같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 사실을 이해하고, 당신의 인생에서 이 5개의 공들이 균형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당신 자신을 과소 평가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들 각자는 모두 다르고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목표를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두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두어라.

당신 마음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
당신의 삶처럼 그것들에 충실하라.
그것들이 없는 당신의 삶은 무의미하다.

과거나 미래에 집착해 당신의 삶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하지 말라.
당신의 삶이 하루에 한 번인 것 처럼 삶으로써 인생의 모든 날들을 살게 되는 것이다.

아직 줄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면 결코 포기하지 말라.
당신이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진정으로 끝난 것은 없다.

당신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두려워 말라.
우리들을 구속하는 것이 바로 이 덧없는 두려움이다.

위험에 부딪히기를 두려워 말고, 용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
찾을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당신의 인생에서 사랑의 문을 닫지 말라.

사랑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은 주는 것이고,
사랑을 잃는 가장 빠른 길은 사랑을 너무 꽉 쥐고 놓지 않는 것이며,
사랑을 유지하는 최선의 길은 그 사랑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진 말라.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감정은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고맙다고 느끼는 그것이다.
시간이나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
둘 다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그 길의 한걸음 한걸음을 음미하는 여행이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 이며,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말한다.

- 2000년 코카콜라 CEO 신년사

2007-03-15

나발


어린 시절 나발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힘껏 불고 싶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주둥이로만 나발을 불고 있습니다.

2007-03-14

너를 위한 변명 몇가지

1.
모두 색안경을 끼고 있다
당신만 하얀 안경을 끼고 있다
그럼 너는 비정상인가?

2.
그곳에서는 모두 네 발로 걷는다
당신만 두 발로 걷는다
그럼 너는 비정상인가?

3.
51:49
당신은 49에 있다
그럼 너는 비정상인가?

4.
그 후로 당신은 네 발로 걷기 시작했고
검은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럼 너는 정말 비정상적으로 돼 가고 있지는 않나?

5.
거울을 보면서 너에게 얘기하고 있다

2007-03-12

혼자 사는 이유

우유를 마셔도 더 크지 않는 첫번째 나이 때
그 여인이 물었지요
언제 결혼하고 싶으세요?
저녁 식사 후 담배를 피워 물었는데
재떨이가 방 한구석에 있을 때랑
술 마신 다음 날 시원한 북어국이 그리울 때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지요
그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더군요
당신은 평생 혼자 살 거예요

가난할수록 더 높은 곳에 산다는 것을 안 첫번째 나이 때
그 여인이 물었지요
나는 어떤 존재인가요?
당신은 라이터 같은 사람이다
담배를 피울 때 꼭 너를 찾으니까
그 여인은 내 뺨을 때리며 말하더군요
나는 당신의 마지막 여자일 거예요

한 물체의 질량은 다른 물체들의 존재 혹은
그 역사에 대한 표현이다

일상이 상형문자가 돼 가는 나이 때
수화기 저 너머로 그 여인이 물었지요
아직도 혼자 사세요?
당신의 예언처럼 돼 가고 있지요
그것 보세요 기차는 기다리지 않아요
무채색 같은 내 일상에 대해 몇 마디 더 묻고는
행복하세요
마지막 대답도 없이 과거로 갔다

그 여인의 예언과 함께
모퉁이집에 들러 그렇고 그런 추억을 생각하며
佛子보다 못한 삶을 버틸 인연과 그리움
연줄처럼 나를 땅에 붙들어 매는 존재
가 그리워진다

2007-02-28

긍정적인 밥

함민복

詩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작과비평사 19961005 4000원

2007-02-25

서시(산경표 공부) - 이성부

물 흐르고 산 흐르고 사람 흘러
지금 어쩐지 새로 만나는 설레임 가득하구나
물이 낮은 데로만 흘러서
개울과 내와 강을 만들어 바다로 나가듯이
산은 높은 데로 흘러서
더 높은 산줄기들 만나 백두로 들어간다
물은 아래로 떨어지고
산은 위로 치솟는다
흘러가는 것들 그냥 아무 곳으로나 흐르는 것
아님을 내 비로소 알겠구나!
사람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들 흘러가는지
산에 올라 산줄기 혹은 물줄기
바라보면 잘 보인다
빈 손바닥에 앉은 슬픔 같은 것들
바람소리 솔바람소리 같은 것들
사라져버리는 것들 그저 보인다

*산경표(山經表) :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여암 신경준(旅菴 申景濬)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산의 족보격인 지리서.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중심축을 이루는 산줄기인 1대간(大幹),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을 지형·지리학적으로 기술했다.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적·지질학적 '산맥' 개념과는 사뭇 다른 책이다.

지리산/이성부/창작과비평사 20010720

산경표는 우리나라 산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흐르다 어디서 끝나는지를 족보형식으로 보여주는 책이라고 합니다. 백두대간이라는 말은 신라 말에 처음 등장하고, 여암 신경준이 편찬(1769년)한 산경표에 의해 완성이 됐다고 합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같은 조선 후기의 지리서는 모두 산경(山經)에 기초하여 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태백산맥, 소백산맥 같은 산맥의 개념은 일본의 지질학자가 1903년 발표한 논문에서 비롯되었는데 일제가 우리 전통을 말살하기 위해 도입이 되었습니다. 산맥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반도의 산은 모두 한 줄기로 엮여 있어 강이나 하천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만 타고 다 갈 수가 있답니다. 강을 위주로 산과 산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바로 산경표입니다.

우리는 산에 오르면 산경표의 한 점이 되어 산줄기 물줄기에 사람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 가는지 볼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2007-02-18

고민하지 마라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들이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데없는 것이다.

느리게 사는 즐거움(Dont Hurry, Be Happy)/어니 J 젤린스키

2007-02-13

삶은?


삶은 계란이다.
한때 유행한 7080식 유머입니다.
메아리를 영어로 하면 마운틴틴틴틴 하는 식이였죠.

"삶은 계란이나 오징어 있어요"

당시 기차를 타면 주전부리를 파시는 분이 승객들 사이로 외치던 말이죠.
얼마 전 KTX를 탈 기회가 있었는데 입석 손님도 없고 조용해서
사이다 마시고 삶은 계란을 까먹는 맛도 덜하더라고요.

계란을 가만히 보면 참 재미있어요.
한 손으로 계란을 움켜쥐고 힘을 주면 깨지지가 않습니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철학적 물음의 소재이기도 하고요.
콜럼버스의 달걀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주인공도 되고요.
알을 깨고 나오는 데미안의 아픔이 혹 지금 살아가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삶은 계란이라고 했나 봅니다.

2007-02-02

내가 기억하는 이름들

십여 년 전에 지금은 유명한 동강 근처 어라연이라는 곳으로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가에 텐트를 치고 후레쉬 불빛으로 책을 보다가 문득 내가 살아 오면서 알고 있는 이름들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종이를 꺼내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성과 이름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백여 명이 넘어가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속도가 느려지더군요. 얼굴은 생각이 나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고 이름은 알겠는데 얼굴이 생각 안 나고. 그러다 백 오십 명 정도 이름을 쓰니 더는 생각이 안 납디다.

아. 이게 내 한계인가보다.

그 백 오십 명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하더군요. 더 아쉬운 건 그분들은 나를 괜찮은 놈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썩 좋은 추억은 아니지만 내 이름이나 얼굴은 알고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2007-01-19

GOOD TO GRATE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도약시킨 리더들은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짤 거라고 우리는 예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들은 먼저 적합한 사람을 버스에 태우고 부적합한 사람을 버스에서 내리게 하며 적임자를 적합한 자리에 앉히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야 버스를 어디로 몰고 갈지 생각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옛 격언은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적합한 사람이 중요하다. (32쪽)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ATE)/짐 콜린스/김영사 20020620 432쪽 11000원

2007-01-11

당신이 만약 발걸음을 멈추신다면

저녁해는 가난한 연인에 지고
이름 없이 고운 계절 속 거닐다
홀로 비워진 카페에 앉아
당신을 생각합니다

한 잔의 커피도 마셔보지 못하고
나는 사랑을 얘기하고
한 잔의 술에 취해보지 못하고
나는 인생을 얘기합니다

수많은 사람은 기억의 재가 되지만
당신 모습만은 태울 수 없고
갈대숲 사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가슴에 한 아름 번져옵니다

오늘도 행여나......
가로등 밑에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지마는
당신 먼 발자욱 소리
시나브로
가로등 뒤에 있습니다

당신에게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은
알 수 없는 힘에 무너지고
인생은 일장춘몽이라 뇌깔이면서도
당신이 만약 발걸음을 멈추신다면

영원히 꿈꾸겠소

2007-01-05

샐러리맨은




회사에서 술 마시는 얘기하고
술집에서 회사 얘기를 한다.




2007-01-03

사랑하지 않으면 떠난다

조던 에번스가 지은 《인재들이 떠나는 회사, 인재들이 모이는 회사》의 원제는 《사랑하지 않으면 떠난다(Love'em or Lose'em)》이다. 인재들은 단순한 금전적 보상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는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한 토양을 마련해주지 못하면 그들은 떠나고 만다. 특히 평생직장의 신화가 깨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탁인사로 대표되는 핵심인력들이 설 기반은 그리 탄탄치 못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또 다른 이슈는 '이탈방지'다. 어렵게 선발한 핵심인재들이 '왕따'를 당하지 않도록 보상에 대한 비밀을 보장하는 한편 야심 찬 포부를 가진 이들에게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CEO를 키운다'는 게 P&G의 교육목표다. 항상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우게 돼 개개인이 경쟁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GE는 전형적인 차별관리의 성공사례다. 경쟁력의 원천이 곧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믿음으로 철저하게 우수인재와 그렇지 못한 인재를 구별해 육성해 온 것이다.

인력의 질이 회사의 생존과 발전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인사의 기초는 '평등의 보장'이 아니라 '차별성의 인정'이다.

우수한 직원만이 우수한 고객을 확보하고 만족시킬 수 있다. 집단이 아니라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핵심적인 우수직원에게는 핵심적인 우량고객을 알아보는 눈과 마음이 있다.

- 주간 경제지에서 짜집기 하다